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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의 원리 (고전12:1-31)

본문

1. 초대 교회의 특색은 강렬한 성령님의 역사(役事)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거기에는 참된 것들도 있었던 반면 거짓된 것 들도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자칭 성령님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이 많았는데 이들 중 어떤 이들은 흥분과 망상에 빠져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교회 분열을 조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어 떠한 영적 은사가 더 중요한가 누가 더 우위에 있는 은사자(恩賜者, 은사받은 사람)인가" 등의 은사 문제로 영적 우월주의의 교만과 분파 주의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저마다 참된 영을 가졌다고 주장하지만 성령님 과 거짓 영을 구분하는 기준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 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는 영이 참 영이고 그렇지 않은 영 은 악령이요 거짓영이며 우상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각양 은사들의 나타남이 과연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 이것보다 더 신령한 것 이 없고, 어떤 신령한 은사와 아무리 큰 능력과 놀라운 은사를 가진 것 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를 믿는 것과 대등하거나, 그것보다 큰 것은 없 다는 것이 본문의 가장 중요한 초점인 것입니다. 먼저 은사에 대한 개념부터 바르게 해야만 합니다. "(롬1: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 리라 (롬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 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 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위 성구들에서 나타난 "신령한 은사", "하나님의 은사" 등은 모두 성령의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사하면 방언, 신유, 예언 등을 먼저 생각하지만 "신령한 은사",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믿고 구원받 은 그 자체를 말합니다. 예수를 자신의 주님, 메시야 즉 구세주로 마음 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하여 구원받은 것을 "신령한 은사", "하나님의 은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아 영생을 얻었으면 바로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은사는 어떤 특수한 계층의 사람만이 누 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예언하고 방언하며 영들을 분별하는 것만 은사를 가졌다고 말하지 않고 남을 남을 긍휼히 여기며 섬기고 구제하는 것도 은사를 가졌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롬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 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롬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 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롬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내가 가진 은사는 아무나 가지지 않은 특수한 것이고 누가 가진 것은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것이어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고 그야말 로 교회를 파괴하는 악령의 역사입니다. 눈(영 분별의 은사)이라고 해서 발바닥(남을 섬기고 구제하는 은사)을 멸시할 수 있습니까 두 눈만 붙 어있고 발바닥이 없는 반병신이 고급한 인간입니까 몇 가지 받은 은 사를 가지고 은사운동이나 은사집회 등을 하면서 영적 우월주의나 분 파주의에 빠지는 것은 정면으로 성령님의 참 뜻을 거스리는 것들입니다. 은사운동이나 은사집회 등은 더 열심히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사랑 하므로 교회에 덕을 세우고, 더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사는 생활을 보 여주며, 보다 더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는 의 미에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은사의 뜻은 구원받은 것 을 말합니다. 이는 은사의 방향과 목적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님은 목회 초기에 묘하게도 기도하기만 하면 병이 낫는 신유의 은사를 가지시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지나다 보니까 점점 소문이 났습니다. 이 목사님이 직접 가서 기도를 하면 정 말로 낫는 것입니다. 당장이 아니라 며칠 있다가 다 낫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하나님께 그 은사를 거두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왜냐 목회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문을 듣고 누구나 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를 알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병을 고치기 위 하여 달라는 대로 다 줄테니까 내 딸을 고쳐 주시고, 내 아내를 고쳐달 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완전히 병원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기도하여 그 은사를 반납했습니다. "하나님, 저 이거 싫습니다. 저는 말씀을 맡은 종입니다. 저들의 영혼 을 치료하도록 말씀을 맡겨 주셨는데 이 일로 인하여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은사의 사용 목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목표는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되어가는 데 있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신의 성품을 이루어나가는 데 은사의 목적과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신의 성품을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넉넉하게 들 어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 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벧후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1:6) 지식에 절 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벧후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 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 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벧후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 리라." 신의 성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은사의 목표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이 룩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 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성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사는 이 기록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분명하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성경에 있는 계시보다 더 나을 것이 하나도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 을 하나님께서 직접 다시 한번 말씀해주신다면 우리에게 더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더 붙여질 것은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가감할 필요가 전혀 없는 가장 확실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전4:6) 형제들아.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 게 하려 함이라 (고전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 이 자랑하느뇨."
그러므로 백부장의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 겠삽나이다." 백부장은 은사가 없었어도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라는 믿음으 로 자기 하인이 병고침을 받게 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와 그에 따른 직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전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님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님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님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 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롬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 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롬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 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롬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 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위에 열거한 은사와 그에 따른 직분들은 모두가 다 먼저 교회의 유 익과 덕을 위하여, 교회 봉사를 위하여(섬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교회 성장과 복음 전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 확장), 신자가 그리스도의 장 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기 위하여(신의 성품) 하나님의 뜻대로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허락하신 이유를 확실하게 알 아야 합니다. 은사를 주신 목적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바로 분명히 알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게 되므로 자신의 신앙에 더 구체적으로 도우심을 받도록하기 위해서 은사는 허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이 은사를 주셨다고 해서 방자하게 행동하거나 나를 분리시켜 계급화한다면 그것은 은사의 목적이 분명히 아니라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은사를 사모할 때 그 은사가 주님을 닮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은사는 구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하나이 십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하나, 믿음도 세례도 하나입니다.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은 하나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고전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님은 같고 (고전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고전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나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신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보 다 더 높거나 다른 신이 아니라 동일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그 은사들을 베푸시는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목적하는 바는 은사의 다양함을 열거하려는데 있는 것 이 아니라 바로 그 다양한 은사의 역사 속에 교회가 성령님으로 하나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은사충만, 성령님충만은 모두 교회에 덕을 세우며 유익함을 주어야 합니다. 이는 또한 우리 신앙의 진보와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모든 신자로 하여금 유익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은사는 자기의 영성이 얼마나 깊고, 하나님과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관 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의 다양성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아 니라 그 은사들이 교회의 덕과 유익을 위해서 어떻게 다양하게 쓰여지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교회장(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몸에 비유하면서 그 은사들을 몸에 붙어있는 다양한 지체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 몸을 보면, 여러 지체가운데 눈에 보이는 지체가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지체도 있습니다. 보이는 지체보다 오히려 몸 속에 들어있 어 보이지 않는 지체가 더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덜 귀한 것 이 결코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은사라고 해서 천한 것이고 남의 눈 에 잘 보인다고해서 더 고급한 은사가 결코 아닙니다. 나타나는 은사만 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구제는 참으로 귀한 은사인 것입니다. 모든 은사와 직임은 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소중하고 귀한 것들입니다.
3. 은사와 직분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그것들을 사용하여 하나님 과 이웃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 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 전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 하는 자겠느냐 (고전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 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첫째가 사도라고 해서 사도가 선지자보다 높고 교사보다 높다는 것 이 아닙니다. 이들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봉사의 직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도 사명이라고 해서, 선지자 사명이라고 해서 일반 성도보다 그 가 더 자질이 뛰어나거나 인격이 월등하다거나 하나님이 더 사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은사 와 직분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특별히 사랑하고 특권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들 직분과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를 세우며, 그 교회에 덕 을 세우고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하는데 목적 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은사와 사명을 받은 사람은 이웃과 성도를 유익케 하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 봉사할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모든 직분과 은사의 기본적인 원리는 섬기라는 것입니다.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 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 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고전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고전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섬기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고전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라고 했습니다. 사랑이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이웃과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것 이 사랑이며 신앙의 본질입니다. 사랑으로 남을 섬기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몸소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빌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 을 품어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 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 만케 하라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 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므로 은사와 직임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입 니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 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종의 형체를 입고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 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일류 대학에 합격해야 하고, 남편이 승 승장구 승진해야 하고, 사업이 일취월장 번성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그렇다면 일찍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돌들을 들어 떡덩이가 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서 사뿐이 뛰어내려 능력을 나타내셨을 것이며, 마귀에게 경배하여 천하만 국과 영광을 받아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경제적 성공을 통해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나타나는 능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능력 종교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권세와 권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의 형체를 입고 남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섬김의 종교입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창시자인 아씨시의 프란체스코는 멋쟁이 귀공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가족을 버리고 나병환자 들의 친구가 되었으며 사도적(使徒的) 빈궁과 전도를 생활의 이상으로 삼고 실행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연을 가까이 하고 자연을 사랑했 으며 그 속에서 신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어느날 많은 명문가의 처녀 들이 모인 무도회에 그가 참석했을 때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프란체스코! 머지않아 자네는 저 미인들 중에서 한 여자를 선택하겠지"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미 훨씬 더 아름다운 것을 골라놓았다네!" 친구가 다그쳐 물었습니다. "아니, 그 미인이 누구란 말인가"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바로 가난이라네!" 프란체스코는 가난한 자를 섬기기 위해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 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 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 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철두철미하게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 종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는 똑같은 두 신자가 있는데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 중 둘 의 신앙이 똑같으면 누가 주를 위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습니까 아 마 서슴없이 똑같은 신앙이라면 기왕이면 돈 많은 쪽이 낫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큼 큰 시험이 없습니다. 모든 일이 돈으로 된 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신앙의 기본 원리인 것입니다. 똑같은 신앙인인데 왜 누구는 돈을 주고 누구는 가난하게 하는가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는 돈을 책임으로 주셨고 한 사람에게는 가난을 책임으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은 똑같이 하나님에게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무엇으로 쓰시는가는 하나님의 권리이고 하나님의 권위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충성뿐입니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은사와 직분을 받은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시고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하나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교회 에 덕을 세워 교회가 유익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 하는 여러분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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