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고전9:24-27)
본문
올해는 새해 첫 날과 첫 주일이 일치하는 해이군요. 새해 첫 날 첫 주일을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시작하는 모든 성도님들께 더욱 큰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을 때 마다 새로운 각오를 하곤 합니다. “올해는 좀 달라져야지, 올해는 담배도 끊고 술도 끊어야지. “이렇게 살다간 안돼지 좀 새로운 삶을 살아야 겠다. 도박도 끊고 몰래 하던 춤 추기도 그만 두고….”등등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 일주일도 못가 담배를 다시 물고, 술병을 다시 듭니다. 동양화와 서양화가 왔다 갔다 합니다. 캬바레의 불빛이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도 별수 없는 인간이야” 하면서 스스로 포기하고 작년이나 새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이 술 끊고 담배 끊는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다. 그러나 이 일을 매우 큰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던 잘못된 습관, 행동을 다시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슬 담배를 끊음으로써, 또는 자기가 좋아하던 잘못된 습관 행동을 과감히 중단함으로써 자신의 뜻을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명백히 밝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뜻 때로 안 됍니다. 그래서 “나도 별수 없는 인간이야” “관둬라 이대로 살다 죽지 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새해를 맞이 하면서 새해에 우리가 원하고 새로워 지고자 하는 일에 대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듣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극복하고 이기고자 다투는 일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일의 결말을 두려워 할 줄 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기려 해도 이겨지지 않는 일에 대한 결말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패배자의 비참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두려움은 다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나 무서움을 타는 것을 매우 부끄러운 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사나이 대장부가 뭐 그래, 무서워 떠나!” 사실 공연히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라는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두려워 해야 할 때 두려워 할 수 있는 감정도 주셨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매우 유익하고 합당한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합당한 두려움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통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두려움이 삶을 새롭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런 두려움이 우리가 행하는 잘못된 행태나 습관을 버리는데 매우 유익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바로 이런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바울 사도는 자기의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이 두려움 때문에 그는 절제하며 자기 몸을 때리기까지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극복하고자 했던 일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당한 두려움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하여 자기의 생활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현재의 잘못된 삶을 바르게 고칠 수 있는 좋은 약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성도로서 합당치 못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끊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해로운 습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시요. 거룩한 교회를 두려워 하십시요. 자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하십시요. 그래서 버리십시요. 끊으십시요. 두려움은 장래에 좋은 결과를 가져 다 주는 양약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에이즈 환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 술마시고 외박을 자주 하던 사람이 이 병에 들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단 한번의 외도(外道)로 이런 죽을 병에 든 사람도 있습니다. 불륜과 패륜, 도착되고 반 인간적인 성관계가 가져온 비극입니다.
그런데 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로 자살한 사람도 있습니다. 외도한 지 몇달 후에 별안간 에이즈 비슷한 증세로 생각되는 증상이 나타나자 창피함과 두려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미리 이런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었다면 결코 이런 죽음의 늪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순간의 쾌락에 눈이 멀어 “처음인데 괜찮겠지” “설마 내가 걸리겠어.”라는 단순한 생각에 이런 비참한 현실을 당한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에 저와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집은 연탄을 배달하며 사는 집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아주 미남 형의 잘생긴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매일 연탄으로 시커머진 얼굴로 리어카를 끄셨습니다. 원래 그 친구의 가정은 집도 있고 돈 도 좀 있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아버지께서 놀음에 손을 대셨습니다. 말리는 아내의 소리를 윽박지르면서 놀음 판에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돈도 날리고 집도 날렸습니다. 단칸 삭월세 방에서 네 사람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곤 술로 세월을 보내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연탄 가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분이 자기가 행하고 있는 잘못된 일 때문에 가져올 불행과 파멸을 두려워 했다면 이런 결말을 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두려워 할 일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악습이 불러올 재앙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진정으로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기고자 하는 잘못된 행위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둘째로 이기기를 다투는 일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삶의 올바른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어떤 경기이든 목표점이 있습니다. 축구와 농구에 골이 있습니다. 마라톤에도 골인 지점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우리의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마라톤은 도착해야 만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 지점에 이를 때까지 한시도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일등은 오직 한 사람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한 곳 골인 지점을 향해 부단히 달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부자되는 것 일까요 예배당을 더 크게 건축하는 일일까요 수많은 사람을 예배당에 모셔오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결코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일인가 이 일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합당한가 성도로서의 덕을 세우는 일인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인격과 삶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를 버립니다. 뽐냄과 모든 세상적 욕심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로 옷입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쫒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그리스도인의 목표요 삶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고자 힘쓸 때 우리는 세상의 썩을 면류관이 아닌 생명의 면류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럼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무엇에 대해 이기기를 다투어야 합니까 먼저 죄와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에 대해 밝히 말씀합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악의 영들입니다 이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마귀는 우리의 죄성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미움을 심습니다. 시기와 질투를 심습니다. 우리 속에 온갖 정욕과 욕심을 심습니다. 그래서 다툼을 일으킵니다. 싸움을 일으킵니다. 보모와 자식이 다툽니다. 남편과 아내가 싸웁니다. 가정에 파괴되고 사회가 혼란해 집니다. 교회에 다툼이 생깁니다. 분란과 시끄러움이 생깁니다. 이렇게 악의 영들은 우리의 심성을 공격하여 분란을 일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들을 대적해야 합니다. 악의 영들의 공격과 유혹에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도덕적 타락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세무서에 근무하는 세무 공무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세금을 착복하고 빼돌리고 온갖 도적질을 자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염려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마저 돈과 자기 이익 앞에선 양심도 신앙도 쓸모없이 되니 말입니다. 그러니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불신도 높아 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도덕적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욕심에 함께 동화되고 함께 휩쓸려 타락하는 자가 아니라 이들을 거스려야 합니다. 이들의 악과 죄에 대항하여 정직하며 의를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승리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맹수와의 싸움이 아닙니다. 다른 누구와의 싸움도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큰 싸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自身)입니다. 내 속에서 나의 욕심이 나를 자극합니다. 나의 나쁜 습관을 충동질 합니다. 그리고 해로운 습관을 행하게 합니다. 그리고 합리화 시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탄식합니다. (롬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것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의 탄식입니다. 우리는 시기심과 질투심에 대해 날마다 순간 순간 죽어야 합니다. 악독하고 표독스런 마음에 대해 매초마다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분초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성의 발동을 꺽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뿌리박힌 악한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야 합니다. 자기 죄와 욕심을 모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속적 정욕에 대해 죽고 수많은 악한 습관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럴 때 우리 모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자기를 이김으로써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 모두가 이런 일에 대해 승리를 목표하고 부단히 이기기를 다투어 가는 선한 군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째로 우리가 이기기를 다투는 일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긴 자의 기쁨을 생각 할 즐 알아야 합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목표는 그 산의 정상입니다.
그런데 높은 산의 정상까지 오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갈증으로 목이 타기도 합니다. 숨은 차고 목구멍에서 쇤내가 나기도 합니다. 다리는 아프고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흐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고 정상에 섰을 때의 기쁨과 시원함은 오르지 못한 사람은 맛볼 수 없는 기쁨과 환희입니다. 이런 기쁨과 환희를 알기에 오늘도 정상에 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극복하고 이기고자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승리했을 때의 기쁨을 생각하십시요. 그리고 그 일로 오는 수많은 유익들을 세어 보십시요. 그리고 부단히 이기기를 다투십시요. 결코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요. 분명히 이기기를 다투기를 계속하는 사람은 이긴 자의 기쁨을 만끽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을 이기고자 힘쓰십니까 나쁜 습관과 성질을 이기고자 힘쓰십니까 알콜 중독의 폐해와 그 파탄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의 감격을 생각해 보십시요. 자신의 악습의 결과를 주목하십시요. 그리고 이겼을 때의 감격을 생각하세요. 슬을 끊었거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때의 가정의 변화, 생활의 건전함을 생각해 보십시요.
왜냐하면 이긴 자의 기쁨을 생각할 때 이기기를 다투는 그 일에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새해 첫 날,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새해 우리는 보다 나은 신앙의 삶을 위해 이기기를 다투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죄성에 대해 이기기를 다투어야 합니다. 세상의 타락의 파도를 거스르며 이기기를 다투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올 한 해가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잡는 결정적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선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는 원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올 한해가 주님 안에서 이긴 자의 노래를 부르는 소망에 찬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 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영원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 위로 충만하신 역사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여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하여, 옛 사람의 습관과 행위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분명한 인생의 목표를 향해, 승리의 그 날에 있을 기쁨과 감격을 생각하면서 끊임없는 전진을 다짐하는, 모든 교회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심령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우리는 새해를 맞을 때 마다 새로운 각오를 하곤 합니다. “올해는 좀 달라져야지, 올해는 담배도 끊고 술도 끊어야지. “이렇게 살다간 안돼지 좀 새로운 삶을 살아야 겠다. 도박도 끊고 몰래 하던 춤 추기도 그만 두고….”등등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 일주일도 못가 담배를 다시 물고, 술병을 다시 듭니다. 동양화와 서양화가 왔다 갔다 합니다. 캬바레의 불빛이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도 별수 없는 인간이야” 하면서 스스로 포기하고 작년이나 새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이 술 끊고 담배 끊는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다. 그러나 이 일을 매우 큰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던 잘못된 습관, 행동을 다시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슬 담배를 끊음으로써, 또는 자기가 좋아하던 잘못된 습관 행동을 과감히 중단함으로써 자신의 뜻을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명백히 밝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뜻 때로 안 됍니다. 그래서 “나도 별수 없는 인간이야” “관둬라 이대로 살다 죽지 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새해를 맞이 하면서 새해에 우리가 원하고 새로워 지고자 하는 일에 대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듣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극복하고 이기고자 다투는 일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일의 결말을 두려워 할 줄 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기려 해도 이겨지지 않는 일에 대한 결말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패배자의 비참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두려움은 다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나 무서움을 타는 것을 매우 부끄러운 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사나이 대장부가 뭐 그래, 무서워 떠나!” 사실 공연히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라는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두려워 해야 할 때 두려워 할 수 있는 감정도 주셨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매우 유익하고 합당한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합당한 두려움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통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두려움이 삶을 새롭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런 두려움이 우리가 행하는 잘못된 행태나 습관을 버리는데 매우 유익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바로 이런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바울 사도는 자기의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이 두려움 때문에 그는 절제하며 자기 몸을 때리기까지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극복하고자 했던 일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당한 두려움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하여 자기의 생활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현재의 잘못된 삶을 바르게 고칠 수 있는 좋은 약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성도로서 합당치 못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끊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해로운 습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시요. 거룩한 교회를 두려워 하십시요. 자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하십시요. 그래서 버리십시요. 끊으십시요. 두려움은 장래에 좋은 결과를 가져 다 주는 양약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에이즈 환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 술마시고 외박을 자주 하던 사람이 이 병에 들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단 한번의 외도(外道)로 이런 죽을 병에 든 사람도 있습니다. 불륜과 패륜, 도착되고 반 인간적인 성관계가 가져온 비극입니다.
그런데 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로 자살한 사람도 있습니다. 외도한 지 몇달 후에 별안간 에이즈 비슷한 증세로 생각되는 증상이 나타나자 창피함과 두려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미리 이런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었다면 결코 이런 죽음의 늪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순간의 쾌락에 눈이 멀어 “처음인데 괜찮겠지” “설마 내가 걸리겠어.”라는 단순한 생각에 이런 비참한 현실을 당한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에 저와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집은 연탄을 배달하며 사는 집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아주 미남 형의 잘생긴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매일 연탄으로 시커머진 얼굴로 리어카를 끄셨습니다. 원래 그 친구의 가정은 집도 있고 돈 도 좀 있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아버지께서 놀음에 손을 대셨습니다. 말리는 아내의 소리를 윽박지르면서 놀음 판에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돈도 날리고 집도 날렸습니다. 단칸 삭월세 방에서 네 사람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곤 술로 세월을 보내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연탄 가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분이 자기가 행하고 있는 잘못된 일 때문에 가져올 불행과 파멸을 두려워 했다면 이런 결말을 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두려워 할 일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악습이 불러올 재앙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진정으로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기고자 하는 잘못된 행위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둘째로 이기기를 다투는 일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삶의 올바른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어떤 경기이든 목표점이 있습니다. 축구와 농구에 골이 있습니다. 마라톤에도 골인 지점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우리의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마라톤은 도착해야 만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 지점에 이를 때까지 한시도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일등은 오직 한 사람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한 곳 골인 지점을 향해 부단히 달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부자되는 것 일까요 예배당을 더 크게 건축하는 일일까요 수많은 사람을 예배당에 모셔오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결코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일인가 이 일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합당한가 성도로서의 덕을 세우는 일인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인격과 삶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를 버립니다. 뽐냄과 모든 세상적 욕심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로 옷입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쫒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그리스도인의 목표요 삶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고자 힘쓸 때 우리는 세상의 썩을 면류관이 아닌 생명의 면류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럼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무엇에 대해 이기기를 다투어야 합니까 먼저 죄와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에 대해 밝히 말씀합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악의 영들입니다 이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마귀는 우리의 죄성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미움을 심습니다. 시기와 질투를 심습니다. 우리 속에 온갖 정욕과 욕심을 심습니다. 그래서 다툼을 일으킵니다. 싸움을 일으킵니다. 보모와 자식이 다툽니다. 남편과 아내가 싸웁니다. 가정에 파괴되고 사회가 혼란해 집니다. 교회에 다툼이 생깁니다. 분란과 시끄러움이 생깁니다. 이렇게 악의 영들은 우리의 심성을 공격하여 분란을 일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들을 대적해야 합니다. 악의 영들의 공격과 유혹에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도덕적 타락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세무서에 근무하는 세무 공무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세금을 착복하고 빼돌리고 온갖 도적질을 자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염려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마저 돈과 자기 이익 앞에선 양심도 신앙도 쓸모없이 되니 말입니다. 그러니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불신도 높아 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도덕적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욕심에 함께 동화되고 함께 휩쓸려 타락하는 자가 아니라 이들을 거스려야 합니다. 이들의 악과 죄에 대항하여 정직하며 의를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승리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맹수와의 싸움이 아닙니다. 다른 누구와의 싸움도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큰 싸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自身)입니다. 내 속에서 나의 욕심이 나를 자극합니다. 나의 나쁜 습관을 충동질 합니다. 그리고 해로운 습관을 행하게 합니다. 그리고 합리화 시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탄식합니다. (롬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것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의 탄식입니다. 우리는 시기심과 질투심에 대해 날마다 순간 순간 죽어야 합니다. 악독하고 표독스런 마음에 대해 매초마다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분초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성의 발동을 꺽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뿌리박힌 악한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야 합니다. 자기 죄와 욕심을 모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속적 정욕에 대해 죽고 수많은 악한 습관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럴 때 우리 모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자기를 이김으로써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 모두가 이런 일에 대해 승리를 목표하고 부단히 이기기를 다투어 가는 선한 군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째로 우리가 이기기를 다투는 일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긴 자의 기쁨을 생각 할 즐 알아야 합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목표는 그 산의 정상입니다.
그런데 높은 산의 정상까지 오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갈증으로 목이 타기도 합니다. 숨은 차고 목구멍에서 쇤내가 나기도 합니다. 다리는 아프고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흐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고 정상에 섰을 때의 기쁨과 시원함은 오르지 못한 사람은 맛볼 수 없는 기쁨과 환희입니다. 이런 기쁨과 환희를 알기에 오늘도 정상에 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극복하고 이기고자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승리했을 때의 기쁨을 생각하십시요. 그리고 그 일로 오는 수많은 유익들을 세어 보십시요. 그리고 부단히 이기기를 다투십시요. 결코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요. 분명히 이기기를 다투기를 계속하는 사람은 이긴 자의 기쁨을 만끽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을 이기고자 힘쓰십니까 나쁜 습관과 성질을 이기고자 힘쓰십니까 알콜 중독의 폐해와 그 파탄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의 감격을 생각해 보십시요. 자신의 악습의 결과를 주목하십시요. 그리고 이겼을 때의 감격을 생각하세요. 슬을 끊었거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때의 가정의 변화, 생활의 건전함을 생각해 보십시요.
왜냐하면 이긴 자의 기쁨을 생각할 때 이기기를 다투는 그 일에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새해 첫 날,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새해 우리는 보다 나은 신앙의 삶을 위해 이기기를 다투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죄성에 대해 이기기를 다투어야 합니다. 세상의 타락의 파도를 거스르며 이기기를 다투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올 한 해가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잡는 결정적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선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는 원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올 한해가 주님 안에서 이긴 자의 노래를 부르는 소망에 찬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 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영원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 위로 충만하신 역사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여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하여, 옛 사람의 습관과 행위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분명한 인생의 목표를 향해, 승리의 그 날에 있을 기쁨과 감격을 생각하면서 끊임없는 전진을 다짐하는, 모든 교회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심령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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