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월드컵 (고전9:23,히12:1-3)
본문
지구촌을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금세기 마지막 인류의 축제인 98 프랑스 월드컵축구대회가 10일 밤(한국시간) 화려한 개막식을 갖고 열전 33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워낙 큰 행사라 대중매체들은 오래전부터 이 이 경기를 "지구촌 축제"로 다루어 왔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파리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펼쳐진 개막식은 전 세계 250개 TV방송국서 생방송으로 중계, 20억 지구촌 가족이 지켜보며 열광했다. 월드컵 사상 처음 펼쳐진 전야제 행사도 축구를 통해 인종과 문화,도덕과 과학이 하나 되어 하 모니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 인류가 지난 4년 동안 기다려온 이번 대회는 195개국에 중계돼 연인원 3백70억명이 지켜보는 사상 최대의 축 구제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대회는 168개국 대표팀이 지난 2년 동안 예선전을 거쳐 32개국 704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것을 비롯,보도진만 월드컵 68년 역사상 최대규모인 1만2천여명에 이르는 등 여러면에서 진기록을 수립 하고 있다. 지구가 둥글듯이 축구공도 둥글다. 그 공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프랑스 월 드컵축구대회가 앞으로 한달간 지구는 축구공이 되어 세계인들을 흥분과 열 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것이다. 축구 경기는 인간이 발로 묘기를 연출하는 흥미만점의 스포츠다. 나라의 체면과 국력까지 곁들인 월드컵은 올림픽을 능 가하는 인류최대 행사로 자리를 굳혔다.
금세기 마지막 꿈의 구연 에 참가한 한국팀은 대망의 1승 및 16강진출 을 노리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선 대표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엄청나다. 본선 32개 참가국의 일원으로 당당히 참가, 16강 진입을 목 표로 전의를 다지고 있다. 4회 연속 출전, 54년을 합치면 5번째 출전하는 한 국팀은 아시아 최강의 팀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4회 연속, 통산 5회 본선에 진출한 만큼 이번만은 사상 첫 1 승과 16강 신화를 이룩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동안 쌓은 기량을 최대한 발휘 해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국제통화기금(경제위기)한파의 시련에 짓눌리고 실의에 젖은 국민들은 어느때보다 본선 1승을 목말라한다. 이번이야말로 16강 진출의 꿈을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사상최강의 진용이라는 객관적 평가와 더불어 선수단의 사기도 드높은 편 이어서 기대를 걸 만하다.물론 우리와 본선진출을 다투게될 나라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임에 분명하나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십분발휘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국민들의 성원 또한 그 어느때보다 뜨겁다.14일 열릴 멕시코와의 첫시합에 온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축구를 사랑하는 팬이 많기도 하려니와 경제위기체제의 어려운 현실이 월드컵열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고 할 수 있다.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환희의 순간을 맛보고 싶은 욕구가 간절하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TV중계를 지켜보며 밤새워 열광하게될 국민들을 생각할 때 반가운 승전보 가 날아오기만을학수고대할 따름이다.이러한 월드컵 열기가 좌절감에서 헤 어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된다면 이보다 바 람직한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선수단도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지 않고 불꽃같은 투혼을 불태워 선전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하지만 승부 못지 않게 최선을 다해 정정당당하 게 싸우는 신사적인 매너도 중요함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국민들 또한 너 무 승부에만 집착해 일희일비할게 아니라 축구스타들의 현란한 묘기를 즐긴 다는 자세로 임하는게 월드컵을 편안하게 감상하는 요령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축구의 맹주임은 누구나 공인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는 단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이번 대회는 그 비원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 회다. 사상 최강의 진용이라는 객관적 평가와 함께 E조에 속한 멕시코 등 3 개국도 해볼 만한 팀이라는 평가다. 승리의 감격이 활력소가 되어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1 승을 올리므로 국민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바란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텔레 비전 앞에 앉아 지구촌의 축제에 참여했다. 그리고 모두 애국자가 되어 우리 팀을 한껏 응원할 것이다. 민족주의적 감정을 내뿜는 일은 언제나 크게 즐거 운 일이다. 정치나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서는 민족주의적 감정을 분출하기가 어렵다.
새 로운 범지구적 질서의 출현을 해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 츠에서만은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한점 그늘 없이 우리팀을 맘껏 응원할 수 있다. 월드컵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과정을 촉진 시킨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야성을 밑바탕에 깔고 국민의 열광속에서 바람처럼 달리는 축구야말로 세 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기스포츠임에 틀림없다. 오죽하면 콜롬비아에서는 자살골을 넣었다고 해서 자기나라 선수를 총으로 쐈겠는가. 축구는 그만 큼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운동이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강력한 후 보는 브라질이고 다음이 독일과 이탈리아의 순이다. 그러나 브라질 주장은 94년에 비해 정신력이 덜돼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성경은 인생을 여러모습에 비유하고 있다. 나그네, 안개, 이슬, 흙, 들풀, 꽃, 이처럼 인생은 곧 시든다고 한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듯 인생 도 봄이 있고 가을이 있다. 군인은 전쟁터에 나가 생명을 걸고 싸운다. 이처럼 인생은 죄와 불의와 더불어 싸우고 정욕과 더불어 싸우는 전쟁이다. 고전9장 에서는 인생을 스포츠로 비유하고 있다. 특히 바울은 올림픽 발생 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가까이 있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운동경기 이야기를 하며 인생은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고린도 교인 대부분은 올림픽을 구경한 사람들이고, 꼭 올림픽이 아니어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생을 스포츠로 비유함이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도 그리스도인을 경기하는 사람으로 비유했다. 인생의 삶은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은 생존 을 위한 싸움이요,경쟁이다. 경기장에 선수들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이기기를 겨루고 있다. 어느 선수 이든지, 지려고 운동장에 나가는 선수는 한명도 없다. 모두가 승리의 기대를 가지고 유니폼을 입고 나섭니다. 그러나 경기에는 반듯이 또한 승자와 패자 가 있게 마련이다. 승자에게는 영광이지만 패자에게는 침묵일 뿐이다. 그래서 적자생존이니, 자연도태니, 하는 말이 생겨난 줄 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삶은 이긴 자들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안다.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삶의 운동장에서는 지금도 부단한 싸움과 경 쟁에서 이긴 자와 패자의 희노외락의 반복이 있게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4절에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운동장에서 경기 하는 자들과 같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4년마다 고린도에서 열렸던 당시 의 올림픽을 연상하면서 한 말인 것 같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위하여 달려야 한다"고 하였다. 당시 올림픽에서 승리한 선수에게는 월계수 나뭇가지로 엮은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그 월계관은 얼마못가서 다 시들어 말라 버리거나, 없어질 것들 이지만, 우리들 신앙인이 받아 쓸 면류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썩지 않는 면류관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기장에 나선 선수들처럼,"이기기를 다투는 자 마다 절제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려면 절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과연 나의 인생을 어떻게 달려 왔는가 나의 현재의 삶의 경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를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뛰어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뛰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그 어떤 막연한 승리 를 위하여 달려온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줄 압니다. 오늘도 우리 의 주변을 돌아보면, 정신없이 뛰는 사람들 많이 있다.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 지 쉴 사이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 가 하는 것 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분주한 인생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아 무런 의미도 못 느끼면서도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반복하고 있는 사람 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 어떤 이기기를 위한 노력들일 것이다. 남과의 경쟁에서 하나라도 더 앞서고, 더 얻으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사 이없이 뛰는 인생들이란 말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삶의 운동장에는 끊임없는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의 운동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달려야 하겠습니까 경주하는 사람은
1. 목표가 분명해야한다. 본문 2절에 보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신 예수를 바라보자 고 했다. 뭐하러 월드컵에 나갔습니까 남이 가니까 따라간 사람은 자격이 없다. 그 저 한 번 뛰어보다 힘들면 그만둘 생각으로 간 사람도 자격이 없다. 어느 어촌에 고기잡은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와 아들 은 고기배를 져어서 먼바다로 고기를 잡으려 나갔다. 하루종일 고기를 잡은 아버지와 아들은 해가지자 그리운 집이있는 욱지로 돌아오고 있었다. 피곤에 지친 아버지와 아들은 번갈아가며 노를 져어가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노를 맏기면서 하늘의 북극성을 목표로하고 노를 져어가라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 에게 "아들아 저하늘에 북극성이 보이지 저별만 보고 노를 져어가면 우리는 집으로 간단다 " 하고 가르쳐 주고는 아버지는 피곤하여 잠이 깊이 들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북극성을 깜박 잃어버렸다. 그리고는 자기 생각대로 저 별이 북극성이겠지 하면서 자신이 목표로 삼은 별을 보고 열심히 노를 져어 갔다. 그러나 육지에 닳을 시간이 됴는데도 배는 욱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 리고는 배는 험한 풍파가 이는 넓은 바다로 가고 있엇다. 마침내 겁이난 아 들이 어버지를 걔웠다. 그리고는 아버지 북극성을 잃어 버렸어요 하면서 소 리를 쳤다. 이때에 아버지가 일어나서 이놈아 진작 애비를 깨울일이지 너는 지금 북그성을 등지고 노를 져어가고 있어 하면서 아버지는 다시 아들에게 북극성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는 그들은 목표를 찾아 무사히 집에까지 오 게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목표를 잃어버린 인생의 불행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모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경주자와 같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경주자는 승리하는사람도있 고 낙오자도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승리하고 어던 사람이 낙오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북극성을 보고 노를 져어가야할 사람이 북극성을 보지않고 다른 별을 보고 북극성이라고 따라가면 목표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그배는 엉뚱한 방향으 로 가고있었고 그길은 험한길이었다. 배가 가야할 길을 일허버리면은 그대부터 위험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언제 풍랑이 일어날지 언제 어디서 암초에 부 딛힐지 모르는 위험한 항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인생 의 길도 마찬가지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있고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잃어버리고 다른길을 가게되면 그때부터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다. 세상의 풍랑이 오게된다. 우리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다. 아무리 힘이 들어 도 아무리 목이 말라도 푯대를 잃어버리면은 안된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선수가 정해진 푯대를 지어버리고 다른데로 달려간다면은 아무리 빨리 달렸어도 그사람은 탈락이 되는 것이다, 분명한 목표를 잘보고 그 목표를 향 해 달려가야만 승리할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상을 받을수가 있는 것이다. 바다에서 배를 져어가는 아이가 빨리 집에 가기 위해서 땀을 흘리면서 열심 히 노를 져었지만 목표가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배는 점점 가면 갈수 록 집과는 점점더 멀어진 엉둥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목표를 보고 노를 져어가고있습니 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북극성을 보고 노를 져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별을 잃어버리고 자기맘대로 정해서 이것이 망겠지하면서 인생의 노를 져어가고 있습니까 분명히 알아야 할것은 목표가 잘못된 항해는 아무리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노를 젖는다고할지라고 다 헛수고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푯대로 예수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노를 져어가는자는 결국은 표류하거나 침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지금도 이푯대를 잊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배에 노를 져어갈때 혼자서 노를 져어가면 그만큼 힘이들고 속도도 느릴것이다. 그러나 배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노를 저어가면 힘도 덜 들고 배도 목적지까지 빨리 갈수가 있을것이다. 우리교회도 목표를 향하여 노를 져어가야하는데 목사 혼자 노를 져어갈려고한다면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참빛교회라는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다같이 노를 져 어거가야 한다. 힘이 없는 사람은 적은 노를 힘이 있는 사람은 큰노를 저으 면 된다. 다만 힘을 합치는것이 중요하다. 중요한것은 노를 같은 방향으로 앞 을 향해 져어가야 한다. 모두다 앞을 행해 노를 져어가는대 만약 어떤 사람 이 노를 반대로 저어간다면은 안된다. 그배는 그만큼 저항을 받게 될것이고 배가 잘 나갈 수가 없을 것이다. 노를 잘 젖기위해서는 노래도 같이 불러야 한다. 장단도 같이 맞춰야 한다. 호흡이 맞아야 한다.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함마음 한뜻 이 되어야 한다. 목표를 향해서 똑같이 노를 저어 가야 한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뭉치게 될때 잘될 수 밖에 없지만 모두가 잘났다고 나서게되면 그나라는 망하게되고 혼란 에 빠질것이다. 교회도 목회자를 중심으로해서 한마음 한뜻이되어 목표를 향해 나갈때 부흥 하고 교회가 더 큰일을 할수 있을 것이다. 이무튼 운동장에서 경주하는사람은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왜 바다에서 븍극성을보고 배 를 저어가는 사람이 북극성을 잃어버렸느냐 이다.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이다. 그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한눈을 팔았다. 오직 북극성만 바라보고 가야 하는데 아마 이사람은 눈을 북극성에서 돌려 다른데로 향했다가 다른 별들을 보게 된 것이다.
북극성보다 더 아름답고 더 멋있는 별을 보고 그만 정신이 다른데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북극성을 놓치고 말았다 . 다시 찾을려고 하니 별들이 비슷해서 찾을수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리스도 가신 길을 따라가자. 본문 2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인생은 무엇을 바 라보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진다. 현대의 걱정은 바라볼 대상이 없는 것이다. 물질적인 대상은 몇번 바라보면 더 이상 볼 맘이 없다. 우리 삶에 바라 볼 대상이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영의 눈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대사이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바라보는 눈, 목적 이 있는 눈은 빛난다. 그러나 목적없는 눈, 희망이 없는 눈은 빛나지 않는다. 여러분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무엇이든지 얼마 지나면 별 것 아니다. 금방 허무해진다. 현대의 과제는 못 살아서 걱정이 아니라 삶의 의 미가 없어서 걱정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어느 신문의 세종류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먼저, 사회면에 중산층 주부들 의 윤락행위에 대한 기사였다. 남편이 과장이고, 중견 공무원인데, 남편이 출근한 뒤 심심하고 무료해서 낮 1시-3시까지 강남 호텔에서 윤락 행위를 하 다 붙잡혔다. 붙잡혀서 하는 말이 애들 한달 과외비가 25만원 인데 하루 나 가 윤락행위로 5만원을 받아서 거기 보충했다고 한다. 바로 그 기사 옆에 57세 초등학교 교감이 6학년 여자 아이를 성폭행한 기사나 나왔다. 해외 통 신란에는 미국에서 교인 두 사람이 성경을 암송하다가 자기가 외운게 맞다고 다투다가 한 사람이 권총으로 교인을 쏴 죽였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 어집니까 목적이 없어서 그렇다. 정신적, 영적 공허를 달래지 못하니 이렇다.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다.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떼면 실족하고 만다. 옛날 한 젊은 재상이 나이 많은 임금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죄의 유 혹을 피하고 많은 시험을 이겨서 나라를 위해 깨끗한 충신이 될 수 있는가 임금님은 젊은이의 뜻이 기특해 지혜를 베풀었다. 그릇에 물을 가득 채워서 시내 한바퀴를 돌고 오면 물을 한 방울만 흘려도 큰 벌을 내리겠다고 했다.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이 재상 뒤를 따르게 했다. 재상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임금이 명하신대로 제시간에 물그릇을 들고 궁전으로 들어 왔다. 임금님이 칭찬을 하며 그의 수고를 치하했다. 임금님이 물었다. "자 네 시내 한바퀴를 도는 동안 여자를 보았나못봤다.술집은 보았나 거 리에 사람은 많던가" 그 재상은 모두 못보았다고 했다. 이때 임금님이 "바 로 그것일세.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한다면 시시한 일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 하며 왜 그 일을 시켰는지 설명했다. 우리는 오직 예수만 바라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변치않는 목표이다. 예수님과 함께 행하고 예수님과 함게 생각하고 예수님과 함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목표를 향해 달린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우리의 삶은 한번 밖에 없는 삶이다. 인생의 경주는 일회적 경기이다. 반복되는 리그께임이 아니다.
그러므로 푯대가 분명해야 하겠다. 우리의 푯대는 두말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과 같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뛰어야 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같은 동등된 자리를 버리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스스로 육 신을 입고 이 땅위에 오신 분이다. 그리고 반칙으로 얼룩진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친히 나무에 달려 속죄의 제물이 되신 분이다. 바로 그분을 푯대로 삼고 달려야 하겠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분만이 진리요, 진실이요, 참이었 기 때문이다. 모두가 거짓과 허위로 뒤덮여진 세상에서, 불신과 증오로 굳어 진 세상에서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서 사랑을 알았다"고 하였다 (요1서3:16).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분이기 그 분만을 푯대로 삼고 달려야 하겠다는 말이다.
2. 경주하는 사람은 장애물을 벗어야 한다. 본문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라고 했다. 운동선수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을 다 제거해야 한다. 양궁선수는 할 수 없이 좀 치렁 치렁 달고 하지만, 주로 달리고 뛰는 육상 선수나 수영선수를 보면 아주 가 벼운 차림으로 부끄러운 생각도 없이 삼각 팬티 하나만 입고 나와서 달린다. 만약 옛날 우리 어른들처럼 갓을 쓰고, 두루마기 입은채로 달려보세요. 얼마 나 한심하겠습니까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다. 믿음 생활에 방해되는 요 소는 다 떨쳐 버리세요. 그저 앞으로 전진하기에 알맞게 입으면 족하다. 교회 예배시간에 나와야 되는 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 못나오는 분이 더 많다. 그때 우리 교인들을 꽉 붙잡고 있는 장애물들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직장 도, 장사도, 게으름도, TV도, 가정도, 세상 재미도, 이것이 다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하나님과 나와의 영적 통로에 장애되는 것은 다 제거해야 한다. 하지 못하니, 자연히 신앙이 약해지고 세상과 돈에 매인다는 말이다. 우리의 생업 이 때로는 신앙의 장애물일수도 있다. 과거의 허물과 수치와 죄가 장애일수 도 있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마시기 바란다. 십자가의 용서와 은총을 믿고 앞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있어서 중요한 건 오늘과 내일이지 결코 과거가 아니다. 어떤분은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냥 돈에 애착 이 있고 좀더 큰 집을 마련하려고 애쓴다. 인생의 종반전이 다오고, 이제 경 기 종료의 시간이 다 됐는데, 집 장만하고 재물을 가지고 있어서 뭐합니까 그것이 장애물이 되어 있다. 이제는 있는 것 하나님께 기쁨으로 바치고 우 선 몸과 맘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영혼을 자유롭게 편안하게 해야 한다. 이제까지 사노라고 지치고 피곤한데 종반전에서 내가 편하고 자유로 와져야 한다. 여러분의 장애는 무엇입니까 다 버리십시오. 강한 자존심, 게으름, 지나친 욕심, 위선, 정욕과 안일, 수치, 나약함, 이 모든 것들을 깨끗 이 끊어버리기 바란다. 주님의 뒤를 가볍게 따라가야겠다.
1)모든 무거운것과 얽매이기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등에다 짐을 잔뜩 짊어지고 있다면은 어떻 겠습니까 신발도 등산화가를 신고 있고 손에는 먹을것 마실것 잔뜩 들고 달 리기를 한다면 그사람은 경주를 잘할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운동 을 하는 사람은 모든 짐을 다 벗어 버려야 한다. 등에다 지고있는것도 무거 운 신발도 거치장스런 옷도 손에 들고 있는 것들도 다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옷도 가장 가벼운 옷 하나만 입어야 한다. 그래야 경기를 잘할 수가 있다. 여기 무거운 것은 인간의 욕망을 말한다. 우리는 신앙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 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경주를 하는데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벗어 버려 야 한다. 사람들은 세상에 올때는 적신으로 왔는데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있는 것으로 자기 치장을 한다.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지식으로 미모로 말수단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본래의 모습은 자꾸 감출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앞에 나와서는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세상에 있는것 벗어버리지 않고는 주 님을 다를수가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다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으라고 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가지 세상에서 가지고있던 것을 쏜에 꼭쥐고있는한 하나님이 주 시는 것을 받을수가 없다. 원숭이가 주둥이가 적은 그릇에 곡식을 넣어두면 그것 가져갈려고 손을 넣고 움켜 쥐고는 빠지지 않아서 잡히게 되는 것처럼 그것 쥐고 있는것 놓기만 하면 살 수 있는데 욕심이 그것 놓으면 죽을가봐 잡고 있다가 죽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세상에 쥐고 있는 향락이나 욕심 정욕 이기심 모든 죄악을 놓아야 하나님을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으면 옛사람이 매고있던 무거운 죄의 짐을 다벗어버리고 주님만 바라보 고 달려가야 할 것이다.
3. 경주하는 사람은 인내가 있어야 한다. 경주자가 갖추어야할 중요한것 중에 하나가 인내이다. 한번 경기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싸워야 한다.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중간에 그만 둬 버리면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선수들이 훈 련을 하는 목적가운데 중요한것이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서 추운 날씨에도 더 운날씨에도 길이 험한 곳에서도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경기에 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본문1절에도 인내로소 우리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신앙의 경주를 하는 사람도 인내가 필요하다. 롬5;3에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 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 신앙의 경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참을줄 알아야 한다. 그러 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고는 인내할수가 없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란 말이다. 마라톤 경주란 말이다. 그러기에 인내 가 필요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삶의 운동장에서 너무나 쉽게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더욱이 우리 한국 민족의 끊기가 오늘날 점점 쇠퇴해 지는 것 같다. 쉽게 돈도 벌려고 하고, 쉽게 성공도 할려고 한다. 그것도 반칙으로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세상이다. 우리 신앙인은 모름지기 인내의 경주를 해야 한다. 불신 세상에서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간곳마다 조롱과 부딪치는 것 들이다. 신앙생활도 여러 훈련이 필요하다. 비난도 받아보고 속상해보고 끝없는 자기 와의 싸움과 유혹에도 이길 수 있는 지구력을 길러야 한다. 쉽게 고난앞에 포기하면 안된다. 저는 개인적으로
2,30년 신앙 생활 하신 분들을 정말 머리 숙여 존경한다.
2,30년 심지어 40년 동안 신앙 생활하면서 좋은 일만 있는게 아니다. 괴로운 일, 오해 받는 일, 가슴 아픈일 있었지만 오직 믿음의 인내 로 변함없이 묵묵히 주님만 사랑한다. 그들의 믿음을 어떤 선물로 보답할 수 없지만 교육의 기회로 기념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인내가 있어야 한다. 운동 경기는 시합하는 시간이 몇 초에서 길어야 두시간 정도면 끝난다. 잠깐의 시간을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자기와 싸워야 합니까 하물며, 그리스도인의 인내를 쉽게 평가해서는 안된다. 많은 시련과 오랜 시간을 인내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오죽했으면 "자기를 쳐서 복종 시켰다"고 하겠습니 까 끝까지 참고 예수를 바라보며 보냅시다. 인생의 최후 순간, 종반전을 지 나 골인점에 도착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바 라보며 삽시다.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기를 잘 경주하여 모두 승리의 잔 치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3) 경기의 법칙을 잘지켜야 한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경기규정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든 상 대선수를 뒤에서 태클하면 즉시 퇴장이다. 스포츠에선 승리보다 신사적인 매 너가 더 중요하다. 또 국민들은 지나치게 승부에만 집착하지 말고 느긋하게 감상하는 자세도 익혀야 한다. 다음 대회를 개최할 우리로서는 배워야 할 과 제가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번 프랑스대회는 화려한 축구 기예를 지켜보는 즐거움과 함께 차기대회개 최국으로서 경제회생의 비전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 대표팀의 승 전보가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해줄 것도 기대한다. 그러나 승패보다 더 중요 한 것은 페어플레이다. 국제축구연맹이 이번 대회부터 백태클 때는 무조건 퇴장시키는 새 경기규칙을 적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좋지만, 정정당당히 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선진축 구의 탁월한 기량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승리보다 더 값진 재산이 될 수 있다. 운동 경기는 또렷하고 공정한 규칙들을 가졌다. 우리가 운동 경기에서 그 리도 큰 즐거움을 얻는 것은 바로 그 사실 덕분이다. 규칙이 또렷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못한 현실의 각박한 경기들에선 운동 경기들에서 맛보는 깨끗한 즐거움을 맛보기 어렵다. 지금 세계는 무척 불공평하다. 특히 정치와 경제 분 야에서 그러하니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배역들은 대부분 북아메리카와 유럽 의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공평한 조건 아래에서 기량을 겨루는 월드컵과 같은 경 기들은 그래서 세계를 조화로운 공동체로 만들고 모든 사람들이 "지구제국" 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모든 경기에는 규칙이 있다. 인생 의 삶에도 마찬가지이다. 자연계에는 자연법칙이 있다. 이 자연법칙을 모르거나 어겨서는 과학기술을 발전 시킬 수 없다. 정신세계에는 도덕법칙이 있다. 사람이 이 양심의 법칙 을 무시하거나, 어기고는 사람의 구실을 할 수 없다. 영적 세계에도 마찬가 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우리의 영혼이 살 수가 없다. 이렇게 모든 영 역에 기본적인 법칙이 있어, 이것을 거역하는 곳에 언제나 판정이 내리게 되 어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서 사람들은 변칙(變則) 과 반칙(反則)으로 삶의 승부 를 걸어 보려고 한다. 그것이 어쩌면 현재 세상에서는 통하는 것 같이 보이 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반칙으로 성공한 것을 보면서 자랐기에 그것 이 정도(正道)인 것 같이 생각된 세상이다. 우리가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도 리어 반칙을 하는 사람들이 앞서가는 것을 본다.
우직스럽게 자기 혼자만 규 칙을 지키는 것이 바보 스럽게 보일 때 가 많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 세상이기에 그런 것에 익숙해 진 사람들이라야 성공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참으로 오늘의 우리의 세태(世態)는 정의로운 눈을 가지고 살피면 한심하 기 짝이 없다. 어느 분야인들 변칙과 반칙이 없는 분야가 없다. 정치계도 수 단이야 어떻든 당선만 되면 된다는 그런 풍조가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 모 른다. 그래서 권모술수에 능하고, 반칙을 해서라도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승자 가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태이다. 그런가 하면 경제계도 마찬가지 이다. 정당한 노력과 투자에서 얻는 이윤보다 적당히 반칙을 범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 종교계에 까지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적당하게 슬적 슬적 반칙을 범하여야 요령 있는 사람이요, 처세술 에 능한 사람이란 말을 듣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진짜들 보다 거짓되고 가 짜들이 도리어 인기를 누리며, 출세와 성공의 가도(架道)에서 뽐내고 있는 세상이란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순간 자신이 걸어온 삶의 운동장에서 얼마나 반칙 인생을 살아 왔는가 하는 것을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오늘날 내가 누리고 있는 성공과 승리가 진정 정당한 룰(Rule)를 지켜서 얻 은 것인가 우리의 삶의 경기의 마지막 타임아웃의 휘슬이 울릴 때, 참으로 심판주 앞에서 잘 싸워 왔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를 깊이 반성해 보아 야 하겠다. 경기를 하는데는 반듯이 법칙이 있다. 축구를 하는 사람에게는 축구의 법칙 이 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달리기를 하는 법칙이 있다. 복싱을 하는 사람다도 룰이 있다. 아무리 잘 뛰고 아무리 잘해도 법칙에 벗어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신앙인들에게도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을 다라서 잘 경기 를 해야 한다. 우리에게 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경주에 있어서 이 말씀의 법칙을 잘 지키면서 경기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께 드리면 좋아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 칙대로 돈을 벌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아무리 돈을 많이벌었어도 하나님 의 법을 떠나서 번돈은 불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명예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불법으로 명예를 얻는다면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명예를 얻어야 한다. 회사에 가면 회사의 법이 있고 학교에 가면 학교의 법이 있듯이 우리가 몸담고 신앙생활하는 교회에도 교회 법이 있다. 이법을 잘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딤후2;5에 바울은 ' 경기하는자가 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라고 말했다.이제우리는 모두 신앙의 경주자들이다. 믿음의 주요 온 전케하신 예수를 바라보고 얽매이기쉬운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룰을 따라 인내하면서 끝까지 경주를 잘하여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은근과 끈기가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평안할 때에는 숨겨 두었던 인내심을 막상 어려운 일이 생기면 힘을 합하여 극복해 나가는데 이력이 있는 민족이다. 그러기에 소수의 민족으로 5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경주를 경주하며(히12:1) 우리는 지구라는 넓은 운동장에서 여러나라와 경주하는 자리에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발휘하기 위해 인내라는 경주복을 입어야 할 때이다. 세계적인 경제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와 정치적으로 당면한 여 러가지 문제, 교육적인 문제, 사회제도등 여러가지 일을 인내를 가지고 하나 씩 해결해 나가는 땀이 있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하여 다음에 두가지를 기억해 두어야 하겠다.
첫째는 '무거운 것' 과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하겠다. 운동장에 나선 선수들을 보면 모두 다 벗고 가벼운 몸으로 달린다. 거추장스 러운 모든 것을 벗어버린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나를 무겁게 매어두고, 얽어매어 두는 것이 지금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즉 주님앞에 나오는 길에 그렇게 무겁게 얽어매는것들이 무엇이냐 어떤 사람 은 술담배 때문에 이 자리에 까지 나아 오기가 힘들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육체의 향락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놈의 돈 버는 재미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부산일보에 보니 얼마 전 공직을 정년퇴직하셨다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우리대표팀이 출국하는 장면을 TV로 보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며 말문을 연 그 분은 "내 아들을 보내는 것 같은 감격적 심정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 국민의 심정을 함축적으로 전달한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었다. 그 분의 마지막 말이 지금도 가슴을 맴돈다."이기면 좋지만 지면 또 어때요. 지더라도 언론에서 너무 심하게 나무라지 마세요." 그렇다.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쉽게 할 수 없는 말,"져도 좋다.최선을 다해라." 이 한마디를 가슴에 품은 채 밤잠을 설쳐가며 "월드컵 열병"을 앓아보자. 그러나 여러분!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좋다고 하는 것들을 얻기 위하여 반칙 투성이로 얻은 재물 과 성공, 그리고 변칙으로 성취한 명예와 출세들! 그것이 과연 주님 앞에서 몇 푼의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죽어서 장례식 때,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관이 남보다 좀더 화려하다 해도 주 앞에 서는 날! 모두가 검부러기 같은 것 들이다. 그런 것이 무엇이 소용이 있겠습니까 인생을 얼마나 진실 되게 살아 왔는가 얼마나 정직하게 룰을 지키며 달 려 왔는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누가 판결합니까 우리의 의로우신 재판장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달렸다. 그가 베스도 총독 앞에 섰을 때, 만장한 사람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나 의 이 매인 것을 제외하고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의로우신 재판장인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뛰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경기는 반드시 상(賞)이 주어진다는 사 실이다. 나는 상같은 것 안 받아도 좋으니.그런 것 안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 으면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 으라.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다(마25:30). 이 말은 달란 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았던 자에게 한 말이다. 남들은 다 자신의 달란트 를 배나 남겼는데 주인에게 본전만 가지고 간 종과 같이, 자신의 믿음 하나 만 겨우 지키며 생활하다가, 봉사 생활과 전도 생활은 전혀 못하고 죽었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 이에 해당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한 말이 무슨 뜻이겠 습니까 '슬피 운다'는 것은 서러워 운다는 뜻일 것이고, '이를 간다'는 것은 억울해서 분해서 이를 간다는 뜻일 것이다. "아! 나도 교회 생활에서 좀더 봉사할 껄! 아, 나도 그때 좀더 열씸히 신앙생활을 할껄!" 하면서 억울해서 이를 박박 간다는 뜻일 것이다. 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이를 갊이 있겠다고 했겠습니까 우리 모두 삶의 운동장에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삶의 운동장에서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세기 마지막 꿈의 구연 에 참가한 한국팀은 대망의 1승 및 16강진출 을 노리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선 대표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엄청나다. 본선 32개 참가국의 일원으로 당당히 참가, 16강 진입을 목 표로 전의를 다지고 있다. 4회 연속 출전, 54년을 합치면 5번째 출전하는 한 국팀은 아시아 최강의 팀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4회 연속, 통산 5회 본선에 진출한 만큼 이번만은 사상 첫 1 승과 16강 신화를 이룩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동안 쌓은 기량을 최대한 발휘 해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국제통화기금(경제위기)한파의 시련에 짓눌리고 실의에 젖은 국민들은 어느때보다 본선 1승을 목말라한다. 이번이야말로 16강 진출의 꿈을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사상최강의 진용이라는 객관적 평가와 더불어 선수단의 사기도 드높은 편 이어서 기대를 걸 만하다.물론 우리와 본선진출을 다투게될 나라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임에 분명하나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십분발휘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국민들의 성원 또한 그 어느때보다 뜨겁다.14일 열릴 멕시코와의 첫시합에 온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축구를 사랑하는 팬이 많기도 하려니와 경제위기체제의 어려운 현실이 월드컵열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고 할 수 있다.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환희의 순간을 맛보고 싶은 욕구가 간절하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TV중계를 지켜보며 밤새워 열광하게될 국민들을 생각할 때 반가운 승전보 가 날아오기만을학수고대할 따름이다.이러한 월드컵 열기가 좌절감에서 헤 어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된다면 이보다 바 람직한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선수단도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지 않고 불꽃같은 투혼을 불태워 선전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하지만 승부 못지 않게 최선을 다해 정정당당하 게 싸우는 신사적인 매너도 중요함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국민들 또한 너 무 승부에만 집착해 일희일비할게 아니라 축구스타들의 현란한 묘기를 즐긴 다는 자세로 임하는게 월드컵을 편안하게 감상하는 요령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축구의 맹주임은 누구나 공인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는 단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이번 대회는 그 비원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 회다. 사상 최강의 진용이라는 객관적 평가와 함께 E조에 속한 멕시코 등 3 개국도 해볼 만한 팀이라는 평가다. 승리의 감격이 활력소가 되어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1 승을 올리므로 국민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바란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텔레 비전 앞에 앉아 지구촌의 축제에 참여했다. 그리고 모두 애국자가 되어 우리 팀을 한껏 응원할 것이다. 민족주의적 감정을 내뿜는 일은 언제나 크게 즐거 운 일이다. 정치나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서는 민족주의적 감정을 분출하기가 어렵다.
새 로운 범지구적 질서의 출현을 해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 츠에서만은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한점 그늘 없이 우리팀을 맘껏 응원할 수 있다. 월드컵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과정을 촉진 시킨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야성을 밑바탕에 깔고 국민의 열광속에서 바람처럼 달리는 축구야말로 세 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기스포츠임에 틀림없다. 오죽하면 콜롬비아에서는 자살골을 넣었다고 해서 자기나라 선수를 총으로 쐈겠는가. 축구는 그만 큼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운동이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강력한 후 보는 브라질이고 다음이 독일과 이탈리아의 순이다. 그러나 브라질 주장은 94년에 비해 정신력이 덜돼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성경은 인생을 여러모습에 비유하고 있다. 나그네, 안개, 이슬, 흙, 들풀, 꽃, 이처럼 인생은 곧 시든다고 한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듯 인생 도 봄이 있고 가을이 있다. 군인은 전쟁터에 나가 생명을 걸고 싸운다. 이처럼 인생은 죄와 불의와 더불어 싸우고 정욕과 더불어 싸우는 전쟁이다. 고전9장 에서는 인생을 스포츠로 비유하고 있다. 특히 바울은 올림픽 발생 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가까이 있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운동경기 이야기를 하며 인생은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고린도 교인 대부분은 올림픽을 구경한 사람들이고, 꼭 올림픽이 아니어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생을 스포츠로 비유함이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도 그리스도인을 경기하는 사람으로 비유했다. 인생의 삶은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은 생존 을 위한 싸움이요,경쟁이다. 경기장에 선수들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이기기를 겨루고 있다. 어느 선수 이든지, 지려고 운동장에 나가는 선수는 한명도 없다. 모두가 승리의 기대를 가지고 유니폼을 입고 나섭니다. 그러나 경기에는 반듯이 또한 승자와 패자 가 있게 마련이다. 승자에게는 영광이지만 패자에게는 침묵일 뿐이다. 그래서 적자생존이니, 자연도태니, 하는 말이 생겨난 줄 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삶은 이긴 자들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안다.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삶의 운동장에서는 지금도 부단한 싸움과 경 쟁에서 이긴 자와 패자의 희노외락의 반복이 있게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4절에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운동장에서 경기 하는 자들과 같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4년마다 고린도에서 열렸던 당시 의 올림픽을 연상하면서 한 말인 것 같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위하여 달려야 한다"고 하였다. 당시 올림픽에서 승리한 선수에게는 월계수 나뭇가지로 엮은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그 월계관은 얼마못가서 다 시들어 말라 버리거나, 없어질 것들 이지만, 우리들 신앙인이 받아 쓸 면류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썩지 않는 면류관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기장에 나선 선수들처럼,"이기기를 다투는 자 마다 절제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려면 절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과연 나의 인생을 어떻게 달려 왔는가 나의 현재의 삶의 경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를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뛰어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뛰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그 어떤 막연한 승리 를 위하여 달려온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줄 압니다. 오늘도 우리 의 주변을 돌아보면, 정신없이 뛰는 사람들 많이 있다.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 지 쉴 사이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 가 하는 것 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분주한 인생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아 무런 의미도 못 느끼면서도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반복하고 있는 사람 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 어떤 이기기를 위한 노력들일 것이다. 남과의 경쟁에서 하나라도 더 앞서고, 더 얻으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사 이없이 뛰는 인생들이란 말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삶의 운동장에는 끊임없는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의 운동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달려야 하겠습니까 경주하는 사람은
1. 목표가 분명해야한다. 본문 2절에 보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신 예수를 바라보자 고 했다. 뭐하러 월드컵에 나갔습니까 남이 가니까 따라간 사람은 자격이 없다. 그 저 한 번 뛰어보다 힘들면 그만둘 생각으로 간 사람도 자격이 없다. 어느 어촌에 고기잡은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와 아들 은 고기배를 져어서 먼바다로 고기를 잡으려 나갔다. 하루종일 고기를 잡은 아버지와 아들은 해가지자 그리운 집이있는 욱지로 돌아오고 있었다. 피곤에 지친 아버지와 아들은 번갈아가며 노를 져어가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노를 맏기면서 하늘의 북극성을 목표로하고 노를 져어가라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 에게 "아들아 저하늘에 북극성이 보이지 저별만 보고 노를 져어가면 우리는 집으로 간단다 " 하고 가르쳐 주고는 아버지는 피곤하여 잠이 깊이 들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북극성을 깜박 잃어버렸다. 그리고는 자기 생각대로 저 별이 북극성이겠지 하면서 자신이 목표로 삼은 별을 보고 열심히 노를 져어 갔다. 그러나 육지에 닳을 시간이 됴는데도 배는 욱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 리고는 배는 험한 풍파가 이는 넓은 바다로 가고 있엇다. 마침내 겁이난 아 들이 어버지를 걔웠다. 그리고는 아버지 북극성을 잃어 버렸어요 하면서 소 리를 쳤다. 이때에 아버지가 일어나서 이놈아 진작 애비를 깨울일이지 너는 지금 북그성을 등지고 노를 져어가고 있어 하면서 아버지는 다시 아들에게 북극성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는 그들은 목표를 찾아 무사히 집에까지 오 게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목표를 잃어버린 인생의 불행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모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경주자와 같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경주자는 승리하는사람도있 고 낙오자도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승리하고 어던 사람이 낙오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북극성을 보고 노를 져어가야할 사람이 북극성을 보지않고 다른 별을 보고 북극성이라고 따라가면 목표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그배는 엉뚱한 방향으 로 가고있었고 그길은 험한길이었다. 배가 가야할 길을 일허버리면은 그대부터 위험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언제 풍랑이 일어날지 언제 어디서 암초에 부 딛힐지 모르는 위험한 항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인생 의 길도 마찬가지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있고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잃어버리고 다른길을 가게되면 그때부터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다. 세상의 풍랑이 오게된다. 우리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다. 아무리 힘이 들어 도 아무리 목이 말라도 푯대를 잃어버리면은 안된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선수가 정해진 푯대를 지어버리고 다른데로 달려간다면은 아무리 빨리 달렸어도 그사람은 탈락이 되는 것이다, 분명한 목표를 잘보고 그 목표를 향 해 달려가야만 승리할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상을 받을수가 있는 것이다. 바다에서 배를 져어가는 아이가 빨리 집에 가기 위해서 땀을 흘리면서 열심 히 노를 져었지만 목표가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배는 점점 가면 갈수 록 집과는 점점더 멀어진 엉둥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목표를 보고 노를 져어가고있습니 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북극성을 보고 노를 져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별을 잃어버리고 자기맘대로 정해서 이것이 망겠지하면서 인생의 노를 져어가고 있습니까 분명히 알아야 할것은 목표가 잘못된 항해는 아무리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노를 젖는다고할지라고 다 헛수고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푯대로 예수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노를 져어가는자는 결국은 표류하거나 침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지금도 이푯대를 잊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배에 노를 져어갈때 혼자서 노를 져어가면 그만큼 힘이들고 속도도 느릴것이다. 그러나 배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노를 저어가면 힘도 덜 들고 배도 목적지까지 빨리 갈수가 있을것이다. 우리교회도 목표를 향하여 노를 져어가야하는데 목사 혼자 노를 져어갈려고한다면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참빛교회라는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다같이 노를 져 어거가야 한다. 힘이 없는 사람은 적은 노를 힘이 있는 사람은 큰노를 저으 면 된다. 다만 힘을 합치는것이 중요하다. 중요한것은 노를 같은 방향으로 앞 을 향해 져어가야 한다. 모두다 앞을 행해 노를 져어가는대 만약 어떤 사람 이 노를 반대로 저어간다면은 안된다. 그배는 그만큼 저항을 받게 될것이고 배가 잘 나갈 수가 없을 것이다. 노를 잘 젖기위해서는 노래도 같이 불러야 한다. 장단도 같이 맞춰야 한다. 호흡이 맞아야 한다.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함마음 한뜻 이 되어야 한다. 목표를 향해서 똑같이 노를 저어 가야 한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뭉치게 될때 잘될 수 밖에 없지만 모두가 잘났다고 나서게되면 그나라는 망하게되고 혼란 에 빠질것이다. 교회도 목회자를 중심으로해서 한마음 한뜻이되어 목표를 향해 나갈때 부흥 하고 교회가 더 큰일을 할수 있을 것이다. 이무튼 운동장에서 경주하는사람은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왜 바다에서 븍극성을보고 배 를 저어가는 사람이 북극성을 잃어버렸느냐 이다.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이다. 그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한눈을 팔았다. 오직 북극성만 바라보고 가야 하는데 아마 이사람은 눈을 북극성에서 돌려 다른데로 향했다가 다른 별들을 보게 된 것이다.
북극성보다 더 아름답고 더 멋있는 별을 보고 그만 정신이 다른데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북극성을 놓치고 말았다 . 다시 찾을려고 하니 별들이 비슷해서 찾을수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리스도 가신 길을 따라가자. 본문 2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인생은 무엇을 바 라보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진다. 현대의 걱정은 바라볼 대상이 없는 것이다. 물질적인 대상은 몇번 바라보면 더 이상 볼 맘이 없다. 우리 삶에 바라 볼 대상이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영의 눈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대사이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바라보는 눈, 목적 이 있는 눈은 빛난다. 그러나 목적없는 눈, 희망이 없는 눈은 빛나지 않는다. 여러분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무엇이든지 얼마 지나면 별 것 아니다. 금방 허무해진다. 현대의 과제는 못 살아서 걱정이 아니라 삶의 의 미가 없어서 걱정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어느 신문의 세종류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먼저, 사회면에 중산층 주부들 의 윤락행위에 대한 기사였다. 남편이 과장이고, 중견 공무원인데, 남편이 출근한 뒤 심심하고 무료해서 낮 1시-3시까지 강남 호텔에서 윤락 행위를 하 다 붙잡혔다. 붙잡혀서 하는 말이 애들 한달 과외비가 25만원 인데 하루 나 가 윤락행위로 5만원을 받아서 거기 보충했다고 한다. 바로 그 기사 옆에 57세 초등학교 교감이 6학년 여자 아이를 성폭행한 기사나 나왔다. 해외 통 신란에는 미국에서 교인 두 사람이 성경을 암송하다가 자기가 외운게 맞다고 다투다가 한 사람이 권총으로 교인을 쏴 죽였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 어집니까 목적이 없어서 그렇다. 정신적, 영적 공허를 달래지 못하니 이렇다.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다.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떼면 실족하고 만다. 옛날 한 젊은 재상이 나이 많은 임금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죄의 유 혹을 피하고 많은 시험을 이겨서 나라를 위해 깨끗한 충신이 될 수 있는가 임금님은 젊은이의 뜻이 기특해 지혜를 베풀었다. 그릇에 물을 가득 채워서 시내 한바퀴를 돌고 오면 물을 한 방울만 흘려도 큰 벌을 내리겠다고 했다.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이 재상 뒤를 따르게 했다. 재상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임금이 명하신대로 제시간에 물그릇을 들고 궁전으로 들어 왔다. 임금님이 칭찬을 하며 그의 수고를 치하했다. 임금님이 물었다. "자 네 시내 한바퀴를 도는 동안 여자를 보았나못봤다.술집은 보았나 거 리에 사람은 많던가" 그 재상은 모두 못보았다고 했다. 이때 임금님이 "바 로 그것일세.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한다면 시시한 일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 하며 왜 그 일을 시켰는지 설명했다. 우리는 오직 예수만 바라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변치않는 목표이다. 예수님과 함께 행하고 예수님과 함게 생각하고 예수님과 함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목표를 향해 달린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우리의 삶은 한번 밖에 없는 삶이다. 인생의 경주는 일회적 경기이다. 반복되는 리그께임이 아니다.
그러므로 푯대가 분명해야 하겠다. 우리의 푯대는 두말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과 같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뛰어야 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같은 동등된 자리를 버리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스스로 육 신을 입고 이 땅위에 오신 분이다. 그리고 반칙으로 얼룩진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친히 나무에 달려 속죄의 제물이 되신 분이다. 바로 그분을 푯대로 삼고 달려야 하겠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분만이 진리요, 진실이요, 참이었 기 때문이다. 모두가 거짓과 허위로 뒤덮여진 세상에서, 불신과 증오로 굳어 진 세상에서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서 사랑을 알았다"고 하였다 (요1서3:16).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분이기 그 분만을 푯대로 삼고 달려야 하겠다는 말이다.
2. 경주하는 사람은 장애물을 벗어야 한다. 본문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라고 했다. 운동선수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을 다 제거해야 한다. 양궁선수는 할 수 없이 좀 치렁 치렁 달고 하지만, 주로 달리고 뛰는 육상 선수나 수영선수를 보면 아주 가 벼운 차림으로 부끄러운 생각도 없이 삼각 팬티 하나만 입고 나와서 달린다. 만약 옛날 우리 어른들처럼 갓을 쓰고, 두루마기 입은채로 달려보세요. 얼마 나 한심하겠습니까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다. 믿음 생활에 방해되는 요 소는 다 떨쳐 버리세요. 그저 앞으로 전진하기에 알맞게 입으면 족하다. 교회 예배시간에 나와야 되는 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 못나오는 분이 더 많다. 그때 우리 교인들을 꽉 붙잡고 있는 장애물들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직장 도, 장사도, 게으름도, TV도, 가정도, 세상 재미도, 이것이 다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하나님과 나와의 영적 통로에 장애되는 것은 다 제거해야 한다. 하지 못하니, 자연히 신앙이 약해지고 세상과 돈에 매인다는 말이다. 우리의 생업 이 때로는 신앙의 장애물일수도 있다. 과거의 허물과 수치와 죄가 장애일수 도 있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마시기 바란다. 십자가의 용서와 은총을 믿고 앞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있어서 중요한 건 오늘과 내일이지 결코 과거가 아니다. 어떤분은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냥 돈에 애착 이 있고 좀더 큰 집을 마련하려고 애쓴다. 인생의 종반전이 다오고, 이제 경 기 종료의 시간이 다 됐는데, 집 장만하고 재물을 가지고 있어서 뭐합니까 그것이 장애물이 되어 있다. 이제는 있는 것 하나님께 기쁨으로 바치고 우 선 몸과 맘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영혼을 자유롭게 편안하게 해야 한다. 이제까지 사노라고 지치고 피곤한데 종반전에서 내가 편하고 자유로 와져야 한다. 여러분의 장애는 무엇입니까 다 버리십시오. 강한 자존심, 게으름, 지나친 욕심, 위선, 정욕과 안일, 수치, 나약함, 이 모든 것들을 깨끗 이 끊어버리기 바란다. 주님의 뒤를 가볍게 따라가야겠다.
1)모든 무거운것과 얽매이기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등에다 짐을 잔뜩 짊어지고 있다면은 어떻 겠습니까 신발도 등산화가를 신고 있고 손에는 먹을것 마실것 잔뜩 들고 달 리기를 한다면 그사람은 경주를 잘할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운동 을 하는 사람은 모든 짐을 다 벗어 버려야 한다. 등에다 지고있는것도 무거 운 신발도 거치장스런 옷도 손에 들고 있는 것들도 다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옷도 가장 가벼운 옷 하나만 입어야 한다. 그래야 경기를 잘할 수가 있다. 여기 무거운 것은 인간의 욕망을 말한다. 우리는 신앙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 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경주를 하는데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벗어 버려 야 한다. 사람들은 세상에 올때는 적신으로 왔는데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있는 것으로 자기 치장을 한다.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지식으로 미모로 말수단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본래의 모습은 자꾸 감출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앞에 나와서는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세상에 있는것 벗어버리지 않고는 주 님을 다를수가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다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으라고 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가지 세상에서 가지고있던 것을 쏜에 꼭쥐고있는한 하나님이 주 시는 것을 받을수가 없다. 원숭이가 주둥이가 적은 그릇에 곡식을 넣어두면 그것 가져갈려고 손을 넣고 움켜 쥐고는 빠지지 않아서 잡히게 되는 것처럼 그것 쥐고 있는것 놓기만 하면 살 수 있는데 욕심이 그것 놓으면 죽을가봐 잡고 있다가 죽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세상에 쥐고 있는 향락이나 욕심 정욕 이기심 모든 죄악을 놓아야 하나님을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으면 옛사람이 매고있던 무거운 죄의 짐을 다벗어버리고 주님만 바라보 고 달려가야 할 것이다.
3. 경주하는 사람은 인내가 있어야 한다. 경주자가 갖추어야할 중요한것 중에 하나가 인내이다. 한번 경기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싸워야 한다.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중간에 그만 둬 버리면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선수들이 훈 련을 하는 목적가운데 중요한것이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서 추운 날씨에도 더 운날씨에도 길이 험한 곳에서도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경기에 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본문1절에도 인내로소 우리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신앙의 경주를 하는 사람도 인내가 필요하다. 롬5;3에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 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 신앙의 경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참을줄 알아야 한다. 그러 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고는 인내할수가 없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란 말이다. 마라톤 경주란 말이다. 그러기에 인내 가 필요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삶의 운동장에서 너무나 쉽게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더욱이 우리 한국 민족의 끊기가 오늘날 점점 쇠퇴해 지는 것 같다. 쉽게 돈도 벌려고 하고, 쉽게 성공도 할려고 한다. 그것도 반칙으로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세상이다. 우리 신앙인은 모름지기 인내의 경주를 해야 한다. 불신 세상에서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간곳마다 조롱과 부딪치는 것 들이다. 신앙생활도 여러 훈련이 필요하다. 비난도 받아보고 속상해보고 끝없는 자기 와의 싸움과 유혹에도 이길 수 있는 지구력을 길러야 한다. 쉽게 고난앞에 포기하면 안된다. 저는 개인적으로
2,30년 신앙 생활 하신 분들을 정말 머리 숙여 존경한다.
2,30년 심지어 40년 동안 신앙 생활하면서 좋은 일만 있는게 아니다. 괴로운 일, 오해 받는 일, 가슴 아픈일 있었지만 오직 믿음의 인내 로 변함없이 묵묵히 주님만 사랑한다. 그들의 믿음을 어떤 선물로 보답할 수 없지만 교육의 기회로 기념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인내가 있어야 한다. 운동 경기는 시합하는 시간이 몇 초에서 길어야 두시간 정도면 끝난다. 잠깐의 시간을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자기와 싸워야 합니까 하물며, 그리스도인의 인내를 쉽게 평가해서는 안된다. 많은 시련과 오랜 시간을 인내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오죽했으면 "자기를 쳐서 복종 시켰다"고 하겠습니 까 끝까지 참고 예수를 바라보며 보냅시다. 인생의 최후 순간, 종반전을 지 나 골인점에 도착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바 라보며 삽시다.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기를 잘 경주하여 모두 승리의 잔 치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3) 경기의 법칙을 잘지켜야 한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경기규정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든 상 대선수를 뒤에서 태클하면 즉시 퇴장이다. 스포츠에선 승리보다 신사적인 매 너가 더 중요하다. 또 국민들은 지나치게 승부에만 집착하지 말고 느긋하게 감상하는 자세도 익혀야 한다. 다음 대회를 개최할 우리로서는 배워야 할 과 제가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번 프랑스대회는 화려한 축구 기예를 지켜보는 즐거움과 함께 차기대회개 최국으로서 경제회생의 비전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 대표팀의 승 전보가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해줄 것도 기대한다. 그러나 승패보다 더 중요 한 것은 페어플레이다. 국제축구연맹이 이번 대회부터 백태클 때는 무조건 퇴장시키는 새 경기규칙을 적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좋지만, 정정당당히 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선진축 구의 탁월한 기량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승리보다 더 값진 재산이 될 수 있다. 운동 경기는 또렷하고 공정한 규칙들을 가졌다. 우리가 운동 경기에서 그 리도 큰 즐거움을 얻는 것은 바로 그 사실 덕분이다. 규칙이 또렷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못한 현실의 각박한 경기들에선 운동 경기들에서 맛보는 깨끗한 즐거움을 맛보기 어렵다. 지금 세계는 무척 불공평하다. 특히 정치와 경제 분 야에서 그러하니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배역들은 대부분 북아메리카와 유럽 의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공평한 조건 아래에서 기량을 겨루는 월드컵과 같은 경 기들은 그래서 세계를 조화로운 공동체로 만들고 모든 사람들이 "지구제국" 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모든 경기에는 규칙이 있다. 인생 의 삶에도 마찬가지이다. 자연계에는 자연법칙이 있다. 이 자연법칙을 모르거나 어겨서는 과학기술을 발전 시킬 수 없다. 정신세계에는 도덕법칙이 있다. 사람이 이 양심의 법칙 을 무시하거나, 어기고는 사람의 구실을 할 수 없다. 영적 세계에도 마찬가 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우리의 영혼이 살 수가 없다. 이렇게 모든 영 역에 기본적인 법칙이 있어, 이것을 거역하는 곳에 언제나 판정이 내리게 되 어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서 사람들은 변칙(變則) 과 반칙(反則)으로 삶의 승부 를 걸어 보려고 한다. 그것이 어쩌면 현재 세상에서는 통하는 것 같이 보이 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반칙으로 성공한 것을 보면서 자랐기에 그것 이 정도(正道)인 것 같이 생각된 세상이다. 우리가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도 리어 반칙을 하는 사람들이 앞서가는 것을 본다.
우직스럽게 자기 혼자만 규 칙을 지키는 것이 바보 스럽게 보일 때 가 많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 세상이기에 그런 것에 익숙해 진 사람들이라야 성공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참으로 오늘의 우리의 세태(世態)는 정의로운 눈을 가지고 살피면 한심하 기 짝이 없다. 어느 분야인들 변칙과 반칙이 없는 분야가 없다. 정치계도 수 단이야 어떻든 당선만 되면 된다는 그런 풍조가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 모 른다. 그래서 권모술수에 능하고, 반칙을 해서라도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승자 가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태이다. 그런가 하면 경제계도 마찬가지 이다. 정당한 노력과 투자에서 얻는 이윤보다 적당히 반칙을 범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 종교계에 까지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적당하게 슬적 슬적 반칙을 범하여야 요령 있는 사람이요, 처세술 에 능한 사람이란 말을 듣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진짜들 보다 거짓되고 가 짜들이 도리어 인기를 누리며, 출세와 성공의 가도(架道)에서 뽐내고 있는 세상이란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순간 자신이 걸어온 삶의 운동장에서 얼마나 반칙 인생을 살아 왔는가 하는 것을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오늘날 내가 누리고 있는 성공과 승리가 진정 정당한 룰(Rule)를 지켜서 얻 은 것인가 우리의 삶의 경기의 마지막 타임아웃의 휘슬이 울릴 때, 참으로 심판주 앞에서 잘 싸워 왔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를 깊이 반성해 보아 야 하겠다. 경기를 하는데는 반듯이 법칙이 있다. 축구를 하는 사람에게는 축구의 법칙 이 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달리기를 하는 법칙이 있다. 복싱을 하는 사람다도 룰이 있다. 아무리 잘 뛰고 아무리 잘해도 법칙에 벗어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신앙인들에게도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을 다라서 잘 경기 를 해야 한다. 우리에게 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경주에 있어서 이 말씀의 법칙을 잘 지키면서 경기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께 드리면 좋아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 칙대로 돈을 벌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아무리 돈을 많이벌었어도 하나님 의 법을 떠나서 번돈은 불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명예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불법으로 명예를 얻는다면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명예를 얻어야 한다. 회사에 가면 회사의 법이 있고 학교에 가면 학교의 법이 있듯이 우리가 몸담고 신앙생활하는 교회에도 교회 법이 있다. 이법을 잘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딤후2;5에 바울은 ' 경기하는자가 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라고 말했다.이제우리는 모두 신앙의 경주자들이다. 믿음의 주요 온 전케하신 예수를 바라보고 얽매이기쉬운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룰을 따라 인내하면서 끝까지 경주를 잘하여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은근과 끈기가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평안할 때에는 숨겨 두었던 인내심을 막상 어려운 일이 생기면 힘을 합하여 극복해 나가는데 이력이 있는 민족이다. 그러기에 소수의 민족으로 5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경주를 경주하며(히12:1) 우리는 지구라는 넓은 운동장에서 여러나라와 경주하는 자리에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발휘하기 위해 인내라는 경주복을 입어야 할 때이다. 세계적인 경제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와 정치적으로 당면한 여 러가지 문제, 교육적인 문제, 사회제도등 여러가지 일을 인내를 가지고 하나 씩 해결해 나가는 땀이 있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하여 다음에 두가지를 기억해 두어야 하겠다.
첫째는 '무거운 것' 과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하겠다. 운동장에 나선 선수들을 보면 모두 다 벗고 가벼운 몸으로 달린다. 거추장스 러운 모든 것을 벗어버린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나를 무겁게 매어두고, 얽어매어 두는 것이 지금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즉 주님앞에 나오는 길에 그렇게 무겁게 얽어매는것들이 무엇이냐 어떤 사람 은 술담배 때문에 이 자리에 까지 나아 오기가 힘들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육체의 향락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놈의 돈 버는 재미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부산일보에 보니 얼마 전 공직을 정년퇴직하셨다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우리대표팀이 출국하는 장면을 TV로 보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며 말문을 연 그 분은 "내 아들을 보내는 것 같은 감격적 심정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 국민의 심정을 함축적으로 전달한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었다. 그 분의 마지막 말이 지금도 가슴을 맴돈다."이기면 좋지만 지면 또 어때요. 지더라도 언론에서 너무 심하게 나무라지 마세요." 그렇다.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쉽게 할 수 없는 말,"져도 좋다.최선을 다해라." 이 한마디를 가슴에 품은 채 밤잠을 설쳐가며 "월드컵 열병"을 앓아보자. 그러나 여러분!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좋다고 하는 것들을 얻기 위하여 반칙 투성이로 얻은 재물 과 성공, 그리고 변칙으로 성취한 명예와 출세들! 그것이 과연 주님 앞에서 몇 푼의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죽어서 장례식 때,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관이 남보다 좀더 화려하다 해도 주 앞에 서는 날! 모두가 검부러기 같은 것 들이다. 그런 것이 무엇이 소용이 있겠습니까 인생을 얼마나 진실 되게 살아 왔는가 얼마나 정직하게 룰을 지키며 달 려 왔는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누가 판결합니까 우리의 의로우신 재판장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달렸다. 그가 베스도 총독 앞에 섰을 때, 만장한 사람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나 의 이 매인 것을 제외하고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의로우신 재판장인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뛰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경기는 반드시 상(賞)이 주어진다는 사 실이다. 나는 상같은 것 안 받아도 좋으니.그런 것 안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 으면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 으라.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다(마25:30). 이 말은 달란 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았던 자에게 한 말이다. 남들은 다 자신의 달란트 를 배나 남겼는데 주인에게 본전만 가지고 간 종과 같이, 자신의 믿음 하나 만 겨우 지키며 생활하다가, 봉사 생활과 전도 생활은 전혀 못하고 죽었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 이에 해당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한 말이 무슨 뜻이겠 습니까 '슬피 운다'는 것은 서러워 운다는 뜻일 것이고, '이를 간다'는 것은 억울해서 분해서 이를 간다는 뜻일 것이다. "아! 나도 교회 생활에서 좀더 봉사할 껄! 아, 나도 그때 좀더 열씸히 신앙생활을 할껄!" 하면서 억울해서 이를 박박 간다는 뜻일 것이다. 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이를 갊이 있겠다고 했겠습니까 우리 모두 삶의 운동장에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삶의 운동장에서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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