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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답게 사는 길 (요일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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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성운동이 한창이다.누구나 영성없는 크리스챤으로 살기 보다는 영성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기 때문 이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진정 영성 있는 그리스도인이냐는 것이다. 초대교회 이래로 수많은 신양의 선배들이 영성 운동을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였다. 어떤 이들은 성공했고 어떤 이들은 실패했다. 한국인만큼 영성을 추구하는 민족도 드물다. 산골마다 자리잡은 수많은 기도원. 연일 그치지 않는 산상집회 등이 이를 대변한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서원기도, 통성기도. 묵상기도, 큐티, 성경공부. 제자훈련, 신앙세미나 등등 형태는 달리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과 좀 더 가까워 지고자 하는 소원의 표현일 것이다. 영성을 사모하는 수많 은사람들이 수많은 방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 중에서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가 요한일서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준다. 요한은 이 편지에서 초대교회 당시의 영적 귀족주의에 빠져있던 영지주의자들을 경계하며 영성 있는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잘못된 영성 운동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지직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영성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닙이 어떤 분인지 알기 원한다면 성경중 어느 책올 읽으라고 권할까 복음서이다. 복음서를 읽는 동안 독자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 십자가와 부활을 접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올 알게 되고 믿게될 것이기 때문이다.사복음서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풍습이나 관습 등에 별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큰 부담이 없이 소개하기 좋은 책은 요한복음이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소개하며 예수님을 통하여 가능한 구원의 길을 보여준다.그러나 이미 구원받은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멈춘 상태의 신자에게는 요한일서를 소개하면 크게 도움이 된다.영성있는 신자의 진정한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이 편지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요한복음과 요한일서의 차이점을 구별하면 요한일서의 성격이 보다 확실해진다. 요한복음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신자의 하나님가의 관계설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요한일서는 그 설정된 관계를 어떻게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말한다.요한복음이 영생이 무엇이고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에 대해서 가르친다면 요한일서는 영생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가르친다.요한복음이 불신자가 신자가 되는 길을 제시한다면 요한일서는 신자가 신자답게 사는 길을 보여준다.요한복음이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면 요한일서는 받은 바 그 구원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에 대하여 가르친다.따라서 요한복음을 읽는 독자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면 요한일서를 읽는 독자는 이미 맺은 바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극대화시키게 된다. 배경 본 편지에는 집필자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초대교회 이래로 이 편지의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알려져왔다(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터툴리안 등).
현대 비평가들에 의하여 요한의 저작설이 도전받기도 하였으나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는데 실패하였다. 따라서 전통적인 요한의 저작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신자 수신자가 누구였으며 어디에 살았는지는-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것 외에는-밝혀진 바가 없다(.2:12114. 21. 5:13). 초대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요한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에배소에서 수년간 사역하였다. 요한계시록 2 장과 3장의 기록으로 미루어보면 요한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로 있던 아시아 지역 교회들의 상황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편지의 수신자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시아지역 교회의 신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본 편지에서 언급된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은 당시 .아시아에 유행하던 유대주의, 영지주의, 도케티즘. 세린투스의 가르침 등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상들은 나중에 아시아를 넘어서서 로마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나 요한의 생존 시에는 아시아 지역에만 국한되어 유행하고 있었다. 기록 연대 요한의 편지는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연대를 확정하기가 가장 힘든 책중의 하나이다. 연대를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 중의 하나는 본문2장 19절의 내용이다. 만일 거짓 교사들이 주후 60년대에 떠났다고 가정한다면 유대인의 로미 항쟁 기간인 주후 66년에서 70년 이전인 주후60년에서 65년 사이일 가능정이 높다.
그렇다면 요한은 이 편지를 예루살렘에서 썼올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저작연대와 동시대인 주후 85년에서 97년 사이에 이 편지가쓰여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요한의 저작들을 비교하여 저작 연대를 배열한다면 복음서. 서신서. 계시록의 순서로 보는 것이 내용상 큰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주후90년에서 95년 사이가 가장 타당한 저작 연대로 보인다. 요한이 그의 인생의 후반부를 에배소에서 사역하며 보낸 것을생각할 때 이 편지가 쓰여진 장소는 에배소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요한일서 1장 11 4절까지의 본문은 편지의 서문이다. 먼저 본문을 관찰해 보자. 단어 관찰 . 우리:9번 반복되었다. 네 절의 짧은 구절에서 일인칭 복수대명사 `우리’ 라는 단어가 무려 아 홉번이나 반복하여 사용 되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 너희:3번 반복 사용되었다. 이인칭 복수대명사 `너회가 세번 사용되었다(일인칭 복수공동체와 이인칭 복수공동체 사이에 무슨일이 있는가 살펴봐야 하겠다). 너희는 누구인가 . 생명:3번 반복 사용되었다. 생명의 밀씀'. 생명. 영원한생영 . 아버지:2번. 아들:l번. 가족적인 용어 사용 . 예수 그리스도:l번 . 사귐:2번 . 들은 바. 본 바, 주목하고 만진 바라:시청각적 동사의 반복사용 . 전하다:2번 . 증거:l번 문장 관찰 강해 들리고. 보이고, 만져진 하나나님(1절) 요한은 본문 1절 말씀에서 일인칭 복수공동체 `우리가 경험한 사실을 보고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수사학적으로 필자 자신을 겸손하게 우리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편지의 계속되는 내용으로 보아 요한과 합께 거룩한 교제권을 형성하였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 으로 봄이 타당하다. 요한과 더불어 사도적 교제권 안에 들어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거룩한 사도적 교제권에 속한 일인칭 복수공동체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자세히 살펴보았을 뿐 아니라 만져 보기까지 하였다. 시청각적 경험이요 총제적 경험이다. 경험의 방식이 직접적이며 실제적이다. 부엇을 그렇게 경험하였다는 말인가 생명의 말씀' 이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 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을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시청각적으로 경험하였다는 요한의 보고는 논리적으로 불합리하다. 개념적이고 추상적 실체인 `말씀' 이 들릴리 없고, 보일리 없고, 물리적으로.존재할리도 없는데 어떻게 듣고. 보고, 주목하고, 만질 수 있었단 말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타나기 전에는 들을수 없었고. 볼 수 없었고, 만질 수 없었으나, 추상적이었던 것이 구상적으로. 개념적이었던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자 들리고. 보이고.만질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나타났는가 사람으로 나타났다 (나타나신 바된 자니라.인격을 지징하는 용 어).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말씀이 생명으로 역사 가운데 나타났으되 사람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있게 말할수 있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폭발적인 선포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눈에 보일리 없고. 그분을 손으로 만진다는 것은 더 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나 요한은 그분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 직접 보았다. 직접 만졌다. 그분이 역사 가운데 인간으로 나타 나셨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 사실이 너무도 놀라왔다. 아니 하나닙을 볼 수 있다니, 만질 수 있다니,이렇게 내 옆에 가까이 계셔서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교제할 수 있다니, 요한은 이 감격을 요한복음 1장 14 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표현하였다. 본문에서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와 그의 사도적 공동체가 경험한 하나닙과의 교제는 철학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요,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사귐이라는 사실이다. 요한 복음은 그가 실제적으록 가까이서 친밀하게 경험한 하나닙을 기록한 책이다. 요한복음 은그가 하나님에게서 들은 것. 본 것, 주목한 것에 관한 기록이요 그가 만진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다. 영성있는 신자(2절) 일인칭 복수공동체 `우리‘가 이인칭 복수 공동체 `너희`에게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의 이인칭 복수공동체 `너희는 누구인가 편지의 수신자인 너회가 구체적으로 누구인 지 어디에 사는 사람들이었는지 이 편지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볼 때 당시 소아시아지방에 있던 교인들일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확실한 것은 이들이 신자였다는 사실이다(2:12-14,21,27). 요한은 거룩한 사도적 공동체 `우리가 보았던‘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너희인 신자 공동체에게 전하고 있다. 요한에 의하면 하나님은 역사가운데 `생명으로 나타났고 `우리 공동체에 영원한생명으로 경험되었다. 본문에서 영원한생명은그리스도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요한은 요한복음 3 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졌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아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 라"고 증거하였다. 왜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가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생명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신 영원한 생명올 받아들이는 것이며 따라서 누구든 예수님올 믿는자는 영생을 얻는다. 혼히 영생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큰 오해다. 만일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라면 불신자도 영생한다. 불신자도 죽지 않기 때문이다. 불 신자에겐 영생 대신 영벌.이있다. 영벌보다 무서운 심판은 없다. 고통이 너무 혹독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여도 끊지 못하는 영원한 형벌이기 때분이다.
그러므로 단지 삶의 길이를 말해서는 영생의 참 의미를 밝 힐 수 없다. 그렇다편 영생은 무엇인가요한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그는 영생은곧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 요한은 영생올 정의하며 삶의 길.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떤 질인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삶의 질이다. 흔히 가까운 사이에, 당신이 나를 안다 고 말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라고 말ㅎ곤하는데 이때 ‘안다’는 표현은 두 사람 사이에 아주 가까운 교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이 사용한 `안다(.ginwskwsin 으로 쓰임)라는 용어는 사람 사이의 아주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서 남녀 사이엔 육계적으로 관계를 맺는 정도의 친밀도를 표현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영생이란 부엇인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친밀하게 아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친밀하게 아는 삶의 질. 그것이 영생이다. 신자라고 다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신자는 비천한 삶을 살고 어떤 신자는 질 높은 인생올 산다. 바울의 삶에는 질이 있었다. 그는 최상의 상태에 있는그의 삶의 질을,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신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예수닙이 바울 안에 사신 것이다. 영생의 삶이 극대화된 경우이다. 그는예수닙의 성품을 알고 그분의 의도를 따라 살았다. 그의 삶을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기에 그의 삶은 "그리스도의 편지 였다. 영생이란 무엇인가 내 속에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영생을 경힘하게 될 때 신자의 삶은 풍성해진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의 삶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요한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경험한 영생의 삶의 질을 녀희 공동체에게 전하고 있다. 우리 공동체에 있는 것이 너희 공동체에 없었기 때문이다. 요한의 우리 공동체가 신자라면 편지의 수신자 `너희도 신자 공동체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 신자에게 있는 것이 너희 신자에겐 없는 것이다. 무엇이 있고 무엇 이 없단 말인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우리에젠 있는데 녀희에겐 없단 말이다. 요한은 어떻게 도왔는가 그는 먼저 아들을 전하였다. 거룩하신 아버지와 가까워지는 길은 아들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1절의 `생명의 말씀', 2절의 `생명. 영원한 생명 은 아버지 함깨 계시던 분이ㅣ며 3절에서 밝힌대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알고 보면 요한은 처음부터 계속 아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계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들이 계셨기에 그분을 통하여 아버지를 볼 수 있었고, 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의 우리 공동체가 얻은 결론은 무엇인가 하나닙과의 친밀한 교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삶 가운데 생명으로 경힘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리스도를 알아야 할 것이다. 영성 있는 신자가 되는 지름길은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일이다. 영섬 있는 교제권(3절) 요한은 편지의 수신자인 너회 공동체가 다른 사람들이 아닌 거룩한 사도적 교제권을 소유한 우리공동체와 사귀는 것올 원한다. 사귐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wnia )' 인데 공통된 것을 함께 소유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무엇인가 공통된 것을 함께 소유할 때 서로에게 사귐이 있다. 낚시라는 공통된 취미를 합께 소유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낚시 동호회가 생기고, 바둑이라는 공통된 취미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바둑 동호회가 생긴다. 낚시라는 공통된 취미. 바둑이라는 공통된 취미를 함께 소유할때 그 사람들 사이에 사귐이 생긴다. 그러나 낚시가 없으면 낚시 동호회가 깨지고 바둑이 없으면 바둑 동호회가 깨진다.
그렇다면 요한의 우리 공동체는 무엇을 공통으로 소유하였는가 그들이 공통으로 소유한 것은 `아버지와 그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다. 낚시 없는 낚시 동호회가 불가능하고. 바둑 없는 바둑 동호회가 불가능한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 없는 신자 공동체는불가능하다. 누구건 자신의 공동체가 신자공동체임을 주장하려면 반드시 그곳엔 아버지와 아들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 없는, 아들 없는 신자 공동체는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만 아니라 .아들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요한의 강조점은 어디에 있는가 아들에게 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만 믿는다면 예수그리스도 없이도 신양생활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영성 운동을 강조한 나머지 예수닙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영과 물질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졌고 영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와 혼합될 수 없는 독자적인 채계를 갖추었으며 예수님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영은 십자가 처형 전에 떠났기에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 였다. 그들은 예수 없이도 하나님의 영계에 접근할수 있다고 믿었다. 후에 이러한 사상은 영지주의로 발전하였다.
반면에 유대주의자들에겐 예수보다 그들의 전통이 더 중 요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분명히 하였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그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계를 나눈 것은 아들을 통하여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요한은 여기서 성도의 사귐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신자끼리 가까와서 매일 만나지 않고는 못사는 처지라"해도 만일 그들의 만남에 아버지가 없고 아들이 없다면 직어도 그들의 사귐은 성서적 사귐이 아니다. 매주 모여 맛있는 음식올 나누며 교제한다 하여도 그곳에 아버지가 없고 아들이 없다면 그들의 사귐은 성서적 사귐이 아니다. 아무리 자주 만나고 함께 봉사하고 서로 알아주고 왕래하여도 그들의 만남에 아버지가 없고 아들이 없다면 이는 성서적 교제가 아니다. 이런 신자들의 교제는 공허하다. 화려하고 세련되고, 풍성하고 우아해 보여도 아버지가 없고 아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교제권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뜻보다는 사람의 체면을 세운다. 아버지와 아들은 외면하고 자기들끼리 친하려고 애쓴다. 이런 교제권에 속한 사람들에겐 능력이 없다. 영성이 없다. 세속적이다. 그들은 문화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는 교제권에선 아버지의 주권이 세워진다. 아들의 사랑이 나타난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뒤따른다. 이 교제권에 속한 신자들에겐 능력이 있다. 사랑이l 있다. 영성이 있다. 그 모임에 아버지의 뜻이 나타나고 아들의 의도가 나타날 때 비로소 그 모임은 성서적 교제권을 형성하게 된다. 어떤 교제가 거룩한 교제인가 아버지가 나타나고 아들이 나타나는 교제가 거룩한 교제이다. 영성 있는 신자의 기쁨(4절) 요한은 본 구절에서 편지를 쓴 목적을 밝혔다. 기쁨이 넘치기 원해서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기쁨은 어떤 기쁨인가 하나님과의 친말한 교제 때문에 갖는 내적인 민족감이다. 그들이 소유한 영생의 삶 때문에 갖는 생의 만족감이다.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나의 삶 안에 경험할 때 오는 즐거운 감정이다. 신자 공동체 안에 생명으로 사시는 예수님을 기뻐하는 감정의 극치이다. 요한의 교제권엔 이 기쁨이 있었다. 내 안에. 내 공동체 안에 사시는 하나닙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환회와 감격의 감정을 기쁨이란 용어로 표현하였다. 요한은 기쁨이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원하였다. 그 기쁨을 최대한 더 크게 맛보기 원하는 소원으로 편지를 썼다. 요한은 `우리 신자들` 과 `너희 신자들` 이 함께 교제함으로 너희 신자들도 하나닙과의 친밀한 교계를 회복하고 `우리 신자들이 소유한 성서적 기쁨을 `너희 신자들도 똑 같이 소유하기를 원했다. 도움 자료 다음은 설교자를 돕기 위한 본문의 석의 개요. 강해 개요, 설교 힌트 등이다. 도움이 되길 바란다. 석의 개요 본문의 관찰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개요를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 개요:역사 가운데 들어오신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과의 친밀한 교제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린 요한은 1 세기 후반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그와 사도들에게 있었던 동일한 교제의 기쁨이 편지의 수신자에게도 가능함을 알리기 위하여 편지를 썼다.
I.사도 요한은 사도들과 함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과 친말한 교제(시청각적 교제)를 나누었다(.1절).
A.사도요한은 사도들과 함께 태초부터 있는 생병의 말씀을 들었다.
B.사도 요한은 사도들과 함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보았다.
C.사도 요한은 사도들과 함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주목하였다.
D.사도요한은 사도들과 함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손으로 만졌다. ll.사도 요한과 사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역사 가운데 나타난 생명과 교제하였고 이 사 실을 초대 교회 성도들에 전한다(2절)
A.요한은 자기가 교제한 역사 가운데 나타난 생명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전한다(2절 상).
B.사도들에게 나타난 생명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분이다(.2절 하). lll.요한이 그가 경험한 교제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전하는 목적은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가 경험 한 동일한 교제를 갖기 원하기 때문이다.(3절).
A.요한은 초대교회 성도들도 동일한 종류의 교제를 갖기 원하는 목적으로 그가 사도들과 함께 경험한 교제를 전한다(.3절 상).
B.요한이 초대교회 성도에게 소개하는 교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함께하는 교제이다(.3절 하). lV. 요한은 그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기쁨이 요한일서의 수신자에게도 넘치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이 편지를 썼다(4 절 하). 강해개요(1:114) 석의의 내용을 바탕으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보편적. 일반적 진리를 설명하는 작업을 가리켜 강해라고 한다. 석의 개요가 요한의 편지를 받았던 l세기 후반의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진리라면, 강해 개요는 요한의 편지를 받았던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어느시대 어느 곳에서나 적용할수 있는 일반적 진리이다. 위의 석의 개요를 보편화시켜 강해 개요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 개요:요한과 초대교회 사도들이 경험 하였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계와 그에 따른 교제의 기쁨은 어느 시대 어느 성도들에게도 가능하다(114절).
1. 요한과 사도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닙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1절).
A.요한과 사도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올 들었다.
B.요한과 사도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닙의 삶올 보았다.
C.요한과 사도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행적올 주목하였다
D.요한과 사도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몸을 손으로 만졌다. 11. 요한이 교제한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닙이셨고 그는 이 놀라운 사실을 성도들에게 전한다(.2절).
A.태초부터 있던 말씀이 역사 안에 나타났으니 그분이 예수님이다.
B.요한이 교제한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111. 요한이 경험했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어느 시대 어느 성도에게도 가능하다(3절).
A.사도들이 가졌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어느 시대 어느 성도에게도 가능한 것으로 계속 증거되어야 한다.(3절 상).
B.성서적 교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교제이다(3절 하). lV. 요한이 가졌던 교제의 기쁨은 어느 시대 어느 성도에게도 가능하다(.4절). 설교 힌트 강해가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일반직인 진리를 맑혀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설교는 도출된 일반적인 진리를 설교자가 섬기는 회중에게 현대적인 용어로 설득시키는 언술이다. 다음을 참고하여 설득을 위한 보다 세부적인 설교 개요를 각자만들 수 있다. . 요한의 전제 성도들의 삶에 교제가 없다. 기쁨이 없다. 사귐에 아버지와 아들이 없다. . 설교 힌트 과연 오늘 우리 교회 신자들에게 진정한 성서적 교제가 있는가
2교제의 기쁨이 있는가 , . 설교 요목 1 명제:요한과 초대교회 사도들이 가졌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가능하다.
1. 하나닙과의 친말한교제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실제직인 것이다. 11. 하나닙과의 친밀한 교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삶 가운데 생명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Ⅲ. 사도들이 가졌던 하나닙과의 친밀한 교제는 오늘 우리에게도가능하다. lV. 하나님과의 친말한 교제는 우리의 삶에 놀라운 기쁨을 가져온다. . 설교 요목 2 명제:기쁜 그리스도인이 되려거든 하나님과 성서적 교제를 가지라.
1. 기쁜 그리스도인 되려거든 추상직이 .아닌 실제직인 교제를 가지라. 11. 기쁜 그리스도인 되려거든 영생되신 예수님과 교제하라.
Ⅲ. 기쁜 그리스도인 되려거든 사도들 이 가졌던 동일한 교계를 가지라. lV. 기쁜 그리스도인 되려거든 교계의 기쁨을 당신의 삶속에서 누리라. . 설교 요목 3 명제:교제의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닙과 친말한 관계를 계발함에 있다.
1. 교제의 목직은 신자들로 하여금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과 친말한 판계를 계발케 함에 있다(.112절). 11. 교제의 목적은 진정한 교제를 경험하지 못한 신자들을 거룩한 교제권에 초청함에 있다(3절).
Ⅲ.교제의 목직은 거룩한 교제권에 속한 신자들의 기쁨을 모든 신자들과 공유케함에 있다(.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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