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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이기는 피의 권세 (요일1:9-10)

본문

오늘은 9절부터 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지난 시간에 우리가 까지 조금 들어가다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들의 죄들을 자백하면, 고백하면, 그냥 사사로이 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체가 교회적으로 우리의 모든 죄들을 고백하면, 내놓으면 그는미쁘시고 신실하시다 또 의로우시다. 신실하다는 말 란 말은 여기서 물론믿음이 나왔습니다만 본래 신실하다혹은신뢰할 만 하다 라는 본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사용할 때에는 주로 가 사람에게 적용되고 사물에게는 확고하다(에바이오스)를 사용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확고한 것은신실하고 그래야 신뢰할만 하고 그 약속은 자 기대로 약속한대로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실하다고 하신 이가 지금 하나님 이십니다. 그가 신실하시다 그 말씀은 본래 자기 본성대로 있어서 그가 하신 약속을 변 개하지 아니하시고 그 약속을 끝내 이루시는 것을 지시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라는 말을 썼습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다.혹은 우리말에 미쁘시다는 말은 우리의 형편에 의하면 자기의 약속을 도저히 지키실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의 약 속을 부인하실 수 없는 분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그는 신실하시다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시사 죄를 멸하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모든 죄들을 우리에게서 제거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누구든지 그 아들을 믿는 자들은 다 죄의 용서함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약속을 좇아서 우리의 죄들을 다 고백하면 그는 그 약속에 신실하셔서 자기를 부인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그는 그 약속을 지키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게, 처음하신 약속대로 우리에게 죄를 용서해 주시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와 그 다음의 말 의로우시다는 말이 결국에는 같은 뜻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고 하는 말은, 물론 조금 더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모든 규범의 원천이시고 또 모든 인류가 따라해야할 규범 자체이시기 때문에 의로우시다는 뜻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의로우시다고 하는 말은 그가 모든 윤리행동의 규범으로 척도로 원천이 되셨다는 뜻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가 친히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바로 우리 죄를 멸하시고 구속을 이루신 분이기 때문에, 구속을 이루셨기 때문에 그 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왜 죄를 멸하고 우리의 구속을 이루심이 의로우시냐 본래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시지 못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기 때문에 그 죄를 제거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거의 작정이 그냥 된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의 속죄의 죽음을 통해서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니 바로 죄를 제거하심에 하나님의 본성에 맞도록 죄를 제거하였습니다. 그냥 용서해 주심이 아니라 아들의 속죄를 통해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니 바로 구속을 이루셨으니 그가 의로우신 분이시고, 뿐만 아니라 그렇게 의로우 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더이상 죄인이 아니고 의인으로 즉, 더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로 하나님 앞에 서도 록 하셨으니 자기의 의가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참으로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냥 추상적인 의의 규범이나 행동의 규범이 아니라 분명히 사람에게 있는 이 죄를 제 거하심에 아들의 속량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며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규범을 좇아서 바르게 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죄를 속하셨기 때문에 그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여기에 지금라, 의로우시다 할 때에 그 의 로우시다 하는 말은 특히 요한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제거하심으로 속죄를 이 루셨으므로 아들 안에서 속죄를 이루셨으므로 그가 의로우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러니 둘이 다 같은 뜻입니다. .
그런데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시사 그가 죄를 제거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의 용서의 약속을 좇아서 죄를 고백 하 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약속에 끝까지 신실하시고 그리고 그 죄를 제거하시는 일에 끝까지 철저하시므로 그가 우리의 고백된 죄를 감면해 주십니다. 그래서 물론 뒤에 라고 하는 정결케 한다는 말도 함께 쓰였지만, 그러나 앞에는죄를 감면해 준다, 죄를 탕감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는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죄들을 다 놓아주십니다. 더이상 죄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 앞 에 죄인으로 취부되지 아니하고 죄를 용서받는 의인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 에게 죄의 용서가 올 때마다 죄의 용서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이고, 그리고 죄를 용서해 주실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와서 우리로 하나님처럼 의롭게, 물론 하나님처럼 본질에 있어서 의롭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 처럼 우리도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가 용서되는 일은 반드시 죄의 고백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 고백하지 아니한 죄로 용서해 주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정상적인 죄의 용서의 길은 죄의 고백으로만 이루어지고 다른 어떤 길로도 아닙니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정식으로 공식으로 죄를 사과함이 없이도 우리는 죄를 묵과하고 용서해 줍니다. 그것은 결코 성경적인 바른 법이 아닙니다. 항상 예수님도 70번씩 7번씩이라도 죄를 용서해 주라고 하실 때에반드시 돌이키고 죄를 뉘우치면 이 붙어 있습니다. 그냥 용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시간만 지나면 용서해 버리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른 죄 관이 아닙니다. 바른 용서관이 아닙니다. 죄가 용서받는 길은 반드시 잘못했다고 죄를 고백 할 때에 용서를 받습니다.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그냥 무조건 용서가 아닙니다. 반드시 내가 잘못했다고 고백하면 내가 용서해준다.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 줍니다. 그러나 고백하지 아니한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할 때에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 특히 서양사람들에 게는 지도자가 공적으로 사과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다음 선거에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백성들은 세월만 지나면 어떻게 건망증이 많은지 돈 몇푼 받으면 다 잊 어버리거나 다 용서해 버리고 다 풀어버리지요. 그러니 서로 원한이 맺혔던 것 뿐이지 잘못 을 범한 것은 아니다. 서로 감정의 얽힘으로 생각하지 항상 공의의 법에 어긋난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바로가 그것을 분명히 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공법을 범함 입니다. 물론 국가의 법도 범함으로 죄가 되지요. 그러나 근 본으로는 하나님의 공법을 어김으로 죄가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항상 여러분의 지도자나 혹은 여러분들이나 잘못을 했으면 반드시 잘못을 시인하고 고백해야 할 것 입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그냥 세월만 지나면 되는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지 도자들은 잘못했단 말은 죽어도 안해요. 죽어도 못해! 한국 사람은 잘못했다는 말 못해! 목사가 어떻게 교회 앞에서 잘못했다고 말을 해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목사 할려고. 죽어도 천하 없어도 사표를 내고 다른 곳으로 갔으면 갔지 잘못을 인정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죄과는 하나님의 공법에 어긋남이니 공적으로 사과해야 맞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도 반드시 잘못했으면 반드시 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들도 용서해 줄 때에 분명히 용서를 구할 때에 용서를 해야 합니다.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 한국 초대교회 때에도 잘못하면 정말 즉각으로 자기 체면은
둘째치고 가서형제여 내가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시오 하고 아주 그렇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지금 그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공법을 어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사사로운 감정의 얽힘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의 법 에 어긋났으니 우리가 용서받는 길은 하나님께 반드시 고백해야, 반드시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고백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죄과를 처리하시기로 이미 이루셨고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가 의로우셔서 여러분들의 죄과를 용서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의 죄를 다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그 길 만이 여러분들이 용서받는 길입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죄가 용서받는 길 은 반드시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죄이든지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십니다. 복수로 썼습니다. 무슨 죄든지 다 용서 받습니다. 죄를 고백만 하면 그 아들의 피에 근거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냥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피에 의지해서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의로운 분이십니다. 거저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의 피에 근거해서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니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불의로 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 불의가무엇입니까자, 여기의에 두 말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고 혹은는 부정이고즉 의 에다가를 붙임으로 불의 라고 했습니다. 의로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을 좇아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사는 것,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의요.
그런데가 붙었으니 바로 불의라. 불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범한 것이 불의요, 하나님의 뜻을 어김이 불의요. 하나님의 법을 어 기고 그리고 그의 계시된 뜻을 좇아 행하지 아니한 것이 다 불의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법을 어김이 우리의 죄 요. 우리가 그 죄들을 지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어긋났으므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죄과만 가 질 뿐 아니라, 죄를 지으면 항상 가책을 받습니다. 그러니 죄과, 죄책을 가질 뿐만 아니라 죄를 범하므로 그 죄과를 가짐으로 우리가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그리고 타락하고 오염됩니다. 순결한 데서 떠난다! 그 불의로 인해서 우리가 더러워진 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 끗하게 하시고속죄 혹은 용서해 주다, 죄를 박멸해 준다는 것이 법정적인 선언에 칭의에 해당한다면 ,정결하다고 하는 것은 성화의 측 면에 연결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만을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불의로 부터서 우리를 깨끗하게 함으로 우리가 지은 죄과로 인한 죄의 오염에서도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죄 의 고백에는 죄의 사죄와 함께 죄의 용서와 함께 그리고 깨끗하게 됨이 있습니다. 항상 용 서되면 일반 법정에서 죄의 선언과 그리고 죄의 용서로는 그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의 법에 있어서 죄의 용서에는 반드시 죄로부터의 깨끗함이 동반합니다. 그러니 의로움에는 반드시 성화가 동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죄를 용서 하면 죄가 용서함 받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불의에서 우리가 깨끗하게 됐습니다. 불의를 행함으로 이제까지 더러워지고 오염된 데서 우리가 정결케 되고 바로 그럼으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워집니다. 깨끗해지니 의로워진다는 말은 바로 우리가 깨끗함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 그것이 의롭다고 하는 말의 근본 뜻입니다. 의가 무엇이냐 의롭다고 한다는 말이 무엇이냐고 그럴 때에 그저 그냥 의로워진다고 생각하는데 의롭다 할 때에 그 근본 뜻이 하나님으로 부터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진리를 인정받음 허락받음이 바로 의롭다 혹은 의 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깨끗하여지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죄 두고는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교제를 바로 하고 싶으면 여러분들이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인도함을 받아 살고 싶으면 여러분들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 외에 성령님 많이 주시오, 성령님 많이 주시오 하면 성령님 받을 줄 우리 한국에서는 아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 부흥사들은 성령님 받으라고 성령님 받으라를 많이 외칩니다. 사도들도 못한 일을 우리 한국 부흥사들은 하십니다. 사도들이 성령님받으라고 선 포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사도들이 성령님 받으라고 선포했습니까 바울사도의 글에 어디에 성령님 받으라는 소리가 있습니까 너무 복음을 너무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너무 얼 토당토 않는 소리들이 그저 공공연하게 그리고 가장 바른 것으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어 떻게 부흥사가 성령님 줄 수 있습니까 사도들도 성령님 받으라는 소리를 못했는데. 성령님 받는 길은, 성령님충만 받는 길은 다른 길이 있지 아니합니다. 사도들의 선포에 성령님 충만이 성령님받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선포 뿐이었 습니다. 바로 그 선포를 받아들일 때 성령님이 내려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성령님의 충만을 좇 아 혹은 성령님의 인도를 좇아 살고 싶으면 여러분들이 그 피에 의지해서 죄를 고백하는 길 만 있습니다. 그러면 그 피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 피로 여러분들을 씻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깨끗해져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있습니다. 항상 칭의에는 성화를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의로워짐에는 깨끗 하게 됨 없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그 아들의 피로 만이 우리 를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의롭다고 칭함을 받으실 수 있으면,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 도 그 아들 예수의 피에 호소해서 죄를 고백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다음 10절,, .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했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를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들며 그를 거짓말장이로 만 든다. 자, 우리는 다 죄지은 자들 입니다.
그런데 왜 사도요한이죄짓지 아니했다면하는 완 료형을 여기다 갖다 놨을까 어째서 완료형을 여기다 갖다 놨냐 이것은 소위 그노시스주 의자들의 완전의 도달에 대한 사도요한의 항변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그노시스주의자들 에 의하면, 지금 예수를 믿어 그노시스를 받음으로 즉 특별한 지혜를 지식을 받음으로 이미 완전에 도달 해버렸습니다. 완전헤 도달 해버리므로 옛날에 죄 지은 흔적이 다 제거되어 버 렸습니다. 그노시스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완전에 이미 도달함으로, 그리고 완전에 도달 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지은 죄가 다 완전히 그것이 소실되어 제거되어 버린 것이 그노시스주의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말에 대항해서 아직도 완전에 도달함은 요한에 있어서 미래사 입니다. 현재이기도 하 지만, 완전한 도달에, 이 문장에 의하면 우리가 과거에 죄 짓지 아니했다고 하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죄짓지 아니했다고 하면 단번으로 죄짓는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계속 지어왔다.
그런데 끝났다고 하면 하나님 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듭니다. 우리는 다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의롭게 되고 깨 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과거 근본이, 죄의 인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가 완전에 도달함은 종말에서지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제 종말에 도달했을 때 더 이상 구속의 은혜의 필요성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속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 때라 고 해서 이 과거가 완전히 제거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구속 의 은혜의 결과로 남아 있으니 이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처리될지는 우리가 기다릴 일이지 마는 그러나 과거에 죄 짓지 안했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 거짓말쟁이 로 만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죄를 멸하시고 속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속죄제물로 삼으셨는데, 완전에 도달하므로 죄를 제거시켜 버리면 그리스도의 오심의 근거를 제거해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셨다고 하는 말이 최소한 이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과거에도 죄 지었거니와 이제까지도 죄 지어 왔다. 죄 짓지 아니했다고 말하면 하나님의 구속이 거짓이다. 실제 역사 내에서 일어난 것으로 부인 해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이 그노시스 주의의 주장이 전적으로 그릇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용서 받았어도 죄인으로 남습니다. 우리가 깨끗함을 받아도 용서함을 받습니다. 완 전히 죄의 뿌리가 제거되는 것은 종말에서의 일 입니다. 아직은 우리가 죄의 뿌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완전히 그것을 없애버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을 무 위로 만든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속죄제물로 세우셨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부인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그리고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다자, 여기의 다음의에 강조를 붙여서 우리 안에 결코 그의 말씀이, 그의 진리가 혹은 생명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 지 않다 하는데 귀착합니다.
여기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과거에 죄를 지었고, 지금도 죄 지어서 죄를 고백하는데, 그리스도가 혹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 에 계신다고 하는 것 속에 그리스도인의 과제가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했지마는 우리가 죄를 지었지만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지만, 계시기 때문에 그것으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의 투쟁이 우리의 과격한 요구로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와 계신다고 우리가 무죄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죄하게 되지 않는 대신 우리가 늘 죄 를 싸우고 이기며 죄를 고백하는 일이 우리에게 필수적인 과제로 늘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혹은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 와 계시기 때문에 그 사망의 원인인 죄에 대해서 투쟁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앞에서 1절에서 생명의 말씀이라 고 했습니다. 죄 지었으니 죄의 근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의롭게 되었으니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그러면 한쪽은 죽음의 근원이요 한쪽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니 생명의 근원이 우리에게 와 있으니 죽 음의 근원인 죄에 대하여 과격하게 투쟁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이지요. 그리고 그냥 우리 안에 와 계신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해도 좋다가 아닙니다. 죄 지었다고 해도 우리 안 에 그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했으니 어찌해도 그냥 예수는 우리 안에 계신다가 아닙니다. 바로 이 말씀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 짓게 하는 그 죄의 근본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생명의 그 힘으로 싸워야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들이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안에 있는 죄와 자기 밖에 있는 죄와 그 생명의 말씀 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권능으로 싸우는 것이, 이 일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피하 지 못할 과제입니다. 우리는 항상 인심이 좋아서 자기가 잘못하면그저 별 수 없지요하고 다둑거리고, 또 우리 교회에서 이렇게 죄 지어도그저 사람인데 어쩔 수 있느냐!하지만 그러나 죄를 해 결하는 법도대로 그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냥 묵과해서 쉬쉬하는 것 그것은 결코 하나님 앞에 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죄를 교회 앞에서 고백하고 그리고 근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속에 있는 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투쟁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죄에 대해서도 우리 한국사람은 눈감아 버립니다. 저 밖에 도도 히 흐르는 죄에 대해서 눈감아 버리면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닙니다. 저 밖에 도도하게 흐르는 죄의 흐름도 우리가 온 힘을 다해서 싸워 막아야 할 것입니다. 죄와의 투쟁,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과제입니다. 바로 이 죄와의 투쟁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죄와 투쟁함이 나와 여러분의 피하지 못할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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