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정 부자인가 (눅12:13-21)
본문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부자 소리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소원이신 분이 이 중에 여럿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벌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는 부자는 천치노라고 하고, 벌 줄은 모르고 쓸 줄만 아는 부자는 허영노라고 하며, 돈을 벌기는 잘하나 쓸 줄을 모르는 부자는 수전노라고 하며, 벌 줄도 알고 쓸 줄도 아는 부자는 천재노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부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은 본문의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그분은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어떤 점에서 어리석었을까요
첫째로, 재물이 행복을 보장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많이 얻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 해에 풍작을 이루어서 비로소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이미 부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재물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생활비가 한 달 여유가 있으면 1년 여유분을 원하고, 계속해서 5년, 10년, 30년 여유분을 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평생 쓸 것을 마련해 놓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후에는 자식을 위해서 쌓아두려고 하고 손자를 위해서 쌓아두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 욕심을 다 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자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그런 뜻으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삶)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이 부자는 더 많은 재물을 얻으려는 욕심에 이끌려 땅도 더 사고 일군도 더 사서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갔습니다. 거기다가 기후가 좋아 전례 없는 풍년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들판에는 알알이 영글은 이삭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어져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부자는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이고 곧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의 창고에는 예상되는 곡식을 다 저장할 만한 공간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근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그 많은 곡식을 여러 해 동안 무슨 재주로 보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수매한 추곡을 저온창고에 보관하는 데 그 비용이 엄청나게 들아간다지 않습니까 땅 속을 헤집고 다니며 창고에 구멍을 뚫고 침입하는 그 많은 쥐들은 어떻게 일일이 몰아낼 수 있겠습니까 재물이 근심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전도서 5장 13절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사람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전5:13) 재물이 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일사유사(逸士遺事)'라는 근세 문헌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서울 사는 김학성(金鶴聲)의 어머니는 어느 날 우연히 처마 밑에서 은(銀)이 가득한 가마솥 하나를 발견했다. 이를 보고 놀란 어머니는 다시 그 자리에 깊이 묻어 두고 이사를 해버렸다. 과부에다 열 살 안팎의 형제를 기르고 있는 가난한 어머니로서 대단한 작심이 아닐 수 없다. 늙어 임종(臨終) 직전에야 형제를 불러 놓고 말했다. `재(財)는 재(災)다. 사람이 나서 마땅히 궁핍한 것이 있는 줄 알아야 하는데, 두 아들이 아직 어릴 때에 의식(衣食)의 안일(安逸)에 습성이 들면 공부에 힘쓰지 않을 것이요, 가난하게 자라지 않으면 재물이 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내가 집을 옮겨 그 재물을 단념한 것이다,' 가마솥 가득한 그 은(銀)을 버리고 자식 형제를 구제해 낸 것이다. `역옹패설'이란 문헌에도 돈을 버리고 형제 간의 `사이'를 구제한 사례가 적혀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어떤 형제가 길을 가는데 앞서 가던 아우가 크고 작은 황금 두 덩이가 든 주머니를 주워 그 중 작은 금덩이를 형에게 주었다. 양화진(楊花津)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가던 중 아우가 갑자기 그 금덩이를 강물에 버리는 것이었다. 형이 괴이하게 여기고 물었다. `내가 평소에 형님을 사랑함이 매우 돈독했는데, 지금 금덩이를 갖고 보니 사특한 마음이 생겨 그 우애에 금이가는 듯 합니다. 이간질하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강에 버린 겁니다.' 이 말을 들은 형도 `네 말이 옳다'하고 역시 금을 강물에 던졌다. 근간 일본에서 대나무 숲에 억대의 지폐가 버려져 있어 세계적 화제가 됐었는데, 버린 장본인이 나타나 하는 말이, 돈 때문에 자살하고 배신하고 사기치는데 환멸을 느낀 끝에 `인간'을 구제하고자 버렸다 했다. 재물이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內村鑑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은 살 수 없으며, 장식품은 살 수 있으나 美는 살 수 없으며, 약은 살 수 있으나 건강은 살 수 없으며, 책은 살 수 있으나 두뇌는 살 수 없으며,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입맛은 살 수 없으며, 유흥은 살 수 있으나 행복은 살 수 없으며, 십자가는 살 수 있으나 구세주는 불가능하며, 교회는 지을 수 있으나 하늘나라는 불가능하다. 록펠러가 의미있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 밖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말입니다.
둘째로, 놀고 쾌락을 좇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 줄 생각했기 때 문입니다. 부자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기존 창고를 헐고 새로운 창고를 큰 규모로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시금 앞일을 내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우리가 돈벌이에 집착하는 것도 이 부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하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먹고 마시고 즐기기만 하는 것이 행복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쾌락을 좇으려는 사람들의 욕구도 재물에 대한 욕구만큼 강렬합니다. 쉽게 자제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겠습니까 로마제국은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사람들의 생활태도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만 몰두하는 나라도, 집안도, 개인도 패망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빈둥빈둥 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동물들을 관리했습니다(창1:28). 그리고 아마도 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2장 5-6절에는 사람이 창조되기 전의 상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 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이 말씀은 밭에 채소가 아직 나지 아니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인데 수분 문제는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는 안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창조된 후에 농사를 짓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29). 먹기만 해서는 안 되고 먹는 한편 심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따라서 굳이 농사일을 타락 후의 일로 결부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참된 복락이 일하지 않고 즐기기만 하는 것이었다면 낙원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당초 사람은 일하면서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생활도 빈둥빈둥 노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이 많아 직업 전선에서 은퇴한 노인들은 아무런 할 일 없이 쏘다니는 것을 매우 지루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이들의 한결 같은 요구는 일거리를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하는 보람을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일벌레가 되서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일하지 않고 지내는 것도 곤란합니다.
셋째로, 쌓아둔 재물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으리라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자의 계획대로라면 그는 여러 해 동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사가 다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날 밤에 그의 영혼을 취하실 수도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럴 경우 그는 아무 것도 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그 사실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간혹 강도를 만나 몇 푼 안되는 돈 움켜 쥐고 안 빼앗기려 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 생명보다 귀한 것이 아닌데도 돈을 붙들려다가 돈도 잃고 생명도 잃게 되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유행가도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세상이요,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쁜 세상이다라고요.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3절 말씀은 어떻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함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이 사람은 이미 많은 것을 쌓아둔 부자인데도, 그리고 많은 수입을 더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을 위해서 쌓아두었습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잠18:11)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23:4)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8-19) 급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못하느니라. 먼저 고난을 겪고 나중에 행복해지기 원한다. 조삼모사 이야기.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늙어서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 여름철에 노래하며 즐기지만 추운 겨울에 굶주리며 동냥 다니는 베짱이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땀 흘리며 일하지만 겨울에 난로가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개미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연히 지금 좀 덜 쓰러라도 장차 천국에서 더 풍성한 중에 있게 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지옥에서 고통당하며 호소하는 부자에게 아브라함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16:25)
광해군 때 팔도의 갑부(甲富)로 손꼽히는 고비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 하나가 찾아와 "자네는 어떻게 그런 큰 돈을 벌었는가, 축재(蓄財)의 비결을 가르쳐줄 수 없나" 하고 물었다. 이 친구 시키는 대로 다 한다는 다짐을 받고서 아름드리 고목 밑으로 데리고 갔다. 옷을 벌거벗긴 다음 나무에 오르게 했다. 알몸이 된 이 친구를 가지 끝에 가게 하여 가지 끝을 붙들고 늘어지라고 했다. 붙들고 있는 두 손 가운데 한 손을 놓으라고 시킨다. 와들와들 떨면서 한 손을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밑에 모여서 손가락질하며 이 나체 쇼를 즐기고 있었다. 가지를 붙들고 있는 한 손마저 놓으라고 시키자 "이 사람아, 떨어뜨려 죽일 셈인가, 돈을 못 벌면 못 벌었지 손은 못 놓겠네" 했다. 죽어도 못 놓겠다는 것을 다짐받고 내려오라고 시켰다.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이 친구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제 돈을 버는 비결을 터득했네. 한 손을 마저 놓으면 떨어져 죽고 놓지 않으면 죽지 않듯이 비록 단 한푼의 재물이 생기더라도 그렇게 놓지 않는 것이 돈 모으는 유일무이한 비결일세." 그건 알 만한데 왜 굳이 벌거벗겨 남들에게 우셋거리로 만들었는가고 물었다. "그렇게 목숨처럼 재물을 붙들고 있자면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우셋거리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감내하라는 뜻에서 옷을 벗긴 것일세." 이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요즈음 세상에도 통하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옷을 벗고 나체(裸體)가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로 보상되는 큰 일인가를 가늠케 해주고도 있다. 잠롱 스리무엉 태국 왕립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장까지 진급했던 사람이 예편을 했다. 그는 군대 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누구못지 않게 돈과 명예를 추구한 사람이다.
어느 날이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 다행히 인명의 손상도 없었고 경제적인 손실도 없었으나 그날 이후 그는 밤잠을 못자는 병에 걸렸다. 혹시 또 도둑이 들면 어떻게 할까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불면증의 고통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라야 그 괴로움의 정도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지 않은가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불면증이다. 이렇게 지옥같은 날이 얼마간 계속되는 동안 그는 새로운 교훈 하나를 깨달았다. 비록 많은 재물과 이에 걸맞는 존경심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통이 더욱 증대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보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열심히 일하여 남은 것을 사회에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면서 그는 그때까지 무거운 짐을 진 듯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청백리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태국의 방콕시장 잠롱 스리무엉의 이야기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남에게 많이 주면 줄수록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돈을 주면 돈을 얻게 되고 금을 주면 금을 얻게 마련입니다. 저의 경우 언젠가 170불짜리 자가용을 기증하자 250만불짜리 롤즈로이즈를 얻게된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줄 때 무엇을 바라고 주어서는 안됩니다." 올해(95년) 61세가 되는 그는 방콕의 시장으로서, 팔라드하르마 정당의 당수로서 태국은 물론이고 세계인의 양심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결코 부와 명예와 칭송을 탐한 바 없으며 그런 것들은 자연히 따랐을 뿐이지요. 저는 이런 행운을 사회에 환원할 것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직위는 보다 많은 분들에게 헌신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첫째로, 재물이 행복을 보장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많이 얻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 해에 풍작을 이루어서 비로소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이미 부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재물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생활비가 한 달 여유가 있으면 1년 여유분을 원하고, 계속해서 5년, 10년, 30년 여유분을 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평생 쓸 것을 마련해 놓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후에는 자식을 위해서 쌓아두려고 하고 손자를 위해서 쌓아두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 욕심을 다 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자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그런 뜻으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삶)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이 부자는 더 많은 재물을 얻으려는 욕심에 이끌려 땅도 더 사고 일군도 더 사서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갔습니다. 거기다가 기후가 좋아 전례 없는 풍년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들판에는 알알이 영글은 이삭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어져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부자는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이고 곧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의 창고에는 예상되는 곡식을 다 저장할 만한 공간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근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그 많은 곡식을 여러 해 동안 무슨 재주로 보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수매한 추곡을 저온창고에 보관하는 데 그 비용이 엄청나게 들아간다지 않습니까 땅 속을 헤집고 다니며 창고에 구멍을 뚫고 침입하는 그 많은 쥐들은 어떻게 일일이 몰아낼 수 있겠습니까 재물이 근심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전도서 5장 13절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사람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전5:13) 재물이 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일사유사(逸士遺事)'라는 근세 문헌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서울 사는 김학성(金鶴聲)의 어머니는 어느 날 우연히 처마 밑에서 은(銀)이 가득한 가마솥 하나를 발견했다. 이를 보고 놀란 어머니는 다시 그 자리에 깊이 묻어 두고 이사를 해버렸다. 과부에다 열 살 안팎의 형제를 기르고 있는 가난한 어머니로서 대단한 작심이 아닐 수 없다. 늙어 임종(臨終) 직전에야 형제를 불러 놓고 말했다. `재(財)는 재(災)다. 사람이 나서 마땅히 궁핍한 것이 있는 줄 알아야 하는데, 두 아들이 아직 어릴 때에 의식(衣食)의 안일(安逸)에 습성이 들면 공부에 힘쓰지 않을 것이요, 가난하게 자라지 않으면 재물이 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내가 집을 옮겨 그 재물을 단념한 것이다,' 가마솥 가득한 그 은(銀)을 버리고 자식 형제를 구제해 낸 것이다. `역옹패설'이란 문헌에도 돈을 버리고 형제 간의 `사이'를 구제한 사례가 적혀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어떤 형제가 길을 가는데 앞서 가던 아우가 크고 작은 황금 두 덩이가 든 주머니를 주워 그 중 작은 금덩이를 형에게 주었다. 양화진(楊花津)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가던 중 아우가 갑자기 그 금덩이를 강물에 버리는 것이었다. 형이 괴이하게 여기고 물었다. `내가 평소에 형님을 사랑함이 매우 돈독했는데, 지금 금덩이를 갖고 보니 사특한 마음이 생겨 그 우애에 금이가는 듯 합니다. 이간질하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강에 버린 겁니다.' 이 말을 들은 형도 `네 말이 옳다'하고 역시 금을 강물에 던졌다. 근간 일본에서 대나무 숲에 억대의 지폐가 버려져 있어 세계적 화제가 됐었는데, 버린 장본인이 나타나 하는 말이, 돈 때문에 자살하고 배신하고 사기치는데 환멸을 느낀 끝에 `인간'을 구제하고자 버렸다 했다. 재물이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內村鑑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은 살 수 없으며, 장식품은 살 수 있으나 美는 살 수 없으며, 약은 살 수 있으나 건강은 살 수 없으며, 책은 살 수 있으나 두뇌는 살 수 없으며,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입맛은 살 수 없으며, 유흥은 살 수 있으나 행복은 살 수 없으며, 십자가는 살 수 있으나 구세주는 불가능하며, 교회는 지을 수 있으나 하늘나라는 불가능하다. 록펠러가 의미있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 밖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말입니다.
둘째로, 놀고 쾌락을 좇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 줄 생각했기 때 문입니다. 부자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기존 창고를 헐고 새로운 창고를 큰 규모로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시금 앞일을 내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우리가 돈벌이에 집착하는 것도 이 부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하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먹고 마시고 즐기기만 하는 것이 행복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쾌락을 좇으려는 사람들의 욕구도 재물에 대한 욕구만큼 강렬합니다. 쉽게 자제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겠습니까 로마제국은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사람들의 생활태도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만 몰두하는 나라도, 집안도, 개인도 패망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빈둥빈둥 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동물들을 관리했습니다(창1:28). 그리고 아마도 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2장 5-6절에는 사람이 창조되기 전의 상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 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이 말씀은 밭에 채소가 아직 나지 아니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인데 수분 문제는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는 안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창조된 후에 농사를 짓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29). 먹기만 해서는 안 되고 먹는 한편 심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따라서 굳이 농사일을 타락 후의 일로 결부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참된 복락이 일하지 않고 즐기기만 하는 것이었다면 낙원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당초 사람은 일하면서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생활도 빈둥빈둥 노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이 많아 직업 전선에서 은퇴한 노인들은 아무런 할 일 없이 쏘다니는 것을 매우 지루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이들의 한결 같은 요구는 일거리를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하는 보람을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일벌레가 되서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일하지 않고 지내는 것도 곤란합니다.
셋째로, 쌓아둔 재물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으리라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자의 계획대로라면 그는 여러 해 동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사가 다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날 밤에 그의 영혼을 취하실 수도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럴 경우 그는 아무 것도 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그 사실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간혹 강도를 만나 몇 푼 안되는 돈 움켜 쥐고 안 빼앗기려 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 생명보다 귀한 것이 아닌데도 돈을 붙들려다가 돈도 잃고 생명도 잃게 되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유행가도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세상이요,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쁜 세상이다라고요.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3절 말씀은 어떻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함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이 사람은 이미 많은 것을 쌓아둔 부자인데도, 그리고 많은 수입을 더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을 위해서 쌓아두었습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잠18:11)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23:4)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8-19) 급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못하느니라. 먼저 고난을 겪고 나중에 행복해지기 원한다. 조삼모사 이야기.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늙어서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 여름철에 노래하며 즐기지만 추운 겨울에 굶주리며 동냥 다니는 베짱이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땀 흘리며 일하지만 겨울에 난로가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개미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연히 지금 좀 덜 쓰러라도 장차 천국에서 더 풍성한 중에 있게 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지옥에서 고통당하며 호소하는 부자에게 아브라함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16:25)
광해군 때 팔도의 갑부(甲富)로 손꼽히는 고비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 하나가 찾아와 "자네는 어떻게 그런 큰 돈을 벌었는가, 축재(蓄財)의 비결을 가르쳐줄 수 없나" 하고 물었다. 이 친구 시키는 대로 다 한다는 다짐을 받고서 아름드리 고목 밑으로 데리고 갔다. 옷을 벌거벗긴 다음 나무에 오르게 했다. 알몸이 된 이 친구를 가지 끝에 가게 하여 가지 끝을 붙들고 늘어지라고 했다. 붙들고 있는 두 손 가운데 한 손을 놓으라고 시킨다. 와들와들 떨면서 한 손을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밑에 모여서 손가락질하며 이 나체 쇼를 즐기고 있었다. 가지를 붙들고 있는 한 손마저 놓으라고 시키자 "이 사람아, 떨어뜨려 죽일 셈인가, 돈을 못 벌면 못 벌었지 손은 못 놓겠네" 했다. 죽어도 못 놓겠다는 것을 다짐받고 내려오라고 시켰다.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이 친구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제 돈을 버는 비결을 터득했네. 한 손을 마저 놓으면 떨어져 죽고 놓지 않으면 죽지 않듯이 비록 단 한푼의 재물이 생기더라도 그렇게 놓지 않는 것이 돈 모으는 유일무이한 비결일세." 그건 알 만한데 왜 굳이 벌거벗겨 남들에게 우셋거리로 만들었는가고 물었다. "그렇게 목숨처럼 재물을 붙들고 있자면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우셋거리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감내하라는 뜻에서 옷을 벗긴 것일세." 이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요즈음 세상에도 통하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옷을 벗고 나체(裸體)가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로 보상되는 큰 일인가를 가늠케 해주고도 있다. 잠롱 스리무엉 태국 왕립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장까지 진급했던 사람이 예편을 했다. 그는 군대 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누구못지 않게 돈과 명예를 추구한 사람이다.
어느 날이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 다행히 인명의 손상도 없었고 경제적인 손실도 없었으나 그날 이후 그는 밤잠을 못자는 병에 걸렸다. 혹시 또 도둑이 들면 어떻게 할까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불면증의 고통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라야 그 괴로움의 정도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지 않은가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불면증이다. 이렇게 지옥같은 날이 얼마간 계속되는 동안 그는 새로운 교훈 하나를 깨달았다. 비록 많은 재물과 이에 걸맞는 존경심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통이 더욱 증대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보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열심히 일하여 남은 것을 사회에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면서 그는 그때까지 무거운 짐을 진 듯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청백리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태국의 방콕시장 잠롱 스리무엉의 이야기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남에게 많이 주면 줄수록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돈을 주면 돈을 얻게 되고 금을 주면 금을 얻게 마련입니다. 저의 경우 언젠가 170불짜리 자가용을 기증하자 250만불짜리 롤즈로이즈를 얻게된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줄 때 무엇을 바라고 주어서는 안됩니다." 올해(95년) 61세가 되는 그는 방콕의 시장으로서, 팔라드하르마 정당의 당수로서 태국은 물론이고 세계인의 양심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결코 부와 명예와 칭송을 탐한 바 없으며 그런 것들은 자연히 따랐을 뿐이지요. 저는 이런 행운을 사회에 환원할 것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직위는 보다 많은 분들에게 헌신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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