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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부터 칭찬 (고전4:1-5)

본문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볼로나 게바나 자기를 당파나 분파의 지도자로 생각지 말고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합니다. 여기 "일군"이란 옛날 큰 배의 노를 저어 배가 달리게 하는 노예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자기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겨달 라고 부탁합니다. "맡은 자"란 청지기를 말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집 과 재산을 전부 관리하며, 일군들을 감독하며, 물자를 지급, 분배하며 집 전체를 보살피는 직분으로 이 역시 노예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청지기의
첫째 조건은 믿을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독립성과 책임과 지배권이 주어진 이상 주인의 절대 적인 신임이 더욱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청지기로 바울은 인간 의 판단에 개의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판단에 충성된 일군이 되고자 했 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이야말로 가장 참되고 유일한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이야말로 결정적인 판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모든 정황을 정확히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속의 갈등을, 또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알고 계십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떨어졌는지, 어디까지 올라 갔는지, 좋든 나쁘든 어떤 인간이 되었는지 그 가능성까지라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 든 사실을 아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동기를 모조 리 알고 계십니다. '인간은 행위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고결하게 보이는 많은 행위도 가장 이기적인 추악한 동기에서 시작되 었을는지 모르며 비열하게 보이는 많은 행위가 가장 고결한 동기로부터 출발한 것인지 모릅니다. 인간의 마음을 창조하신 이만이 인간의 마음을 알고 또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판단으로 인간을 칭찬하실 수 있음을 알고 사도 바울은 그 분 앞에 열심과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성경에서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삶을 통해 칭찬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는 적은 일에 충성된 자입니다. "(마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마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 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 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 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 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동방에 다음과 같은 비유가 있습니다. 한 부유한 상인이 있었는데 사업차 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밀 두 자루를 두 친구에게 각각 한 자루씩 맡기기로 하였 습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을 좀 맡아주게. 곧 돌아올테니 보관만 해주면 되 네." 그 후 몇 달 뒤, 그 상인으로부터 일이 잘 되어 더 늦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한 친구는 생각했습니다. "아니 곧 온다는 사람이 어떻게 된거야 보관만 해달라고 했으니 그 냥 둬 버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그 친구가 돌아올 때 쯤이면 못쓰 게 될 텐데. 뭘!" 다른 한 친구도 생각에 잠겼습니다. "일이 잘 되었다니 기쁘긴 한데. 이 밀을 어쩐다 그냥 두면 못쓸 테고. 이 친구는 언제 올 지 모르니 어쩐다지 아! 밭에 심는게 좋겠 군!" 그 후, 이 상인은 몇 년이 지난 뒤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두 친구에 게 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한 친구는 묵은 냄새가 풀풀나는 자루를 들고 왔습니다. 그 자루를 보고 상인은 그 친구를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민망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친구는 그 상인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곧 추수를 기다리는 밀밭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그 상인은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자넨 정말 신실한 나의 벗일세. 밀을 그냥 묵혀도 나는 아무말 못했 을 텐데. 이렇게 경작을 하다니! 정말 멋진 친구일세!" 그리고 그 상인은 수확하거든 밀을 두 자루만 자기에게 돌려주고 나 머지는 경작한 친구에게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이 상인이 기뻐한 것은 밀을 많이 얻게 되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문이라면 밀을 두 자루만 맡아 달라고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친구의 성실한 태도가 그를 기쁘게 한 것입니다. 히브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명사(名詞)보다 부사(副詞)를 좋아하신다." 이 말은 일의 결과보다는 일을 해나가는 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 를 본다는 뜻입니다. 밀을 많이 거두었다는 것보다 그렇게 하려고 했던 그 태도를 보시는 것입니다. 위 본문은 한 사람의 달란트가 얼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 게 그가 그것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가 가 지고 있지 아니한 능력을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소유 하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사용하시도록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달란트가 다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력에 있어서는 누구나 다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맡은 것이 10달란트이든, 5달란트이든, 아니 1달 란트이든 이 모두는 "작은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편에서 상대적 으로 아무리 크고 위대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초라해 보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모든 성도는 재능이나 권세, 돈, 지식, 건강 등에 있어 크고 작거나 혹은 다양한 달란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양 한 달란트들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유익하게 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맡겨진 일에 자기의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을 칭찬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이지 '최고'가 된 것을 칭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책망은 한 달란트라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용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선한 복음 사업을 위해 모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려진 것입니다. 이 책망받은 자에게 내려진 형벌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 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 라."는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한 달란트를 가지고도 노력하 면 그는 점차 더 많이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한 달란트 를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는 불가피 그것까지 잃게 되리라는 것 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재산, 건강, 재능 등을 잘 보존 할 뿐만 아니라 더 풍족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복음 사업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용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용하시므로 있는 중 에 더욱 풍성케 되는 축복과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는 마음 속에 간사함이 없어야 합니다. "(요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 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 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1: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 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1:49) 나다나엘이 대답 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 소이다 (요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 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요1:51) 또 가라 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 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와 보라"는 말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일이 날 수 있 겠느냐"면서 일단 의심하고 거절하였지만 결국 행동으로 옮겨 예수님 께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참 이스라엘이라는 칭찬과 인정, 그리고 참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에게로 나오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보라, 이는 참 이스 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언약)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의 성취을 소망하는 사람으로서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 마음을 의 지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은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마음이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마5:8). 바로 마음이 진실한, 청결한 나다나엘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 보게 된 것입니다. 시편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모두 아십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그가 무화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보 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유대 사고 방식에 있어서 무화과 나무와 포도 나무는 언제나 평화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왕상4:25,미4:4). 무화과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그늘이 짙어 그 무성한 가지 아래 앉아 명상(기도)하는 것이 그들의 습 관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바로 의심할 바 없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자, 메시야를 고대(苦待)하 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예수가 자기 심중의 깊은 곳을 통찰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이에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스스로 말했습니다. "나의 꿈을 이해하는 분이 여기 있구나! 나의 기도를 아시는 분이 바 로 여기에 있구나! 나의 가장 사적(私的)이고 은밀한 갈망 즉, 내가 결 코 감히 입밖에 내지 못했던 갈망을 통찰하고 계시는 분이 여기 있구 나! 말할 수 없는 나의 영혼의 탄식을 풀어줄 수 있는 분이 여기 있구 나! 이 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름부음을 받 은 자 그 분임이 틀림없다." 나다나엘은 자기의 심중을 통찰하시고 이해하시고 만족시켜 주시는 분에게 영원히 사로 잡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 뿐만 아니라 육신의 생활까지도 꿰뚫는 통찰력 즉, 전지 전능(全知 全能)하신 분이십니다. 한 가지 놓쳐서는 않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다나엘이 말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일이 나겠느냐"는 것입니다. '나사렛'이 란 명칭은 '거룩'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미는 아이러니칼 하게도 그곳 주민들의 생활 수준과 그곳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 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나사렛은 자연환경에서 볼 때, 지리적으로 갈릴리 지역으로 예루살렘 북쪽91km, 갈릴리 호수 남쪽 24km, 해발 433m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마을은 예수님 당시 작고 보잘 것 없는 고립된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무식하고 성질이 괴팍하며 다른 도시의 문화적인 주민들과는 비교가 안 되었기 때문에 결코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의 풍속도 추잡하고 저속한 것들이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나사렛 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곳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는 이곳에서 생활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공생애(公生涯) 기간에 이곳에서 이적을 행하셨고, 천국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마 13:5
4). 그렇지만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셨습니다(마 13:55-56).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마13:57)선 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러면 나사렛 마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그 교훈은 외형(外形)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너희가 만일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긍휼 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13). 오늘날 우리에게도 소위 달동네가 있는데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문 화적 수준과 인격이 낮다하여 그들을 무시(無視)하는 실수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도 하나님의 경건한 자들이 성장하고 있으며, 그곳은 곧 하나님이 도움이 필요한 곳이며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환경의 문제 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참 기독교인은 무엇보다 진실한 사람입니다. 진실한 것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예수를 만나 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어 인간의 진실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실한 삶으로 세상을 이기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참 기독교인은 열심있는 교회 생활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누구든 지 교회에 열심히 다녀 보십시오. 그리하면 인간과 세상의 구세주, 메 시야를 만나게 됩니다. 참 기독교인은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거룩한 역사(役事)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일 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참 기독교인은 사람을 외모(外貌)로 취하지 아니합니다.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때 누구든지 무한한 가 능성의 존재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대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기독교인이 되어 축복과 영광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는 백부장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 하여 (마8: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 하나이다 (마8:7)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8:8) 백부장이 대 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다 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 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마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 8: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 이 있으리라 (마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백부장의 믿음은 겸손을 갖춘 믿음이었습니다. 8절 말씀, "(마8:8).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 니."는 바로 지극히 황송스러워하는 태도로서 바로 그의 겸손에서 나 온 것이었습니다. 백부장은 당시 백명의 로마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이 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오만한 태도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 앞에서 더할 수 없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 라."라고 했습니다. 겸손을 갖춘 믿음의 생활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 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백부장의 칭찬받은 믿음은 말씀만 의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이에 덧붙여 하는 말, "(마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 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번거롭게 오실 필요없이 말씀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말씀으 로만 하옵소서." 이 한 마디가 건전한 신앙생활의 핵심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야말로 신앙생활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경이로운 것이라하더라도 말씀에서 벗어났다면 그것은 사특(邪 慝)한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건전한가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말씀에 근거하여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신앙생활로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시를 축원 합니다.
4.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는 주님께 좋은 일을 하여야 합니다. "(마26: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마 26:2)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 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마26:3) 그 때에 대제사장들 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마26:4)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마26:5)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 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마26:6)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 에 계실 때에 (마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 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26:8) 제자들이 보고 분하 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마26:9)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26:10) 예수께서 아 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 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 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마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위 본문에 마리아가 노동자의 1년 임금에 해당되는 값비싼 나드 향 유 한 병을 깨뜨려 예수께 부은 사건은 예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과 존경의 표시입니다. 마리아는 평소에 예수님의 교훈과 말씀에 항상 귀 를 기울였으며(눅10:39),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훌륭한 스승으로 여겨왔 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자신의 오라버니 나사로에게 생명을 주신 기적 과 축복을 인하여 자신이 소유한 최고의 것으로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과 존경을 표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오빠를 살려준 것에 대 한 감사 이상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발을 씻는 행위는 예수님께 대한 겸손과 헌신의 표현 입니다. 엎드려 발을 씻는 행위는 자신을 최상으로 낮추는 표현입니다. 당시 손님의 발을 씻는 일은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일로 주인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마리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기시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마음 에 흡족한 사랑과 헌신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사랑과 헌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마음 에 참 평안과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 지도 못한 하나님의 축복도 아울러 받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러한 아름다운 사랑의 섬김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하시고 칭찬하시며 축복하시었습니다. "(마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먹을 가롯 유다는, "(요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면서 마리아의 사랑과 헌신을 돈으로 계산하며 비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본주의적 사고 방식과 평가, 그리고 가롯 유다의 인 본주의적인 사고 방식과 평가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을 돈으로 계산하며 비판하는 가롯 유다가 되지 마시고 복음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값비싼 것이라도 아낌없이 헌신할 수 있는 칭찬받는 마리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는 복음이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 아 낌없는 헌신과 사랑을 쏟아붓는 사람입니다.
5.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진리를 사수하는 자입니다.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계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 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 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계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 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 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3:11) 내가 속히 임 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3:13)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마찬가지로 책망받는 일이 없고 칭찬만을 받은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적은 능력"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교회의 강하 고 큰 힘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것은 적은 능력을 사용하여 할 수 있는대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다른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 울이며 매일 매일의 삶에서 그 말씀을 지켜나가는 교회를 사랑하시며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 고서도 주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주님 자신을 가리 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벗어나는 것은 변절이요 배교요 주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영적 간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이름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 안에서 예수 이외의 다른 이름을 높이는 것은 바로 타락한 증거인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또한 "열린 문"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이 "열린 문"은 신실한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통과할 문입니다. 그들 은 믿음의 시련 속에서도 복음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성을 다했으므 로 이제 열린 구원의 문, 천국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교회, 적은 능력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은혜를 구하며 힘껏 충성하는 교회만이 끝내 구원의 문에 들어설 수 있으며 주께 칭찬받고 격려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아름다운 궁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궁전은 많은 사람 들로 하여금 한번쯤 들어가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할 정도로 아름 다웠습니다.
그런데 궁전은 선한 일을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궁전 문지기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그 문지기는 선한 일을 한 자 에게 열쇠를 주었고, 그것을 받아야만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소녀가 이 궁전에 꼭 들어가 보기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 름다운 옷과 보석을 걸치고 궁전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문지기는 소 녀에게 열쇠를 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문지기는 말했 습니다. "아가씨, 예쁜 옷을 입고 하루종일 문 앞에 서성거린다고 열쇠를 줄 수는 없습니다. 매일 한번씩이라도 남을 돕는 이에게 이 열쇠를 줄 수 있답니다." 그 소녀는 당장 돌아가 남을 도와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길거리 에서 늙은 거지를 만났습니다. 그는 선행을 할 수 있음을 기뻐하며 돈 을 전부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궁전 문지기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열쇠는 얻지 못했습니다. 거절당한 소녀는 실망해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또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소녀는 할 머니로부터 짐을 모두 빼앗다시피하여 날라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문 지기에게 다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열쇠의 주인이 될 수 없었 습니다. 소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막 숲을 지날 때였습니다. 숲 속에서 가냘픈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른 달려가보니 작은 토끼 한 마리가 덫에 걸려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자기 자신을 다 잊어 버린 채 그 강 한 덫의 스프링을 발과 손으로 힘을 다해 벌려서 토끼를 살려냈습니다. 소녀의 손과 발은 찢어지고 피가 흘렀습니다. 치마를 찢어 토끼의 상처 를 싸매주고 집에 데려와 먹이를 주었습니다. 이 때 궁전 문지기가 나 타났습니다. 그리고는 궁전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소녀는 놀라서 말했습니다. "저는 열쇠를 얻으려고 토끼를 살려준 것은 아니었어요." 문지기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이 궁전의 열쇠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남을 돕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적은 능력"일지라도 인류를 구원하는 복음을 위해 말씀을 지키며 (진리 사수), 복음 전파를 위해 충성을 다하시므로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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