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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행27:9-21)

본문

할렐루야!! 오늘도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시간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늘의 충만 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줄 믿습니다. 사도행전 4:19절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쳐 준 사건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내가 크게 소란하여졌고 대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여서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하여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도 말라고 위협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너희가 판단하라" 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틀린지를 알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할 일을 자신이 결정을 하지 못하고 무당이나 점쟁이들을 찾아가서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을 때에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패가 좌우 될 수도 있습니다. 어질고 현명한 임금은 충성어린 충신들의 말을 잘 들어서 좋은 선정을 베풀 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간신들의 말만 들어서 나라를 잘못 다스리는 임금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왕 사울은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의 말을 듣 지 않고 임의로 행하여 그는 비운의 최후를 맞이하였고, 이스라엘 나라의 제4 대왕으로 세움받은 솔로몬의 아들 여로보암 왕은 원로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젊 은이들의 말만 들었다가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또 사사로 부름받은 삼손은 불레셋 나라에게서 이스라엘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았는데 이방여인 들릴라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는 머리가 깎이고 두 눈이 뽑혀 수치와 모욕을 당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선지자 나단의 말을 듣고 회개하였기에 성군이 되어서 나라 를 잘 다스리는 임금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는 성경에 수를 셀수 없이 많 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오늘 왜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우리가 가야할 1998년의 1 년이나 또는 우리의 일생을 살아갈 때에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그 성패가 좌우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좋은 예로써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가는데 믿음 좋은 사람과 자주 접촉하고 그 사람의 말을 자꾸 들으면 그 사람과 함께 믿음이 좋와 집니다. 그러나 믿음 도 없고 교회에 대하여 불평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와 함께 믿음도 떨어지고 불평이나 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믿음 없는 사람의 말보다는 믿음 좋은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또 남에게 믿음 떨어지는 소리나 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네 인생이란 한척의 배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순풍에 운항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바다에는 순풍만 이 있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무서운 폭풍이 불어와서 괴롭힐 때도 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항로에도 성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뼈아픈 실패의 경 험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사람들은 실패를 싫어하고 좋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실패로부터 완전히 도피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인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자들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실패하고 좌절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냥 실패자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실패의 원인을 찾 아내게 하시며 동시에 새로운 삶으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기회와 능력을 주시 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항해에 실패한 한 배의 이야기를 보여 주는 것으로써 어떻게 하여야 실패하지 않는 항해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 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하여 백성을 미혹케 한다는 죄목으 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이 때는 바울이 3차의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 아왔을 때입니다. 고소를 당한 바울은 가이샤라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그 재판 은 2년이 지나도록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로마의 시민 권을 가진 사람임을 밝히고 로마의 황제 가이사에게 항소를하여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배를 타고 로마로 가게 되었는데 바로 로 마로 가는 도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바울을 호송하는 배는 지중해의 그레데 섬의 미항이라는 곳에 잠시 정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미항에서 겨울을 지내고 항해하는 것이 좋겠다 고 하였으나 이번 항해의 실권을 쥐고 있는 백부장과 선주, 그리고 선장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항해를 강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유라굴로 라는 태풍 을 만나 배는 파선을 당하고 생명의 위험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배가 파선하게 된 원인은 물론 유라굴로 라는 태풍에 있지만 더 큰 원인 은 내부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레데 섬의 미항에서 겨울을 나고 가자는 바울의 말보다 권위가 있고 권력이 있는 백부장이나 선주의 말을 더 믿고서 강행 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 일행이 탄 배가 왜 파선을 당하는 위기를 당해야 하는 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 원인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항 로도 파멸 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를 함께 생각하면서 이 시간 은혜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는데 위함한 때에 출발을 하였습니다. 금식절기는 유대절기로 7.1019.20까지를 말합니다. 이때는 여름입니다. 그래서 금식하는 기간이 지났다는 것은 겨울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9.2013월 까지는 겨울이므로 바람이 많이 부는 시기로서 기후가 사납기 때문에 이 겨울 동안에는 지중해 상의 모든 항해가 중단됩니다. 그러나 선장은 자신의 항해 기술을 지나치게 믿고 자만하였습니다. 그래서 항해를 계속할 것을 제의 하였던 거입니다. 배를 움직이는데 선장 이상의 전문 가는 없습니다. 선장은 오랜 경험으로 지중해상의 지리나 기후, 그리고 배의 성 능 등을 잘 압니다. 그래서 배가 출발하는데 반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선장의 소리는 지식의 소리요 과학의 소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지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과학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사실 과학 기 술이 이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힘과 영향은 대단합니다. 또 과학기술이 발달되지 못하면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들은 이 기술을 발전 시킬려고 국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공장에서는 과학기술로서 만든 로봇트 한 대가 근로자 100명 200명분의 일을 해 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과학과 기술은 크게는 항공 우주공학과 더불어 작게는 사무 행정에 까지 다양하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선 나도 불과 3년전만해도 설교 준비를 할 때 일일이 원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컴퓨터로 합니다.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와만 할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현대 사회는 이와 같은 기 술이나 과학이 우상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면 무엇이든지 믿어버리고 맹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인간이 점점 비인간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인간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서 기계가 만들어 졌는데 모든 것이 기계화된 지금은 그 기계를 얼마나 잘 운영하고 응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한 인간의 가 치가 결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유능한 기능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곳 인간을 기계의 한 부품화 되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왔더라"(창1:31) 고 하신 인간의 본래의 선 한 양심은 찾아 볼 수 없이 날로 흉폭해 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 면하기를 (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 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2. 그 항구가 겨울을 나기에 불편함으로 거기서 떠나서 뵈닉스에 가 서 겨울을 나자고 결정을 한데 실패의 원인이 있습니다. 지금 정박하고 있는 미항이라는 항구는 작은 어촌입니다. 안락한 숙박 시설 도 없고 화려한 문화적인 시설도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몇 달씩이나 머물러 겨울을 지낸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돈많은 선주나 선장의 경우는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왕 쉬려 면 큰 항구 도시에 가서 편하고 즐겁게 지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뵈닉 스 항구로 가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일시적인 편의주의가 무리한 항해를 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그들은 배는 물론 모든 물건도 잃어버리고 14일간이나 바다 에서 먹지 못하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출항하기전 이미 바울은 경고를 한바 있습니다. (행27:9)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돈 많은 선주는 일시적인 불편을 피하려는 데만 급급하였습니다. 백 부장과 선장은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상식과 경험 에 의한 판단을 더 믿었습니다. 선주가 항해를 강행하자고 한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즉 선주의 입장 에서 보면 배를 빨리 항해 시킬수록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항 에서 몇 달을 지내게 된다면 그 비용이 또한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손익 계산 에 바른 선주가 그것을 모를리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그렇습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또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위험을 무릎 쓰고라고 할려고 합니다. 선장은 사도 바울의 말보다 돈있는 선주의 말에 따라서 배를 움직였을 때에 배가 파선을 당하게 된것처럼 하나님의 뜻보다 물질이 앞설 때 우리 인생의 배 도 여지없이 파선하게 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보다는 사람을,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찾을 수 있도 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돈의 위력이 더하가고 있는데 반해 사람 값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할 수록 사람의 가치가 올라가 야 할텐데 반대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돈이 이 시대를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돈보다도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18 년동안 마귀에게 사로잡혀 반신불수가 된 여인을 눈여겨 보시고 "이도 아브라 함의 자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여인, 오늘날과 같이 기능 위주의 사회에서 보면 아무 쓸모 2도 없는 그 여인을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라사 지방에 가서는 군대귀신이 들려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 을 고치실 때 귀신들이 돼지에게로 가게 해달라고 하여 돼지 2천마리가 몰사하 였습니다. 이는 돼지 2천마리보다 한 사람의 생명을 더욱 소중히 여기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돈보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람보다 하나님을 먼저 찾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 돈을 앞세운다면 우리 인생의 배는 언제 파선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3. 남풍이 순하게 불 때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행선을 하 였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북풍이 부는 것이 상례입니다. 더욱이 그 북풍은 산더미 같은 파도 를 일으키는 태풍을 수반하기 때문에 아무도 이 겨울 바다를 항해 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풍이 순하게 불자 백부장은 결심을 굳히게 된 것입니다. 이 것이야 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남풍 에 있었습니다. 때아닌 순풍이 불자 그것에 기대를 걸게 되었고 그2래서 배를 출항시켰고 급기야는 파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바울이 탄 배를 움직이게 할 최고의 권한은 백부장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가이샤라에 있는 베스도 총독을 대리하여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는 자로써 곳 권력의 대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나 정치가들 중에는 기회주 의자가 많이 있습니다. 조그만 태풍이 불어닥치면 곧 기가 죽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다가도 잠시만 순풍이 불면 득의한줄 알고 자기 세상인양 활개를 치는 것이 그들의 속셈입니다. 그들은 항상 '무엇이 옳으냐' 를 생각하는 것이 아 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로우냐' 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쫏아 신의도 저버리고, 약속도 저버리고, 이당 저당 으로 철새마냥 옮겨다닙니다. 파사나라의 왕후 에스더는 왕앞에 나갈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가 지고 나갔습니다. 이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죽음이 온다고 할지라도 기필코 하고야 말겠다는 신념과 결의에 찬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신념과 뜻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있겠습니까
바울을 호송하는 책임자 백부장은 순풍의 기회를 만나자 그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빨리 죄수를 로마까지 호송할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다분히 실적을 올리는데 급급한 것입니다. 그 결과 배는 여지없이 파선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바울을 싣고 가던 배가 왜 파선을 하였습니까 이는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선장의 기술적인 소리를 듣고, 선주의 돈의 소리를 듣고, 백부장의 권력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에게 3대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 돈, 권력은 지금도 우리 들을 매혹시키고 유혹 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의 한 방편은 될지 모르나 삶의 목적 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호송하는 배를 움직이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우상들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유라굴로 라는 태풍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토 록 의기양양하던 세상의 기술도, 선주가 자랑하는 돈도, 백부장의 권력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는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입니다. 본문 18절 말씀에 보면 사흘째 되는날 선장은 배의 모든 기구를 바다에 버려 야 했고, 선주 또한 배에 싣고 있는 화물을 바다에 버려야 했습니다. 백부장의 기백도 사라지고 "구원의 여망은 다 사라졌다" 고 탄식 하였습니다. 모두가 철저한 실패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제서야 바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21절 말씀,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 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즉 그제서야 배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게 되었던 것이며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나마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실패와 절망에 빠진 적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지식의 말, 돈의 말, 권력의 말을 더 듣고 의지할 때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소망과 새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습니다(딤후3:15) 그리고 승리하게 하는 성령님의 검이 있습니다(엡6:17) 사랑하는 창정교회 성도들이여!! 바울이 가야 할 지중해의 겨울바다와도 같이 춥고 먼 이 세상을 우리들은 지금 인생의 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항로에 언제 유라굴와 같은 광풍이 불어올지 모릅니다. 언제 환난의 바람과 시험의 파도가 몰려올지 모릅니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의 소리 듣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살아간다면 우리들의 인생항해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할 것을 분명이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들려오는 각종 유혹의 소리와 그럴듯한 환경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지혜있는 성도들은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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