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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들 (고전15:33-34)

본문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 라 하나님 말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에는 아브라함이 나타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을 기록한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왔다가 어떻게 살고 갔는지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조상이며 선배들인 이들의 생애를 살펴보고 우리의 구원의 거울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땅에 속한 말은 재미가 있고 귀에 잘 들리지만 땅에 속한 지식의 분량 만큼 하늘의 지식에는 거리낌이 되므로 하나님의 지식을 듣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5절에 "아버지여, 이것을 슬기롭고 지혜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땅에 속한 지식은 이 세상에 기묘한 마귀의 지식들인데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다 그것은 멸망의 지식입니다. 땅에 지식은 죽이는 지식이요, 하나님의 지식만 이 산 지식이요, 또 살리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산천이 놀라고 우주가 놀 랄만큼 큰 말씀이지만 사람들이 다 우습게 여기고 무시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세상이 움직이고 또 마지막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 하나님의 사람들의 역사를 우리가 배워서 교훈을 삼아 야 되겠는데,
첫째로,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 하와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아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와 자기에게 속 한 자손 전부가 다 멸망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변명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금하시는 것을 어긴 것이 죄요, 죄를 범하면 자기와 자기 자손이 망한다 하는 이 진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 생명과 평강과 복이 되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죄요, 죄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아담 하와가 뱀에게 유혹을 받을 때는 쳐다보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한 선악과 가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가 사람 들의 눈을 가루어서 그 나무와 그 나무의 실과만 보게 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 먹음직하다. 지혜롭게 할만큼 하다. 저걸 먹느냐, 마느냐' 이렇게 망설이기도 하고 또 그래서 나중에는 따먹기도 했지만 아담 하와가 쳐다보았던 그 나무나 과실은 껍 데기고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동산을 다스리라, 지키라, 먹어라, 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아담 하와는 이렇게 싸워서 먹기 좋고 지혜롭 게 할만큼 탐스러운 그 실과만 보고, 다시 말하면 껍데기만 보고 하나님의 명령 순 종하면 생명, 평강, 복이요.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자손 대대로 망한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 그 알맹이를 모르고 날뛰다가 실패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남의 자손도 될뿐만 아니라 남의 조상도 되어 있는 우리고 또 앞 으로도 될 우리들입니다. 세상에 이런 저런 생활이 아무리 화려하고 또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많아서 우리가 일생을 분주하게 보낸다 할지라도 이런 우리의 삶은 껍 데기인 줄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 많은 것을 취하고 또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하는 것으로 그만 인생이 거기에 좌우되는 것같이 보여지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살 게 하신 현실이고 그 속에 우리 삶의 알맹이, 정말 우리 삶이 복된 삶이 되고 앞으 로 영생을 마련하는 그런 삶이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그 현실 가운데 서 하나님이 "해라", 또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는 것을 찾아서 거기 따라 사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없고 평강도 복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멸망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십니다.
둘째로 창세기 4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농사도 짓고 목축도 하면서 잘 살았습니다. 아담 하와의 아들들인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 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두,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잘 살고 모든 것이 풍부했고 양을 치는 사람도 아주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껍데기요 그 속에 그들의 삶을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영원히 복되 게 하는 알맹이는 농사를 짓느냐, 양을 치느냐 또 그러면서 잘 사느냐, 못 사느냐 그게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하나님의 계약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자기들의 형편 사정, 환경 따라서 자기들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것이 그 알맹이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제사를 드리라 할 때에 하나님의 계약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아벨은 어린양을 잡아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 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받아주시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지 안했습니다. 자기 형편, 자기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니까 곡식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지 아니했습니다. 그것은 비단 제사 드리는 그 문제가 전부가 아니고 가인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범사에 자 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삶과 제물을 받지를 아니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신본주의와 인본주의가 있었습니다. 인본주의는 사람이 근본이 되어 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비판하고 계획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오, 신본주의는 하나님의 계약, 하나님이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계약을 따라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둘이 있을 때에 인본주의는 세상면으로 강하고 신본주의는 신령면으로 강합니다. 인본주의는 온갖 죄를 동원하는 것으로 죄의 세력을 키워서 그것으로 강한 사람들이 되고 신본주의는 죄는 하나도 없고 죄를 이기는 의의 세력 이 강합니다. 이래서 인본주의자인 가인이 신본주의 아벨을 시기해 가지고 들에서 만나가지고 그를 쳐죽였던 것입니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이렇게 아담 하와의 자손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초대 교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이 두 세력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에 있어 서도 이 신본주의 생애가 있고 인본주의 생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항상 대 립이 되고 대립이 될 때는 인본주의는 육체적으로 또 죄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신본주의를 시기해서 대적하다가 죽이는 일을 합니다. 그러면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풍요로운 삶에만 정신을 쏟을 것이 아니고 내가 이 세상에서 일생을 살아가면서 인본주의 가인에게 속한 생활을 하는지, 아니면 신본주의 아벨에게 속한 생활을 하는지 이것을 구별해서 신본주의 로 사는 것이 알맹이 생활입니다. 우리 삶의 진정한 행복과 영생을 마련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 늘 기억하고 잊지 아니하고 살아야 될 것은 으례히 의인이 죄인에게 미움을 받고 시기를 받고 박해를 당하다가 마지막에는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성도들은 신본주의로 살려 하다가 인본주의에게 이런 일을 당할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낙심하지 말고 '아,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고 끝까지 신본주의로 살아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을 마치면 그것이 우리에게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서 이 세상뿐인 줄만 알고 '아이고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면 끝장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두려워 떨고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신앙 양심도 하나님도 저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무궁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시간도 공간도 이 영원 무궁한 세상에 비하면 억억만분의 일도 되지를 않습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14장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은 너희를 위 해서 너희의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아니 하면 너희들에게 일러주었으리라." 아이고 세상밖에 없다. 죽고 나면 그만이니까 어 떻게든지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하고 이 세상에 잘 사는 방법을 알려주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 아버지 집에서 영생할 그 일에 비하면 이 세상은 베드로전서 1장 17절, 2장 11절에 보면 우리 인생을 나그네라 했습니다.
하룻밤 나그네와 같고 또 사실은 영 원한 하늘나라를 준비할 세상일뿐입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중심 으로 신본주의로 하나님과의 계약을 좇아서 매일 매일 감사 생활을 하다가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살아도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시기를 당하고 또 핍박을 당 하고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신본주의 생애는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 미운놈 죽이면 끝장이 되겠지.' 하지만 그것은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시작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성경에 보면 결혼했다는 말도 없고 자녀가 있다는 말도 없고 그는 일찌기 그만 형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성경에 아벨의 직계 자손들이 기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 가인은 다 되어있지만, 그러니까 형과 다투면서 사는 동안에 얼마나 유혹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끝까지 양보하지 아니하고 신본으로 살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렇게 억울한 일이 더 없습니다. 자식도 없이 일찌기 형에게 억울하게 맞아서 죽었으니까 얼마나 불쌍하고 우리 인간같으면 원한 의 복수를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겠지만 성경에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2장 4절에 보면 예수의 피는 아벨의 피가 증거하는 능력보다 더 낫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행하는 행사 중에는 예수님의 행사가 제일 크고 또 효력이 있는 행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또 병든 자를 고치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 셔서 지금도 성령님을 우리에게 물붇듯이 부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하신 일 이 최고요. 그다음에, 여기 히브리서 12장 24절 말씀을 보면 그다음에는 아벨의 행사, 아벨이 하나님과 의 그 계약을 좇아서 살다가 자기 피를 흘려서 죽임을 당한 그 아벨의 피의 역사가 그다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역사가 우리 구원 뿌리요, 근본 둥치라고 하면 그 다음 두번째가 아벨의 피가 그다음 가지요, 그다음에 선지와 사도들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벨의 곁가지요, 아벨에게 속한 가지일 뿐입니다. 이렇게 아벨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죽음으로써 끝장났지만 그 아벨의 행위가 예수님 다음의 아름다운 행위요, 구원에 필요한 그런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인정이 되고 또 아벨이 하늘나라에서 받을 영광과 상급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여기서 교훈을 받을 것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다른 사람들이 신 앙생활 잘하는 것을 기뻐해야 됩니다. 기뻐하지 아니하고 시기하면 자기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 설교 잘하는 것 시기하면 안됩니다. 다른 교회 부흥되는 것 시기하면 안됩니다. 꼭 자기나 자기 교회가 잘돼야 좋겠다 하는 것은 그 속에 마귀가 들어가지고 자기 하나밖에 알지를 못하는 자기 중심의 동기요, 거기서 발동 한 행위이기 때문에 거기서는 시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 시기의 결과는 살인하는 일밖에 나올 수 없습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우리가 신본주의로 살아서 하나님 앞에 순교할 수 있는 이 자리까지 나가는 이런 삶을 우리가 살아야 되겠고 또 다른 사람이 이렇게 바 로 사는 것 보면 내가 못 살아도 '아이고, 하나님 그 사람이 옳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시기는 살인죄를 낳습니다. 그것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중심이 자기 중심 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는 것은 어디까지 위하겠습니까 그거는 끝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상대방이 죽어야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기하는 죄,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 섬기는 그런 일은 결국에는 사람을 죽이고 자멸하는 그런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셋째로, 아담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오래 산 사람은 969세까지 장수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나타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니까 먹을 것, 입을 것, 또 마실 것이 가득찬 세상이고 또 하나님의 사람 들이 나면 자라고 자라면 시집가고 장가가고 거기서 수많은 자녀들이 생겨나고 또 죽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깨달을 것은 사람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이 세상에서 태 어나가지고 잘 먹고 잘 입고 결혼해 가지고 특별히 많은 자녀들을 그것도 훌륭한 자녀를 생산하면서 잘 사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여기 성경에 보니까 창세기 5장의 기록은 다 누구 누구가 태어나서 몇 살까지 살고 결혼해서 자식 낳고 죽었고, 또 누가 태어나서 결혼해서 자식 낳고 죽었고, 또 누가 태어나서 자식 낳고 몇 년동안 살다가 죽었다. 마지막 결과는 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이 세상에 있 지 아니하더라." 하나님이 보통 사람이 죽는 그런 죽음으로 데려가지 아니하시고 산 채로 데리고 가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의 가치가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생을 받아가지고 누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남녀 결혼해 서 사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좋은 자녀들을 생산, 양육을 해서, 요새도 보 면 우리 학생들이 공부를 해가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사람, 또 좋은 학교에 들 어갈 수 있는 높은 점수를 받아가지고 또 실제로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본인도 좋 지만 부모, 친척,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인생의 행복은 자식 잘 두는데 있구나. 나는 자식을 잘 못 두어 가지고 그런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골치만 아프구나.' 그래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5장을 한 번 읽어보십시 오. 또 그다음에 6장에 있는 말씀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훌륭한 자녀 들, 네피림과 같은 용사들 많이 두었지만 그들의 삶은 그렇게 살다가 자식 낳고 몇 년 살다가 죽었다. 창세기 6장에는 홍수가 나서 그 모든 훌륭한 인물들이 다 쓸어 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무엇이 전부고 무엇이 인생의 삶의 알맹이고 무엇이 참 가치인가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장가도 가고 시집도 왔고 자녀도 낳고 사업 도 했고,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이 그를 산채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입신 출세하고 입신 양명한다고 해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빠졌으면 그 인생은 실패입니다. 헛된 삶을 살고 마는 것입니다. 좋은 결혼 생활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 푹 빠져가지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이 멸망입니다. 훌륭한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데 정신을 팔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으면 그 것이 멸망입니다. 자기의 건강을 유지하고 장수하는 이게 자기의 전부가 되어가지 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못했으면 이것이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알맹이는 사람이 몇 년을 살았다. 또 그 사람은 부자다. 그 사람은 아주 훌륭한 가문을 이루었다. 거기에 있는 것 아닙니다. 그거는 껍데기입니다. 뭐하는 껍데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하는 껍데기입니다. 껍데기도 있기는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받아서 그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대로 하나님이 주신 자녀 를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잘 키워서 하나님 말씀대로 지도하고 인도해서 그래 키워 내면 거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자녀를 받아 서 키우는 데는 더 정성이 들고 더 힘이 들 터이니까 거기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사귀는 그런 유익을 얻고 또 몸이 약하고 병 들고 또 여러 가지 지능이 부족한 그 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 큰 힘이 들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 말씀대로 가르치고 먹이고 기르고 하나님의 자녀로 길러내는 이것이 알맹이입니다. 사업도 그래요. 대사업을 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거는 다만 하나님 이 그런 사업을 맡겨줬으니까 그런 사업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 뜻을 좇아서 하나님 사귀고 하나님 맡기시는 일을 하는 것이 알맹 이다. 이래서 옛날 어른들은 여주동행(予主同行)이라 했습니다. 여(予)자는 같이할 여(予)자입니다. 함께할 여(予)자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 여주동행, 이것이 인생 의 가치입니다.
넷째로는, 창세기 6장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서 너무 풍성하고 잘 살았지만 그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제 욕심대로 사람들의 딸을 취해 서 그들을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리 고 사람들의 딸들이 아름다우니까 그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아내로 취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니 하나님의 신이 떠났다 했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육 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쓸모 없는 사람들이 되었으니까 하나님께서 홍수를 보내어 가지고 그들을 싹 쓸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이런 면, 저런 면에서 다시 말하면 경제적으로도 부요하고 육체적으로도 강건하고 여러가지로 문화 생활을 해 서 구비한 행복한 생활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 명령을 저버리고 자기 욕심대로 살면 망한다 하는 것을 여기에 간단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돈 욕심, 미인 욕심, 미남 욕심, 명예 욕심, 권세 욕심, 사업 욕심, 이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님의 욕심을 좇아서 살아야 되는데 성령님의 소욕 은 버리고 인간 자기 욕심대로 하면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를 보내서 다 쓸어가 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특별히 오늘 우리 한국에서 예수님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지금 큰 교훈을 주시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깨우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경제적인 부요나 또 여러 가지 문화의 발달이나 여러 가지 면에 서 하나님이 주신 복이 큽니다. 우리는 복받은 나라가 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하지 안하고 그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욕심대 로 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이나 모든 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 다 주 신 것인데 그걸 잊어버리고 전부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만 주신 모든 물 질도 흥청 망청 오용 악용 낭비해서 사는데, 사실은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한국이 경제적으로 이렇게 큰 어려움을 당하는데 이래가지고 앞으로 또 큰 어려 움이 있을거라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좋습니다. 허리띠를 매고 정신차리고 절약하고 사는 것이 이제 그럴 때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 하나님께 감사하지 안하고 잊어버린 것이 문제인데 이렇게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슨 큰 어려운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 가 중단을 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고 '하나님이여, 하나님이 주신 복이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귀하게 보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는 이 감사 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물질 궁핍은 그것은 시작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망할 때 어떻게 됐나 보면 먼저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망했습니까 역병이 돌아가지고 병이 돌아가지고 그만 사람들 이 망합니다. 마지막에는 전쟁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멸망의 고리를 끊는 것은 '아이고, 우리가 절약만 하면 되지, 허리만 조우면 되지, 물건을 아껴 쓰면 되 지.' 그게 아닙니다. 감사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쓰라면 풍성하게 쓰고 하나님이 아껴라 하면 아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에서 사는 것은 껍데기입니다. 속 중심은 영감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소욕, 성령님의 소욕을 좇아서 자기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욕심을 좇아 사는 이것 이 알맹이입니다. 우리가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자기 욕심대로 해서 안 망하는 일이 없습니다. 만 약에 백 가지를 자기 욕심대로 하고 하나를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것 하나라도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서 멸망시키지 아니하고 우리를 살려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 가지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다가도 딱 하나에 '요거는 내 마음대로 하고 내 욕심대로 한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나겠나' 해도 하나님은 그 한 가지를 밝혀냅니다. "네 욕심대로 했지" 이래가지고 다 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회개는 천 가지, 만 가지 잘못해도 하나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우리가 교만하는 것은 천 가지, 만 가지 잘 해도 한 가지 하나님 앞에 '이거야 내 마음대로 해도 무슨 상관이 있겠 나' 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두고 보지를 못하십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자 기 욕심대로 하는 것은 망한다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다섯번째로는, 창세기 11장에 보면, 노아의 후손들이 또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살았 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은 다 망하고난 뒤에 노아의 후손들이 죄를 짓지 아니하 고 흩어져서 사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또 크게 풍족한 삶을 살게 하시고 또 인종이 불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또 이 세상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잘 살게 되었을 때에도 그 사람들이 쓰는 말이 하 나였다고 했습니다. 같은 구음(口音)을 가지고 그러니까 말이 같다는 말은 생각이 같고 마음이 같고 사리판단이 같고 하는 일이 같아집니다. 물론 조금씩 차이는 있 겠지만 큰 차이가 없이 이렇게 하나되어서 사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이게 하나님이 복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목적은 노아처럼 단 마음으로 하나님 한분께만 순종해서 하나님 섬기고 명령대로 살면 한 사람, 한 가정, 또한 나라, 한 민족이라도 다 복 받 아서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 영생 복을 받게 되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한 마음, 한 뜻, 한 힘으로 인간끼리 단합만 하면 어떤 환난, 어떤 궁핍, 어떤 어려움도 피할 수 있고 멸망을 면할 수 있 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한 마음인데, 한 뜻인데 단 합해서 살 수 있는 은혜를 받았는데 그것 가지고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우리가 그럴 것이 아니라 큰 탑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하늘 끝까지 높혀서 거기 구멍을 뚫어놓으면 홍수가 나더라도 사람이 그 탑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자꾸만 물 이 차오르면 저 하늘 끝까지 올라가면 살아남지 않겠나' 사람이 어리석게도 좋은 탑을 지으면 멸망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을 하고 사람들이 모여 탑을 짓기를 시 작했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들이 남아있고 그 탑과 똑같지는 않지만 그런 종류의 탑들이 흔적 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잘못된 것인 가 하니까 껍데기만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한 구음을 주시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살 게 하신 것은 껍데기고 그 알맹이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홍수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잊어버리고 껍데기만 사람끼리 단합만 하면 사람끼리 하나만 되면 '우리 힘으로 멸망을 피할 수가 있겠다.' 이러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주를 하니 까 갑자기 사람들의 마음이 나뉘어졌습니다. 또 사람들의 말이 달라졌습니다. 같이 일하던 사람이 그전에는 한 마음으로 또 의사 소통을 바로 하면서 일을 했는데 말 이 달라졌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저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흩으시면서 참 놀라운 것은 이 넓은 지구에 산골 짜기마다 말이 다 다릅니다. 같은 한국 말을 해도 지금은 6.25 사변이 나가지고 하나님이 막 섞어놓아서 그래도 말이 좀 통일이 됐지만 6.25 사변이 안 났다고 하면 저 함경북도 해령이나 저 남쪽 제주도 사람의 말이 통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지금 도 중국에는 북쪽에 있는 중국 사람과 남쪽에 있는 중국 사람이 말이 안 통한답니다. 같은 중국말을 쓰는데도 그 말이 발음도 다르고 뜻도 다르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의 말을 혼잡시켜 놨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그래서 여러분 이 이치를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그 결과로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도 마음은 절대로 같지 않습니다. 비록 같은 말을 써도 오해가 생기고 거기서 여러 가지 의사 전달이 안되는 그런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시니까 사람들이 성령님의 충만을 받고난 뒤에 말이 통일이 되었습니다. 나가서 복음을 전하니까 온 세상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말을 하던 사람들이 와가지고 들을 때는 똑같이 들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의 말이 통일이 되고 마음이 하나가 되고 일심 단결해서 하나님 섬 기는 일은 예수님 믿고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면 그때 가능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앞 에 나도 하나님께 순종하려 하고 우리 장로님도 하나님께 순종할려 하고 또 일반 평신도도 하나님께 순종하려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그 마음만 있으면 그 만 우리 교회는 하나입니다. 우리 총공회는 하나고 온 세계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걸 하나님이 여기서 보여주십니다. 지금 간단히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우리 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일생이라고 하는 것이 복잡 다단하지만 우리가 이걸 간추 려서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사는 삶이 어떤 삶인가 이게 멸망할 삶인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영생할 삶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간단한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통해서 배워가지고 후회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여기 본문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 우리가 잘못하면 세상 사람들 사는 것, 옆에 앉아 있는 뭐 믿는 성도들의 사는 그 모양만 보고 우리 가 잘못하면 속기 싶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게 아니고 성경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해 놓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역사를 살펴보고 속지 말고 후회할 것 이 없는 일생을 살다가 주님 앞에 가야 되고 또 주님이 오시면 주님을 만나야 되겠 습니다. 언제든지 우리 삶에는 껍데기와 알맹이가 있는 것을 구별해서 껍데기는 알맹이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알맹이를 만들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껍데기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게 아닙니다. 다섯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는, 아담 하와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 어기는 것은 멸망이다. 하나님 말씀 어겨서 선악과 먹는 것은 멸망이다. 아주 분명한 말씀입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사람의 역사입니다.
둘째, 가인과 아벨의 삶을 통해서 인본주의 가인이 신본주의 아벨을 시기하고 살 인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약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인본주의 신자가 시기 하고 죽이는 일이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우리가 신본주의로 살 때에 거기에 낙심 하지 말고 순교로 주님 앞에 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세번째로는 에녹과 그당시 사람들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를 낳고 또 세상 일을 하고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번째로는 노아와 그 시대의 사람들의 역사를 통해서 자기 욕심대로 살면 홍수 로 망한다. 또 마지막으로, 노아의 후손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 구원에 유일한 방편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 생활하면 그만 부부간에도 하나입니다. 교인들도 하나입니다. 공회도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순종 안하고 자기 인간의 단합, 인간끼리 단합하는 일은 오히려 분리 되고 망하는 그런 길인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십니다. 여기 간단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역사인데 이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서 우리가 얼마나 이 세상에서 살지 몰라도 꼭 요대로 우리도 될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도록 합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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