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판단에 따라 살자 (고전4:3-5)
본문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 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 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세상에 사는 동안에 했는가 하는 사도 바울의 신앙 생활의 표준을 우리가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오늘 도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하시는 하나님의 그 뜻을 우리가 찾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여기에 "너희라" 말씀한 것은 신앙의 동지들을 가리켜서 하 신 말씀이고 다른 사람이라 한 말씀은 불신자들이나 또는 먼데 있는 사람,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나 다 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여기에 판단이라하는 말씀은 가까운 사람 이나 먼 사람들이 마음으로 진정 존경하는 것이나 행동으로 대우하는 것 이나 또 마음으로 아주 잘못되었다고 경멸하거나 말로 욕하거나 행동으로 거스려 반대하는 이런 일들이 다 판단하는 일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이렇게 마음으로 판단하는 것, 또 말로 비판하는 것 또 행동으로 대우하거나 멸시하는 그런 것들을 사도 바울은 그걸 무시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매우 작은 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작은 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 그것 때문에 내가 웃고 울고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피동을 내가 받지 아니한다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또 그 다음에 말하기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난 뒤에 이것이야 말로 성경대로 되었기 때문에 참 칭찬받고 영광받고 상 받을 일이라 이렇게 내가 생각하지 아니한다. 왜 내가 알기에 흠이 없는 옳은 행위라고 할지라도 내 지식의 범위 가 매우 좁기 때문에 내가 볼 때는 이만하면 잘 되었다고 할지라도 나보 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면을 범위 넓게 전체적으로 상대해서 따지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로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 다만 나를 판단하실 분은 주님이시다." 하나님이시다. 내가 내 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옳게 바르게 행동을 해서 내 생각에는 이것이 의다. 이렇게 말할만 해도 사도 바울은 자기가 안심을 못한다 고 했습니다. 나의 행위를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내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나서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가 될련지, 나는 너무 지식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주님 앞에 설 때에 어떻게 될까 해서 나는 떨면서 산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옳다 인정을 해도 그것 가지고 안 심 하지 못하고 또 모든 사람들이 이건 틀렸다해도 그것 때문에 내가 틀 렸다고 생각하거나 또 낙심 낙망하지 아니하고 나도 나대로는 양심의 가 책할 것이 없이 옳고 바르게 했다고 해도 주님 보실 때에 의롭다 하실까 염려가 되고 주님이 오실 때에 잘못된 것이 혹시 있으면 미리 알려 주셨 으면 좋겠다. 내 행위에 대해서 내가 안심할 수가 없다. 다만 나를 판단하 실 이는 주님이시다. 주님만이 나를 온전히 아시고 내 행위에 대해서 옳 다 그르다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보니까 "때가 이르기 전에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을 하지 말아라" 아무것도 안심을 하지 말아라. 이만하면 되었다고 하고 마음을 놓지 말아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안심하지 말고 주 님 앞에 설 때까지. '주님, 나는 열심히 옳고 바르게 한다고 했지만 주님 보시기에 무엇이 잘못된 것이 없습니까 주님이 알려주시고 주님이 지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마음에 생각하면서 항상 미결에서 살고 미 완성에서 살고 주님 앞에서 겸손히 떨면서 주님의 최종적 판단을 기다리 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라 하신 말씀 은 '이것은 잘 되었다. 또 이것은 안 되었다.' 단정하지 말고 단정하지 말 아라. 자기가 성경을 보고 "아닌 것은 아니라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 판 단을 하고 양심껏 행동을 해서 아무리 자기가 양심을 살펴도 자책할, 스 스로 책망할 것이 없도록 하기는 하지만 자기 양심에 가책이 없다고 해서 이만하면 됐다 단정을 하고 안심을 하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하신 말씀은 다른 사람들이 모 르게 감추어져 있는 그런 것들이나 또 자기도 모르게 감추어져 있는 것들 이 우리 주님이 오시면 주님이 재림하시면 다 낱낱이 그 정체를 드러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감추어져 있는 모든 것을 다 들추어 내십니다. 마치 빛이 오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모든 사물의 그 실체가 다 드러나듯이 우리 주님이 재림을 하시면 나도 모르는 일들, 다른 사람도 모르는 일들, 또 일 부러 감추어 두었던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되고 주님이 그 모든 것을 다 정확하게 판단하고 또 심판하게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어서 과거나 현재의 모든 잘못을 깨달 아서 회개한 것은 비록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하지 아니하였다 해도 '주님, 나는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주님의 피공로를 믿사오니 용서해 주 시옵소서.' 이렇게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하면 주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이렇게 주의 피로 속량한 그런 일들은 우리 주님의 심판대 앞에 재차 드러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 앞에 자기가 다 드러내어 서 옳고 그른 것을 고백하고 주님의 피공로로 용서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 심판대 앞에 드러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일부러 감추어 두었던 일이나 또 아무 리 자기가 찾아도 찾지 못했던 그런 감추어진 숨은 그런 일들은 우리 주 님의 심판대 앞에 다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이 걱정한 것은 자 기 마음에 가책되는 것을 낱낱이 주님께 고백을 해서 다 해결을 지었지만 자기가 미처 모르는 것이 지금 드러나게 될지 염려가 되어서 두려워 떨면 서 '나는 주님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신나 주님의 판단을 기다린다.' 이렇 게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어둠에 감추인 것을 다 드러내실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잘한 것에 대해서도 이를 인해서 내가 의롭다 하 심을 얻지 못한다. 내가 안심을 얻지 못한다. 왜 지금은 내가 아는 것이 부분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옳고 바르 게 한다고 해도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모든 일을 내가 다 알아 서 다 완전히 옳고 바르고 깨끗하게 그렇게 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리 한다 하더라도 주님이 나를 전체적으로 보시고 나를 환히 아시는 그 주님 편에서 나를 볼 때는 나에게 얼마나 부족하고 잘못된 것이 많이 있겠나. 이래서 주님이 어떻게 보실까 주님이 판단하시는 것이 최종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는 것도 내가 내 자신을 판단하는 것도 다 그 것은 미결이라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무거운 짐을 진 것 같 이 마음에 불안해 한다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것이나 그렇지만 나만 아는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은 모르지요
그런데 나만 아는 그런 일이 있을 때에 우리 믿는 성도들은 그것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공개적으로 '잘못했습니다.' 그런 말을 안해도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노를 풀어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잘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의인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참 바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남도 모르고 있는 일이 있고 나도 모르고 있는 일이 혹시라도 내게 있을지 모른다 말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우리 주님이 와 가지고 그때 확 밝혀 놓으시고 그때 가서 '야, 봐 라 이거 잘못되지 안했나 이 잘못된 걸 가지고 너는 모든 것 다 회개하 고 잘됐다. 이렇게 안심하고 네가 있었지 안했나' 그리되면 얼마나 부끄 럽고 미안하고 죄송하겠습니까 나도 모르는 것이 혹 있어 가지고 그것이 나중에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양심에 가책이 없는 일 을 했을지라도 의롭다 할 수 없다 한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보니까 "주께서 내 마음에 뜻을 주께서 마음의 뜻을 나타 내시리라." 주님이 재림을 하시면 각자 사람 한사람의 그 마음에 숨어있는 뜻 그것을 주님이 다 들추어 내어서 거기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건 옳 은 마음이다, 옳은 뜻이다, 옳은 욕심이다, 옳은 생각이다.' 그렇게 칭찬을 하실 것이고 또 그 마음에서 나온 행동에 대해서 주님이 상급 주실 것이 고 주님께서 영생의 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음에 숨어 있는 뜻보다도 나타난 행동을 보고 판단 을 합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거 잘한다 참 옳은 일이다.' 이렇게 하지만 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리라." 히브리서 4장 12절 13절 에 말씀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무엘상 16장 7절에는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 느니라."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이 나타난 행동만 보고 판단을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의 그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생각이나 뜻이나 욕심이나 이런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보시고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고 판단을 하시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의도 보지 못합니다. 죄도 보지 못합니다. 그만 남이 말하는 것 보고 행동하는 것 보고 옳다 그르다 이렇게 판단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판단을 이렇게 중요시 하고 그 판단을 따를려고 할 때는 얼마나 실수가 많은지 모릅니다. 이 세상은 여론 정치 라 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기에 따라서 뭐 정치가들이 하루 에 마음을 열번도 행동을 열번도 바꾸고 그렇게 하고 심지어 교회까지도 믿는 성도들까지도 남의 눈치와 남의 여론을 듣고 이렇게 하지만 여론이 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참고는 하고 또 우리가 세상 생활 하는데에 참 필 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정확하지를 못하고 또 그걸 따라서 행동할 때는 실패하기가 쉽다 말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껍데기만 보고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뜻을 나타내신다." 또 주님이 재림을 하시 면 각 사람의 그 마음의 무슨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무슨 욕심으로 그렇 게 했는가 그 모든 생각을 다 들추어 내어서 주님이 판단을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또 이걸 마음에 두고 신앙 생활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심판대 앞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면 우리가 잠깐 마음에 품은 생각 그것도 심판을 받습니다. 잠깐 내가 가졌던 욕심, 생각, 또 내 가 품은 뜻 미처 그것이 행동으로 사건으로 나타나지 아니했다고 해서 '아, 이것은 심판받지 않을거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보 니까 분명히 "마음에 뜻을 나타내시리라"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 아니해도 마음 속에 품은 욕심 마음속에 품은 뜻, 잠깐 스쳐가는 생각 그것도 다 주님이 드러내어서 다 심판을 하신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나타날 때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아라." 이 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에 주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주께서 오시 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 의 뜻을 나타내시리라." 여기에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아라 하는 말은 주 님이 와 가지고 판단하는 그 판단이 최종적인 판단이고 제일 정확한 판단 이고 그 주님의 판단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님이 어떻게 판단하실까 이래 생각하고 살지 아, 어떤 사람이 말하니까 '아, 그렇구나' 자기 양심에 내가 옳은 것 했다 싶으면 '아이고, 옳구나' 그것이 최종적인 판단으로 받아들 이지 말아라 이말입니다. 나와 내 행위를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것도 작은 일이고 내가 옳다 생각 하는 그것도 완전하지 못하고 다만 주님이 와서 할터이니까 그때까지는 판단을 하지 말아라 그말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피동 받지 말고 네가 판 단하는 것도 거기에 이제는 됐다 안심을 하지 말고 주님의 판단을 받도록 만 해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래 하면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다 하나님의 대심판 (大審判) 앞에서는 지옥 판결을 다 면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안 했다고 하면 예수님의 대속공로를 입지 아니하면 마지막 날 모든 사람들 이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서 하나님의 대심판 대 앞에 서 가지고 이렇게 심판을 받는데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담당하고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죽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받아 지 옥가지를 않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다 하늘나라 들어가서 영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우리 주님의 대속 공로를 입고 말이나 행동이나 일이나 매일 매일 자기 현실에서 행한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급을 주시는 이런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은 지옥 보내는 심 판이 아니고 상급 주시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십니다. 모든 걸 다 들추어 내 어가지고 주님이 판단을 하십니다. 그 마음의 생각도 다 들추어내고 우리 의 모든 행동 한 것 다 들추어 내고 또 숨어 있는 것이 있으면 아직 회개 하지 못하고 잘못한 그런 것들이 숨어 있다고 하면 다 들추어 내어가지고 모르는 것이 없으신 주님, 또 우리를 자기의 피로 대속하신 주님, 또 우리 를 날마다 진리와 영감으로 지도하시고 또 특별히 성령님으로 우리를 깨우 치고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역사하신 그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백일하에 다 드러내 놓고 하나 하나 판단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으로서 죄를 짓지 아니한 일, 의를 행 한 일, 하나님과 가까워진 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일, 또 우리가 회개한 것은 아, 이것은 잘못했는데 회개해서 정리한 것. 이렇게 주님이 낱 낱이 판단을 해 가지고 주님의 대속 공로를 입고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 해 산 의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 사도 바울이 그걸 바라보고 지난 주에 우리가 배운대로 "이제는 나를 위 해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참 믿음으로 산 모든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상급을 주시고 또 거기에 해당되는 영광을 주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칭찬과 영광을 받는다고 하면 이것이 우리에게 참 영원한 기쁨이 되고 만 족이 될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 말씀을 보면 "어떤 이들은 해와 같이 빛난다" 하는 그런 표현으로 구원 받은 자의 영광을 말씀을 했습니다. 또 반면에 우리 믿는 성도들이 자, 회개한다고 하지만 회개하지 못한 그런 일들이나 또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자기는 순종한다고 하지만 그만 어떤 때 말씀만 듣고 깜박 잊어버리고 순종하지 못한 일이 그런 모든 일이 드러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에 성경에 보면 가슴치고 괴로워하고 고통하는 일이 있을 것 을 말씀을 했습니다. 왜 영광이 삭감이 되기 때문에, 영원한 영광이 삭감 이 되어지고 또 순종했더라고 하면 받을 상급이 없어지니까 그것보다 고 통스러운 일이 없을 거라 말입니다. 이리 해서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 보면 구원을 얻되 벌거벗은 자처럼 그 렇게 나타나게 되고 또 고린도전서 3장 15절 말씀을 보면 불 가운데서 얻 은거와 같은 그런 구원이 있다. 우리의 신앙 행위가, 행위가 하나님이 보 실 때 우리 주님이 보실 때 그런 경우가 없기를 바랍니다만은 하나도 예수님이 객관적으로 우리를 구원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아서 구원한 것은 완전하지만 내가 은혜 받은 사람으로서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행위한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기뻐하는 뜻대로 참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힘입은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 만약에 하나라도 없다고 하면 그야 말로 벌거벗은 자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입혀주신 대속 공로는 있지만 내가 그 공로를 입고 산 행위가 그 런 일이 없기를 정말 바랍니다. 만약에 하나도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 습니까 그야말로 벌거벗은 자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인간의 말 로 지금 하는 겁니´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가 느낄 그 수치, 그 고통 그 것을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말입니다. 우리 이렇게 교인들이 다 모여 있는데 아, 여기에 보니까 벌거벗은 사람이 한 사람 앉아있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하고 창피하고 정말 죽을 맛이 날 것입니다. 아 보니까 뭐 수건 하나도 몸에 걸치지를 못하는 그런 사람 같으면 자 이렇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사람의 생각을 다 드러내시고 어둠에 감춘 것을 다 드러내어서 주님이 명쾌하게 주님이 정확하게 모든 걸 다 판단해 가지고 이렇게 하실 때에 그때에 주님의 이 판단 받을 걸 생각해 가지고 이 세상에서 안심하지 못하고 늘 염려하고 걱정해서 산 사람은 그때에 가 가지고 아, 뭐 주님이 봐도 다 칭찬할 것이고 다 참 잘한 것이고 이렇게 주님이 인정을 하시게 될 때에는 얼마나 좋겠습니까 "각 사람이 하나님 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사람이 칭찬하는 것 자기가 '아이고, 내가 잘 살았다.' 안심하는 것, 그거는 문제가 아니라 말입니다. 거기 대해서는 조 금도 신경쓰지 말고 거기 대해서는 자신을 갖지를 말고 어떻게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잘했다 칭찬할 수 있는 이런 사람되도록 이렇게 나는 산다. 사도 바울이 증거를 했습니다. 또 우리에게도 성령님께서 이렇게 살도록 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 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 주고 자기를 칭찬하고 자 기를 대접하는 그런 일이나 또 자기를 몰라주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이 다 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서 피동을 받는 그런 생활을 우리가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옳고 바르게 사는 데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 해 서 그것 때문에 원망하고 또 불평하고 또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맙시다. 또 내게 잘못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애매하게 욕하고 비방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또 그걸 변명할려고 하지를 맙시다. 다만 아, 저 사람이 잘 모르고 죄를 지으니까 그걸 죄를 짓지 않도록 하 기 위해서 내가 그 사람만 불러가지고 옳은 것을 밝히고 충고해 줄수 있 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하나도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주님이 다 아 시니까. 주님께서 희고 검은 것을 환히 아시고 우리 주님께서 공평한 판 단을 행한대로 보상하시는 심판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무 것도 걱정할 필 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아, 그만 좋아하고 그 만 이제는 됐다. 이제는 잘 살 수 있겠다 그래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고민하고 나를 욕한다고 해서 고통하는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대해서 나쁜 판단을 한다고 하면 '아, 저 사람 못 쓸 사람이다 저 사람의 행위는 잘못됐다.' 그리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잘한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잘못했다 하니까 걱정 이 됩니다. 이래서 거기에 대해서 자기를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자기가 살펴 보아서 '아이고, 정말 그렇구나 아이고 저 사람이 내 잘못을 잘 지적 을 했구나.' 그럴 때에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 사람에게 고맙게 생각 하고 자기의 잘못을 고치면 그만입니다. 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다고 하면 그래도 혹시 모 르니까 '야, 이거는 미결이다. 나는 잘했는데 자꾸 저 사람이 잘못했다고 이렇게 하니까 이거 참 마음에 고통스럽고 답답하다. 내가 이거 두고두고 내가 조심을 하면서 정말 내가 잘한 건지 저 사람이 말한 것이 옳은 건지 내가 살펴봐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양심을 써서 자기 행위를 살펴보고 자기의 동기를 살펴보고 자꾸 이렇게 살펴 보면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양 심이 깨끗해지고 우리의 속사람이 자라게 되니까 잘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그 인간의 판단을 전부로 삼아가지고 그만 칭찬하니까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욕하니까 그만 불안해서 불만해서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해서는 우리의 신앙 생활이 다 잘못된다 이말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안심해서 살아도 안되고 사람들이 욕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이렇게 불안한 생활을 해서도 안된다 말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다른 사람의 판단에 대해서는 우리의 신앙 양심이 있으니 까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을 따라서 양심이 가르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칭찬하든지 욕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이렇게 열심히 믿음 생활하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판단은 참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하지 못하니까 혹시 내가 틀리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지적해 주는가 다른 사람의 그 지적을 통해서 자기를 옳고 바르게 할려고 하는데 참고는 할지언정 다른 사람 판단이 거기에 최종적이다. 아 사람들이 여론 이 말입니다. '아, 이거 뭐 너는 죽었다.' 하면 우리가 죽게 되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론이 '저, 사람 성자다.' 하면 성자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피동을 받고 거기에 따라서 살면 신앙 생활 못합니다! 그걸 확정을 해야 됩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판단은 참고 아,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하지만 양심 대로 한다고 하지만 혹시 나도 모르게 잘못한 일이 있는가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책망을 잘 새겨서 자기르 살펴 서 어떻게든지 자기 양심대로 자기 신앙 양심대로 하는 것이 자기로서는 자기 할 일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가 양심껏 합니다. 옳고 바르게 노력을 해서 양심의 가책할 것에 없다고 해도 이것 가지고 안심하면 안된다 말입니다. 여기에 피동을 받아 가지고 내가 아무리 살펴도 잘못한 것이 없이 또 잘못한 것은 낱낱이 회개를 하고 내가 옳고 지금 바르게 되어 있으니 까 '나는 이제는 뭐 아무도 나를 정죄할 사람이 없다.' 이렇게 안심하지도 말아라. 또 우리가 안심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언제든지 이걸 기억하십시오. 나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완 전자시고 하나님만이 자기를 판단할 수 있는 분인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도록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 판단, 주님 의 판단을 기다리는 이런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이래서 오늘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말씀은 사도 바울 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자 누구의 판단을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살았는가 자, 나누어서 말하면
첫째는 사람들의 판단을 작은 것으로 여겼다. 또 자 기의 양심 자기의 양심을 따라 판단하는 생활을 했지만 그것도 최종적으 로 여기지를 아니했다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판단을 따라사는가 주님의 판단, 예수 그리스도의 판단, 나를 위해서 하나님 사람되시고 십자가 대속 공로를 베푸시고 지금도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시고 성령님으로 나를 가르치고 지도하시는 그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 그 주님의 판단을 최종적인 판단으로 알고 그 주님이 판단하실 때에 칭찬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려 고 이렇게 애쓰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래서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 생활 할 때에 두 가지를 특별히 조심을 해야 됩니다. 또 힘을 써야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겸손히 양심의 가책할 것이 없도록 살아야 됩니다. 다른 사람 판단을 따라 살지 마시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른 사람이 욕한다고 그만 뭐 풀이 죽고 다른 사람이 칭찬한 다고 그만 펄펄 날고 기뻐서 그래 살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신앙 양심이 있으니까 어쨌든 자기 양심에 가책이 없 도록 살피고 또 살펴서 우리를 얼마든지 회개할 수가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무슨 죄가 있다하더라고 하나님 앞에 죽시 주의 피 공로를 믿고 회개하면 우리의 양심이 깨끗해지고 돌이킬 수 있으니까 돌 이켜서 옳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제일 힘 쓸 일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판단이나 여론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자기 신앙 양심, 하나님이 잘못했다 할 것은 즉시 회개해서 고치고 또 하나님이 해라하는 것은 있는 힘을 기울여서 양심대로 내가 끊어야 될 것은 끊고 해야 될 것은 하고 요렇게 있는 힘을 기울어서 여기에 성경에 말한대로 "자책할 것이 없도록" 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을 정도로 요렇게 양심대로 사는 것이첫째 우리가 할 일입니다.둘째는 그러나 그것으로 안심을 하지 말아라.둘째는 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 설때에 책망 받을 것이 없이 설 수 있을까 두려워 떨면서 미결 중에 살아라. 이것이둘째로 우리 할 일입니다.
첫째는 자, 누구 양심대로 살아 라고 했습니까 자기 양심대로, 남의 비판이나 판단은 그것도 안 들을 수는 없습니다. 참고는 해요. 참고는 하고 하지만 그것 따라서 내가 피동을 받으면 안됩니다. 참고를 해가지고 '사람이 이래 말하는데 하나님 이게 정 말 그렇습니까, 성경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성경을 찾아봐 가지고 다른 사람 욕하는게 '아, 그거 내가 잘못했군요 성경에 보니까 거짓말 하지 말 라고 했는데 내가 거짓말 했으니까 잘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래 말해 서 잘못한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듣고 내가 성경을 찾아보니 까 성경에 그게 잘못됐다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회개를 하고 또 하나님이 하 라고 하는 걸 하고 이래서 우리가 양심 생활을 하고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이 양심 생활만 하면 다인가 '아, 내 양심만 깨끗하면 됐지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가 상관이 있겠나' 그거는 괜찮지만 그다음에 하는게 문 젭니다. '뭐 하나님이 뭐라 하든지 말든지 상관있겠나 내 양심만 깨끗하고 나만 옳고 바르게 했으면 됐지.' 그거는 안된다 말입니다. 사람들이 여기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요 많은 성도들이 '나만 의로우면 되지 내 양심대로만 하면 되지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데 여기까지만 하면 됐지 그 이상이 있겠나' 이것만 해도 상당히 높은 신앙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지만 그러나 거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무슨 함정인고 하니까 자기의 판단을 최종으로 두는 함정이니까 그것이 무서운 이단이 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된다 말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주님의 구속으로 구원받은 사람이고 우리는 이렇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모든 면에서 제 한적인 그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온 천지의 대주재이시고 심판주이시고 하나님만이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 해서 상급주실 분으로 믿어야 됩니다. 그 믿는 표가 무엇인고 하니까 내가 아무리 자책할 것이 없다고 해도 그것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내가 의롭습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생각하는 것이 제한적이고 판단하는 것이 부분적이고 완전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사 내가 알지 못하는 일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일, 그래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하는 그런 일이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있으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해주셔서 돌이킬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라도 숨어 있으면 주님이 오시면 다 드러날 때 얼마나 황당스럽겠습 니까 자기는 의인인 줄 알고 자기는 세상에서 남들에게 대해서도 자세하 면서 '나같이 의로운 사람이 없다.' 이렇게 하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 렇지 않다. 그러면 얼마나 그때 가면 부끄럽고 미안하겠습니까 주님이 다 드러내실 터인데 이래서 주님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실까 지금은 우리 가 그걸 볼수가 없습니다. 다만 주님이 불쌍히 여겨서 알게 해 주시고 주 님이 보시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이래 가지고 하나라도 가르쳐 주 시면 또 회개하고 고치고 이래 살려고 애를 쓸 뿐입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 주님 앞에 가면 그때는 주님도 보시고 우리도 볼 수 있게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난다 말입니다. 이래서 그 날을 바라보고 자기가 모든 걸 잘 하지만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무슨 말을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내가 꼭 옳은 말을 하고 남에게 유익한 말을 했다 할지라도 그거 가지고 안심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부족하고 아직도 나는 미달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혹시라도 또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 또 있 습니까 내가 이 말한 데에 혹시 잘못된 게 없습니까' 또 찾아야 됩니다. 이래하면 하나님께서 영감을 보내가지고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면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이렇게 잘한다고 해서 의롭다고 했지만 깨닫고 보니까 다시 생각해 보 니까 내가 이렇게 잘못 말을 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친 그런 일이 있습니다.' 백의 하나라도 잘못된 걸 찾아서 고칠 수가 있을 거라 말입니다.
이래서 우리 신앙 생활의 그 표준은 자, 남의 판단도 표준이 될 수 없고 내 자신의 양심의 판단도 표준이 될 수가 없고 자, 누구의 판단만이 우리 신앙 생활의 표준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판단. 주님이 어떻게 보 실까 내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어떻게 나타날까 이 주님의 최종적인 판 단만을 여러분들이 마음에 신앙 생활의 표준을 삼아 가지고 거기에 맞출 려고, 우리가 뭐 사람인데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알겠습니까만은 그러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두려워 떨면서 조심하면서 '하나님 가르쳐 주시고 또 깨우쳐 주시고 이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을 주님께서 바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리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를 해 주십니다. 이래 가지고 주님의 판단에 자기를 맡겨야 됩니다. 주님께서 "잘했다." 칭찬할 그때를 바라보고 사모하고 주님이 판단하실 때 '이거, 잘못했구나.' 그때에 자기가 당할 수치와 그 부끄러움과 고통을 미리 당겨서 이렇게 두려워 떨 면서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런 생활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얼마 안 있으면 조만간에 다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는 내 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간에 주님이 모든 것을 공평하게 다 판단하실 날이 오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미리 시편 91편 14절 하반절에 말씀한대로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안즉 내가 너를 높이리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부터 주님의 판단, 주님이 어떤 분이시다. 주님이 어떻 게 생각하신다 하는 것을 늘 살피고 사니까 주님이 어떤 분인 것을 점점 알아 간다 말입니다. 이래 가지고 주님의 판단을 따라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이렇게 주 님을 따라서 이래 살면 주님께서 "네가 나를 안즉 내가 너를 높이리라 네 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너를 건지리라"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에게 참으로 칭찬과 상급을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여기 말씀한대로 "주님의 판단을 따르라"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요렇게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좇아서 살면 여러분들의 모든 행실과 모든 행위가 다 바르게 되고 또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받을 만한 것이 될 줄 압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세상에 사는 동안에 했는가 하는 사도 바울의 신앙 생활의 표준을 우리가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오늘 도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하시는 하나님의 그 뜻을 우리가 찾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여기에 "너희라" 말씀한 것은 신앙의 동지들을 가리켜서 하 신 말씀이고 다른 사람이라 한 말씀은 불신자들이나 또는 먼데 있는 사람,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나 다 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여기에 판단이라하는 말씀은 가까운 사람 이나 먼 사람들이 마음으로 진정 존경하는 것이나 행동으로 대우하는 것 이나 또 마음으로 아주 잘못되었다고 경멸하거나 말로 욕하거나 행동으로 거스려 반대하는 이런 일들이 다 판단하는 일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이렇게 마음으로 판단하는 것, 또 말로 비판하는 것 또 행동으로 대우하거나 멸시하는 그런 것들을 사도 바울은 그걸 무시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매우 작은 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작은 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 그것 때문에 내가 웃고 울고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피동을 내가 받지 아니한다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또 그 다음에 말하기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난 뒤에 이것이야 말로 성경대로 되었기 때문에 참 칭찬받고 영광받고 상 받을 일이라 이렇게 내가 생각하지 아니한다. 왜 내가 알기에 흠이 없는 옳은 행위라고 할지라도 내 지식의 범위 가 매우 좁기 때문에 내가 볼 때는 이만하면 잘 되었다고 할지라도 나보 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면을 범위 넓게 전체적으로 상대해서 따지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로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 다만 나를 판단하실 분은 주님이시다." 하나님이시다. 내가 내 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옳게 바르게 행동을 해서 내 생각에는 이것이 의다. 이렇게 말할만 해도 사도 바울은 자기가 안심을 못한다 고 했습니다. 나의 행위를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내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나서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가 될련지, 나는 너무 지식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주님 앞에 설 때에 어떻게 될까 해서 나는 떨면서 산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옳다 인정을 해도 그것 가지고 안 심 하지 못하고 또 모든 사람들이 이건 틀렸다해도 그것 때문에 내가 틀 렸다고 생각하거나 또 낙심 낙망하지 아니하고 나도 나대로는 양심의 가 책할 것이 없이 옳고 바르게 했다고 해도 주님 보실 때에 의롭다 하실까 염려가 되고 주님이 오실 때에 잘못된 것이 혹시 있으면 미리 알려 주셨 으면 좋겠다. 내 행위에 대해서 내가 안심할 수가 없다. 다만 나를 판단하 실 이는 주님이시다. 주님만이 나를 온전히 아시고 내 행위에 대해서 옳 다 그르다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보니까 "때가 이르기 전에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을 하지 말아라" 아무것도 안심을 하지 말아라. 이만하면 되었다고 하고 마음을 놓지 말아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안심하지 말고 주 님 앞에 설 때까지. '주님, 나는 열심히 옳고 바르게 한다고 했지만 주님 보시기에 무엇이 잘못된 것이 없습니까 주님이 알려주시고 주님이 지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마음에 생각하면서 항상 미결에서 살고 미 완성에서 살고 주님 앞에서 겸손히 떨면서 주님의 최종적 판단을 기다리 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라 하신 말씀 은 '이것은 잘 되었다. 또 이것은 안 되었다.' 단정하지 말고 단정하지 말 아라. 자기가 성경을 보고 "아닌 것은 아니라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 판 단을 하고 양심껏 행동을 해서 아무리 자기가 양심을 살펴도 자책할, 스 스로 책망할 것이 없도록 하기는 하지만 자기 양심에 가책이 없다고 해서 이만하면 됐다 단정을 하고 안심을 하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하신 말씀은 다른 사람들이 모 르게 감추어져 있는 그런 것들이나 또 자기도 모르게 감추어져 있는 것들 이 우리 주님이 오시면 주님이 재림하시면 다 낱낱이 그 정체를 드러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감추어져 있는 모든 것을 다 들추어 내십니다. 마치 빛이 오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모든 사물의 그 실체가 다 드러나듯이 우리 주님이 재림을 하시면 나도 모르는 일들, 다른 사람도 모르는 일들, 또 일 부러 감추어 두었던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되고 주님이 그 모든 것을 다 정확하게 판단하고 또 심판하게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어서 과거나 현재의 모든 잘못을 깨달 아서 회개한 것은 비록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하지 아니하였다 해도 '주님, 나는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주님의 피공로를 믿사오니 용서해 주 시옵소서.' 이렇게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하면 주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이렇게 주의 피로 속량한 그런 일들은 우리 주님의 심판대 앞에 재차 드러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 앞에 자기가 다 드러내어 서 옳고 그른 것을 고백하고 주님의 피공로로 용서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 심판대 앞에 드러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일부러 감추어 두었던 일이나 또 아무 리 자기가 찾아도 찾지 못했던 그런 감추어진 숨은 그런 일들은 우리 주 님의 심판대 앞에 다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이 걱정한 것은 자 기 마음에 가책되는 것을 낱낱이 주님께 고백을 해서 다 해결을 지었지만 자기가 미처 모르는 것이 지금 드러나게 될지 염려가 되어서 두려워 떨면 서 '나는 주님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신나 주님의 판단을 기다린다.' 이렇 게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어둠에 감추인 것을 다 드러내실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잘한 것에 대해서도 이를 인해서 내가 의롭다 하 심을 얻지 못한다. 내가 안심을 얻지 못한다. 왜 지금은 내가 아는 것이 부분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옳고 바르 게 한다고 해도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모든 일을 내가 다 알아 서 다 완전히 옳고 바르고 깨끗하게 그렇게 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리 한다 하더라도 주님이 나를 전체적으로 보시고 나를 환히 아시는 그 주님 편에서 나를 볼 때는 나에게 얼마나 부족하고 잘못된 것이 많이 있겠나. 이래서 주님이 어떻게 보실까 주님이 판단하시는 것이 최종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는 것도 내가 내 자신을 판단하는 것도 다 그 것은 미결이라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무거운 짐을 진 것 같 이 마음에 불안해 한다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것이나 그렇지만 나만 아는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은 모르지요
그런데 나만 아는 그런 일이 있을 때에 우리 믿는 성도들은 그것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공개적으로 '잘못했습니다.' 그런 말을 안해도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노를 풀어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잘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의인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참 바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남도 모르고 있는 일이 있고 나도 모르고 있는 일이 혹시라도 내게 있을지 모른다 말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우리 주님이 와 가지고 그때 확 밝혀 놓으시고 그때 가서 '야, 봐 라 이거 잘못되지 안했나 이 잘못된 걸 가지고 너는 모든 것 다 회개하 고 잘됐다. 이렇게 안심하고 네가 있었지 안했나' 그리되면 얼마나 부끄 럽고 미안하고 죄송하겠습니까 나도 모르는 것이 혹 있어 가지고 그것이 나중에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양심에 가책이 없는 일 을 했을지라도 의롭다 할 수 없다 한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보니까 "주께서 내 마음에 뜻을 주께서 마음의 뜻을 나타 내시리라." 주님이 재림을 하시면 각자 사람 한사람의 그 마음에 숨어있는 뜻 그것을 주님이 다 들추어 내어서 거기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건 옳 은 마음이다, 옳은 뜻이다, 옳은 욕심이다, 옳은 생각이다.' 그렇게 칭찬을 하실 것이고 또 그 마음에서 나온 행동에 대해서 주님이 상급 주실 것이 고 주님께서 영생의 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음에 숨어 있는 뜻보다도 나타난 행동을 보고 판단 을 합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거 잘한다 참 옳은 일이다.' 이렇게 하지만 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리라." 히브리서 4장 12절 13절 에 말씀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무엘상 16장 7절에는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 느니라."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이 나타난 행동만 보고 판단을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의 그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생각이나 뜻이나 욕심이나 이런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보시고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고 판단을 하시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의도 보지 못합니다. 죄도 보지 못합니다. 그만 남이 말하는 것 보고 행동하는 것 보고 옳다 그르다 이렇게 판단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판단을 이렇게 중요시 하고 그 판단을 따를려고 할 때는 얼마나 실수가 많은지 모릅니다. 이 세상은 여론 정치 라 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기에 따라서 뭐 정치가들이 하루 에 마음을 열번도 행동을 열번도 바꾸고 그렇게 하고 심지어 교회까지도 믿는 성도들까지도 남의 눈치와 남의 여론을 듣고 이렇게 하지만 여론이 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참고는 하고 또 우리가 세상 생활 하는데에 참 필 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정확하지를 못하고 또 그걸 따라서 행동할 때는 실패하기가 쉽다 말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껍데기만 보고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뜻을 나타내신다." 또 주님이 재림을 하시 면 각 사람의 그 마음의 무슨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무슨 욕심으로 그렇 게 했는가 그 모든 생각을 다 들추어 내어서 주님이 판단을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또 이걸 마음에 두고 신앙 생활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심판대 앞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면 우리가 잠깐 마음에 품은 생각 그것도 심판을 받습니다. 잠깐 내가 가졌던 욕심, 생각, 또 내 가 품은 뜻 미처 그것이 행동으로 사건으로 나타나지 아니했다고 해서 '아, 이것은 심판받지 않을거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보 니까 분명히 "마음에 뜻을 나타내시리라"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 아니해도 마음 속에 품은 욕심 마음속에 품은 뜻, 잠깐 스쳐가는 생각 그것도 다 주님이 드러내어서 다 심판을 하신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나타날 때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아라." 이 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에 주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주께서 오시 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 의 뜻을 나타내시리라." 여기에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아라 하는 말은 주 님이 와 가지고 판단하는 그 판단이 최종적인 판단이고 제일 정확한 판단 이고 그 주님의 판단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님이 어떻게 판단하실까 이래 생각하고 살지 아, 어떤 사람이 말하니까 '아, 그렇구나' 자기 양심에 내가 옳은 것 했다 싶으면 '아이고, 옳구나' 그것이 최종적인 판단으로 받아들 이지 말아라 이말입니다. 나와 내 행위를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것도 작은 일이고 내가 옳다 생각 하는 그것도 완전하지 못하고 다만 주님이 와서 할터이니까 그때까지는 판단을 하지 말아라 그말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피동 받지 말고 네가 판 단하는 것도 거기에 이제는 됐다 안심을 하지 말고 주님의 판단을 받도록 만 해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래 하면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다 하나님의 대심판 (大審判) 앞에서는 지옥 판결을 다 면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안 했다고 하면 예수님의 대속공로를 입지 아니하면 마지막 날 모든 사람들 이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서 하나님의 대심판 대 앞에 서 가지고 이렇게 심판을 받는데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담당하고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죽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받아 지 옥가지를 않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다 하늘나라 들어가서 영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우리 주님의 대속 공로를 입고 말이나 행동이나 일이나 매일 매일 자기 현실에서 행한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급을 주시는 이런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은 지옥 보내는 심 판이 아니고 상급 주시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십니다. 모든 걸 다 들추어 내 어가지고 주님이 판단을 하십니다. 그 마음의 생각도 다 들추어내고 우리 의 모든 행동 한 것 다 들추어 내고 또 숨어 있는 것이 있으면 아직 회개 하지 못하고 잘못한 그런 것들이 숨어 있다고 하면 다 들추어 내어가지고 모르는 것이 없으신 주님, 또 우리를 자기의 피로 대속하신 주님, 또 우리 를 날마다 진리와 영감으로 지도하시고 또 특별히 성령님으로 우리를 깨우 치고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역사하신 그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백일하에 다 드러내 놓고 하나 하나 판단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으로서 죄를 짓지 아니한 일, 의를 행 한 일, 하나님과 가까워진 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일, 또 우리가 회개한 것은 아, 이것은 잘못했는데 회개해서 정리한 것. 이렇게 주님이 낱 낱이 판단을 해 가지고 주님의 대속 공로를 입고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 해 산 의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 사도 바울이 그걸 바라보고 지난 주에 우리가 배운대로 "이제는 나를 위 해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참 믿음으로 산 모든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상급을 주시고 또 거기에 해당되는 영광을 주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칭찬과 영광을 받는다고 하면 이것이 우리에게 참 영원한 기쁨이 되고 만 족이 될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 말씀을 보면 "어떤 이들은 해와 같이 빛난다" 하는 그런 표현으로 구원 받은 자의 영광을 말씀을 했습니다. 또 반면에 우리 믿는 성도들이 자, 회개한다고 하지만 회개하지 못한 그런 일들이나 또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자기는 순종한다고 하지만 그만 어떤 때 말씀만 듣고 깜박 잊어버리고 순종하지 못한 일이 그런 모든 일이 드러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에 성경에 보면 가슴치고 괴로워하고 고통하는 일이 있을 것 을 말씀을 했습니다. 왜 영광이 삭감이 되기 때문에, 영원한 영광이 삭감 이 되어지고 또 순종했더라고 하면 받을 상급이 없어지니까 그것보다 고 통스러운 일이 없을 거라 말입니다. 이리 해서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 보면 구원을 얻되 벌거벗은 자처럼 그 렇게 나타나게 되고 또 고린도전서 3장 15절 말씀을 보면 불 가운데서 얻 은거와 같은 그런 구원이 있다. 우리의 신앙 행위가, 행위가 하나님이 보 실 때 우리 주님이 보실 때 그런 경우가 없기를 바랍니다만은 하나도 예수님이 객관적으로 우리를 구원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아서 구원한 것은 완전하지만 내가 은혜 받은 사람으로서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행위한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기뻐하는 뜻대로 참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힘입은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 만약에 하나라도 없다고 하면 그야 말로 벌거벗은 자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입혀주신 대속 공로는 있지만 내가 그 공로를 입고 산 행위가 그 런 일이 없기를 정말 바랍니다. 만약에 하나도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 습니까 그야말로 벌거벗은 자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인간의 말 로 지금 하는 겁니´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가 느낄 그 수치, 그 고통 그 것을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말입니다. 우리 이렇게 교인들이 다 모여 있는데 아, 여기에 보니까 벌거벗은 사람이 한 사람 앉아있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하고 창피하고 정말 죽을 맛이 날 것입니다. 아 보니까 뭐 수건 하나도 몸에 걸치지를 못하는 그런 사람 같으면 자 이렇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사람의 생각을 다 드러내시고 어둠에 감춘 것을 다 드러내어서 주님이 명쾌하게 주님이 정확하게 모든 걸 다 판단해 가지고 이렇게 하실 때에 그때에 주님의 이 판단 받을 걸 생각해 가지고 이 세상에서 안심하지 못하고 늘 염려하고 걱정해서 산 사람은 그때에 가 가지고 아, 뭐 주님이 봐도 다 칭찬할 것이고 다 참 잘한 것이고 이렇게 주님이 인정을 하시게 될 때에는 얼마나 좋겠습니까 "각 사람이 하나님 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사람이 칭찬하는 것 자기가 '아이고, 내가 잘 살았다.' 안심하는 것, 그거는 문제가 아니라 말입니다. 거기 대해서는 조 금도 신경쓰지 말고 거기 대해서는 자신을 갖지를 말고 어떻게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잘했다 칭찬할 수 있는 이런 사람되도록 이렇게 나는 산다. 사도 바울이 증거를 했습니다. 또 우리에게도 성령님께서 이렇게 살도록 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 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 주고 자기를 칭찬하고 자 기를 대접하는 그런 일이나 또 자기를 몰라주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이 다 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서 피동을 받는 그런 생활을 우리가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옳고 바르게 사는 데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 해 서 그것 때문에 원망하고 또 불평하고 또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맙시다. 또 내게 잘못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애매하게 욕하고 비방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또 그걸 변명할려고 하지를 맙시다. 다만 아, 저 사람이 잘 모르고 죄를 지으니까 그걸 죄를 짓지 않도록 하 기 위해서 내가 그 사람만 불러가지고 옳은 것을 밝히고 충고해 줄수 있 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하나도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주님이 다 아 시니까. 주님께서 희고 검은 것을 환히 아시고 우리 주님께서 공평한 판 단을 행한대로 보상하시는 심판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무 것도 걱정할 필 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아, 그만 좋아하고 그 만 이제는 됐다. 이제는 잘 살 수 있겠다 그래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고민하고 나를 욕한다고 해서 고통하는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대해서 나쁜 판단을 한다고 하면 '아, 저 사람 못 쓸 사람이다 저 사람의 행위는 잘못됐다.' 그리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잘한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잘못했다 하니까 걱정 이 됩니다. 이래서 거기에 대해서 자기를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자기가 살펴 보아서 '아이고, 정말 그렇구나 아이고 저 사람이 내 잘못을 잘 지적 을 했구나.' 그럴 때에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 사람에게 고맙게 생각 하고 자기의 잘못을 고치면 그만입니다. 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다고 하면 그래도 혹시 모 르니까 '야, 이거는 미결이다. 나는 잘했는데 자꾸 저 사람이 잘못했다고 이렇게 하니까 이거 참 마음에 고통스럽고 답답하다. 내가 이거 두고두고 내가 조심을 하면서 정말 내가 잘한 건지 저 사람이 말한 것이 옳은 건지 내가 살펴봐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양심을 써서 자기 행위를 살펴보고 자기의 동기를 살펴보고 자꾸 이렇게 살펴 보면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양 심이 깨끗해지고 우리의 속사람이 자라게 되니까 잘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그 인간의 판단을 전부로 삼아가지고 그만 칭찬하니까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욕하니까 그만 불안해서 불만해서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해서는 우리의 신앙 생활이 다 잘못된다 이말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안심해서 살아도 안되고 사람들이 욕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이렇게 불안한 생활을 해서도 안된다 말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다른 사람의 판단에 대해서는 우리의 신앙 양심이 있으니 까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을 따라서 양심이 가르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칭찬하든지 욕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이렇게 열심히 믿음 생활하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판단은 참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하지 못하니까 혹시 내가 틀리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지적해 주는가 다른 사람의 그 지적을 통해서 자기를 옳고 바르게 할려고 하는데 참고는 할지언정 다른 사람 판단이 거기에 최종적이다. 아 사람들이 여론 이 말입니다. '아, 이거 뭐 너는 죽었다.' 하면 우리가 죽게 되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론이 '저, 사람 성자다.' 하면 성자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피동을 받고 거기에 따라서 살면 신앙 생활 못합니다! 그걸 확정을 해야 됩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판단은 참고 아,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하지만 양심 대로 한다고 하지만 혹시 나도 모르게 잘못한 일이 있는가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책망을 잘 새겨서 자기르 살펴 서 어떻게든지 자기 양심대로 자기 신앙 양심대로 하는 것이 자기로서는 자기 할 일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가 양심껏 합니다. 옳고 바르게 노력을 해서 양심의 가책할 것에 없다고 해도 이것 가지고 안심하면 안된다 말입니다. 여기에 피동을 받아 가지고 내가 아무리 살펴도 잘못한 것이 없이 또 잘못한 것은 낱낱이 회개를 하고 내가 옳고 지금 바르게 되어 있으니 까 '나는 이제는 뭐 아무도 나를 정죄할 사람이 없다.' 이렇게 안심하지도 말아라. 또 우리가 안심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언제든지 이걸 기억하십시오. 나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완 전자시고 하나님만이 자기를 판단할 수 있는 분인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도록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 판단, 주님 의 판단을 기다리는 이런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이래서 오늘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말씀은 사도 바울 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자 누구의 판단을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살았는가 자, 나누어서 말하면
첫째는 사람들의 판단을 작은 것으로 여겼다. 또 자 기의 양심 자기의 양심을 따라 판단하는 생활을 했지만 그것도 최종적으 로 여기지를 아니했다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판단을 따라사는가 주님의 판단, 예수 그리스도의 판단, 나를 위해서 하나님 사람되시고 십자가 대속 공로를 베푸시고 지금도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시고 성령님으로 나를 가르치고 지도하시는 그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 그 주님의 판단을 최종적인 판단으로 알고 그 주님이 판단하실 때에 칭찬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려 고 이렇게 애쓰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래서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 생활 할 때에 두 가지를 특별히 조심을 해야 됩니다. 또 힘을 써야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겸손히 양심의 가책할 것이 없도록 살아야 됩니다. 다른 사람 판단을 따라 살지 마시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른 사람이 욕한다고 그만 뭐 풀이 죽고 다른 사람이 칭찬한 다고 그만 펄펄 날고 기뻐서 그래 살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신앙 양심이 있으니까 어쨌든 자기 양심에 가책이 없 도록 살피고 또 살펴서 우리를 얼마든지 회개할 수가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무슨 죄가 있다하더라고 하나님 앞에 죽시 주의 피 공로를 믿고 회개하면 우리의 양심이 깨끗해지고 돌이킬 수 있으니까 돌 이켜서 옳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제일 힘 쓸 일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판단이나 여론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자기 신앙 양심, 하나님이 잘못했다 할 것은 즉시 회개해서 고치고 또 하나님이 해라하는 것은 있는 힘을 기울여서 양심대로 내가 끊어야 될 것은 끊고 해야 될 것은 하고 요렇게 있는 힘을 기울어서 여기에 성경에 말한대로 "자책할 것이 없도록" 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을 정도로 요렇게 양심대로 사는 것이첫째 우리가 할 일입니다.둘째는 그러나 그것으로 안심을 하지 말아라.둘째는 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 설때에 책망 받을 것이 없이 설 수 있을까 두려워 떨면서 미결 중에 살아라. 이것이둘째로 우리 할 일입니다.
첫째는 자, 누구 양심대로 살아 라고 했습니까 자기 양심대로, 남의 비판이나 판단은 그것도 안 들을 수는 없습니다. 참고는 해요. 참고는 하고 하지만 그것 따라서 내가 피동을 받으면 안됩니다. 참고를 해가지고 '사람이 이래 말하는데 하나님 이게 정 말 그렇습니까, 성경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성경을 찾아봐 가지고 다른 사람 욕하는게 '아, 그거 내가 잘못했군요 성경에 보니까 거짓말 하지 말 라고 했는데 내가 거짓말 했으니까 잘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래 말해 서 잘못한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듣고 내가 성경을 찾아보니 까 성경에 그게 잘못됐다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회개를 하고 또 하나님이 하 라고 하는 걸 하고 이래서 우리가 양심 생활을 하고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이 양심 생활만 하면 다인가 '아, 내 양심만 깨끗하면 됐지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가 상관이 있겠나' 그거는 괜찮지만 그다음에 하는게 문 젭니다. '뭐 하나님이 뭐라 하든지 말든지 상관있겠나 내 양심만 깨끗하고 나만 옳고 바르게 했으면 됐지.' 그거는 안된다 말입니다. 사람들이 여기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요 많은 성도들이 '나만 의로우면 되지 내 양심대로만 하면 되지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데 여기까지만 하면 됐지 그 이상이 있겠나' 이것만 해도 상당히 높은 신앙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지만 그러나 거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무슨 함정인고 하니까 자기의 판단을 최종으로 두는 함정이니까 그것이 무서운 이단이 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된다 말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주님의 구속으로 구원받은 사람이고 우리는 이렇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모든 면에서 제 한적인 그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온 천지의 대주재이시고 심판주이시고 하나님만이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 해서 상급주실 분으로 믿어야 됩니다. 그 믿는 표가 무엇인고 하니까 내가 아무리 자책할 것이 없다고 해도 그것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내가 의롭습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생각하는 것이 제한적이고 판단하는 것이 부분적이고 완전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사 내가 알지 못하는 일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일, 그래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하는 그런 일이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있으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해주셔서 돌이킬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라도 숨어 있으면 주님이 오시면 다 드러날 때 얼마나 황당스럽겠습 니까 자기는 의인인 줄 알고 자기는 세상에서 남들에게 대해서도 자세하 면서 '나같이 의로운 사람이 없다.' 이렇게 하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 렇지 않다. 그러면 얼마나 그때 가면 부끄럽고 미안하겠습니까 주님이 다 드러내실 터인데 이래서 주님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실까 지금은 우리 가 그걸 볼수가 없습니다. 다만 주님이 불쌍히 여겨서 알게 해 주시고 주 님이 보시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이래 가지고 하나라도 가르쳐 주 시면 또 회개하고 고치고 이래 살려고 애를 쓸 뿐입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 주님 앞에 가면 그때는 주님도 보시고 우리도 볼 수 있게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난다 말입니다. 이래서 그 날을 바라보고 자기가 모든 걸 잘 하지만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무슨 말을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내가 꼭 옳은 말을 하고 남에게 유익한 말을 했다 할지라도 그거 가지고 안심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부족하고 아직도 나는 미달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혹시라도 또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 또 있 습니까 내가 이 말한 데에 혹시 잘못된 게 없습니까' 또 찾아야 됩니다. 이래하면 하나님께서 영감을 보내가지고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면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이렇게 잘한다고 해서 의롭다고 했지만 깨닫고 보니까 다시 생각해 보 니까 내가 이렇게 잘못 말을 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친 그런 일이 있습니다.' 백의 하나라도 잘못된 걸 찾아서 고칠 수가 있을 거라 말입니다.
이래서 우리 신앙 생활의 그 표준은 자, 남의 판단도 표준이 될 수 없고 내 자신의 양심의 판단도 표준이 될 수가 없고 자, 누구의 판단만이 우리 신앙 생활의 표준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판단. 주님이 어떻게 보 실까 내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어떻게 나타날까 이 주님의 최종적인 판 단만을 여러분들이 마음에 신앙 생활의 표준을 삼아 가지고 거기에 맞출 려고, 우리가 뭐 사람인데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알겠습니까만은 그러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두려워 떨면서 조심하면서 '하나님 가르쳐 주시고 또 깨우쳐 주시고 이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을 주님께서 바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리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를 해 주십니다. 이래 가지고 주님의 판단에 자기를 맡겨야 됩니다. 주님께서 "잘했다." 칭찬할 그때를 바라보고 사모하고 주님이 판단하실 때 '이거, 잘못했구나.' 그때에 자기가 당할 수치와 그 부끄러움과 고통을 미리 당겨서 이렇게 두려워 떨 면서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런 생활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얼마 안 있으면 조만간에 다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는 내 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간에 주님이 모든 것을 공평하게 다 판단하실 날이 오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미리 시편 91편 14절 하반절에 말씀한대로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안즉 내가 너를 높이리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부터 주님의 판단, 주님이 어떤 분이시다. 주님이 어떻 게 생각하신다 하는 것을 늘 살피고 사니까 주님이 어떤 분인 것을 점점 알아 간다 말입니다. 이래 가지고 주님의 판단을 따라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이렇게 주 님을 따라서 이래 살면 주님께서 "네가 나를 안즉 내가 너를 높이리라 네 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너를 건지리라"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에게 참으로 칭찬과 상급을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여기 말씀한대로 "주님의 판단을 따르라"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요렇게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좇아서 살면 여러분들의 모든 행실과 모든 행위가 다 바르게 되고 또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받을 만한 것이 될 줄 압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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