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이 되라! (고전12:12-27)
본문
제가 지난 금요일 박영애 교우의 수술 때문에 경북대병원수술 실밖서 가족들과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수술 이 7시 정각에 끝났습니다. 5시간 동안 꼬박 기도를 했습니다. 5 시간 만에 수술중이라는 글자가 회복중으로 바뀌었습니다. 종합병원수술실 밖 가족 대기실에는 텔레비젼 크기의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화면에는 수술중, 회복중, 병실 이렇게 세 가 지 글자가 나옵니다. 이 세가지 글자에 가족들의 희비가 엇갈립니다. 수술실 풍경은 간절함 그 자체입니다. 온 가족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한 지체의 고통이 모든 지체의 고통으 로 연결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간절함의 정도 에 따라 가족의 촌수를 구별할 수 있겠더라고요. 어떤 가족은 여 섯명 정도가 수술실밖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가 수 술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딸, 사위, 이모, 고모 이런 분 들이 모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몇 시간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안절 부절 서성거립니다. 딸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위는 들락날락거립니다. 고모와 이모는 밖에 나가 커피도 뽑아 먹고 한 참 만에 나타나곤 합니다. 이게 간절함의 순서인 것 같아요. 사도행전에 보면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빌더라"(빌12:5)고 했습니다. 이 간절히 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 '간절히'를 '진지하게, 끈덕지게'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간절함의 기도를 '계속 흐르는 폭포 수 처럼 드리는 기도'(a continual stream of prayer)로 표현했습니다.
이 말을 종합하면, 진심어린 마음으로 악착같이 메달려 기도의 폭포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한 두 번 평안히 가라, 베부르 라, 고침을 받으라 이게 아닙니다. 내 문제 처럼, 내몸 처럼 그렇 게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부는 무촌이기 때문에 한 몸입니다. 자식은 내 분신이기 때문에 한 몸입니다. 내 팔이 부러졌다 물론 아픔을 현실적으로 느낍니다. 자식의 팔이 부러졌다 내가 아픈 것 보다 더 아픕니다. 이게 한 몸된 간절함입니다. 간절하면 한 몸입니다. 한 몸이면 간절해 집니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빌더라'의 간절입니다.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한 몸뚱아리가 아닙니다. 저희 교회에서 박영애 교우를 위해 두달 동안 중보 기도를 하 고, 한 주간 동안 아침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피도 한 방울 안 섞였는 데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안에 한 몸된 지체들이기 때 문입니다. 한 몸된 지체들의 간절함은 피를 뛰어 넘고 촌수를 뛰 어 넘습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그것을 보여 줍니다. 왜그렇 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우리를 대속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죽을 죄에서 살아난 자들의 감격 공동체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같은 자녀요,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몸 이요 우리는 그의 지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인들의 관계 를 몸에다 비유했습니다.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신비 한 관계를 '몸'이라는 간단한 말로 딱 표현을 합니다. 과연 '몸'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이토록 중요한 관계를 '몸'으로 표현을 했을까요 자 몸을 한 번 보십시다. 몸의 신비는 우주의 신비라고 합니다. 우리 몸을 소우주라고도 합니다. 말하자 면 거대한 우주가 거시우주의 세계라면, 몸은 미시 우주의 세계 입니다. 큰 것에도 우주의 비밀이 있고, 작은 것에도 우주의 비밀 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몸은 특히 큰 우주의 축소판 처럼 창조 의 완성작품으로서 신비가 많다는 것입니다. 21세기 인류 과학은 면역체계 조차 잘 밝혀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이즈의 원인을 이제 초보적인 수준에서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면역체계, 호르몬 체계, 기의 체계, 신경체계, 순환체계 수 많은 체계들로 서로 복 잡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체계를 구성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렇게 복잡한 체계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입니다. 창자가 성치 못한데 두통이 옵니다. 신장이 나쁜 데 손발 부음 현상이 오는 것입니다. 수많은 거미줄 같은 체계가 서로 하 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 몸은 사지백체(四肢百體)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지체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몸은 나무와 같고, 지체는 가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라고 요한복음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공동체(共同體,한몸틀)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공동체는 한 몸틀입니다. 한 몸은 한 중추신경에 의해 지배를 받 습니다. 기쁨의 자극이 오면 온 몸이 기뻐합니다. 입은 벌어지고 얼굴 근육은 펴지고 엔돌핀 호르몬이 나오고 몸전체 근육은 이완 됩니다. 고통의 자극이 오면 온 몸이 고통을 받습니다. 얼굴 근육 은 쪼그라들고, 얼굴색은 붉어지고, 이맛살은 찌그러지고 눈물은 흐르고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이것은 한 중추신경에 의해 움직이는 한 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따로 따로 놀면 딴 몸 입니다. 병든 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함께된 운명공동체입니다. 몸은 생체입니다. 살아있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몸에 피가 흐 르지 않으면 죽고 썩습니다. 살이 썩으면 도려내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살을 도려내면 고통으로 쇼크사를 할 정도로 아 픕니다. 이게 살아 있는 몸, 생체입니다. 이런 몸을 유기체라고도 합니다. 유기체는 조직체와 다르지요. 요즈음 구조조정을 하는 기 업이 많이 생겨납니다. 직원을 감원하거나 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감원이나 해고를 해도 회사는 살아남습니다. 오히려 건전해 진다고 합니다. 조직을 하나 잘라내도 전체 조직에는 크 게 지장이 없습니다. 한 사람 해고된다고 해서 전체 조직이 동요 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나 유기체는 다릅니다. 췌장이 없 으면 죽습니다. 눈이 없으면 전체 몸이 불구자가 됩니다. 교회가 조직체가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조직체가 되면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이 몸틀 즉 유기체입니다. 이렇듯 몸은 신비한 것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 교회를 이런 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교우와의 관계는 이런 몸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감각과 이런 센스와 이런 무게를 가지고 이제 오늘 본문 한 몸이 되라는 12장의 말씀을 받아들입시다. 물론 오늘의 본문은 몸과 지체의 비유입니다. 특히 12장은 은사 의 장입니다.
그런데 이 은사가 단순히 은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 라, 몸을 세우기 위한 은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는 다 중요하 고 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 합니다. 그래서 은사는 다 지체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그런즉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지체된 그리스도의 몸들에게는 사랑이 최우선의 가치라는 것 이 해하시겠지요 은사의 빼어남이 문제가 아닙니다. 능력의 세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지체로서의 사랑, 피가 흐르는 사랑, 한 몸된 사랑이 없으면 다 울리는 괭가리가 된 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은사에 대한 사용 규칙 으로서 "덕 세움"을 제시합니다. 어떤 은사든지 지체된 몸들은 다른 지체를 세우고 섬기는 것에 존재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 까지는 한 가지 맥락으로 통일 되어 있습니다. 바로 '몸'에 대한 개념으로 은사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교회를 몸으로 자주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5) 우리 예수님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 생명을 공급받고 영양을 공급받습니다. 몸에는 상행선과 하행선이 있습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어서 머리의 모든 신경이 집중이 되고 머리는 또 신경과 자극 의 정보를 보아 종합해서 각 사지백체에 전달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행선과 하행선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령 한 몸에도 상행선 하행선이 있습니다. 상행선은 우리 지체가 주 님께로 가는 것이고, 하행선은 주님의 것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행선은 어떤 것입니까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 평화, 능력, 지성이 우리 지체에게로 내려옵니다. 우리 지체는 이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 급함을 얻고"(골2:19) 하행선입니다. 또 우리 지체들은 중추신경 의 모든 명령과 응답을 받아 실행해 움직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명령을 받아 응답하고 반응하고 실천 합니다. 지체가 모여 교회를 이루고 몸이신 그리스도를 이룹니다. 그리스도 몸의 상행선은 어떤 것입니까 지체의 자극과 반응은 모두 머리로 올라갑니다. 우리 한 지체의 고통과 절망 아픔과 고 뇌는 다 머리로 전달 됩니다. 한 지체의 기쁨과 희망, 환희와 승 리는 모두 중추신견인 머리로 올라 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과 기쁨, 절망과 희망은 고스란이 중추신경 인 우리 주님에게로 전달 됩니다. 신비한 몸의 상행선입니다. 이렇게 신령한 몸은 상행선 하행선으로 서로 얽혀 있습니다. 지 체는 몸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체가 바로 몸 자체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을 이용하고 부리고 대상화하 고 동원화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을 교회성장의 대상, 물량 동원 의 대상, 복음세일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복음증거는 몸된 지체의 자체적 활동이어야지 무엇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조직체는 조직원을 동원의 대상으로 행정처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몸은 지체가 곧 몸이라는 것입니다. 목자는 한 지체를 위해 존재합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자체로 서 교회입니다. 이 사실을 엄중히 했으면 좋겠어요. 또한 지체는 다른 한 지체로 이루어 집니다. 입은 눈으로 인해 완전해지고, 창 자는 위로 인해 온전해 집니다. 그러니까 교인 한 사람은 다른 교우를 위해 존재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지체론입니다. 지체론 의 핵심은 '서로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아주 소중 한 진리입니다. 훼손당해서는 안되는 절대 진리입니다. 꼭 기억하 실 일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은사를 몸과 지체의 비유로 설명을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0-13)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 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 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여기서 '자라게 하며 세우느니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지체의 제 일의 목적은 몸을 자라게 하고 다른 지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 것이 성숙한 지체의 활발한 활동입니다. 한 지체는 다른 지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활동합니다. 다른 지 체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영광스럽게 하여 몸을 섬깁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은 가까워져야 됩니다. 평소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평소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니, 날마다 집집 마다 모여 떡을 떼며 모였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여 참양 하고 기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거 기서 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지체는 그리스도의 신경줄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교제를 활성화 해야 이 신 견줄이 더 민감해 집니다. 기쁜일이 있으면 아무리 조그만 것이 라도 건수를 만들어서 초청하고 크게 벌려 보세요. 그리스도 안 에서 기쁨이 더 커집니다. 아무리 조그마한 어려움이라도 자존심 세우지 말로 형제들에게 내어 놓아 보세요. 고통과 어려움이 절 반으로 줄어 듭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 예 없어 지기도 합니다. 온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벌떼 처럼 달 려들어 간절히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조건 가까워야합니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도 해야 하겠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까워 져야 되겠지요. 그 다음은 성령님충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공동체가 참다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사도행전 2 장의 초대 교회 공동체가 그걸 증명합니다. 성령님이 참다운 친교 를 하게 합니다. 성령님이 있는 재산을 팔아 나누게합니다. 진정한 나눔과 친교는 성령님의 역사로만 일어 납니다.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십니다. 믿음의 아들 딸들을 진정으로 하나로 묶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충만하면 성령님이 이미 하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강화하고 행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면 되면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우선은 주님의 공급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상행선, 하행선 잘 아시지요 주님의 영광, 평화, 능력, 지성이 우리 지체에게로 내 려옵니다. 우리 지체는 이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골로 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 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골2:19) 하행선입니다. 주님의 공급은 우리 몸에게로 옵니다. 몸이 아니면 공급이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요15:4)고 합니다.
주님의 영광, 그의 능력, 그의 지성, 그의 판단, 그의 크심이 다 우리에게로 공급되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공급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된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무너 뜨릴 수 없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 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요15:5)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는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 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 하시겠느 뇨"(롬8:31)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7)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담대한 자들입니다. 우리 이것 아 시지요 박영애 교우 수술후에 의사 선생님이 첫 회진을 돌면서 하는 말 이 너무 너무 어려운 수술을 했는 데, 그나마 수술이 잘 된 것을 보니 천운을 타고 났다고 했습니다. 글세요, 그분이 보기에는 '천 운'이겠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백하기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우리는 이 천운 같은 일을 매일 받고 삽니다! 우리는 날 마다 기적을 밟으며 살지요. 또 우리는 고백합니다. '사나 죽으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이것 '신 막가파'입니다. 두려울게 없어요. 고쳐주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 목숨을 가둬가셔도, 건강하게 해주 셔도, 그 어느 것도 우리는 하나님의 최선이라고 믿고 맡깁니다. 이게 고상하고 큰 믿음입니다. 이런 산 같은 바른 믿음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겠어요 주님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두 번째 축복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자들은 살아있는 천국을 경험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사랑, 희망, 세움, 평등, 희망, 환희 이런 천국의 것들을 땅에서 도 경험하고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천국일 수 있습니다. 거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체들의 활동 가운데 가 장 활발한 것이 바로 지체간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통 공동체 기쁨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어떤 조직이 만들어 내기에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흉내낼 수는 있지만 똑 같 이 만들 수는 없습니다. 질적인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천국을 경험한 자들이 만드는 천국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경험자 만이 천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천국을 만들기 전에 먼저 천국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을 맛본 자는 천국을 경험한 자입니다. 어떻게 사랑의 몸된 공동체 가 될 수 있습니까 먼저 그리스도의 엄청난 감격의 사랑을 경험 한 자 만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피가 흐 르고 인정이 흐르고 사랑이 흐르는 천국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 니까 그리스도의 피묻은 사랑과 구속의 감격을 맛본 자 만이 가 능합니다. 이단 폭포 아시지요 위의 폭포가 넘쳐 흘려야 아래 폭포로 흘러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감격의 상단 폭포가 쏟아 부어져야 우리의 몸된 이웃 사랑의 하단 폭포수가 흘러 내 릴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경험한 자들이 만드는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를 통해 천국을 경험하는 것이지요. 조직의 세상, 비정한 세상, 이기적인 세상, 살맛이 어디 에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원색적인 사랑이 흐르고, 그리스도의 피묻은 인정이 흐르고, 구속받은 감격과 빚진자의 눈물이 흐르는 공동체는 그 자체가 바로 천국입니다. 그냥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냥 되는 것 아닙니다. 성령님충만을 유지하고 활용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공동체 입니다. 천국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된 사랑의 공동체를 통해 슬 픔도 묻고 고통도 묻고 아픔도 치유받고 눈물도 씻기시기를 바랍니다. 기쁨은 더 크게 퍼지고 좋은 일은 가슴 깊이에서 함께 즐 거워하는, 대책 없이 순수한 공동체가 되십시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누리며 사는 일입니다. 이런 축복이 매일 매 현장의 삶에서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을 종합하면, 진심어린 마음으로 악착같이 메달려 기도의 폭포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한 두 번 평안히 가라, 베부르 라, 고침을 받으라 이게 아닙니다. 내 문제 처럼, 내몸 처럼 그렇 게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부는 무촌이기 때문에 한 몸입니다. 자식은 내 분신이기 때문에 한 몸입니다. 내 팔이 부러졌다 물론 아픔을 현실적으로 느낍니다. 자식의 팔이 부러졌다 내가 아픈 것 보다 더 아픕니다. 이게 한 몸된 간절함입니다. 간절하면 한 몸입니다. 한 몸이면 간절해 집니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빌더라'의 간절입니다.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한 몸뚱아리가 아닙니다. 저희 교회에서 박영애 교우를 위해 두달 동안 중보 기도를 하 고, 한 주간 동안 아침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피도 한 방울 안 섞였는 데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안에 한 몸된 지체들이기 때 문입니다. 한 몸된 지체들의 간절함은 피를 뛰어 넘고 촌수를 뛰 어 넘습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그것을 보여 줍니다. 왜그렇 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우리를 대속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죽을 죄에서 살아난 자들의 감격 공동체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같은 자녀요,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몸 이요 우리는 그의 지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인들의 관계 를 몸에다 비유했습니다.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신비 한 관계를 '몸'이라는 간단한 말로 딱 표현을 합니다. 과연 '몸'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이토록 중요한 관계를 '몸'으로 표현을 했을까요 자 몸을 한 번 보십시다. 몸의 신비는 우주의 신비라고 합니다. 우리 몸을 소우주라고도 합니다. 말하자 면 거대한 우주가 거시우주의 세계라면, 몸은 미시 우주의 세계 입니다. 큰 것에도 우주의 비밀이 있고, 작은 것에도 우주의 비밀 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몸은 특히 큰 우주의 축소판 처럼 창조 의 완성작품으로서 신비가 많다는 것입니다. 21세기 인류 과학은 면역체계 조차 잘 밝혀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이즈의 원인을 이제 초보적인 수준에서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면역체계, 호르몬 체계, 기의 체계, 신경체계, 순환체계 수 많은 체계들로 서로 복 잡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체계를 구성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렇게 복잡한 체계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입니다. 창자가 성치 못한데 두통이 옵니다. 신장이 나쁜 데 손발 부음 현상이 오는 것입니다. 수많은 거미줄 같은 체계가 서로 하 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 몸은 사지백체(四肢百體)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지체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몸은 나무와 같고, 지체는 가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라고 요한복음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공동체(共同體,한몸틀)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공동체는 한 몸틀입니다. 한 몸은 한 중추신경에 의해 지배를 받 습니다. 기쁨의 자극이 오면 온 몸이 기뻐합니다. 입은 벌어지고 얼굴 근육은 펴지고 엔돌핀 호르몬이 나오고 몸전체 근육은 이완 됩니다. 고통의 자극이 오면 온 몸이 고통을 받습니다. 얼굴 근육 은 쪼그라들고, 얼굴색은 붉어지고, 이맛살은 찌그러지고 눈물은 흐르고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이것은 한 중추신경에 의해 움직이는 한 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따로 따로 놀면 딴 몸 입니다. 병든 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함께된 운명공동체입니다. 몸은 생체입니다. 살아있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몸에 피가 흐 르지 않으면 죽고 썩습니다. 살이 썩으면 도려내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살을 도려내면 고통으로 쇼크사를 할 정도로 아 픕니다. 이게 살아 있는 몸, 생체입니다. 이런 몸을 유기체라고도 합니다. 유기체는 조직체와 다르지요. 요즈음 구조조정을 하는 기 업이 많이 생겨납니다. 직원을 감원하거나 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감원이나 해고를 해도 회사는 살아남습니다. 오히려 건전해 진다고 합니다. 조직을 하나 잘라내도 전체 조직에는 크 게 지장이 없습니다. 한 사람 해고된다고 해서 전체 조직이 동요 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나 유기체는 다릅니다. 췌장이 없 으면 죽습니다. 눈이 없으면 전체 몸이 불구자가 됩니다. 교회가 조직체가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조직체가 되면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이 몸틀 즉 유기체입니다. 이렇듯 몸은 신비한 것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 교회를 이런 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교우와의 관계는 이런 몸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감각과 이런 센스와 이런 무게를 가지고 이제 오늘 본문 한 몸이 되라는 12장의 말씀을 받아들입시다. 물론 오늘의 본문은 몸과 지체의 비유입니다. 특히 12장은 은사 의 장입니다.
그런데 이 은사가 단순히 은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 라, 몸을 세우기 위한 은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는 다 중요하 고 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 합니다. 그래서 은사는 다 지체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그런즉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지체된 그리스도의 몸들에게는 사랑이 최우선의 가치라는 것 이 해하시겠지요 은사의 빼어남이 문제가 아닙니다. 능력의 세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지체로서의 사랑, 피가 흐르는 사랑, 한 몸된 사랑이 없으면 다 울리는 괭가리가 된 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은사에 대한 사용 규칙 으로서 "덕 세움"을 제시합니다. 어떤 은사든지 지체된 몸들은 다른 지체를 세우고 섬기는 것에 존재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 까지는 한 가지 맥락으로 통일 되어 있습니다. 바로 '몸'에 대한 개념으로 은사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교회를 몸으로 자주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5) 우리 예수님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 생명을 공급받고 영양을 공급받습니다. 몸에는 상행선과 하행선이 있습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어서 머리의 모든 신경이 집중이 되고 머리는 또 신경과 자극 의 정보를 보아 종합해서 각 사지백체에 전달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행선과 하행선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령 한 몸에도 상행선 하행선이 있습니다. 상행선은 우리 지체가 주 님께로 가는 것이고, 하행선은 주님의 것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행선은 어떤 것입니까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 평화, 능력, 지성이 우리 지체에게로 내려옵니다. 우리 지체는 이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 급함을 얻고"(골2:19) 하행선입니다. 또 우리 지체들은 중추신경 의 모든 명령과 응답을 받아 실행해 움직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명령을 받아 응답하고 반응하고 실천 합니다. 지체가 모여 교회를 이루고 몸이신 그리스도를 이룹니다. 그리스도 몸의 상행선은 어떤 것입니까 지체의 자극과 반응은 모두 머리로 올라갑니다. 우리 한 지체의 고통과 절망 아픔과 고 뇌는 다 머리로 전달 됩니다. 한 지체의 기쁨과 희망, 환희와 승 리는 모두 중추신견인 머리로 올라 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과 기쁨, 절망과 희망은 고스란이 중추신경 인 우리 주님에게로 전달 됩니다. 신비한 몸의 상행선입니다. 이렇게 신령한 몸은 상행선 하행선으로 서로 얽혀 있습니다. 지 체는 몸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체가 바로 몸 자체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을 이용하고 부리고 대상화하 고 동원화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을 교회성장의 대상, 물량 동원 의 대상, 복음세일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복음증거는 몸된 지체의 자체적 활동이어야지 무엇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조직체는 조직원을 동원의 대상으로 행정처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몸은 지체가 곧 몸이라는 것입니다. 목자는 한 지체를 위해 존재합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자체로 서 교회입니다. 이 사실을 엄중히 했으면 좋겠어요. 또한 지체는 다른 한 지체로 이루어 집니다. 입은 눈으로 인해 완전해지고, 창 자는 위로 인해 온전해 집니다. 그러니까 교인 한 사람은 다른 교우를 위해 존재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지체론입니다. 지체론 의 핵심은 '서로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아주 소중 한 진리입니다. 훼손당해서는 안되는 절대 진리입니다. 꼭 기억하 실 일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은사를 몸과 지체의 비유로 설명을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0-13)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 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 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여기서 '자라게 하며 세우느니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지체의 제 일의 목적은 몸을 자라게 하고 다른 지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 것이 성숙한 지체의 활발한 활동입니다. 한 지체는 다른 지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활동합니다. 다른 지 체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영광스럽게 하여 몸을 섬깁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은 가까워져야 됩니다. 평소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평소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니, 날마다 집집 마다 모여 떡을 떼며 모였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여 참양 하고 기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거 기서 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지체는 그리스도의 신경줄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교제를 활성화 해야 이 신 견줄이 더 민감해 집니다. 기쁜일이 있으면 아무리 조그만 것이 라도 건수를 만들어서 초청하고 크게 벌려 보세요. 그리스도 안 에서 기쁨이 더 커집니다. 아무리 조그마한 어려움이라도 자존심 세우지 말로 형제들에게 내어 놓아 보세요. 고통과 어려움이 절 반으로 줄어 듭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 예 없어 지기도 합니다. 온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벌떼 처럼 달 려들어 간절히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조건 가까워야합니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도 해야 하겠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까워 져야 되겠지요. 그 다음은 성령님충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공동체가 참다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사도행전 2 장의 초대 교회 공동체가 그걸 증명합니다. 성령님이 참다운 친교 를 하게 합니다. 성령님이 있는 재산을 팔아 나누게합니다. 진정한 나눔과 친교는 성령님의 역사로만 일어 납니다.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십니다. 믿음의 아들 딸들을 진정으로 하나로 묶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충만하면 성령님이 이미 하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강화하고 행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면 되면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우선은 주님의 공급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상행선, 하행선 잘 아시지요 주님의 영광, 평화, 능력, 지성이 우리 지체에게로 내 려옵니다. 우리 지체는 이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골로 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 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골2:19) 하행선입니다. 주님의 공급은 우리 몸에게로 옵니다. 몸이 아니면 공급이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요15:4)고 합니다.
주님의 영광, 그의 능력, 그의 지성, 그의 판단, 그의 크심이 다 우리에게로 공급되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공급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된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무너 뜨릴 수 없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 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요15:5)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는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 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 하시겠느 뇨"(롬8:31)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7)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담대한 자들입니다. 우리 이것 아 시지요 박영애 교우 수술후에 의사 선생님이 첫 회진을 돌면서 하는 말 이 너무 너무 어려운 수술을 했는 데, 그나마 수술이 잘 된 것을 보니 천운을 타고 났다고 했습니다. 글세요, 그분이 보기에는 '천 운'이겠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백하기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우리는 이 천운 같은 일을 매일 받고 삽니다! 우리는 날 마다 기적을 밟으며 살지요. 또 우리는 고백합니다. '사나 죽으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이것 '신 막가파'입니다. 두려울게 없어요. 고쳐주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 목숨을 가둬가셔도, 건강하게 해주 셔도, 그 어느 것도 우리는 하나님의 최선이라고 믿고 맡깁니다. 이게 고상하고 큰 믿음입니다. 이런 산 같은 바른 믿음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겠어요 주님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두 번째 축복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자들은 살아있는 천국을 경험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사랑, 희망, 세움, 평등, 희망, 환희 이런 천국의 것들을 땅에서 도 경험하고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천국일 수 있습니다. 거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체들의 활동 가운데 가 장 활발한 것이 바로 지체간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통 공동체 기쁨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어떤 조직이 만들어 내기에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흉내낼 수는 있지만 똑 같 이 만들 수는 없습니다. 질적인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천국을 경험한 자들이 만드는 천국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경험자 만이 천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천국을 만들기 전에 먼저 천국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을 맛본 자는 천국을 경험한 자입니다. 어떻게 사랑의 몸된 공동체 가 될 수 있습니까 먼저 그리스도의 엄청난 감격의 사랑을 경험 한 자 만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피가 흐 르고 인정이 흐르고 사랑이 흐르는 천국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 니까 그리스도의 피묻은 사랑과 구속의 감격을 맛본 자 만이 가 능합니다. 이단 폭포 아시지요 위의 폭포가 넘쳐 흘려야 아래 폭포로 흘러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감격의 상단 폭포가 쏟아 부어져야 우리의 몸된 이웃 사랑의 하단 폭포수가 흘러 내 릴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경험한 자들이 만드는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를 통해 천국을 경험하는 것이지요. 조직의 세상, 비정한 세상, 이기적인 세상, 살맛이 어디 에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원색적인 사랑이 흐르고, 그리스도의 피묻은 인정이 흐르고, 구속받은 감격과 빚진자의 눈물이 흐르는 공동체는 그 자체가 바로 천국입니다. 그냥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냥 되는 것 아닙니다. 성령님충만을 유지하고 활용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공동체 입니다. 천국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된 사랑의 공동체를 통해 슬 픔도 묻고 고통도 묻고 아픔도 치유받고 눈물도 씻기시기를 바랍니다. 기쁨은 더 크게 퍼지고 좋은 일은 가슴 깊이에서 함께 즐 거워하는, 대책 없이 순수한 공동체가 되십시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누리며 사는 일입니다. 이런 축복이 매일 매 현장의 삶에서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