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생명의 영웅들(2) (고전15:54-57)

본문

저 스코트랜드의 섭정인 ‘모튼 백작’이 당시 종교개혁의 위대한 지도자 앤드류 메빌을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들 대여섯 놈을 교수형에 처하거나, 추방하지 않은 한 이 나라는 결코 평화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메빌은 답하기를 “천만 에요! 각하, 그러한 협박은 각하의 부하들에게나 하십시오. 나에게 있어서는 공중에 메어 달리거나, 땅 속에 묻히거나, 마찬가지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는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교수형에 처하거나, 추방하는 일은 당신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위협이나, 박해 아래 생명으로 대처한 신앙 영웅들의 여유 있는 처세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우리는 참으로 대단한 한 장면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감의 사람 바울이 인류의 숙적인 사망을 호령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라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놀랍고, 놀라운 것은 지금 바울이 죽음을 향하여 호령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감히, 어떻게 호령하고 있을까
I. 죽음의 실체가 무엇인가
1. 죽음은 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분리입니다. 곧 영적 죽음인데 이는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에게 제일 처음 내린 형벌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아담이후 모든 인생은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인생의 삶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하는 영이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 사망의 반대는 영적 생명입니다. 바로 예수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가리킵니다(요5:24). 두 번째, 육체적 죽음입니다. 이것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됨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본래는 영(생기)과 육(흙)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범죄 타락 이후에 이 관계가 비정상을 이루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과 육이 분리되는 죽음의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것은 영과 육이 아울러 지옥 불에 떨어지는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마25:42).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세계를 가리킵니다(계14:11).
2. 바울의 죽음론이 무엇인가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중에서 이러한 죽음을 가리켜서 몇 가지 실제적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음을 가리켜
1 ‘원수’라고 하였습니다(고전15:26). 그 이유는 죽음이 생명을 빼앗아 가고, 절단내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찾아 왔을 때 그는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립니다. 이 세상에 소유한 모든 것이나, 부모와 형제와 부부 관계를 절단 내어버립니다. 친구와 이웃과, 그리고 모든 사회 관계를 깨뜨려 버립니다. 모든 아름다움과, 소망스러운 미래를 남김 없이 끊어 버립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이러한 죽음의 세력 앞에 그의 사랑하는 딸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나인성 과부는 이러한 죽음 앞에 하나 밖에 없는 그의 아들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베다니에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이러한 죽음 앞에 그의 사랑하는 오빠 나사로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진정 죽음은 인류의 숙적이요, 원수입니다.
2 바울은 죽음을 가리켜 썩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15장 53절로 54절에서 이 말을 연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썩는 것은 본래의 모습이 분해되고 농해 되어 없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냄새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라짐을 가리킵니다. 아름다운 형체가 없어지고, 움직임이 없어지고, 창조성이나, 생산성이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욕된 것이고, 약한 것이고, 유한 된 것입니다. 이 썩음의 냄새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시체(屍體)라 이름하고 관속에 넣어 흙 속으로 묻어 버리게 됩니다.
3 다시 바울은 죽음을 가리켜 ‘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쏜다는 말은 바늘이나, 가시처럼 찌르고 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살’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찌르고, 양심을 찌르는 것입니다. 쏘는 것(κενρον)을 가시채로(행26:14) 황충의 독침으로(계9:10)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쏨의 정체가 무엇인가 ‘죄’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성립시키는 힘이 무엇인가 율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범죄한 모든 인생은 이 무서운 죄의 살에 찔려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4 결국 바울은 이러한 것을 종합하여 죽음을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쉐올’ 곧, 음부, 지옥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정체는 지옥과 관계하고 맙니다. 그것은 영벌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불꽃 중에서의 영원한 고민이라고 하였습니다(눅16:24).
그러므로 죽음은 애통이요, 비참이요, 비정입니다. 죽음은 잔인 그 자체요, 무자비요, 무정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영원한 숙적입니다. 그 어느 시대, 그 누구도, 그 무슨 힘으로,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범죄 이후 모든 인류의 역사는 사망의 행진이었습니다. 인생이 출생했다는 그 즐거운 생일 축하는 그 때부터 죽으러 가는 사망의 행진으로 직결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죽음의 실존을 가리켜 원수라고 한 것입니다.
Ⅱ. 어떻게 죽음을 호령할 수 있었는가 이김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김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죽음을 이기고, 무덤을 열어제쳐버린 그의 부활입니다. 그가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장차 그를 믿는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요, 예표요, 약속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류에게 임한 사망이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은 것 같이 부활도 마지막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고 하였습니다(고전15:21). 그래서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 된 것입니다(고전15:4
5).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나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생명 선언을 하였습니다(요11:25). 지금 이 세상에서 그의 부활의 복음을 듣는 자(믿는 자)는 살아나고(
첫째 부활), 마지막 재림의 날에 생명의 부활(
둘째 부활)로 나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5:25-29).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그의 전 인격의 실존이 온통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난 부활의 예수를 체험하였습니다(행9:). 그 이후 그의 삶은 육에서 영으로 변화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금세에서 내세로 엄청난 삶의 비약을 하고 말았습니다. 유한의 세계에서 영원의 세계를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어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사는 엄청난 생명의 도약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썩을 몸이 불가불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불가불 죽지 아니함을 입는 때가 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날이 바로 사망이 이김에 삼킨바 되는 부활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불가불’ 썩지 아니함을 입고, ‘불가불’ 죽지 아니함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적 주권의 필연성입니다. 신적 계획의 필연성입니다. 신적 목적의 필연성입니다. 신적 창조의 필연성입니다. 신적 구속의 필연성입니다. 창조 본연의 필연성입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요, 맨 나중에 승리할 실존은 부활의 생명입니다. 어떻게 죽음을 호령 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보증 때문입니다. 우리 부활의 약속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믿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소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몸의 구속’까지를 기다리고 살아가게 됩니다(롬8:23).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편지 할 때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어 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라고 하였습니다(빌1:23). 그는 로마의 감옥에서 그에게 다가 오는 죽음 앞에서 말하기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나에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고 하였습니다. 저 미얀마에서 선교를 한 아도니람 저드슨(A. Josdon)은 그의 최후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실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하여도 실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를 영원한 집으로 부르시면 마치 어린 학생이 학교를 떠나 휴가를 가지는 것처럼, 나는 기쁨으로 갈 것이다. 죽음은 결단코 나를 불시에 습격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전(前)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킨시 아담스(J. Q. Adoms)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80세의 고령으로 어느 날 보스턴에 있는 한 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을 때 그의 친구로부터 “존 퀸시 아담스씨 별고 없으십니까”하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 때 그는 인자하게 대답하기를 “감사합니다. 존 퀸시 아담스는 무사합니다. 아주 잘 지냅니다. 그러나 그가 사는 집은 이제 황폐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의 집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나긴 세월로 인해 그의 집은 거의 쓰러져 무너져 가고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집은 흔들립니다. 그의 낡은 집은 이제 거의 살 수 없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존 퀸시 아담스는 곧 그 집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아무 일이 없이 잘 지냅니다. 얼마후 그는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더 좋은 집, 곧 저 천국의 실존을 고백하였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죠지 워싱턴은 죽으면서 하는 말이 “ 의사여! 나는 지금 죽고 있소. 그러나 결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있소” 라고 하였습니다. 저 유명한 요한 번연은 죽으면서 하는 말이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를 위하여 울라.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노라. 하나님께서 그의 복스러운 아들의 중보로 말미암아, 죄인 된 나를 영접하시되, 우리가 새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모일 곳으로 영접하시리라. 그리고 거기서 영원토록 머물리라”고 하였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 Brainerd)는 죽으면서 “나는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노라. 영원한 세계를 생각만 하여도 좋다. 그 세계의 영원 무궁성이 그렇게도 그것을 단 맛있게 만드는 구나! 아! 영원한 세계란 것이 저 악도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것이 되겠는가! 생각만 하여도 두렵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무디는 죽으면서 말하기를 “땅이 물러가고 이제야 하늘이 열리는 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불 수레가 왔으니 나는 올라가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요한 낙스는 “그리스도 안에 살라. 그리하면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우리 하나님께로 구원이 오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을 피한다. 주님이여! 주님의 손에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호령하는 신앙. 생명을 가진 영웅들의 간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을 이기는 자는 생명의 영웅입니다. 아니 사망을 호령하는 자는 생명의 영웅입니다. 그는 예수로 말미암는 부활 신앙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과학이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세계를 호령했던 권력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떤 사색적인 종교철학은 더욱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예수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 부활의 약속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2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