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행복한 자랍니까? (눅16:19-31)
본문
부자와 가난한 자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어느 사회이든 존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만이 행복한 것처럼 생각 하고 물질의 부요를 위해서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안목으로 볼 때 행복과 만족은 부자만이 소유한 것이고,불행과 눈물은 가난한 자들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실 때에는 그들은 공동의 운명을 지니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궁녀들의 치마폭에 싸여 가난을 모르고 살았던 솔로몬은 그 잠언=2 .
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빈부가 섞 여 살거니와 이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이니라.' 우리가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기왕이면 부요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에게만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사도 바울처럼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ls 장에 있는 말씀은 부자와 나사로를 통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과, 참 행복과 불행을 생생하게 비교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부자가 권세의 자색옷과 영화의 베옷을 입었습니다.나사 로는 헐벗고 누더기 옷을 걸치고 살았습니다. 부자는 건강하고 살이 온 몸에 기름기가 번질거렸습니다.나사 로는 영양실조에 걸렸고 그 몸은 질병 투성이었습니다. 부자는 푹신한 침대 위에서 많은 여인들의 애무 속에서 단잠을 잤습니다.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간에서 가마니를 깔고 개들이 헌 데 를 아주는 위로 속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부자는 매일같이 주지육림 속에서 살았습니다. 나사로는 부자가 먹다 버리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웠습니다. 부자는 죽었을 때 호화로운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죽었을 때 성 밖, 공동묘지에 내버려졌습니다. 너무 대조적인 삶이었습니다. 이토록 비교할 수 없는 생활 환경 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비교할 수 없는 인생관의 차이가 있었읍니다. 부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이생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 된다고 생각했읍니다.
저회 신은 배요,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땅의 일만 생각하는 멸망의 사람이었습니다. (빌 s:19-20). 그러나 나사로는 절 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늘에 소망을 두었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부 자를 부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시핀 17장4절에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제물로 배를 채우 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 전하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캐어날 때 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하였습니다. 공동 번역에서는 더욱 알기 쉽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홍 청거리며 사는 자들의 손에서 이 몸을 구하소서. 나는 떳떳하게 당신 얼굴을 뵈오리이다. 이 밤이 새어 당신을 뵙는 일. 이 몸은 그것 만으로 만족합니다. 나사로는 현재 받는 고난이 장차 자신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살았습니다. (롬 8:18). 나사로는 잠시 가벼운 고난을 겪지만 그것은 한량 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자기 에게 가져다 줄 것이요, 보이는 것에 눈을 팔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소망을 둔 것은, 이 세상이 잠깐이요, 저생은 영원한 것을 알 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에도 하나님을 기대고 살아가는 나사로가 있고,하나님 없이 멸망 할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태리 미란 대사원 문위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좌 측 문은 장미로 조각된 문인데 그 위에는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우측 문은 십자가로 조각된 문인데 그 위에는 '모든 고난도 잠깐이다.'가운데 큰 현관 문 위에는 '다만 중요한 것은 영원이다.' 은 말입니다. 고생도 잠깐입니다. 영화롭게 사는 것도 잠깐입니다. 문제는 영원히 사는 것이 큰 과제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참 행복이 무엇 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가난한 자나 부자나 모두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과연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왔을 때 부자나 나사로나 다 함께 죽어야만 했습니다. 이 땅에 모든 부자들은 심장의 고동, 호홉 하나를 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과 보약을 먹고 좋 은 잠자리에서 살아가는 부자들은 장수할 것 같은 데도 오히려 이 땅에는 가난한 자들이 장수하고 있습니다. 최근 어떤 전도자가 한 상인에게 전도하려고 갔을 때에 다음의 일이 있었습니다. '꾸엇 때문에 오셨습니까'하고 상인은 물었읍니다. '나는 당신의 영혼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만 매우 바 쁘신가 봅니다. ",
저는 매우 바니다. 저는 사업에 바빠서 교회에 다닐 시간이 조금도 없습니다.'전도자는 작별인사를 하려고 손 을 내밀며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귀에다 대고 내가 죽었다고 가정해 본 일이 있습니까죽을 때도 바쁘다고 할 것인지요 '하고 조용히 말해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죽음이 나를 찾아을 때 거절할 수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인생의 짧음과 죽음이 빠른 속도로 찾아오는 것을 경고하 고 있습니다. 죽음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호화로운 궁전에서 사는 사람이나 작은 오막살이에서 사는 사람이나 간에 구별없이 찾아옵니다. 나는 부자도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가난한 자도 죽어가는 것을 보 았습니다. 나는 조물주 하나님께와 그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구주를 만나기 위하여 가는 그 가장 엄숙한 순간에는 너무도 빈부의 차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큰 사업을 이루고 많은 돈을 금고쎄 넣어 두었으나 죽음을 막지 못한 채 죽어갔습니다. 부자가 굉장한 것 같 지만 죽음 앞에서는 가난한 자와 똑같이 공정한 운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 부력이 각 사람의 목에 달려 있는 죽음을 면제시 키지 못합니다. 그렇다해서 가난도 박두해 오는 죽음을 하루라도더 연장시켜 달라고 구걸하지는 못합니다. 인생의 큰 과제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또한 삶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올시다 씨저는 임종시에 말하기를 '나는 일생에 죽음 이외에 모든 일을 준비하였다. 오호라, 이제 준비하지 않았던 죽음이 내게 닥쳐 왔구 나' 하였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영원을 위해 결정지우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만 일 이 생에서 영생을 준비하기에 실패한다면, 그의 모든 것이 성공 한다 할지라도 그 생은 실패한 것입니다. 잠언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 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 7:4) . 부자나 가난한 자나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고 나사 로도 때가 되어 죽었습니다.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 슬픔과 눈믈과 고통이 있음니다. 혼히 생각하기를 부자는 고통이 었고 가난한 자는 슬픔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나 수고와 슬픔은 빈부를 가리지 않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인생이 그 년수가 7o이요,강건하면 8o이라도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 가나이다.' 저는 가난을 저주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말으로 위로를 드럽니다. 인간의 고통은 다 있습니다. 결코 인간은물질로 마음의 평안이나 행복을 살 수 없고 돈으로 슬픔이나 고통을 제거 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루이스 황제가 국정으로 몹시 괴로워서 산책길을 조용히 걷고 있었습니다. 밤에 조용히 어떤 동네 모퉁이에 있는 물방앗간 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때에 물방앗간에서 기뻐 부르는 노래 소리 에 걸음을 멈추고 그 안을 들여다 보니 물방앗간 노인이 그렇게 기 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그 물방앗간 노인에게 노 래를 청하니 노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황제는 너무 기뻐서 둘째 절은 없는가 하니 없다고 하므로 둘째 절은 이렇게 부르라고 했다 합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 하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호화로운 궁실에도 괴로움과 눈물이 있고 가난한 오막살이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말씀하시고 빈부 에 대하여 잘못된 관념을 가진 사나이에게 극적인 애기로서 우리에 게 경고한 교훈이 있습니다. 어느 농부가 농사를 짓고 풍년이 들었을 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리라.' 내가 내 영흔에게 평안히 쉬고 먹고 이 사람은 인간의 영흔과 마음이 빵과 술로 평안을 얻지못하는 것임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물질로 인간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얻으려는 자에게 예수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 부자가 된다고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까요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을 잘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 로 책을 살 수는 있으나 기억력은 살 수 없습니다. 음식은 살수있 지만 입맛은 살 수가 없고 장식품은 살 수 있지만 아름다움은 살 수가 없고 약을 살 수는 있지만 건강을 살 수가 없습니다.
사치스런 생활은 사들일 수 있으나 교양은 살 수 없으며 향락은 돈으로 살수 있으나 행복은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으로 마음의 평화를 못삽니다. 돈으로 천국을 못갑니다. 돈으로 강남 수십만평을 사들일 수 있으나 천국은 살 수 없읍니다. 영국 신문이 정의한 대로 '돈은 행복 이외에 모든 것을 살수 있는 세계적 도구이며 하늘 나라를 제외한 모든 곳을 갈 수 있는 승차권이다' 돈으로 죄지은 양심을 달랠 수 었고 생명의 상처를 고 칠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사람의 명예나 존경이나 칭찬을 못삽니다. 솔로몬은 말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 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22:1-2) 부자들은 그 재물로서 슬픔과 눈물을 막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부 자들이 재물로 말미암아 괴로움과 마음의 고통이 되는 것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디모데 전서 s장 s-10절에 보면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 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 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 도다'하였습니다.
3. 부자나 가난한 자나 지옥에 떨어질 수 있음니다 '한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가니라.' 오늘날 인생은 두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으로 향 하는 길이요, 하나는 지옥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지옥으로 인도하는 길은 고 평평하여 수 없는 사람들이 그 길로 걸어가고 있읍니다. 오늘 내 생의 심판이 주어진다면 어느 편에 선까요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이 었습니다. 그곳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같이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이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슬피 울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부자처럼 구원 얻을 기회를 잃은 것을 천만번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 명히 가난한 자나 부자나 다 같이 심판날에 하나님 앞에 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20:l
2, 1=),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들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누구든지 생명책에서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가난한 자나 부자나 심판 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저 지옥을 더욱 두려워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 번은 리암뿌스 대장이 구세군 사관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설교하면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신학 훈련을 마음대로 시킬 수 있 다면 이곳에서 4년 동안 공부하도록 두지 않았을 것이다.저 지옥에 단 10분 간이라도 고통을 맛볼 수 있게 한다면 여러분은 열광적인 전도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종이 예수를 믿은 이후 선교의 정열에 불타게 된 것은 폐결핵으로 고통 중에 죽으려고 하는 순간 지옥에의 두려운장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 몸부림치는 수 많은 군상들의 아우성이 지금 도 귓전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종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 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날마다 피를 토하면서 죽음의 날을 기다렸고 생사의 기로에서 나의 삶은 절망의 깆은 함정에서 몸부림 치며 울었습니다. 다량의 사약(조)을 준비하고 자살하려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때 나타난 환상은 불가운데 고통하는 지옥의 군상들 이었습니다. 삼일 밤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지옥의 두려움과 그 고통은 자살미수로 만들었고 그 다음날 생후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부흥회에 참석하고 믿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요 저 지옥 심판 면하니 참기쁨 넘치네.
4. 가난한 자나 부자나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라고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요 부자라고 천국에 못가는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였습니다.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천국에 가 있습니다. 또 아리마대 요셉은 큰 부 자였지만 주 예수를 사랑하사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묘실이 부자 와 함께 되었도다'(사5s:9)한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는 정중한 장례를 하기 위하여 그 시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리마대 요 셉은 부자이면서도 천국에 갔습니다. 부하고 악한 자의 대문 곁에 누워서 주리고 고생하는 거지 나사로는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가난한 자들이면서 그리스도를 만나서 하나님의자녀로 성별되고 천국 시민이 된 것입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와 그의 집은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의 친구올시다. 죄인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 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9) 가난한 자나 부자나 똑같은 운명의 사람들이요. 결코 별세계에서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예수님 없이는 불행한 사람들 입니다. 가난할 지라도 나사로처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이는 행복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난한 것을 서러워하 지 마십시다. 부자라고 교만하지 맙시다. 오히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부자홉 배로 하나님을 삼고 살아가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부자들은 더 큰 심판이 있을 뿐 입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통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약 5:1-5) 먼 훗날 후회 할 부자들의 심판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은 한 사람도 버리시기를 원치 압으십니다. 이 땅에서는 절대적으로 행복하거나 절대적으로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상대적인 행복과 불행이 있을 뿐입니다. 호화로운 한 생을 즐겼던 부자나 일생 동안 가난 속에 시달렸던 나사로나 모 두 다 짧은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부자나 가 난한 자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의 절대적인 행복과 불행은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 어갔습니다. 부자는 죽어 음부의 세계에 들어가 고통을 당하였읍니다. 부자는 뜨거운 불꽃 가운데 견딜 수 없었습니다. 부자는 고통 중에서 아브라함과 그 품속에 있는 나사로를 그리워했고,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그의 혀를 서늘케 해달라고 간청 하였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사실이 있다면 가난하든 부하든 구원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떨어져야 할 자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부요해지는 생활 속에서 믿음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경고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횐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5:17-19 ) 가난한 자나 부자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가난한 자나 부 자나 온 세계를 지으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I8-1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퍼로 한 것이니라.'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그리스도의 피 공로 없이는 하늘나라 못 갑니다.
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빈부가 섞 여 살거니와 이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이니라.' 우리가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기왕이면 부요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에게만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사도 바울처럼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ls 장에 있는 말씀은 부자와 나사로를 통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과, 참 행복과 불행을 생생하게 비교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부자가 권세의 자색옷과 영화의 베옷을 입었습니다.나사 로는 헐벗고 누더기 옷을 걸치고 살았습니다. 부자는 건강하고 살이 온 몸에 기름기가 번질거렸습니다.나사 로는 영양실조에 걸렸고 그 몸은 질병 투성이었습니다. 부자는 푹신한 침대 위에서 많은 여인들의 애무 속에서 단잠을 잤습니다.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간에서 가마니를 깔고 개들이 헌 데 를 아주는 위로 속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부자는 매일같이 주지육림 속에서 살았습니다. 나사로는 부자가 먹다 버리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웠습니다. 부자는 죽었을 때 호화로운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죽었을 때 성 밖, 공동묘지에 내버려졌습니다. 너무 대조적인 삶이었습니다. 이토록 비교할 수 없는 생활 환경 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비교할 수 없는 인생관의 차이가 있었읍니다. 부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이생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 된다고 생각했읍니다.
저회 신은 배요,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땅의 일만 생각하는 멸망의 사람이었습니다. (빌 s:19-20). 그러나 나사로는 절 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늘에 소망을 두었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부 자를 부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시핀 17장4절에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제물로 배를 채우 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 전하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캐어날 때 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하였습니다. 공동 번역에서는 더욱 알기 쉽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홍 청거리며 사는 자들의 손에서 이 몸을 구하소서. 나는 떳떳하게 당신 얼굴을 뵈오리이다. 이 밤이 새어 당신을 뵙는 일. 이 몸은 그것 만으로 만족합니다. 나사로는 현재 받는 고난이 장차 자신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살았습니다. (롬 8:18). 나사로는 잠시 가벼운 고난을 겪지만 그것은 한량 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자기 에게 가져다 줄 것이요, 보이는 것에 눈을 팔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소망을 둔 것은, 이 세상이 잠깐이요, 저생은 영원한 것을 알 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에도 하나님을 기대고 살아가는 나사로가 있고,하나님 없이 멸망 할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태리 미란 대사원 문위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좌 측 문은 장미로 조각된 문인데 그 위에는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우측 문은 십자가로 조각된 문인데 그 위에는 '모든 고난도 잠깐이다.'가운데 큰 현관 문 위에는 '다만 중요한 것은 영원이다.' 은 말입니다. 고생도 잠깐입니다. 영화롭게 사는 것도 잠깐입니다. 문제는 영원히 사는 것이 큰 과제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참 행복이 무엇 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가난한 자나 부자나 모두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과연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왔을 때 부자나 나사로나 다 함께 죽어야만 했습니다. 이 땅에 모든 부자들은 심장의 고동, 호홉 하나를 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과 보약을 먹고 좋 은 잠자리에서 살아가는 부자들은 장수할 것 같은 데도 오히려 이 땅에는 가난한 자들이 장수하고 있습니다. 최근 어떤 전도자가 한 상인에게 전도하려고 갔을 때에 다음의 일이 있었습니다. '꾸엇 때문에 오셨습니까'하고 상인은 물었읍니다. '나는 당신의 영혼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만 매우 바 쁘신가 봅니다. ",
저는 매우 바니다. 저는 사업에 바빠서 교회에 다닐 시간이 조금도 없습니다.'전도자는 작별인사를 하려고 손 을 내밀며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귀에다 대고 내가 죽었다고 가정해 본 일이 있습니까죽을 때도 바쁘다고 할 것인지요 '하고 조용히 말해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죽음이 나를 찾아을 때 거절할 수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인생의 짧음과 죽음이 빠른 속도로 찾아오는 것을 경고하 고 있습니다. 죽음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호화로운 궁전에서 사는 사람이나 작은 오막살이에서 사는 사람이나 간에 구별없이 찾아옵니다. 나는 부자도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가난한 자도 죽어가는 것을 보 았습니다. 나는 조물주 하나님께와 그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구주를 만나기 위하여 가는 그 가장 엄숙한 순간에는 너무도 빈부의 차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큰 사업을 이루고 많은 돈을 금고쎄 넣어 두었으나 죽음을 막지 못한 채 죽어갔습니다. 부자가 굉장한 것 같 지만 죽음 앞에서는 가난한 자와 똑같이 공정한 운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 부력이 각 사람의 목에 달려 있는 죽음을 면제시 키지 못합니다. 그렇다해서 가난도 박두해 오는 죽음을 하루라도더 연장시켜 달라고 구걸하지는 못합니다. 인생의 큰 과제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또한 삶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올시다 씨저는 임종시에 말하기를 '나는 일생에 죽음 이외에 모든 일을 준비하였다. 오호라, 이제 준비하지 않았던 죽음이 내게 닥쳐 왔구 나' 하였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영원을 위해 결정지우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만 일 이 생에서 영생을 준비하기에 실패한다면, 그의 모든 것이 성공 한다 할지라도 그 생은 실패한 것입니다. 잠언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 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 7:4) . 부자나 가난한 자나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고 나사 로도 때가 되어 죽었습니다.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 슬픔과 눈믈과 고통이 있음니다. 혼히 생각하기를 부자는 고통이 었고 가난한 자는 슬픔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나 수고와 슬픔은 빈부를 가리지 않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인생이 그 년수가 7o이요,강건하면 8o이라도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 가나이다.' 저는 가난을 저주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말으로 위로를 드럽니다. 인간의 고통은 다 있습니다. 결코 인간은물질로 마음의 평안이나 행복을 살 수 없고 돈으로 슬픔이나 고통을 제거 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루이스 황제가 국정으로 몹시 괴로워서 산책길을 조용히 걷고 있었습니다. 밤에 조용히 어떤 동네 모퉁이에 있는 물방앗간 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때에 물방앗간에서 기뻐 부르는 노래 소리 에 걸음을 멈추고 그 안을 들여다 보니 물방앗간 노인이 그렇게 기 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그 물방앗간 노인에게 노 래를 청하니 노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황제는 너무 기뻐서 둘째 절은 없는가 하니 없다고 하므로 둘째 절은 이렇게 부르라고 했다 합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 하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호화로운 궁실에도 괴로움과 눈물이 있고 가난한 오막살이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말씀하시고 빈부 에 대하여 잘못된 관념을 가진 사나이에게 극적인 애기로서 우리에 게 경고한 교훈이 있습니다. 어느 농부가 농사를 짓고 풍년이 들었을 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리라.' 내가 내 영흔에게 평안히 쉬고 먹고 이 사람은 인간의 영흔과 마음이 빵과 술로 평안을 얻지못하는 것임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물질로 인간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얻으려는 자에게 예수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 부자가 된다고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까요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을 잘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 로 책을 살 수는 있으나 기억력은 살 수 없습니다. 음식은 살수있 지만 입맛은 살 수가 없고 장식품은 살 수 있지만 아름다움은 살 수가 없고 약을 살 수는 있지만 건강을 살 수가 없습니다.
사치스런 생활은 사들일 수 있으나 교양은 살 수 없으며 향락은 돈으로 살수 있으나 행복은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으로 마음의 평화를 못삽니다. 돈으로 천국을 못갑니다. 돈으로 강남 수십만평을 사들일 수 있으나 천국은 살 수 없읍니다. 영국 신문이 정의한 대로 '돈은 행복 이외에 모든 것을 살수 있는 세계적 도구이며 하늘 나라를 제외한 모든 곳을 갈 수 있는 승차권이다' 돈으로 죄지은 양심을 달랠 수 었고 생명의 상처를 고 칠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사람의 명예나 존경이나 칭찬을 못삽니다. 솔로몬은 말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 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22:1-2) 부자들은 그 재물로서 슬픔과 눈물을 막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부 자들이 재물로 말미암아 괴로움과 마음의 고통이 되는 것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디모데 전서 s장 s-10절에 보면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 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 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 도다'하였습니다.
3. 부자나 가난한 자나 지옥에 떨어질 수 있음니다 '한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가니라.' 오늘날 인생은 두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으로 향 하는 길이요, 하나는 지옥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지옥으로 인도하는 길은 고 평평하여 수 없는 사람들이 그 길로 걸어가고 있읍니다. 오늘 내 생의 심판이 주어진다면 어느 편에 선까요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이 었습니다. 그곳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같이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이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슬피 울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부자처럼 구원 얻을 기회를 잃은 것을 천만번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 명히 가난한 자나 부자나 다 같이 심판날에 하나님 앞에 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20:l
2, 1=),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들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누구든지 생명책에서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가난한 자나 부자나 심판 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저 지옥을 더욱 두려워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 번은 리암뿌스 대장이 구세군 사관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설교하면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신학 훈련을 마음대로 시킬 수 있 다면 이곳에서 4년 동안 공부하도록 두지 않았을 것이다.저 지옥에 단 10분 간이라도 고통을 맛볼 수 있게 한다면 여러분은 열광적인 전도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종이 예수를 믿은 이후 선교의 정열에 불타게 된 것은 폐결핵으로 고통 중에 죽으려고 하는 순간 지옥에의 두려운장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 몸부림치는 수 많은 군상들의 아우성이 지금 도 귓전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종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 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날마다 피를 토하면서 죽음의 날을 기다렸고 생사의 기로에서 나의 삶은 절망의 깆은 함정에서 몸부림 치며 울었습니다. 다량의 사약(조)을 준비하고 자살하려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때 나타난 환상은 불가운데 고통하는 지옥의 군상들 이었습니다. 삼일 밤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지옥의 두려움과 그 고통은 자살미수로 만들었고 그 다음날 생후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부흥회에 참석하고 믿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요 저 지옥 심판 면하니 참기쁨 넘치네.
4. 가난한 자나 부자나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라고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요 부자라고 천국에 못가는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였습니다.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천국에 가 있습니다. 또 아리마대 요셉은 큰 부 자였지만 주 예수를 사랑하사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묘실이 부자 와 함께 되었도다'(사5s:9)한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는 정중한 장례를 하기 위하여 그 시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리마대 요 셉은 부자이면서도 천국에 갔습니다. 부하고 악한 자의 대문 곁에 누워서 주리고 고생하는 거지 나사로는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가난한 자들이면서 그리스도를 만나서 하나님의자녀로 성별되고 천국 시민이 된 것입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와 그의 집은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의 친구올시다. 죄인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 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9) 가난한 자나 부자나 똑같은 운명의 사람들이요. 결코 별세계에서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예수님 없이는 불행한 사람들 입니다. 가난할 지라도 나사로처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이는 행복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난한 것을 서러워하 지 마십시다. 부자라고 교만하지 맙시다. 오히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부자홉 배로 하나님을 삼고 살아가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부자들은 더 큰 심판이 있을 뿐 입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통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약 5:1-5) 먼 훗날 후회 할 부자들의 심판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은 한 사람도 버리시기를 원치 압으십니다. 이 땅에서는 절대적으로 행복하거나 절대적으로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상대적인 행복과 불행이 있을 뿐입니다. 호화로운 한 생을 즐겼던 부자나 일생 동안 가난 속에 시달렸던 나사로나 모 두 다 짧은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부자나 가 난한 자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의 절대적인 행복과 불행은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 어갔습니다. 부자는 죽어 음부의 세계에 들어가 고통을 당하였읍니다. 부자는 뜨거운 불꽃 가운데 견딜 수 없었습니다. 부자는 고통 중에서 아브라함과 그 품속에 있는 나사로를 그리워했고,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그의 혀를 서늘케 해달라고 간청 하였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사실이 있다면 가난하든 부하든 구원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떨어져야 할 자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부요해지는 생활 속에서 믿음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경고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횐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5:17-19 ) 가난한 자나 부자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가난한 자나 부 자나 온 세계를 지으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I8-1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퍼로 한 것이니라.'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그리스도의 피 공로 없이는 하늘나라 못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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