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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큰 자인가 (눅9:46-50)

본문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이 굴레를 떨쳐버리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게 될 때가 오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게 하실 분이 메시야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이러한 정치적 메시야 상을 기대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대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절망에 빠진 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말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눅24:21). 자연히 그들은 장차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때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신경을 쓰게 되었고 이것이 급기야는 제자들 간에 누가 크냐는 논쟁으로 불거져 나왔습니다. 우리 정치판에서 대권 도전을 꿈꾸는 차기 주자들의 자기 PR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첫째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제자들이 벌인 논쟁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었습니다. 정복자가 제일이냐 과학자가 제일이냐를 논쟁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최고냐 엘리야가 최고냐 하고 입씨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 중에서 누가 제일이냐고 논쟁한 것입니다. 그것도 삼자 추천 방식으로 다른 제자를 가리키며 칭찬한 것이 아니라 제각기 자신이 제일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안드레는 가장 먼저 예수님을 좇았다는 점을 내세우며 자랑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하셨다는 점을 내세우며 자랑했을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그분 곁에 제일 가까이 앉는다는 점을 자랑했을 것입니다. 마태의 경우 전직 세리였기 때문에 제일 학식이 많다고 자랑했음직도 합니다. 열심당원이었던 시몬의 경우 자기의 과거 독립투쟁 경력을 자랑했음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에 품은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벌이는 논쟁의 어리석음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아무리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최고라고 자랑할지라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검증되고 인정받는 사람만이 큰 사람이며 훌륭한 사람이며 위대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능력, 기량, 업적, 지식, 용맹, 재물, 등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합니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 술로는 말지니라”(잠27:2)
둘째로, 주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큰 자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최종 판결은 법정에서 판사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다수 의견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판사가 법에 의해 내리는 판결이 권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큰 사람, 위대한 사람의 기준을 이구동성으로 제시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제시하는 기준과 다를 때는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입법자이자 재판관이신 주님의 기준과 인정만이 최종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그분께서 누구를 큰 자로 인정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가장 작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1)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큰 자입니다. 이 말씀은 나이가 가장 적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이의 특성을 가진 사람을 염두에 두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나이가 적을수록 부모 의존도가 높아집니다. 20세 청년보다는 10살 난 어린이가 부모를 더 의존합니다. 10살 난 어린이보다는 다섯 살 난 아이가 부모를 더 의존합니다. 세 살 아이는 엄마 주변에서만 놀지 멀리 떠나지도 않습니다. 갓난 아이는 주변도 아니고 엄마 품 속에서 지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사람의 능력이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는 아닙니다. 근소한 차이일 뿐입니다. 100미터 단거리 세계최고 기록보유자라 하더라도 보통 사람인 저와 비교했을 때 많아야 5초 정도 차이가 날 것입니다. 세계적인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라 하더라도 보통 사람과 비교했을 때 많아야 1시간 정도 차이가 날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보통 사람과 얼마나 차이가 나겠습니까 국민학교에 다니는 제 아이들이 때때로 공작이나 그리기나 글짓기 과제를 가지고 옵니다.
대개는 제 아내가 도와주는 데 십중팔구 상장을 받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4학년 또래의 기량이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습니까 그러니 부모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정말 위대한 사람은 학식과 재능과 용맹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의 위대함의 원천은 그 자신이 아니라 절대자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2)섬기는 사람이 큰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하실 때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주기를 예수님께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10:43-44; 참조 마20:26-27)) 테레사 수녀를 가까이 하는 사람마다 그녀의 인격에 순결한 감동을 받습니다. 특별히 질투없이 살아가는 그 삶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이 테레사와 함께 살고 있었던 한 분이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마침 테레사는 한 어린이의 고름을 만지면서 치료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이 분이 그녀 곁에 다가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평안하게 사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시기심이 안 생깁니까 이런 삶으로 만족하십니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테레사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3)겸손한 사람이 큰 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상좌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고 권고하시면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4:11). 성경적인 겸손은 낮아짐을 가장한 자만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려움 없이 정직하게 자기를 평가하는 자세입니다.
즉 자신의 공적을 최소화하지도 않고, 자신의 실패를 과장하지도 않고 자기 평가를 내리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자는 누구나 그 관계의 자연적 부산물로 겸손을 나타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주님과 그분의 완전한 거룩함을 알게 될수록 그 자신의 죄와 단점을 더 많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겸손의 열쇠는 자기 비하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고요한 호수의 물 속에서 무엇이든 가장 높은 물체가 가장 낮게 반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높은 나무이면 높은 나무일수록 더 낮게 비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 저 세상에서는 가장 낮은 것이다. 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것이다. 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데 있지만 저 세상에서는 금으로 길바닥을 포장한다. 섬기는 일이 이 세상에서는 천한 것으로 보이지만 저 세상에서는 섬기는 자가 다스린다. 진짜 보석을 위하여 인조보석을 버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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