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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고전3:10-15)

본문

인생을 흔히 비유하기를 집짓는 일에 비유를 합니다.지난번 L.A에서 지진이 났을 때 겉은 장식으로 화려해도 내면의 기초와 재질이 튼튼하지 않은 건물들은 완전히 주저앉았다고 합니다.우리 주위에서도 오랫동안 적금을 들어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그만 그 아파트가 부실공사를 한 탓에 실망과 낭패를 당한 경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여의도를 건너는 원효 대교를 버스를 타고 지나간적이 있었습니다.공사중이라 길이 좁았습니다.공사의 이유는 다리 이음새가 가라앉아서 다시 보수하기 위해서 입니다.눈으로 보아도 알정도로 다리의 난간이 휘어졌습니다. 좋은 기초위에 좋은 재료를 써서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 어떤 어려움에도 튼튼한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인생도 성실하고 진실하고 알차게 살 때 뿌리깊은 나무와 같이 어떤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는 가치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집을 짓는 건축자의 예를 들면서 이러한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부실공사가 있다는 것입니다.어떻게 공사를 한단 말입니까.본문에는 6가지 재료가 등장하는데 3가지는 불에 타는 것이고 3가지는 불에 안타는 것입니다.금,은,보석과 같이 좋은 재료를 써서 집을 지으면 훌륭한 집이 되지만 나무나 풀이나 짚같은 것으로 지으면 나중에는 무너지거나 불타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본문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금이나 은이나 돌로 짓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또 하나, 우리 자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나는 지금까지 어떤 집을 짓고 있었는가”. 오늘의 말씀을 함께 나눔으로서 우리 모두가 마지막 날까지 성공하는 훌륭한 신앙의 건축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는,튼튼한 기초 위에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10-11절을 보십시다.바울은 먼저 터를 말합니다.집을 지으려면 기초인 터가 있어야하는데 그 터는 누구라고 말합니까.예수그리스도가 참 터이며 기초가 된다고 말합니다.건축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를 세울 돌을 찾는 것입니다.오늘날에는 시멘트로 기초를 만들지만 당시에는 돌을 찾아서 그 위에 세우든지 아니면 돌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서 그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네모 반듯한 반석을 찾으면 건축자는 아주 만족한 것입니다.그러나 돌을 구하지 못하거나 비뚤어지고 약한 돌로 기초를 세우면 나중에는 결국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동물은 먹고 마시고 자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오로지 먹는 것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먹는 것만을 위해서 산다면 다른 짐승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사람은 먹고 자는 것 외에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그러기에 때로는 자유를 위해 단식을 하기도하고 국가를 위해 먹고 사는 것을 포기하며 때로는 생명을 던지기도 합니다.예술을 위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작품을 만들기도 합니다.더 고귀한 도덕적 순결을 위하여 고행과 수도를 하기도 합니다.어떤 사람은 평생 산을 오르며 탐험하는 일에 생애를 바치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습니다.저마다 삶의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그 이유가 인생의 기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기초를 찾아 그 위에 인생의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과거에는 참된 기초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생을 살았지만 그러나 이제는 참 기초이며 반석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위에 내 인생을 다시 세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세운 모든 가치는 인간의 죽음과 세상의 멸망과 함께 소멸되고 사라지지만 반석의 기초 위에 세운 인생은 세상이 끝나고 죽음이 와도 영원하기 때문입니다.전도서에서는 세상의 모든 영광과 부귀는 다 헛된 것이라고 했습니다.인간은 죽음과 함께 모든 과거는 사라져버립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아무리 훌륭한 정치가도 애국자도 나라의 멸망과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아무리 훌륭한 예술가도 문학가도 문화와 역사가 바뀌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도 마지막 때에는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반석위에 세운 집은 튼튼하고 안전합니다.어떤 비바람이 쳐도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반석이 지켜주기 때문입니다.반석은 세월이 가서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그래서 찬송가 작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만세반석이라고 했습니다.모래위에 아무리 화려하고 엄청난 발딩을 진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얼마가지도 않아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반석위에 지은 작은 집이라 할지라도 그 집은 영원히 든든하게 서 있을 것입니다.
2.좋은 재료를 써서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저도 중국음식을 좋아합니다.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집은 맛도 있고 먹고난 후에 소화도 잘되고 속이 편합니다.어떤 집은 먹을 때는 맛있는데 먹고난 후에는 속이 불편합니다.결국 따지고 보면 어떤 재료를 썼느냐 입니다.짜장면을 만들더라도 값싼 식용유를 써서 만든 음식과 좋은 식용유를 쓴 음식은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건물에 색을 칠하고 도배를 하면 모두가 훌륭해 보입니다.그러나 좋지 않은 재료를 쓴 건물은 시간이 갈수록 틈이 벌어지고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는 좋은 기초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이제 부터 우리는 건축을 해야 합니다.어떤 재료를 써서 어떻게 설계하고 건축할 것입니까.보석들을 재료로 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나무나 풀로 짓는 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보석을 캐거나 구하기 위해서는 땀과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지만 나무나 짚이나 풀들은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짓는다는 의미는 신앙생활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바울은 크게 두 가지의 유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마치 보석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이 희생과 땀과 노력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대충 적당히 희생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수원에 있는 어떤 교회의 이전예배에 참석한적이 있습니다.그 교회는 수원시내에 있다가 외각에 조그만 땅을 구입해서 조립식으로 지었습니다.말을 들어보니 건축업자가 진 것이 아니라 얼마안되는 교인들이 지난 겨울 부터 언 땅을 파고 애써서 완성했다고 합니다.목사님 말씀은 어렵다고,이사했다고 다른 교회로 갈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시간까지 같이 있어서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나중에 나오면서 그 교인들의 얼굴을 보니 모두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얼룩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그들은 교회를 지었을 뿐 아니라 금과 보석으로 자신의 집도 지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희생을 싫어합니다.편하고 부담없이 신앙생활을 원합니다.그래서 책임도 없고 부담도 없는 신앙생활을 원합니다.희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적당히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부담 없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주일예배 한번 참석했다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받습니다.안타깝게도 자신의 집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바람이 불면 무너지고,비가 오면 물이 새고,눈이 오면 찬바람이 들어오는 부실한 집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보석으로 집을 짓기 위해서는 보석을 깨고 다듬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그러나 나무나 풀이나 짚은 빠르고 쉽게 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보석을 깨기 위해서는 몇 달이 걸릴지 모릅니다.그리고 그 보석을 다듬고 깍는데 또한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합니다.제 친구 중에도 인천에서 10여년 동안 보석 세공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보석하나를 가공하는데 0.01의 오차가 있어도 제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컴퓨터로 측정을 해서 숙련된 기술로 가공하지 않으면 비뚤어진 보석이 되어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시간이 필요합니다.훌륭한 신앙은 금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입니다.바울같이 위대한 신앙인도 로마서 7장에 보면 세상과 욕심을 따르려하는 자아와 얼마나 힘들게 싸웠는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까지 고백했습니다.믿음생활 가운데 가장 큰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바로 나 자신입니다.자아와 싸우는 것입니다.부지런히 말씀을 보며 기도할 때 싸워서 승리할 수 있지만 방심하면 여지없이 자아의 욕망이 파고들어와 낙심하고 실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아픔과 고민과 낙담이 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만이 아닙니다.엎드려진 그곳에 나를 일으키시고 용서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사랑의 하나님을 또 만나는 것입니다.이렇게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거칠고 모난 모습은 점점 깨어지고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의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 가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며 성도들을 대하다보면 목회자가 가장 믿음직한 성도는 꾸준한 사람입니다.비가 오나 눈이오나 꾸준히 차근 차근 믿음의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반면에 어떤 사람은 한꺼번에 2-3층씩 밤새워가며 후닥닥 짓다가 푹 쉽니다.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또 얼마간 짓습니다.그래서 너무 한꺼번에 많이 급하게 짓다가 쉬다가 하다보니 좋은 집을 짓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보석으로 짓는 훌륭한 건축자가 되려면 꾸준함과 인내가 필요합니다.신앙생활 가운데 왜 유혹과 시험과 환란이 없겠습니까.짚이나 풀로는 하루에도 지을 수 있습니다.나무로는 한 달에 몇 채도 지을 수 있습니다.쉽게 부셨다가 쉽게 질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보석으로는 그럴 수 없습니다.평생을 다듬으며 꾸준히 지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헤이기에 누구나 쉽게 될 수 있지만 믿는 사람다운 신앙의 인격과 삶에서 풍기는 성숙한 신앙의 향기는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이 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3.현재보다 미래의 영광을 생각하며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13-15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불이 각 사람의 공력을 시험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불이 나타나서 공력을 시험한다는 것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하며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지금껏 자기가 지은 집이 어떤가를 시험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그런 때가 분명히 온다는 것입니다.그 때 가면 결과가 드러나는데 비록 겉은 화려하고 장식으로 치장했어도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은 다 타버린다는 것입니다.결국 실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더 안타까운 것은 그 불 속에서 불티를 뒤집어 쓰고 뛰어나와서 겨우 목숨만 건지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 꾸준히 주님을 위해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믿는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과 짝할 때 말씀 따라서 묵묵히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사람들 힘들어도 주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들었던 사람들, 그들이 지은 집은 불길이 닥쳐도 머리털하나 상하지 않고 그 때에야 비로소 보석의 실체가 드러나는 영광을 만난다는 것입니다.그 뿐입니까.
14절에 보니 상을 준다고 하였습니다.열심히 집을 지은 수고의 댓가로 영원히 빛나는 영광된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어주는 것입니다.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딤후4:8에 말하기를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미래에 주어질 영광과 축복을 모르고 집을 짓다가 포기한 한 사람에 대하여 이런 안타까운 말을 합니다.“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까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주님은 약속하시기를 지나가는 길손에게 냉수 한그릇 준 것도 기억하시고 갚아 준다고 하셨습니다.하물며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며 수고하며 어려운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의 수고를 어떻게 기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좁은 길을 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다른 사람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길을 가야합니다.남모르게 흘리는 눈물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괴로울 때도 있습니다.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은 마지막날에 주어질 것입니다.주님의 손으로 친히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적당히 대충 아무것으로나 짓지 말고 이 지혜와 소망으로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예배에 잘 참석하지도 않고 그저 적당히 세상도 즐기며 신앙생활을 하던 어떤 사람이 꿈 속에서 천국을 갔답니다.가보니 사람들이 앉아서 베를 짜고 있더랍니다.가만히 보니 어떤 사람은 베가 빈틈없이 촘촘하게 짜는데 어떤 사람은 중간에 실이 풀리기도 하고 구멍이나 기도하고 뜯어지기도 했습니다.그래서 자기의 자리는 어떤가하고 찾아가 보니 자기가 짜던 베가 얼마나 보기 흉한지 중간 중간에 구멍이 나서 쓸 수가 없더랍니다.옆에 있는 천사에게 물어보니 그 옷은 나중에 천국에서 입을 것인데 세상에 있을 때 신앙생활하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현재보다 안일과 편함보다 보다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집을 짓는 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초라한 동네인 갈릴리에 가난하고 배우지도 못한 한 어부가 있었습니다.그의 평범한 꿈은 그저 많은 고기를 잡아 시장에 파는 것이었습니다.어느날 그의 생애를 바꾸는 기적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주님께서 그의 만나주셨던 것입니다.그는 주님을 만난후 지금까지 살았던 가치와 삶의 터전을 허물어 버렸습니다.그리고 주님의 말씀위에 새로운 삶을 세우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그 후 베드로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신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헌신하며 살았습니다.그의 저서인 벧전2:8에보면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1:24에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그는 위대한 믿음의 건축가 였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발견은 예수그리스도 입니다.그 분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내가 삶의 목적과 이유도 모른 채 영원한 멸망을 향해 지친 모습으로 걷고 있을 때 나를 찾아 오셔서 나에게 영생하는 생수를 주시고 천국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삶의 목적과 이유를 알게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참 터와 반석 되신 주님을 알고 만났습니다.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동안 어떻게,무엇으로 집을 지었습니까.마지막 날에 불의 공력이 다가오면 여러분의 집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십니까. 때로는 신앙생활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우리는 세상사람들이 하는 것을 하지 않아야하고,그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여러분 중에는 어떤 분은 먼 거리에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개척교회를 섬기는 것은 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여러분이 교회를 섬기기 위해 ,주님을 섬기기 위해,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 애쓰고 힘쓰며 희생하는 그 모든 것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나무나 풀이나 짚으로는 누구나 지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보석으로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아니면 지을 수 없습니다.그 뿐입니까.이제 후로는 하늘의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수고한 댓가를 주님이 기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모두는 만세반석이신 주님의 터위에 집을 짓는 자들입니다.오늘 우리에게 깨닫게해 주신 이 지혜로 여러분 모두 찬란한 보석의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궁전을 짓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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