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 (요일3:17-18)
본문
1,마음을 닫지 말라.
2,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라.
3,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 지난 시간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곧 살인하는자라고 했다. 또 형제를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했다. 우리가 어떤 때는 형제를 사랑하고 싶기는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형제를 사랑 하는 것인지를 몰라서 사랑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형제사랑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형제를 사랑하기위한 방법이자 곧 주님의 명령이다.
1,마음을 닫지 말라 17절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여기의 재산은 우리들의 의, 식, 주를 말한다. 즉 입을 옷, 먹을 것, 기거할 집을 말한다. 옷이 있고 먹을 것이 있고 집을 가진 사람이 형제의 궁핌함을 보고 있을 때 도와 줄 마음이 생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마음가짐인 줄 안다. 이런 동정심을 가졌다는 것이 곧 짐승과 다른 점일 것이다. 짐승의 세계는 결코 약자를 돕는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짐승과 같은 차원에 두시질 않았다. 우리들의 마음엔 언제나 나보다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면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절로 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귀한 형제를 향한 아름다운 사랑인가 17절을 다시 본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17절의 말씀은 우리 속에 이런 아름다운 마음이 발동할 때 그 마음의 문을 닫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좋은 일을 해야하겠다하고 마음에 생각을 잔득 해 놓고도 이를 꼭 내가 해야하나 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을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으다. 오늘의 말씀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15;17-18절에서는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듯이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대로 쓸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눅3;11절에서 "대답하여 거로되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라고 하시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물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재물들이 어떻게해서 모아진 것들인데. 왜 아깝지 않겠는가 물론이다. 하나님께서도 그 재물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어쩌면 여러분들 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닫지 말라는 것이다. 17절을 다시보면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17절이 무어라고 말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자의 마음에 거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형제를 향하여 마음을 닫고 있는 자의 마음에는 결코 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형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재물을 가지고 우리들의 마음을 열었더 라도 이는 결국 나를 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내 형제는 도움을 받아서 좋고 또 나의 마음에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일이 되었으니 얼마나 더 기쁜 일인가
2,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라 " 18절에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라고 했다. 먼저 말과 혀란 우떤 관계인가 말과 혀는 결국 같은 것이다. 혀가 있기에 말을 하고 말은 혀가 있다는 증거이다. 이는 곧 우리 예수님의 생애와도 같은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를 둘로 요약을 한다면 말과 행함의 두 요소를 들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육신을 입고 오실 때에 말씀으로 오신 것이다. 말씀과 오심 곧 말과 행동의 일치를 말함이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아서 예수님과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남을 말한다. 말씀을 소유한 사람 즉 예수를 수유한 사람은 형제를 사랑할 수 박에 없다.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예수가 있기 때문에 말과 행함이 일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들 주위에 말은 잘 하는데 행하과 일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약2;14-17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하나님께로 난 자는 형제를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한다. 롬12;9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엡4;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리스도인이란 이중적인 인격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속 다르고 겉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과 행함이 같은 사람을 말한다.
3,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 18절 다같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만약 세상에 있는 재물을 가지고, 현제적인 것을 가지고 형제를 도울 수가 없다면 어떻게 신령한 영적을 줄 수가 있느냐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었일가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을 많이 말할 수록 우리는 더 갈증을 느낀다. 우리가 사랑을 많이 말할 수록 우리는 더 허탈해진다. 왜 사랑은 말만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혀만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하는 말이 아름다울 수록 그 하는 말이 깊이가 있을 수록 우리는 더 허탈해진다. 고백만 있고 실천이 없는 부부관계를 생각해 보라. 연인관계를 생각해 보라. 사랑은 말이 아니다. 구체적인 실천이다. 사랑은 수고와 앞음, 그리고 희생이 수반할 때 가능하다. 오늘 세상이 교회를 등지는 이유가 어디에 잇는가 행동하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좀 지난 이야기 입니다만 한 때 고려대 총장을 지녔던 유 진오박사가 사상게에 실었던 글이 있었다. 내인즉 천국의 상황을 자기 나름대로 묘사한 것이었다. 한 곳을 가 보았더니 거기에는 몸둥아리는 없고 입만 소복히 와 있었더라는 것. 한 곳을 가 보았더니 거기에도 몸둥아리는 없고 귀만 소복히 와 있었더라는 것. 행함이 없는 기독교를 비난하는 글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사랑을 시작하자. 수운것부터 시작을 하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의의 옷 진리의 옷 곧 행동이 수반되는 진실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나도 줄 수 있다는 경험을 하자.
2,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라.
3,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 지난 시간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곧 살인하는자라고 했다. 또 형제를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했다. 우리가 어떤 때는 형제를 사랑하고 싶기는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형제를 사랑 하는 것인지를 몰라서 사랑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형제사랑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형제를 사랑하기위한 방법이자 곧 주님의 명령이다.
1,마음을 닫지 말라 17절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여기의 재산은 우리들의 의, 식, 주를 말한다. 즉 입을 옷, 먹을 것, 기거할 집을 말한다. 옷이 있고 먹을 것이 있고 집을 가진 사람이 형제의 궁핌함을 보고 있을 때 도와 줄 마음이 생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마음가짐인 줄 안다. 이런 동정심을 가졌다는 것이 곧 짐승과 다른 점일 것이다. 짐승의 세계는 결코 약자를 돕는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짐승과 같은 차원에 두시질 않았다. 우리들의 마음엔 언제나 나보다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면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절로 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귀한 형제를 향한 아름다운 사랑인가 17절을 다시 본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17절의 말씀은 우리 속에 이런 아름다운 마음이 발동할 때 그 마음의 문을 닫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좋은 일을 해야하겠다하고 마음에 생각을 잔득 해 놓고도 이를 꼭 내가 해야하나 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을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으다. 오늘의 말씀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15;17-18절에서는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듯이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대로 쓸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눅3;11절에서 "대답하여 거로되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라고 하시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물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재물들이 어떻게해서 모아진 것들인데. 왜 아깝지 않겠는가 물론이다. 하나님께서도 그 재물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어쩌면 여러분들 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닫지 말라는 것이다. 17절을 다시보면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17절이 무어라고 말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자의 마음에 거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형제를 향하여 마음을 닫고 있는 자의 마음에는 결코 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형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재물을 가지고 우리들의 마음을 열었더 라도 이는 결국 나를 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내 형제는 도움을 받아서 좋고 또 나의 마음에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일이 되었으니 얼마나 더 기쁜 일인가
2,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라 " 18절에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라고 했다. 먼저 말과 혀란 우떤 관계인가 말과 혀는 결국 같은 것이다. 혀가 있기에 말을 하고 말은 혀가 있다는 증거이다. 이는 곧 우리 예수님의 생애와도 같은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를 둘로 요약을 한다면 말과 행함의 두 요소를 들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육신을 입고 오실 때에 말씀으로 오신 것이다. 말씀과 오심 곧 말과 행동의 일치를 말함이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아서 예수님과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남을 말한다. 말씀을 소유한 사람 즉 예수를 수유한 사람은 형제를 사랑할 수 박에 없다.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예수가 있기 때문에 말과 행함이 일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들 주위에 말은 잘 하는데 행하과 일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약2;14-17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하나님께로 난 자는 형제를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한다. 롬12;9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엡4;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리스도인이란 이중적인 인격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속 다르고 겉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과 행함이 같은 사람을 말한다.
3,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 18절 다같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만약 세상에 있는 재물을 가지고, 현제적인 것을 가지고 형제를 도울 수가 없다면 어떻게 신령한 영적을 줄 수가 있느냐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었일가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을 많이 말할 수록 우리는 더 갈증을 느낀다. 우리가 사랑을 많이 말할 수록 우리는 더 허탈해진다. 왜 사랑은 말만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혀만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하는 말이 아름다울 수록 그 하는 말이 깊이가 있을 수록 우리는 더 허탈해진다. 고백만 있고 실천이 없는 부부관계를 생각해 보라. 연인관계를 생각해 보라. 사랑은 말이 아니다. 구체적인 실천이다. 사랑은 수고와 앞음, 그리고 희생이 수반할 때 가능하다. 오늘 세상이 교회를 등지는 이유가 어디에 잇는가 행동하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좀 지난 이야기 입니다만 한 때 고려대 총장을 지녔던 유 진오박사가 사상게에 실었던 글이 있었다. 내인즉 천국의 상황을 자기 나름대로 묘사한 것이었다. 한 곳을 가 보았더니 거기에는 몸둥아리는 없고 입만 소복히 와 있었더라는 것. 한 곳을 가 보았더니 거기에도 몸둥아리는 없고 귀만 소복히 와 있었더라는 것. 행함이 없는 기독교를 비난하는 글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사랑을 시작하자. 수운것부터 시작을 하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의의 옷 진리의 옷 곧 행동이 수반되는 진실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나도 줄 수 있다는 경험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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