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달려가고 있습니까? (고전9:23-27,신274)
본문
지금은 처서도 지나고 기온도 확실하게 가을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름동안 우리의 시간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보내셨습니까 다시 분 발해서 가을을 맞아야 할 것이다. 여름 동안 구역예배와 성경공부와 다른 훈련 도 방학을 했기 때문에 긴장이 풀렸을 것이고 수련회를 통해 받은 은혜도 여름 더위가 발산한 듯 열기가 식은 것 같습니다. 신앙은 방학 없이 계속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달려가기를 멈춘다면 자전거처럼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신앙을 당시 인기가 있었던 마라톤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계속 달려가고 있습니까" 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달려간다는 은 신앙의 경주를 말합니다. "계속 달려가고 있습니까" 이 질문 은 사도 바울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던지는 간접적인 질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신이 자신에게 "계속 달려가고 있는가" 물어 봐야 할 질문입니다.
첫째, 신앙의 경주는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마라톤 경주에 출전한 선수처럼 신앙의 경주를 경주하라고 합니다. 다같이 9:23-24 을 읽겠습니다. (고전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마라톤 경기의 유래를 남긴 마라톤 평야는 아테네(Athens) 에서 동쪽으로 4
2.195 km 떨어진 지점에 있습니다. 주전 490년 페르시아, 다리오(다레이오)왕 이 다티스 장군 휘하에 전함 600척 보병 10만명 기병 1만 명의 대군으로 아테 네(아덴)을 치기 위해 마라톤 평야에 진을 쳤던 것입니다. 마라톤 평야는 불과 314 평방 Km 되는 작은 평야로서 동쪽이 바다이고 삼면은 산으로 둘러 있는 평야입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원군을 청하기 위해서 당시 올림피아경기의 경주선수이었던 페이디피데즈를 보내서 원군을 청했습니다. 페이디피데스는 241 km를 36시간(고속도로로 부산-금강 250Km) 달려갔지만 스파르타는 만월 전에는 출전하지 않는다는 미신을 믿고 출전을 거부했습니다. 한편 아테네는 용감한 밀티아데스 장군의 지휘로 불과 1만 명의 장갑 병을 가지고 지형을 이용하여 페르시아의 대군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스파르타의 원군을 얻 지 못한 페이디피데스는 마라톤 평야의 전투에서 아테네 군이 승리를 거두자 한시라도 빨리 승전 소식을 아테네 시민에게 전하고자 달려가서 "기뻐하라, 승 리는 우리에게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 유래에서 마 라톤 경기는 4
2.195 Km 를 달립니다. 아테네서 이웃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마 라톤 경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터라 사도 바울은 마라톤 달리기를 신앙의 교훈을 삼아서 지금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군중 앞에서 달려가는 선수입니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 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 주하며 히 11장에 이름이 나타난 16명 외에 수 없이 많은 증인들 앞에서 계속 달 려 자고 합니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 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마라톤이 쉬지 말고 달려가야 하는 경주인 것과 같이 신앙의 경주도 쉬지 말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계속 달려간다는 말은 신앙의 발전과 신앙의 성장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을 계속 진보시켜야 합니다.
둘째, 달려가는 목표를 놓치지 않았습니까
1. 운동선수의 목적지는 골인점입니다. 운동경기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신앙에도 확실한 목표가 있습니다. 다같이 9:26을 일겠습니다. (고전 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아직 그 골인 점을 도달하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오직 목표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경기에서 처음에 출발이 좋고 선두를 지키는 것도 좋지마는 골인 점에서 뒤 처지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골인 점까지 한 순간도 방심하면 안됩니다. 어떤 선수는 달려가면서 계속 옆 사람을 의식하거나 뒤를 돌아보다가 우승의 기화를 놓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도 골인 점에서 결판이 납니다.
2. 신앙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 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예수님은 인생 경주의 푯대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은 결코 목표를 잘못 정하는 일이 없습니다. 다시 목적을 점검해 보십시오.
3. 우리의 최종 목표는 상 받는 것입니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세상에 1등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올림픽에서는 오직 금메달뿐입니다. 은메 달이 아무리 낳아도, 100개라도 금메달 하나를 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다 금메달이 될 수 있고 2등도 아름답습니다. 하늘 나라서는 꼴찌도 아 름답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달려가는 중에 목표를 놓치고 달려가던 길을 중단한 일은 없 습니까 한번 낙오되면 본래의 위치를 회복하기 힘듭니다. 신앙의 경주를 중단 하고 있는 여러분! 그 자리에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그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십 시오.
셋째, 절제를 잘하고 있습니까 다같이 9:25을 읽겠습니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1. 절제는 자기 성품을 잘 조절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성품을 주님께 맞추 도록 조절하는 사람입니다. 절제를 영어로는 self control 라고 합니다. 자기 성 품을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통제할 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자기 성품을 조절을 못하는 사람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과 같습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시간 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엡 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돈을 낭비하는 것보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더 나쁩니다. 돈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깝지만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은 돈보다 더 아깝게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할 일이 많은데 빨리 가야 되겠다는 유혹을 받은 일을 없습니까 헛 된 생각은 마귀가 우리로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바쁘기 때문에 더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십시오. 성경 읽다가 피곤해서 못 읽겠다고 생각한 일 은 없습니까 피곤하기 때문에 더 말씀을 읽어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이 좋은 일을 위하여 계속 달려가십시오.
2. NIV는 엄한 훈련을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9:25)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goes into strict training. 자기 훈련에 엄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훈련에 너무 인색합니다. 훈련시 키는 사람이나 훈련받는 사람이 함께 힘들지만 엄하게 훈련해야 합니다. 이런 엄한 훈련이 경쟁에서 이기게 되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합니다.
3. 기독교의 절제운동은 담배 술을 삼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도 담배를 못 끊은 성도가 있습니까 아직도 술을 못 끊은 사람이 있 습니까 구주를 믿는다면서 이것도 못 끊는다면 어떻게 다른 죄를 끊어버릴 수 있습니까 절제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무절제는 여러분의 신앙에 치명상을 입힙니다. 무절제가 신앙의 발 전에 해를 주기 때문에 절제하라고 권합니다. 행 24: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벨릭스는 바울의 전도를 듣고 말하기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고 했지만 그는 영영 바울을 불러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절제를 회복하십시오. 절제로부터 신앙의 진보가 나타납니다.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절제에서 계속 발전하는 신앙이 생산 될 것입니다. 무절제는 신앙의 퇴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과 미음에서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십시오.
넷째, 자신을 처 복종시키고 있습니까 절제와 자기를 처 복종시키는 것은 비슷한 것이지만 자기를 처 복종시키는 것이 더 적극적입니다.
1. 마라톤 경기는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42.195 km를 전력을 다해 주파하려면 마지막 단계는 자의식 없이 오직 인내력으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 몸을 처 복종 기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 9:27) No,
I beat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I have preached to others,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만일 자기 처서 복종시키지 못한다면 선수로 실격자가 될까봐 조심했다고 합니다. 계속 끝까지 달려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몸을 쳐서 자신의 종이 되게 했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기를 처 복종시키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단번에 자기를 처서 복종시킨 자가 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 랴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2. 신앙은 자기 부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 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999년 여름 방학을 마치고 시작할 때부터 단단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다음 금요일 첫 모임부터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여러분! 이제 육 신의 안일과 욕망대로 살지 말고 영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십시다. (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 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계속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다.
<결론>
여러분은 계속 달리고 있습니까 신앙은 마라톤 경주에서 달리는 선 수와 같습니다. 골인 점까지 쉬지 말고 달려가십시다. 달리는 선수는 목표를 놓치면 안됩니다. 우리의 골임 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준비된 상을 바라보고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절제를 잘하고 있습니까 자기 성품을 통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통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금연 금주로 그리스도인의 참 절제를 세상 앞에 보여 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처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마라톤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육의 소욕에서 성령님의 소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제 방학도 끝났고 가을이 되었으니 풀었던 마음을 가다 듬고 계속 달려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첫째, 신앙의 경주는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마라톤 경주에 출전한 선수처럼 신앙의 경주를 경주하라고 합니다. 다같이 9:23-24 을 읽겠습니다. (고전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마라톤 경기의 유래를 남긴 마라톤 평야는 아테네(Athens) 에서 동쪽으로 4
2.195 km 떨어진 지점에 있습니다. 주전 490년 페르시아, 다리오(다레이오)왕 이 다티스 장군 휘하에 전함 600척 보병 10만명 기병 1만 명의 대군으로 아테 네(아덴)을 치기 위해 마라톤 평야에 진을 쳤던 것입니다. 마라톤 평야는 불과 314 평방 Km 되는 작은 평야로서 동쪽이 바다이고 삼면은 산으로 둘러 있는 평야입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원군을 청하기 위해서 당시 올림피아경기의 경주선수이었던 페이디피데즈를 보내서 원군을 청했습니다. 페이디피데스는 241 km를 36시간(고속도로로 부산-금강 250Km) 달려갔지만 스파르타는 만월 전에는 출전하지 않는다는 미신을 믿고 출전을 거부했습니다. 한편 아테네는 용감한 밀티아데스 장군의 지휘로 불과 1만 명의 장갑 병을 가지고 지형을 이용하여 페르시아의 대군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스파르타의 원군을 얻 지 못한 페이디피데스는 마라톤 평야의 전투에서 아테네 군이 승리를 거두자 한시라도 빨리 승전 소식을 아테네 시민에게 전하고자 달려가서 "기뻐하라, 승 리는 우리에게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 유래에서 마 라톤 경기는 4
2.195 Km 를 달립니다. 아테네서 이웃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마 라톤 경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터라 사도 바울은 마라톤 달리기를 신앙의 교훈을 삼아서 지금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군중 앞에서 달려가는 선수입니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 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 주하며 히 11장에 이름이 나타난 16명 외에 수 없이 많은 증인들 앞에서 계속 달 려 자고 합니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 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마라톤이 쉬지 말고 달려가야 하는 경주인 것과 같이 신앙의 경주도 쉬지 말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계속 달려간다는 말은 신앙의 발전과 신앙의 성장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을 계속 진보시켜야 합니다.
둘째, 달려가는 목표를 놓치지 않았습니까
1. 운동선수의 목적지는 골인점입니다. 운동경기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신앙에도 확실한 목표가 있습니다. 다같이 9:26을 일겠습니다. (고전 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아직 그 골인 점을 도달하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오직 목표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경기에서 처음에 출발이 좋고 선두를 지키는 것도 좋지마는 골인 점에서 뒤 처지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골인 점까지 한 순간도 방심하면 안됩니다. 어떤 선수는 달려가면서 계속 옆 사람을 의식하거나 뒤를 돌아보다가 우승의 기화를 놓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도 골인 점에서 결판이 납니다.
2. 신앙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 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예수님은 인생 경주의 푯대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은 결코 목표를 잘못 정하는 일이 없습니다. 다시 목적을 점검해 보십시오.
3. 우리의 최종 목표는 상 받는 것입니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세상에 1등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올림픽에서는 오직 금메달뿐입니다. 은메 달이 아무리 낳아도, 100개라도 금메달 하나를 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다 금메달이 될 수 있고 2등도 아름답습니다. 하늘 나라서는 꼴찌도 아 름답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달려가는 중에 목표를 놓치고 달려가던 길을 중단한 일은 없 습니까 한번 낙오되면 본래의 위치를 회복하기 힘듭니다. 신앙의 경주를 중단 하고 있는 여러분! 그 자리에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그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십 시오.
셋째, 절제를 잘하고 있습니까 다같이 9:25을 읽겠습니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1. 절제는 자기 성품을 잘 조절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성품을 주님께 맞추 도록 조절하는 사람입니다. 절제를 영어로는 self control 라고 합니다. 자기 성 품을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통제할 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자기 성품을 조절을 못하는 사람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과 같습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시간 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엡 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돈을 낭비하는 것보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더 나쁩니다. 돈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깝지만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은 돈보다 더 아깝게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할 일이 많은데 빨리 가야 되겠다는 유혹을 받은 일을 없습니까 헛 된 생각은 마귀가 우리로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바쁘기 때문에 더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십시오. 성경 읽다가 피곤해서 못 읽겠다고 생각한 일 은 없습니까 피곤하기 때문에 더 말씀을 읽어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이 좋은 일을 위하여 계속 달려가십시오.
2. NIV는 엄한 훈련을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9:25)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goes into strict training. 자기 훈련에 엄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훈련에 너무 인색합니다. 훈련시 키는 사람이나 훈련받는 사람이 함께 힘들지만 엄하게 훈련해야 합니다. 이런 엄한 훈련이 경쟁에서 이기게 되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합니다.
3. 기독교의 절제운동은 담배 술을 삼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도 담배를 못 끊은 성도가 있습니까 아직도 술을 못 끊은 사람이 있 습니까 구주를 믿는다면서 이것도 못 끊는다면 어떻게 다른 죄를 끊어버릴 수 있습니까 절제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무절제는 여러분의 신앙에 치명상을 입힙니다. 무절제가 신앙의 발 전에 해를 주기 때문에 절제하라고 권합니다. 행 24: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벨릭스는 바울의 전도를 듣고 말하기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고 했지만 그는 영영 바울을 불러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절제를 회복하십시오. 절제로부터 신앙의 진보가 나타납니다.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절제에서 계속 발전하는 신앙이 생산 될 것입니다. 무절제는 신앙의 퇴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과 미음에서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십시오.
넷째, 자신을 처 복종시키고 있습니까 절제와 자기를 처 복종시키는 것은 비슷한 것이지만 자기를 처 복종시키는 것이 더 적극적입니다.
1. 마라톤 경기는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42.195 km를 전력을 다해 주파하려면 마지막 단계는 자의식 없이 오직 인내력으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 몸을 처 복종 기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 9:27) No,
I beat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I have preached to others,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만일 자기 처서 복종시키지 못한다면 선수로 실격자가 될까봐 조심했다고 합니다. 계속 끝까지 달려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몸을 쳐서 자신의 종이 되게 했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기를 처 복종시키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단번에 자기를 처서 복종시킨 자가 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 랴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2. 신앙은 자기 부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 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999년 여름 방학을 마치고 시작할 때부터 단단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다음 금요일 첫 모임부터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여러분! 이제 육 신의 안일과 욕망대로 살지 말고 영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십시다. (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 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계속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다.
<결론>
여러분은 계속 달리고 있습니까 신앙은 마라톤 경주에서 달리는 선 수와 같습니다. 골인 점까지 쉬지 말고 달려가십시다. 달리는 선수는 목표를 놓치면 안됩니다. 우리의 골임 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준비된 상을 바라보고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절제를 잘하고 있습니까 자기 성품을 통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통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금연 금주로 그리스도인의 참 절제를 세상 앞에 보여 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처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마라톤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육의 소욕에서 성령님의 소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제 방학도 끝났고 가을이 되었으니 풀었던 마음을 가다 듬고 계속 달려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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