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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12-20)

본문

1. 고린도 교회에 파고들었던 이단적 사상은 '영지주의, Gnosticism' 였습니다. 영지주의란 물질계와 영적인 세계를 완전히 분리시키며, 물 질세계는 항상 더럽고 악하지만 영적인 세계는 항상 깨끗하고 선하다 고 보는 이원론적인 사상을 말합니다. 이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면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를 부정하게 됩니다. 어떻게 선하신 세계 속에 존재하 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더럽고 악한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실 수 있는 가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를 부 정하고 소위 '가현설(假現說)'이란 이단사설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영지주의가 말한는 물질세계와 육신이 죄악되고 더러운 것이라면 이는 두가지 상반된 결론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육신은 본래 악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육신의 더러움과 악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전혀 다른 세계이며, 또 이미 더럽고 악한 육신을 가 지고 더러운 일을 행했다 하더라도 더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 은 자신의 육신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런 식의 결론에 도달한 영지주의 이단은 보통 '도덕 폐기론자들' 또는 '자유 방임주의자들'이라고 불리워집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로 이러한 자유방임주의적인 영지주의 이단의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고전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 입니다.
둘째로, 육신은 더럽기 때문에 될 수 있는대로 금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 뿐만 아니라 물질계에 속한 것은 다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아예 건드리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금욕주의적 영지주의 이단 사상은 골로새서에서도 발 견됩니다. "(골2: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또 바울서신에서도 발견됩니다. "(딤전4: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식물이나 성관계는 모두 더러운 물질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 한 한 금욕하는 것이 좋다는 태도인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이러 한 사상은 발견되고 있습니다. "(고전7:1)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한국 교회 내에서도 소위 신앙이 좋다고 하는 경건파 신자들 가운데 이러한 금욕주의적 성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것들을 속되다고 생각하여 가능한 한 피하려 하고 금식을 찬양 하며 마치 그것이 경건의 지표인 양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거스틴은 결혼생활에서 조차도 아이를 갖기 위한 목적이 아닌 성 적 접촉을 죄로 보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부부들에게 경고하 기를 잠자리에서 성적인 관계를 갖게 되면 성령님이 그 자리를 떠난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이브스(Yves of Chartres)같은 이는 경건한 사람들에 게 목요일에는 그리스도의 잡히심을 인하여, 금요일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을 기억하여, 토요일에는 동정녀 마리아의 영광을 인하여(또는 예수의 무덤 속에 장사지내심을 인하여), 일요일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그리고 월요일에는 이미 고인이 된 조상들에 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서 성생활의 절제를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개혁자들은 인간의 성을 보다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타락한 세상의 음욕을 염려하며 왜곡된 성(외설, 음욕, 가학성 변태성 욕, 피학대 음란증 등)에 대해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은 다 깨끗하고 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 것을 법대로만 사용하기만 한다면 성도들에게 유익을 줄 것입니다. "(롬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 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롬14: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 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기독교인이 물질을 숭배하고 돈을 좋아해서는 안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딤전6:17)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누린다."는 말은 향유하고 즐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성(性, Sex)도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제도 속에서는 향유하고 즐기기 위해 주 신 것이며 물질도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줄 알고 감사 함으로 향유하고 즐기는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금욕 주의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창조질서 속에서 모든 것 이 제대로 사용되기만 한다면 만물은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이처럼 영지주의 이단 사상에 따라 물질계인 몸에 대해 자유방임주의적인 태도를 취함으로 음행을 일삼으며 음란한 데 빠져 창기와 더불어 합하는 것을 죄악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죄의 종노 릇하는데 빠지고 만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어 그리스도의 지 체,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주님의 일을 이루며 희생과 절제와 봉사와 충성으로 의와 거룩함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기와 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 느니라 (고전6: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고전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성도들의 이러한 자유는 자신이 기뻐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며 따라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12절)는 정신에 입각해서 향유되어져야 합니다. 다시말해 성도의 자유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데에 있어서 자유롭 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자유는 자신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과 내 이웃, 형제를 위한 자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단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빙자해서 그릇된 자신의 욕심 을 채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유방임주의를 방패로 삼아 음행을 저 지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용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가하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적 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9: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9:21) 율법 없는 자 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 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 고자 함이라 (고전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율법있는 자 같이 사는 것과 율법 없는 자 같이 사는 것도 신앙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약한 자 같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방언하든지, 못하든지, 예언을 하든지 못하든지, 많이 배웠든지 못배웠든지, 많이 가졌든지 못가졌든지 등은 모두 신앙 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왜 그가 참다운 신앙을 갖고 하나님께 매달리는데 어렵게 사는가 하는 것에 대 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사수하고 성결보존하며 열심과 충성 을 다 하는데 왜 자녀가 학교에 떨어지느냐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것은 모두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엽적인 것들입니다. 레마선교에서 얘기하는 것과 같이 믿음을 가지면 모든 병이 낫는다든 가 베뢰아파처럼 올바른 믿음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지고 죽으셔야 했고 사도 바울은 늘 고난과 병 속에서 헤맸습니다. 사 도 바울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하지 만 그는 늘 병마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이것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본 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병치레가 많으냐 건강하냐 이것은 신앙의 본 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음 성구에서 본질적인 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이 말 의 뜻은 이렇습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교육을 받았느냐 얼마나 부자냐 얼마 나 능력있느냐 등은 전부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된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외의 어떤 것도 본질적인 것이 없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딱 하나 "예수 안에 있느냐 예수를 믿 느냐 예수를 위해서 사느냐" 이것 외에는 묻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 건강해지고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것은 다 사기입니다. 그런 것을 성경이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 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15)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십자가, 십자가 뿐입니다. 십자가가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만을 자랑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 이것이 본질인 것입니다. 이 본질이 중요한 것임을 오늘 본문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전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고전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고전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 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 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에게는 그의 육신이 쾌락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은 자기의 쾌락,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것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런 배는 음식 먹고 배부른 맛, 맛있는 음식 먹는 것밖에는 몸이 쓸모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몸을 음란과 쾌락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주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되는 것 입니다. 또 다른 성구에서 신앙의 본질을 말합니다. "(롬14: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롬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 지 않게 하라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신앙의 본질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 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 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고" 인색함을 풀어 사랑으로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거듭 신앙의 본질을 이렇게 말합니다.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신앙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것은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존귀하 게 되기 위해서는 나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 본질이고 내가 무슨 꼴이 되느냐는 아무 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이 여기서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상관없고 내가 문제지, 나는 이것을 못 참습니다." 어떤 나이 많으신 권사님 한 분이 기도원 원장이신데 아주 부자였습니다. 그분이 어느 날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되셨는가를 간증하셨는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밤을 새워하면서 호소를 했답니다. "하나님 저는 돈 없으면 못 살아요." 그랬더니 그 뒤로 하나님께서 돈을 얼마나 많이 주셨는지 동대문 시장에서 포목상을 했는데 매일 리어카로 돈을 푸대에 쌓아 갖고 와서 그 돈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것 을 권사님이 자랑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 전 돈 없으면 못 살아요." 이것이 기도입니까 그것을 기도라고 하고 또 간증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돈을 주었으며 "이 사람은 이것을 안 주어 가지고는 안될 사람이니까 돈을 줘서 하나님의 백성으 로 붙잡아 주셨다"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보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그러면 왜 나에겐 물질을 안 주십니까" 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넌 안 주어도 되는 사람으로 봤기 때문인데 너도 돈 없 으면 못살겠니"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앙의 본질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과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존귀히 여김을 받 으시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는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식물을 위하여 있지 않습니다. 쾌락을 위하여 있지 않습니다. 음란과 음행, 그리고 창기에 자신의 몸을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께 자신의 몸 을 바치고 희생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성경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 들과 같이 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 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 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것 임을 말합니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좇기 위해서 그물과 배와 그 부친을 버렸다고 했 습니다. "(마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 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마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 니라 (마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 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 을 보시고 부르시니 (마4: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속칭 다음과 같은 교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달구지 같은 교인-밀어야만 가는 사람 연 같은 교인-끈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언제 어디로 갔는지 날아 가버리는 사람 고양이 같은 교인-줄곧 토닥거려 줘야 만족하는 사람 풋볼 같은 교인-다음 순간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는 사람 풍선 같은 교인-잔뜩 부풀어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사람 전구 같은 교인-쉴새없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사람 이런 신자들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사람들로 자기를 비우지 않 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2) 더 나아가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야 합니다. 종은 헬라어 로 둘로스인데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머슴'에 해당합니다. 머슴은 첫째 걱정이 없습니다. 머슴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만 하면 되 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삶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 순종만 할 따름인 것입니다. 머슴이 걱정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둘째로 머슴은 절 대복종해야 합니다. 머슴은 주인의 명령에 이유를 달 필요가 없습니다. 머슴은 주인이 소를 몰고 오라 하면 비가 와도 어김없이 소를 몰고 와야만 합니다.
셋째로 머슴은 24시간 대기해야만 합니다. 머슴은 주인이 잠든 새벽에 일어나 쇠죽을 끓입니다.
넷째, 머슴은 주인 뿐만 아니라 주인의 가족까지 돌보아야 합니다. 다섯째, 머슴은 불평할 자격이 없습니다. 시키는대로 묵묵히 행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위해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 즉 머슴이 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 서로 머슴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려야만 합니다. 내가 죽지않고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자신을 날마다 죽이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참으로 사나 죽으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시고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해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 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기까지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 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 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슬픈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를 찾으시는 깊은 믿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 려 함이라 하시더라."
1808년, 악성 하이든이 죽기 꼭 1년 전이었습니다. 그의 오라토리오 '창조'가 비엔나에서 연주되었습니다. 늙고 몹시 쇠약하였으나 하이든 도 휠체어에 실려 참석하였습니다. 감격스러운 연주가 끝나자 연주자 일동과 청중은 모두 일어서 하이든이 있는 발코니를 향하여 박수를 보 냈습니다. 하이든은 몹시 당황한 빛으로 "내가 아니오 내가 아니오. 빛 을 만드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오!"라고 말하며 휠체어에서 상반신 을 일으키다가 앞으로 쓰러졌습니다. 즉시 노인을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하이든은 실려가면서도 계속 "내가 아니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 오."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 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6:20) 값 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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