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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를 사랑함과 미워함의 귀결 (요일2:10-11)

본문

요한일서 2장 10절 부터 11절까지 입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하였음이니라 지난 시간 10절 후반까지 하다가 중단을 했습니다. 10절에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안에 머물고 그리고 넘어지게 하는 것이 그 안에 없느니라] 지난 시간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항상 남녀간의 사랑을 생각하면 자기를 주고 자기 것을 주는 것을 사랑으로 정의를 했습니다. 그것이 근본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범위를 넓혀서 형 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에게 합당한 그의 가치대로 그에게 평가 해주고 또 그로 하여금 그 렇게 그의 인격의 존엄성을 좇아 대접 해주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안에 머무르고 늘 지금 여기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강 조점은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고 사랑의 화신이어서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생겨난 자들이기 때문에 형제 를 사랑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죄악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 고 있습니다. 사실상 살다보면 우리 중에 감정이 얽혀서 형제에게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되고 하는 것이 쌓이면 미워하게 되고 그리고 미워하게 되면 그 사람이 없어지기를 바 라게 되고 그리고 그 열도를 계속하면 그 사람을 이 세상에서 제거하기를 자기 간접으로나 직접으로 기도(企圖)하게 됩니다. 바로 미워하는 것이 살인입니다. 미워하는 자가 살인이기 때문에 아마 사람이 범한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있다면 그것은 살인 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라도 많은 경우에 정당방위의 경우는 물론 예외 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형제를 미워 해가지고 결국 살인에 이르는데 그 살인은 참으로 용 서 받기가 어렵습니다. 어떻든간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손을 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마 제일 큰 죄가 있다면 이 사람을 죽인 죄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되는 자들이고, 머무른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의미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살기 때문에 밝은 빛 아래 있습니다. 빛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형제를 조금이라도 미워하는 생각이 전혀 없고 또 전혀 형제들에 대해서 좋지 않은 생각을 갖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빛 안에 있는다는 말은 그와 같은 생각을 했을 지라도 그것이 빛에 의해서 물러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와 같은 생각을 가졌 을 때 곧 우리가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며 그의 피로 씻음을 우리가 구합니다. 형제를 사랑 하기로 작정한 사람, 또 그리스도인은 다 형제를 사랑하기로 작정된 자들이지요.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루어졌고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형제된 자들이기 때문에 사랑에로 작정된 자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빛 안에 있고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안에 거리낌이 없다. 본문에는 사람을 길에 넘어지게 하고 놔두는 것이 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우리가 넘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빛 안에 있어서 형 제를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니 그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릇되이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그가 아무리 바르게 해도 바르게 그를 평가 해주고 그를 바로 봐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미워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바르게 봐줄려고 하지 아니하 고 자기가 한번 그릇 판단한 대로 그대로 만 판단하고 그 사람에게 대해서 평가하기 때문에 바른 면을 도저히 생각해 줄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그 사람이 자기 앞에 걸 림돌이 되고 또 자기도 그 사람에 대해서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형제를 사랑하면 그와 같은 것이 없습니다. 나도 그 사람에게 걸려 넘어지고 뿐만아니라 그 사람이 내 앞을 가로 막는 그런 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넘어짐이 없습니다. 영어에 있어서 scandal이라고 하는 추문이라든 지 그런 뜻이 나오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바울의 말대로 우리의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 자는 모든 계명을 다 이루었다. 모든 계명은 사랑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모든 계명을 다 이루어서 형제를 해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형제의 유익을 구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사랑 하지 않는 자는 자기 유익만을 구할려고 하고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자기에게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그에게서 자기 유익만을 구 할려고 하면 결국 그가 내게 걸림돌이 되고 나도 그에게 걸림돌이 되어서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형제도 우리를 그와 같이 대해서 우리가 그를 그릇되 이 생각하고 넘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 너무 자기 유익만 구하는 데서 우리가 형제의 유익을 구하는 데로 가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면 자기 만의 유익을 구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사랑은 남을 유익되게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을 유익되게 하는 것인데 그러나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 예수 믿어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교회를 이용하고 그리스도 의 이름 이용하고 하나님 이용해서 자기의 유익만을 구할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한국교회가 넘어짐이 심하고 걸림이 많습니다. 참 남의 유익을 구하는 생각을 하지 않 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어서 남을 유익되게 하는 생각을 가져 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고는 항상 남을 조금 유익되게 하는 것도 나와 파당을 지어 연결 시키는 데로 이렇게 연결 시킵니다. 남에게 조그만 유익되게 말하는 것도 나와 이해 상관으 로 그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우리 사회를 밝게 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받아 죄를 벗고 빛 안에 거하게 되었는데 우리에게 걸려 넘어지는 것이 있으면, 형제를 미워하고 형제에 대해서 그릇된 생각을 갖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11절에 가서
그런데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 가운데 있고 그리고 어두움 가운데서 행한다는 말은 산다는 말입니다. 아직도 미워하는 것이 주도적인 성향이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주도적인 성향이면 그 러면 우리는 아직도 죄악 가운데 있습니다. 그 죄악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 이 결국은 살인입니다. 그거는 하나님이 살리시는 역사와 정 반대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사 살리시려고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살리시려고 역사하시는 것을 반대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도 어두움 가운데 죄악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죄악 가운데 있을 뿐만 아니라 죄악으로 삽니다. 어두움 가운데 행한다는 말은 지금 요한에게 있어 서 어두움 가운데 산다는 말입니다. 어둠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미워하는 것이 주로 주도적 인 성향이면 그는 죄악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태초에 범죄 다음에 일어난 범죄는 살인이었 습니다. 미워함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었으므로 지금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미워하는 것이 주도적인 성향이면 그것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고 죄악 안에 행하기 때문에 죄악으로 어둠으로 불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 미워하는 생각을 가지면 죄악 가운데 있는 것을 뉘우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이렇게 동작으로 나타난 경우만 죄악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하는 죄악에 대해서 죄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지 즉각적으로 바로 바로 회개하고 뉘우치며 그리고 그의 피로 용서 함을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 요한에 의하면 그 길밖에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느냐 미워하느냐 중립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형제를 대할 때에 사랑으로 대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늘 형제간의 이해와 연관되어 항상 내 길에 걸림돌이 되는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회에 동료들 사이에 평안을 유지하고 사는 경우가 드뭅니다. 많은 경우에 보면 형제에 대해서 그렇게 평화롭게 공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이 죄악된 본성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들은 사실상 지난 5백 년동안 평소에도 말했듯이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적대시 하는 그와 같은 경향이 깊습니다. 개인간에도 그렇고 단체간에도 그렇고 지방간에도 그렇고! 지방간에도 벽이 이렇게 겹 겹이 둘러져 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뚫고 들어갈 길이 없도록 이제까지 우리가 생활해 왔 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영으로 한국 교회가 변화를 입어서 형제를 대할 때에 그와 같은 생각으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심장으 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여러분들이 미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미움과 사랑, 그리고 빛과 어두움, 그것 뿐이지 중립을 말하고 있지 않 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가 어디로 가는지 를 알지 못한다. 미워하는 사람은 죄악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기의 길이 종착역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자기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자기의 종착역이 사망인 줄 알며는 도대체 담대히 죄 짓지 않을 것이요. 여러분들은 선량하셔서 별로 그런 생각이 없이 참 담대할 수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이제 진의 나이를 넘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조 금 철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정말 지금 주 앞으로 간다면 정말 내가 가서 떳떳하 게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가끔 가끔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길 위에서 생활의 목표가 늘 내세를 생각하면서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도록 강조하 고 있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계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에 있어서 죽음 너머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늘 우리의 생을 경성하는 것, 그것이 칼빈에게 아주 강 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 짓는 사람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죽음으로 종착역에 이를 것이 라고 하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생활하는데 그런 생각이 없 이 그냥 그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면 여러분들도 여러분이 가는 길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왜 자기가 가는 길을 모르느냐 .어두움이 그의 눈들을 소경이 되게 했습니다. 어둠이 눈을 이성을, 판단의 능력을 어둡게 해서 자기가 하는 것이 죄여서 죽음에 이를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불신자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죄를 죄로 뉘우치지 않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이 불신자의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사도 요한이 계속해서 기 다린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여러분들이 죄 짓는 데 면역이 되어 있으면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눈이 이미 죄로 인해서 어두워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여러분들이 죄 짓는 데 면역되어 있고 담대하고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여러분들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여러분들 죄가 여러분의 어둠이 여러분의 눈을 어둡게 해서 여러분의 가는 종착역이 여러분들이 어디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한번 주님 앞에 서게 되어 있고 우리의 선악간에 행한대로 그 앞에 고 해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수 믿었으니 선택되었으니 그렇게 하는 사람들 은 선택되지 못합니다. 죄 짓는 일에 그렇게 선택 교리를 갖다 붙이는 사람들은 선택 받지 못한 자들 입니다. 선택된 자들은 죄를 그렇게 선택에다 갖다 붙이며 죄 지을 수 있는 사람 들은 그들의 눈이 벌써 죄로 인해서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주도적인 성향이고 형제에 대해서 좋지않게 생각하는 것이 주도적인 성향일 때는 우리는 아직도 죄악 가운데 있으며 어두움 가운데 있어서 우리가 행 하는 모든 것이 죄이기 때문에 가서 도착할 종착역이 사망에 이를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죄 짓는 일에 면역되어 있으면 여러분들에게 보통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 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예리할 대로 예리하게,
사랑하는 여러분들, 밤낮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예리할 대로 예리하게, 아무리 어떤 경우에 이해상관에 있어서 부당하게 판단하고 부당하게 대하고 싶어도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예리하게 세워서 정말 바른 양심에 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양심을 무디게 적당히 하면 안 되고 칼날처럼 날카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죄 짓는 것을 범연히 하고 여러분 속에서 죄악된 생각, 미워하는 생각, 음란한 생각, 거짓말하고 싶은 것을 아무렇게나 하고 호색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어서 옛 사람이 그대로 발동하고 주된 역사를 하게 하면 벌써 어두움이 여러분의 눈을 어둡게 하며 여러분의 갈 길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분명히 죄 짓는 그 도착할 종착역이 무엇인지를 알며는 죄 짓는 것을 용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권력을 휘두르며 담대한 자는 저들도 죽으면 가서 도착할 곳이 있는 줄 알 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국토가 다 망가져 버리도록 해서 자기를 부하게 하는 자들도 저 들의 종착역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부실 기업들, 뭐 특 혜라는 말이 없어진 지금에도 부실 기업은 자꾸 생겨납니다. 지금도 뭐 이번에 몇 조 인가 를 특별 융자를 해줘서 구제하겠다고 합니다. 도대체가 어떻게 줄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부실 기업이 될까 물론 기업이 잘 못 되어서 경영 능력이 없는 자들이 해서 실패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에는 부실 기업이 어떻게 생 겼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정부는 부실 기업된 자들을 돕는다고 하는지. 그렇 게 범죄하는 데 담대해서 이 세상에서 호사하고 잘 먹고 잘 입고 권세 부리는 것 만이 전 부인 줄 알면 그렇게 용감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 눈이 어두워져서 감기워져서 저들이 가는 길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너무 그런 것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마다 외형적으로 잘 되는 교회 부러워 하고 그것에 그냥. 어째서 교회들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정당한 수고를 통해서 자기의 밥을 벌도록 가르치지 않고 그냥 수고 없이 돈이 많아지는 축복의 비결 만을 선사하니 이와 같이 부실 기업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리고 또 교회들로 하여금 죄 짓는 데 담대하게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에 대 해서 너무 연연하고 세상의 권세에 너무 집착하면 죄 짓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아무리 은혜 가 많은 사람도 물질에 집착하고 연연하는 사람 죄 안 짓는 사람 없습니다. 다 보십시요. 아무리 천사같은 사람 배후에도 전부 다 도적질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천사같은 목사들 배후에도 물질에 연연해 하는 사람들, 많은 재물 물질 모으지 않은 사람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너무 물질 위주로 하고 하나님의 법을 소홀히 해서 모든 것을 자기의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형제를 해치는 것은 바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아니 직접적으로 내가 언제 형제를 주먹으로 쳤느냐 자기를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많은 국민들을 해 되게 한 것은 그들로 서지 못할 자리에 서게 한 것이니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요! 여러분들! 가서 분명히 가르쳐서 어떻게 정치하는 것이 바른 복음으로 정치하는 것을 이 복음의 원리에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개인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하는 자들도, 사업하는 자들도 복음의 원리, 생활의 원리는 같습니다. 우리는 개인 윤리와 국 가 사회의 윤리가 구별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천만에! 기독교 윤리에 의하면 둘이 없습니다. 특히 칼빈주의에 있어서는 윤리가 두 가지 아닙니다. 루터는 이 세상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영역과 세상적인 영역을 둘로 구 분하므로 윤리도 불가피하게 둘로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열심히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도에 의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개인의 윤리와 사회 윤리 국가 윤리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개인으로는 선하지만 공직자로 봐서는 죄를 범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으로는 죄 짓지 않아도 공직자로 죄 지으며는 교회에서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동일하고 준엄해요! 우리는 바로 판단하지 못해서 눈을 감아 줄지라도 의로우신 심판관은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한번의 심판이 누구에게나 어느 민족에게 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서 분명하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개인 만이 이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랑하는 계명과 미워하는 범죄는 개인에게나 국가 사회에게나 마 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그러니 불신 결혼하는 자들, 형제를 미워한 죄를 짓는 자들, 많은 것 을 착복한 자들, 형제를 미워하는 죄를 짓는 자, 그들의 눈이 돈에 어두워서 저들의 도착할 종착역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죄 짓고 있습니다. 죄 짓는 것을 깨우치는 것은 여러분들의 책임 입니다. 미움 있는 곳에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여러분의 책임 입니다. 미움 대신에 사랑이 행해지게 하는 것이 여러분의 책임 입니다. 여러분들 너무 그렇게 급하게 목적 정해놓고 그렇게 열심히 밀며는 그리스도의 법이 들 어와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몇 년까지 몇 백명으로 채워야지, 결국은 몇 백만까지 얼마까 지 해야지, 그렇게 무자비 하게 몰며는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의 법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그와 같이 수를 많이 늘리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마는 지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명으로 되돌아가서 미움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일 입니다. 교회는 많아도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는 많아도 구제하는 데 어디 있습니까 교회는 많아도 정말 생존하기 어려운 사람이 생존의 자리에까 지 올라오도록 돕는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어려움 당한 사람을 못 본척 내버리는 것 도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렇게 미워하는 악감 만 내는 것이 미워하는 것 이 아닙니다. 정말 생존이 어려운 그들을 돕지 아니하고 내버려 두는 것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 같지 않지만 여러분들 가서 반성해 보세요. 그것이 분명하게 미워하는 것입니다. 정말 지금 너무 물질적인 것에 편협 해가지고 교회를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고 미워하며, 서로를 적으로 알고 그렇게 경쟁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헌금 많이 내는 사람만 그냥 식사 대접을 하고 그러니 어떻게 다 가난한 사람, 교회에서도 가난한 사람 정말 무시하고 멸시하 기가 쉽지 도와서 그들로 한 형제로 같은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너무 가난하도록 내버려 두고, 너무 가난하도록 국가가 국민을 통치하는 것도 다 사랑의 계명을 저버리고 미움의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서 여러분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 우리 의 수가 얼마 나온다. 헌금이 얼마다. 주보 내고 자랑하는 것, 다 뭐할려고 주보 해가지고 자랑 합니까 수가 몇 명 나온다. 헌금이 얼마다. 내가 이만한 사람이라고 내보일려고! 은 연중에 다 그런 것이 들었지요. 가서 여러분들이 사랑을 실천하고 여러분의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도록, 그리고 여러분 교회에서 가르침 받는 자들이 공직에 나가거나 사업하거나 다 이 사랑의 계명에 서서 살 수 있도록 가르쳐 사랑의 사람들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 책 임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여러분들은 미움을 계속해서 조장하는 자들 밖에 안 됩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 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감싸 매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사람들 못나 가지고 조금 돈 벌면 자기를 내기에 바쁘고 조금 잘 되면 자기를 내기에 바쁘고 그래서 못한 사람 이렇게 밟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리고 연습하고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한국 교회가 바로 서는 날이 머지 않아 여러분의 수고를 통해서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여러분들에게 이 일을 이루시고 은혜 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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