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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혜로운 자인가 ? (전7:1-4)

본문

전도서는 솔로몬이 기록한 책이다. 솔로몬은 다윗 왕의 아들로서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부귀와 권세를 누렸던 왕이다.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지혜까지도 받은 자였다. 그러한 솔로몬 왕이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맨 먼저 내뱉은 말이 어떤 말이었습니까 (전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전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 어느 인생보다도 부와 명예와 지혜를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이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고 있다. 솔로몬 왕에게 지혜를 주었던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가장 지혜로운 자인지 말씀해주고 있다. 99년도 1월 마지막 날이다. 벌써 금년도 한 달이 지났다. 허무하게 보내는 99년도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금년 한해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지혜로운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떻게 살아가야 지혜로운 삶을 살수 있겠습니까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인생은 허무한 인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 의거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지혜로운 삶인지 3가지로 살펴볼 때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모두 다 지혜로운 자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 인가 첫 번째:이름을 기름보다 낮게 여기라. 1절 =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
유대인들은 모두 이름을 지을 때 하나님과 연관지어져 이름을 지은다. 각자 이름 속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뜻이 다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름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귀하게 여긴다 당시에 유대인들에게는 감람나무에서 얻은 기름을 아주 귀하게 여겼다. 가장 값진 기름이었다. 이러한 값진 기름보다도 자신의 이름을 더 귀하게 여겼다.
기름 = 히브리인들의 재산이다. 아주 값진 것이다. 감람나무에서 얻은 이 기름은 식용으로도 사용했고 향유. 의료용. 등화용으로도 사용했다.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름은 세상에 물질을 의미한다 이름 = 신앙과 관련되어있는 이름이었다. 복음적으로 "성도"라는 이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돈. 물질 보다는 성도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이 지혜로운 자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성도라는 귀한이름을 받은 자이다. 세상 것보다도 이 성도라는 이름을 더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오늘날 이 시대에 성도라는 이름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한다 집사.권사.장로.목사 직을 세상 것보다 귀하게 여기지 아니한 모습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직책을 세상 것의 어느 것보다 귀하게 여기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시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세상에서 지식을 배우고 쌓은 것이 지혜의 근본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길 때 하나님의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데 그 지혜를 세상이 주는 지혜가 따를 수 없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를 받자. 그 지혜는 열방의 모든 나라들을 놀라게 했다. 그래서 지금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이름을 귀하게 여기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자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 지혜롭지 못한 자들의 모습이다. 에서가 장자의 직분을 천히 여기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직분을 동생 야곱에게 내어 주었다. 삼손은 사사라는 직분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사울 왕도 하나님이 주신 왕의 자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교만하게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사울 왕을 버리고 다윗 왕을 기름 부어 세우셨다. 아간도 외투1벌. 은 200세겔. 금 50세겔에 하나님의 택한 자녀 직분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신약에 와서도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롯 유다 이다. 은 30 때문에 귀한 제자의 직분을 버렸다. 바울 제자 데마도 귀한 직분을 버리고 세상을 택했다. 초대교회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귀한 성도 직분 보다도 재물을 더 귀하게 여기다가 죽임을 당했다. 얼마나 미련한 자들의 모습인가 하나님의 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지혜로운 자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시기 바란다. 어느 큰 교회에 한 성도가 등록을 하였다. 그 성도는 열심히 교회를 나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성도는 예배가 끝나고 나서 식사를 하는 동안 성도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그 명함은 자기가 경영하는 식당을 알리는 명함이었다. 성도들이 처음에는 그 식당에 가서 음식을 팔아 주었다.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자 성도들의 발걸음이 줄어 들었다. 식당 주인 성도는 교회에 출석하지 안했다. 교회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자시 장사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회에 다니지 안했다. 이 사람은 돈 때문에 거룩한 성도라는 이름을 팔아먹은 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성도라는 거룩한 이름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귀하게 여길 때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삭개오의 이름 뜻은 순결이었는데 삭개오는 그 이름대로 순결하게 살지 못했다. 세리의 일을 하면서 더러운 이익을 챙기며 살았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뒤 삭개오는 이름 값을 하면서 살았다. 남을 속여서 빼앗은 것을 4배로 갚아 주었고 자기 재산을 가난 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게 지혜롭고 참된 삶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도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직분을 귀하게 여기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인가 두 번째:죽는 날을 생일보다 더 낫게 여기자. 1절 = "죽는 날이 출생하는 닐보다 나으며. "
이스라엘의 풍습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가져다가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싸서 7일 동안 곡하며 슬피 울어야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소금으로 아이 몸을 문지르고 물로 깨끗히 씻어서 강보로 몸을 따듯하게 감싸주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서 기뻐하며 잔치를 벌였다.
죽는 날 = 성도에게는 삶의 거처가 옮겨지는 날이다. 예수 믿는 영혼이 천국 가는 날이다. 따라서 태어난 날보다 더 즐거운 날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생일보다 죽는 날이 더 좋은 날 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는 자들이 지혜로운 자이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 어느 누구에게나 이 두 가지 일은 피할 수 없다. 생일이 있다는 것은 죽는 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깨닫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자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어난 날은 매년 기억하고 생일 잔치를 하면서도 죽는 날은 전혀 대비함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들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미련한 자들의 모습이겠는가 우리들이 생일날은 어떻게 보내는지 한번 보세요 가족들 생일 내 생일은 잊지 않으려고 달력에 표시를 하고 또 생일을 기억 안해주면 섭섭해 하곤 한다. 생일날 선물을 받고 케익을 자르고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도 부른다. 얼마 전 제 생일을 있었는데 조용히 보냈다. 사모가 케익 하나 사자고 하는 것도 못 사게 했다. 성도 여러분 생일만 귀하게 여기고 사는 것은 지혜로운 자들이 아니다. 지난 주일에 제 아들이 생일이었는데 객지에서 그래도 미역국은 먹었다고 했다 우리가 생일을 다 기억하고 잊지 않은데 왜 죽는 날은 관심이 없는지 모른다. 정말 중요한 게 죽는 날인데 너무나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보니까 죽는 날이 갑자기 닥치면 모든 가족이 슬퍼하고 애통해 한다. 그러나 죽는 날은 준비하며 사는 자들은 그 날에 자식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말까지 하고 가신다. 이하여대 총장이었던 김할란 여사는 자신이 죽으면 절대로 슬퍼하지 말고 할렐루야 찬송을 들어놓고 절대로 조의금을 받지 말라고 했다. 죽는 날이 생일보다 귀하게 하는 지혜로운 자의 모습이었다. 죽음 저편에 있는 그 곳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땅에 태어난 날을 더 귀하게 여긴다. 우리는 미련한 자들이 되지 말자. 지혜로운 자들이 되자. 히9:27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도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딤전6:7 =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거니.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도 죽음을 준비한 삶을 살았다 젊은 나이에 세계를 제패하여 10년을 정복자로 살았던 알렉산더 대왕은 그가 마음먹고 밟는 땅은 모두 그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회오리 바람처럼 세계를 휩쓸었던 만큼, 알렉산더는 죽음 앞에도 자신의 날이 다한 것을 안 알렉산더가 부하들에게 유언을 했다. "나의 관 양 옆에 구멍을 뚫고 나의 두 손이 보이게 하라. 그리하여 천하를 쥐었던 알렉산다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이게 하라. 성도 여러분 !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세상에 태어난 날에 만족하며 사는 자는 그 죽음이 다가 왔을 때 너무 불쌍한 자가 될 것이다. 지금 세상 것으로 내 손안에 든 것이 많다고 할 지라도 그 날 우리의 손은 빈손이 될 것이다 죽는 날을 더 귀하게 여기는 자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이다. 죽는 날을 더 귀하게 여기는 자는 이 땅에 것에 욕심을 내지 아니한다 사도 바울은 "나는 매일 죽노라" 하는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 서울의 어느 교회는 매일 밤 12시가 되면 입관예배를 드린다 사도 바울처럼 매일 죽는다는 신앙을 갖기 위함이라고 했다. 우리가 한번 죽는 날을 생각하고 케익을 한번 잘라 보지 않으시렵니까 케익을 놓고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 찬양을 부른다면 웃기는 일 일까요 우리게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생일보다 죽음을 귀하게 여기는 자들이 될 때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그네 인생 같은 우리 인생 아닙니까 잠시 지나쳐 가는 곳이 이 세상이다. 유행가 가수가 부른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인가 세 번째:초상집을 잔치집보다 낫게 여기자. 2절 =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이스라엘은 굵은 베옷을 입고 7일 동안 슬피 운다. 초상집은 슬픔만 있는 곳이다. 그러나 잔치집은 술과 노래와 있고 기쁨이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초상집 가는 것보다는 잔치집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잔치집 = 세상을 의미한다 세상은 육신적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세상은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는 곳이다. 초상집 = 타인의 죽음을 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장소이다. 모두다 숙연해 지고 조용한 곳이다. 복음적으로 교회를 의미한다 교회는 우리들을 죽이는 곳이다. 우리의 욕심을 죽이고 육을 죽이고  죽이는 곳이다. 잔지집보다 초상집을 가는 것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이 왜 지혜로운 자인가 내 자신을 초상집에서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나올 때 우리는 내 영혼 내 육을 돌아볼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즐거움이 있는 곳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육은 그렇게 즐기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육적인 자는 오직 즐기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먹는 것도 즐기며 먹으려고 한다. 모든 삶을 즐기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며 산다. 요즈음 경제가 좀 어렵다 해도 많은 사람들이 레저 활동에 시간을 드리며 사는지 모른다. 스키도 몇 년 전만 해도 상류층 사람들이나 즐기던 것이 이제는 보편화 되어버린 레저 활동이다. 수영. 에어로빅도 안하는 주부들이 드물 정도로 보편화 되었다. 이렇게 잔치집 같은 삶을 사는 자들은 살았다하나 죽은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딤전5:6)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 여러분은 초상집 가면 어떤 생각들을 하십니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곳이 초상집이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초상집 가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아! 나도 언제 가는 죽겠구나 " 이런 생각은 다 하게 될 것이다.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아!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 잘 해야지." 교통사고로 죽었으면 "아! 나도 차 조심해야지." 음주 운전하다가 죽었으면 "아! 나도 술 먹지 말어야지 ." 병으로 죽었으면 " 아! 나도 몸 건강 잘 지켜야지 ." 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선해진다. 아무리 큰소리치고 하나님이 어디 있냐 하는 자도 죽은 앞에서는 가을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가냘픈 나무 잎처럼 된다. 재 작년에 제사돈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 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저보다 10년은 나이가 더 잡수신 60세 된 어른이었는데 이 분이 얼마나 체격이 좋았는지 모른다. 고려대 법대를 나왔고 머리가 영리했다. 죽기 전 까지 건설회사 상무로 있었는데 하나님을 절대로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주 팔자를 보는 역술까지 알아서 학문으로 풀어주는 자였다.
그런데 희한한 병이 들었다. 피가 점점 없어지는 그런 병이었다. 중환자 실에서 의식도 모르고 있는 자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고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일 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로 전화까지 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때 저는 집안에 있는 모든 역술 책을 다 불태워 없애라고 했다. 그리고 목사님 모셔다가 예배 드리고 교회에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책을 다 버리지 안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병원을 실려 갔는데 바로 운명하고 말았다. 그렇게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하던 그 분도 죽음 앞에서는 작아지고 겸손해 진 것을 보았다. 초상집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얼마나 작은 자라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힘들고 괴롭고 지친 자들은 일부러라도 초상집에 가보면 힘을 얻을 수 있다. 초상집 찾기가 힘들면 병원에 가면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가니까 가서 보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이 세상은 어떻게 보면 잔치 집이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초상집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여러분을 살리는 곳이다. 그러나 살리기 전에 여러분을 먼저 죽여야만 한다. 내 육이 죽고 자아가 죽고 이기심이 죽고 교회에서는 내 자존심이 있어서는 안된다. 철저하게 내 자존심이 예수 이름 앞에 뭉개져 버려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우리의 피는 각자 혈액형을 가지고 있다. O형은 와일드한 남자 성격이라고 하죠.
A.B은 머리가 영리하고 지혜롭다고 하죠. A 형은 여성스러운 형이라고 하죠. B 형은 가장 원만한 형이라고 하죠. 제가 B형이거든요 이러한 혈액형이 이제 예수 믿고 하나의 혈액형으로 바꾸어져야 한다 어떤 혈액형입니까 아시겠어요 <다같이> 예수의 혈액형으로 바꾸어지자. 예수의 피로 다 바꾸어 질 때 우리는 세상 진치를 좋아하지 않고 교회에 와서 날마다 죽기 연습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것 죽음 앞에 다가가는 삶이다. < 예 화 > 얼마 전 영화로 나온 타이타닉 호는 당시로서 사상 제일 크게 건조된 호화 여객선이었다. 1912년 대서양을 향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유명한 배가 처음으로 대서양을 횡단하게 되니 유럽과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이 배에 많이 탔다. 불행히도 이 배가 대서양에서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기 시작했다. 구명정 몇 개를 풀어 어린 아이와 부녀자들을 먼저 구하였으나 여객의 대다수는 구할 길이 없었다.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승객들은 정신을 잃고 불안과 공포 가운데서 갑판에 나와 아우성을 쳤다. 그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그 배에 타고 있던 악대가 정복을 입고 각각 악기를 들고 갑판 가운데 나섰다. 그 아우성 속에 꼼짝하지 않고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서 한 곡, 두 곡 위대한 곡을 계속 연주하였다. 마지막에 찬송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모든 승객은 악대의 연주에 맞춰 찬송가를 입에 모아 부르며 물 속에 잠겨갔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 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 마지막 절을 부르면서 물 속에 잠겨가던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도 잊은 채 하늘을 향해서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여객선을 타보겠다고 하던 그들은 죽음 앞에서 가장 작은 자들이 되었고 겸손한 자들이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오늘도 세상에 잔치를 거부하고 이 자리에 나온 자들이다. 세상보다 교회가 더 낫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 < 결론 > 우리 속담에 호랑이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예수를 모르고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이름을 더럽히기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끓은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가 하면 이름을 더럽히고 죽은 자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일제 때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이라는 이름은 더럽게 여기고 있고 그 후손들까지도 수치를 당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도 이름을 귀하게 여기는데 하물며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거룩한 성도라는 이름을 더렵혀 서야 되겠는가 금년 한해 이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살아갈 때 하나님을 우리를 세상 속에서 지혜롭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또 태어난 날보다는 죽는 날을 생각하는 성도들이 될 때 세상 속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될 것이다. 또 세상 잔치보다는 교회에서 드리는 모든 예배를 더 귀하게 여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속에서 지혜로운 자들로 사용하여 주실 것이다. < 예 화 > 1888년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한 다음에 일약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그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서 기사를 읽기 시작하는데,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발견했다. 그 기사는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씌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과 제가 만일 당신과 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신문 기사의 보도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보도를 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이 사람은 깊은 침묵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깊은 것을 깨달았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었고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보도한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노벨 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였다. 자신의 죽음이 잘못 실린 기사를 보고 죽음이 무엇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노벨은 자신의 이름을 지금도 값지게 세계 평화에 빛내고 있다. 잠시 있다 갈 이 세상이다. 우리 주님 언제 오실 지 모르는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그 동안 우리에게 주신 성도라는 이름표에 먼지가 많이 묻어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면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깨끗이 닦아서 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아! 저 사람은 그리스도 인이구나" 볼 수 있도록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갈 때 예수님은 우리를 지혜로운 자들로 만들어서 저 세상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이다. (고전1:27-28)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미련한 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 안에서 우리 모두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마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지막 때에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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