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믿음 때문인가 (눅5:17-26)
본문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그분께로 나아가야 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보다 풍성한 삶을 위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한 사람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주님께로 나아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중풍병자였습니다(18절). 중풍병은 뇌출혈로 인한 신체의 마비 상태를 의미합니다. 경증일 경우에는 얼굴 근육이 틀어지거나 다리를 절뚝거리지만 중증일 경우에는 사망하거나 회복되더라도 반신불수가 됩니다. 그는 갈릴리 가버나움이나 인근 마을에 살았던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 전 가버나움에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며 각색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었는데(4:38-40) 그 때에는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중풍병자는 신체의 신경과 조직이 마비되어 감지하지 못합니다. 문둥병자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된 죄인에 비유될 수 있다면 중풍병자는 죄에 대한 인지 능력이 손상되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인지 능력이 마비되어 있는 죄인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중풍병자가 그러했듯이 대부분의 경우 근본 죄인인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 주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둘째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18절). 마가복음 2장 3절에 의하면 그가 누운 침상을 메고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이 네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환자와 어떤 관계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친지일 수도 있고 친척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중풍병자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중풍병자를 침상 채로 메어다가 예수님 앞에 내려놓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들이 예수님의 병 고치시는 능력을 확고하게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다시 가버나움에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 마음으로 그 중풍병자를 돕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고치실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예수님이 머무르시는 집에 도착했지만 먼저 몰려든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침상 채로 문으로 접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의견을 주고 받은 후에 외부 계단을 올라가서 예수님이 계시는 방의 지붕이라고 생각되는 곳의 기와를 벗겨내고 침상 채로 환자를 달아내렸습니다. 지붕을 뜯어낸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이 허술하게 지어졌다 하더라도 집안 사람들이 추위를 피하며 비바람을 피하도록 지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침상을 달아내릴 수 있게 지붕에 틈을 내었으니 그 집에 손상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집 주인의 사전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인이 노발대발하며 그들을 고소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행한 것입니다. 어떤 댓가라도 지불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각오였고 그 희생은 환자가 치유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좇아 불신자에게 전도할 때 이들의 자세와 희생과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그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20절). 20절에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 믿음”이란 누구의 믿음을 가리킵니까 네 사람의 믿음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침상 채로 데리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보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곧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앞서 문둥병자에게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13절). 이 구절은 산 자가,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죽어 연옥에 가 있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사람의 죄가 용서되어 천국으로 가게 된다는 천주교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 사람의 믿음이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풍병자가 죄 사함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의 믿음 때문에 죄인이 용서함 받는다는 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복음 시대를 맞이하여 제일 먼저 울려퍼졌던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침례 요한도 그 말씀을 선포했고 예수님도 선포하셨습니다. 회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회개치 않는 사람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신 적은 결단코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셨을 때 그분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도 보셨습니다. 성경에 언급은 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회개도 함께 있었다고 믿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랍비들의 영향을 받아 모든 육체적 질병은 특정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셨지만(요9:1-3) 이 중풍병자의 경우에는 죄로 인한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런 질병은 원인이 된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치유될 수 있기 때문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중풍병자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신체적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찬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서 회개하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면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질병 때문에 주일 예배를 폐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중풍병자가 어떻게 든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고침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첫째로, 그는 중풍병자였습니다(18절). 중풍병은 뇌출혈로 인한 신체의 마비 상태를 의미합니다. 경증일 경우에는 얼굴 근육이 틀어지거나 다리를 절뚝거리지만 중증일 경우에는 사망하거나 회복되더라도 반신불수가 됩니다. 그는 갈릴리 가버나움이나 인근 마을에 살았던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 전 가버나움에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며 각색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었는데(4:38-40) 그 때에는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중풍병자는 신체의 신경과 조직이 마비되어 감지하지 못합니다. 문둥병자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된 죄인에 비유될 수 있다면 중풍병자는 죄에 대한 인지 능력이 손상되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인지 능력이 마비되어 있는 죄인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중풍병자가 그러했듯이 대부분의 경우 근본 죄인인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 주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둘째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18절). 마가복음 2장 3절에 의하면 그가 누운 침상을 메고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이 네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환자와 어떤 관계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친지일 수도 있고 친척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중풍병자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중풍병자를 침상 채로 메어다가 예수님 앞에 내려놓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들이 예수님의 병 고치시는 능력을 확고하게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다시 가버나움에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 마음으로 그 중풍병자를 돕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고치실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예수님이 머무르시는 집에 도착했지만 먼저 몰려든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침상 채로 문으로 접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의견을 주고 받은 후에 외부 계단을 올라가서 예수님이 계시는 방의 지붕이라고 생각되는 곳의 기와를 벗겨내고 침상 채로 환자를 달아내렸습니다. 지붕을 뜯어낸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이 허술하게 지어졌다 하더라도 집안 사람들이 추위를 피하며 비바람을 피하도록 지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침상을 달아내릴 수 있게 지붕에 틈을 내었으니 그 집에 손상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집 주인의 사전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인이 노발대발하며 그들을 고소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행한 것입니다. 어떤 댓가라도 지불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각오였고 그 희생은 환자가 치유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좇아 불신자에게 전도할 때 이들의 자세와 희생과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그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20절). 20절에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 믿음”이란 누구의 믿음을 가리킵니까 네 사람의 믿음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침상 채로 데리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보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곧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앞서 문둥병자에게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13절). 이 구절은 산 자가,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죽어 연옥에 가 있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사람의 죄가 용서되어 천국으로 가게 된다는 천주교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 사람의 믿음이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풍병자가 죄 사함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의 믿음 때문에 죄인이 용서함 받는다는 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복음 시대를 맞이하여 제일 먼저 울려퍼졌던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침례 요한도 그 말씀을 선포했고 예수님도 선포하셨습니다. 회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회개치 않는 사람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신 적은 결단코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셨을 때 그분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도 보셨습니다. 성경에 언급은 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회개도 함께 있었다고 믿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랍비들의 영향을 받아 모든 육체적 질병은 특정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셨지만(요9:1-3) 이 중풍병자의 경우에는 죄로 인한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런 질병은 원인이 된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치유될 수 있기 때문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중풍병자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신체적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찬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서 회개하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면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질병 때문에 주일 예배를 폐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중풍병자가 어떻게 든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고침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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