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런 일을 알겠느냐? (호13:14)
본문
지난 여름 가족들과 함께 설악산에서 휴가를 보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동해 바다와 어우러진 설 악산의 빼어난 경치들이 탄성에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바로 이 설악산에서 배운 말이 하나 있습니다. 히-야 라는 말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을 올라갈 때의 일입니다. 어떤 분이 주변에 펼 쳐지는 설악산을 보면서 연신 히-야 를 연발했습니다. 얼마나 그 말이 제 귓전에 아른거렸던지 지금도 때때로 히-야 라는 말이 저의 입전에 맴돕니다.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산행으로 인해 아이들을 대리고 정상을 오른 다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었 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아 쉽던 지요. 돌아오자마자 몇몇 교우들을 충동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저의 꾀임에 빠진 몇몇 교우들과 지난 가을 추석 에 기어이 대청봉을 올랐습니다. 오색에서 새벽 5시에 출발을 해서 11시가 다 되서야 정상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오르는 동안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힘든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에서 바라볼 설악산의 모 습이 제 눈앞을 아른거렸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상이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더욱더 힘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정상을 밟았을 때의 그 기 분, 글쎄요 그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산행을 해 보신 분 들이라면 그리고 땀흘린 수고 끝에 정상을 밟아 본 분이라면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하는지 이해가 되실 것 입니다. 호세아서를 통해서 바로 이런 마음으로 오늘 본문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의 66 개의 봉오리 중 호세아서라고 하는 정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16시간에 걸쳐서 호세아서와 씨름을 해 왔습니다. 약 4개월 에 걸친 씨름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4개월 동안 이 호세아서라는 산에 오 르시면서 어떤 것들을 보셨습니 까 저는 호세아라는 산에 오르면서 곳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진하디 진 한 그 하나님의 사랑이 곳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은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온통 불바다가 된 곳도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 나의 사랑이 바로 너를 위해서 불붙는 듯 하도다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몰염치한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 스라엘 백성들을 모습을 단적 으로 표현한 것이 배은망덕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없는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 고 계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 애를 썼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서로 평행 선을 긋고 달리는 열차 길에 모습이 떠올라 이것과 비교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은혜 를 저버린 이스라엘, 이것이 호세아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스라엘로부터 버림을 당한 분이 하나님이었 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곳곳에서 이런 이스라엘을 보시면서 진노하셨습니다. 징계하시겠노라 고 벌을 내리겠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 노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몸부림이었습니다. 남편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이스 라엘 백성들을 향한 끊임없는 사랑 바로 이것이 호세아서의 대 주제 였습니다. 바로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고멜과 같은 음탕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 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사랑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을 살피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호세아서를 살 폈습니다. 이제 한 시간만 오르면 정상입니다. 자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질 호세아서의 정상을 미리 연상해 보면서 함 께 오늘 본문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사실 이 말씀을 해석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 왜 오늘 본문을 13:14절부터, 그것도 14절 하반절부터 설명을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제법 시간을 드려야 이 문제가 풀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설명하는 일에 시간을 드리고 쉽지 않 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히 정상에 오르고자 합니다. 단지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는 말을 이렇게 받아 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내가 그를 불쌍히 여기 지 않겠다 하나는 표준벅역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인의 성경 번역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구절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까요.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사망으로부터 우리들을 구속하시겠노라고 선언하시던 말씀을 접하고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늘 본문은 낙망스러운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혹 이런 본문을 대 하고 이렇게 말씀을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변덕도 참 심하다 어떻게 금방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는 금방 이렇게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시는가 어떻게 이런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사실 그렇게 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호 세아서를 살피면서 한가지 전제한 것이 있었습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한다고 요 그렇습니다. 얼마나 죄를 싫어하시는가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간 곡히 기다리시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호세아서를 가만히 보십시오. 전체 적인 구조가 죄에 대해서 책망하시고 그 죄에 대 해서 벌 주리라 말씀하시면서 항상 정리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이 죠. 바로 오늘 본문도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속 에서 아 오늘 말씀도 어떻게 끝나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죠. 동풍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 자 이런 구조에 대해서 이해를 하시면서 오늘 본문을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5 절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결실 한다고 말합니다. 즉,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죠. 삶이 풍요로와 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이 풍요함이 어떻게 됩니까 갑자기 바람 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바람입니까 그렇습니다. 동풍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12:1절을 설명하면서 이 동풍 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자 다시 기억을 상기하는 의미에서 12:1절을 읽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동풍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앗수르였습니다. 자 이 동풍의 특징이 어떠하다 고 말씀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바람의 세기도 세기이지만 이 바람은 뜨겁기로 유명한 바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 이런 바람이 불면 어떻 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건조해 지기 시작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은 이렇게 말하죠. 마르며 마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마릅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실 했던 바로 그것들이 마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 들이 세상과 짝하여 얻었던 모든 것들이 마를 것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 핀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 구름 같고,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고,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고, 굴뚝에서 나는 역기 같을 것이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서는 이 동풍이 누구로 설명이 되어 있습 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열매를 거두 어 가시는 동풍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말리는 동풍이 아닌 열매 맺게 하는 분으로 다가 가기를 원하 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오 히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으 로부터 열매를 취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는 저들의 모든 열매를 말리는 동풍으로 다가 가시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잠깐의 열매를 인해 기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열매가 지금은 아무리 찬란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것이라면 언젠가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열매들을 말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초라한 인생이 되실 것입니다. 물론 그 때가 바로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 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들 이 인생을 마금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바로 그 순간에 그것들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언제 여러분들에게도 15절 하 반절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저축한 그 모든 것들이 다 약탈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고 얻은 열매를 인해 기뻐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인생의 열매들을 기뻐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 기 바랍니다. 16절 말씀은 이 동풍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이와 아이밴 여인은 가장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대게 전쟁이 나도 이런 사람들은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보십 시오. 이들 마져도 넘어지고 부숴지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그 대로 일어났습니다. [왕하 8:12]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사엘이 가로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대답하되 네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 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 어 차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 라 이 말씀대로 하사엘은 아이를 매어 차며 아이 밴 부녀를 갈랐습니다. 또 [나 3:10] 에서는 노아몬의 정복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 어린 아이들은 길 모 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숴졌으며 그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 모든 대인은 사슬에 결박되었나 니 또 [암 1:13]에서는 암몬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일에 대해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 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그래서 이런 역사를 지켜보았던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할 정도 였습니다. [시 137:9]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차 라리 이런 일을 당하느니 아이 를 반석에 메어쳐 죽이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말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말씀을 이렇 게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 이렇 게 오늘 말씀이 끝나 버린다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우리들의 죄로 인해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돌아 오라 1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자 다시 오늘 본문의 구조를 잘 보십시오. 먼저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그 렇습니다.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죠.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까 그렇 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동 풍으로 저들을 다스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난 후에 오늘 말씀은 어떻게 말씀하죠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즉, 돌아오지 않으 면 이런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 드려 졌느니라고요. 이 말씀은 너희는 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넘어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넘어졌던 사람들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일으키심을 받습니다. 삼손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가 왜 힘 을 잃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가 다시금 돌아와서 하나님께 간구 했 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모른 다 하지 않으시고 저를 다시 쓰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아 영원히 멸망을 받은 경우 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가롯유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주 님은 이런 그를 아시고 그에게 돌아올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네가 바로 그로라 말씀하시면서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지적하시지만 그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돌아오지 않아 망한 대표적인 사람이 되고 말 았습니다. 결국 그는 넘어진 체 일어서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 여러분들은 넘어져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영혼이 하나님으 로부터 넘어진 영혼은 아닙니 까 사실은 넘어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넘어져 있 을 때 가롯유다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이 일어 서기를 기대하시면서 수많은 말씀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 오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의 음성에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말씀을 가지고 그러면 하나님께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2,3절은 바로 이 방법에 대해서 이 렇게 설명합니다. 여러분 2절을 보십시오. 무엇을 가지고 돌아 오라 말씀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가지고 돌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요 자 이것을 알기 위해서 이 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무엇을 가지고 나아갔는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나아갔죠 그렇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흠없고 점없는 그런 재물들을 정성을 다해 준비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2절을 가만히 보십시오. 이런 것들을 드리지 않고 무엇을 드린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 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수송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입술은 무엇이겠습니까 3절을 말합니다. 자 3절을 읽 도록 하죠. 자 이들이 입술로 무엇을 하죠 그렇습니다. 회개 를 하죠.
그렇다면 2절에서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 회개의 입술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것 입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서 회개의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수송아지를 잡고 어린 양을 잡기도 하였지만 사실은 형식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런 형식으로 나오지 말고 진실된 마음으로 나오 라는 것입니다. 의례적이고 의 식적으로 나오지 말고 참회의 눈물을 가지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 뻐 받으시는 예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왔는가를 살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어떤 헌신을 하 십니까 혹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음 없이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으로 나오시 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목회를 하면서 두려운 것 중에 하나는 우리들이 자주 모여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기 때문에 이 것이 형식이 되지 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예배가 형식이 되지 않고 마음이 되게 해 달라고요. 우리의 헌신이 형식 이 되지 않고 마음이 되게 해 달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기왕 하나님께 나오는 것 억 지로 끌려 나오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나오십시오. 기왕 헌신하는 것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좀 신명나게 신앙생활을 해 보십시다. 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 보십시다. 회개의 입술을 가지고 자 그러면 이들에게 어떤 회개를 요구하시는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자! 여기서 아니한다는 말이 몇 번 나오죠 그렇습니다. 3번 나옵니다. 이것들이 다 무 엇과 관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하던 것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 의지 하던 것들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회개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의지하던 대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을 의지하고 살았다면, 하나님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자신을 의지하고 살았다면 그 것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닌 모든 것들은 사실 우리들이 의지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 [렘 17:5-7]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 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 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 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회개는 이처럼 눈물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회개하면 눈물과 연결지어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는 돌이킴이 있어 야 합니다. 의지하는 대상이 바 뀌어야 합니다. 종종 그런 사람을 봅니다. 눈물은 잘 흘리는데 의지하는 대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늘 세상을 의지합니다. 그래 놓고 교회 와서는 닭똥 같은 회개의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울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처럼 눈물이 메말라 있는 이 시대에 우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 까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회개는 돌이켜져야 합니다. 돌아서야 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돌이켜 지고 있습니까 의지의 대상으로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으로 바꾸시고 계십니까 그리고 이것이 생활 속에 나타나고 있 습니까 바로 이런 돌이킴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말씀은 권면 하고 있습니다. 돌이키는 자에게 자 그러면 이렇게 돌이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까요 4절은 이렇게 시 작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5절도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을 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내가는 누구를 말합니까 그렇 습니다.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 오실까요
4절 말씀을 함께 읽 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들 을 고쳐 주시겠노라 말씀하십니다. 치료하시겠다는 것이죠. 아마 여러분들은 말라기서가 어떻게 끝맺고 있는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말라기 4:2절 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 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여러분 여기서 치료하는 광선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였죠 그 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상처난 영혼을 싸매 주시겠다는 것이 였죠. 바로 오늘 본문도 이것 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이처럼 치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시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 말씀을 지금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배은망덕한 자들이었습니다. 끊임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손을 내밀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런 자들 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시고 저들을 치 료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하겠다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의 사랑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죄를 지었던지 하나님께 두손들고 돌아오면 그 모든 죄악을 불문에 부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 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 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무슨 말씀입 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죄라 도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용서하십니까 찜찜하게요. 아닙니다. 깨끗이 용 서하신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 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 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용서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기억지도 않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방 법입니다. 이런 사랑으로 사랑하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단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있습니다.어떤 말이죠 그렇습니다. 즐거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반역하고 뻔뻔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즐거이 사랑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어떤 분은 여기서 말하는 즐거이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들의 어쩔 수 없는 모습에도 개의치 않으시 고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즐거이 사랑하고 계신다. 이는 그 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를 즐거이 사랑 하 사 즐거이 사람이 되셨고 그후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당신 자신의 피를 즐거이 흘리셨으며 즐거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즐 거이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바로 이 사랑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넘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들까지 즐거이 내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 앞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삶을 사시렵니 까 이슬과 같이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다. 자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슬에 비유해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 기서 말하는 이슬의 이미는 무엇일까요 5-7절 말씀에서 이 이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 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자 여기서 이슬들이 어떤 역할을 합니까 그렇습니다. 백합화가 피게 합니다. 뿌리가 박히게 합니다. 아름다운 감람나무가 되게 하고 향기로운 꽃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이 런 것들이 무성해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늘을 만들기도 하고 열매맺게 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역할입니다. 자 여러분 보십시오. 회개치 않는 자는 어떠하다고 말씀을 하셨었죠 13:15절에 그렇습니다. 마르겠다 말씀하 셨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회개 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슬이 되셔서 소리 없이 저들을 촉촉이 적 시면서 저들을 소성케 하시겠 다 말씀하시는 것이죠. 꽃도 피고 향기도 나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들의 삶에 매 력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이 그 그늘로 몰려 들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보십시오. 이것이 누구의 삶입니 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돌 아온 자들의 삶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의 삶이 이렇게 멋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입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멋진 삶을 사시나요. 백합화와 같이 순결하게 빛나십니까 백향목과 같이 깊이 뿌리를 내리십니까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십 니까 잎들이 푸르고 푸르러 많은 사람들이 쉼을 얻습니까 열매맺고 있습니까 소성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여기 예언 된 이 말씀은 사실 우리 속에 당연히 나타나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들의 삶의 모습이라고요.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향기도 꽃도 없는 그리스도 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요. 잎사귀도 다 말라비틀어진 체 볼품없이 시들어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 요.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슬을 맞고 사는 사람은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용히 우리들을 향해 쏟아지는 하나님의 이슬 아래로 나아 오십시오. 바로 여러분들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이런 일을 이렇게 한없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이슬을 바라보면서 오늘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을 끝맺고 있습니다.
함께 9절을 읽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세아 전체를 머리 속에 떠올리셔야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호세아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어떠했다고요 그렇습니다. 배은망덕했다 말씀을 드렸 습니다. 고멜과 같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없이 한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자들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께 다시 나오면 한없는 은혜를 부어 주시며 저들을 이 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끄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들의 머리로 우리 인간의 이 작은 머리로 이런 멋 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누가 . 알겠느냐 하는 이 말은 이런 멋지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감탄하는 호세아의 탄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 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누 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난 후 호세아는 이렇게 말씀을 맺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번 역해 놓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길은 바르므로 의로운 사람은 그 길로 걸어갈 것이지만 죄인은 걸려 넘어질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의로운 사람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만 그렇 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이 사랑에 걸려 넘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 심 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자가 되시겠습니까 걸려 넘어지는 자가 되시겠습니 까 아니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가 되시겠습니까
왜냐하면 정상에서 바라볼 설악산의 모 습이 제 눈앞을 아른거렸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상이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더욱더 힘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정상을 밟았을 때의 그 기 분, 글쎄요 그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산행을 해 보신 분 들이라면 그리고 땀흘린 수고 끝에 정상을 밟아 본 분이라면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하는지 이해가 되실 것 입니다. 호세아서를 통해서 바로 이런 마음으로 오늘 본문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의 66 개의 봉오리 중 호세아서라고 하는 정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16시간에 걸쳐서 호세아서와 씨름을 해 왔습니다. 약 4개월 에 걸친 씨름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4개월 동안 이 호세아서라는 산에 오 르시면서 어떤 것들을 보셨습니 까 저는 호세아라는 산에 오르면서 곳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진하디 진 한 그 하나님의 사랑이 곳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은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온통 불바다가 된 곳도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 나의 사랑이 바로 너를 위해서 불붙는 듯 하도다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몰염치한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 스라엘 백성들을 모습을 단적 으로 표현한 것이 배은망덕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없는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 고 계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 애를 썼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서로 평행 선을 긋고 달리는 열차 길에 모습이 떠올라 이것과 비교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은혜 를 저버린 이스라엘, 이것이 호세아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스라엘로부터 버림을 당한 분이 하나님이었 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곳곳에서 이런 이스라엘을 보시면서 진노하셨습니다. 징계하시겠노라 고 벌을 내리겠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 노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몸부림이었습니다. 남편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이스 라엘 백성들을 향한 끊임없는 사랑 바로 이것이 호세아서의 대 주제 였습니다. 바로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고멜과 같은 음탕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 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사랑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을 살피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호세아서를 살 폈습니다. 이제 한 시간만 오르면 정상입니다. 자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질 호세아서의 정상을 미리 연상해 보면서 함 께 오늘 본문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사실 이 말씀을 해석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 왜 오늘 본문을 13:14절부터, 그것도 14절 하반절부터 설명을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제법 시간을 드려야 이 문제가 풀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설명하는 일에 시간을 드리고 쉽지 않 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히 정상에 오르고자 합니다. 단지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는 말을 이렇게 받아 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내가 그를 불쌍히 여기 지 않겠다 하나는 표준벅역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인의 성경 번역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구절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까요.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사망으로부터 우리들을 구속하시겠노라고 선언하시던 말씀을 접하고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늘 본문은 낙망스러운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혹 이런 본문을 대 하고 이렇게 말씀을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변덕도 참 심하다 어떻게 금방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는 금방 이렇게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시는가 어떻게 이런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사실 그렇게 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호 세아서를 살피면서 한가지 전제한 것이 있었습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한다고 요 그렇습니다. 얼마나 죄를 싫어하시는가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간 곡히 기다리시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호세아서를 가만히 보십시오. 전체 적인 구조가 죄에 대해서 책망하시고 그 죄에 대 해서 벌 주리라 말씀하시면서 항상 정리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이 죠. 바로 오늘 본문도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속 에서 아 오늘 말씀도 어떻게 끝나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죠. 동풍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 자 이런 구조에 대해서 이해를 하시면서 오늘 본문을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5 절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결실 한다고 말합니다. 즉,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죠. 삶이 풍요로와 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이 풍요함이 어떻게 됩니까 갑자기 바람 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바람입니까 그렇습니다. 동풍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12:1절을 설명하면서 이 동풍 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자 다시 기억을 상기하는 의미에서 12:1절을 읽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동풍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앗수르였습니다. 자 이 동풍의 특징이 어떠하다 고 말씀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바람의 세기도 세기이지만 이 바람은 뜨겁기로 유명한 바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 이런 바람이 불면 어떻 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건조해 지기 시작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은 이렇게 말하죠. 마르며 마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마릅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실 했던 바로 그것들이 마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 들이 세상과 짝하여 얻었던 모든 것들이 마를 것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 핀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 구름 같고,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고,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고, 굴뚝에서 나는 역기 같을 것이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서는 이 동풍이 누구로 설명이 되어 있습 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열매를 거두 어 가시는 동풍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말리는 동풍이 아닌 열매 맺게 하는 분으로 다가 가기를 원하 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오 히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으 로부터 열매를 취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는 저들의 모든 열매를 말리는 동풍으로 다가 가시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잠깐의 열매를 인해 기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열매가 지금은 아무리 찬란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것이라면 언젠가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열매들을 말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초라한 인생이 되실 것입니다. 물론 그 때가 바로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 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들 이 인생을 마금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바로 그 순간에 그것들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언제 여러분들에게도 15절 하 반절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저축한 그 모든 것들이 다 약탈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고 얻은 열매를 인해 기뻐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인생의 열매들을 기뻐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 기 바랍니다. 16절 말씀은 이 동풍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이와 아이밴 여인은 가장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대게 전쟁이 나도 이런 사람들은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보십 시오. 이들 마져도 넘어지고 부숴지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그 대로 일어났습니다. [왕하 8:12]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사엘이 가로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대답하되 네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 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 어 차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 라 이 말씀대로 하사엘은 아이를 매어 차며 아이 밴 부녀를 갈랐습니다. 또 [나 3:10] 에서는 노아몬의 정복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 어린 아이들은 길 모 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숴졌으며 그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 모든 대인은 사슬에 결박되었나 니 또 [암 1:13]에서는 암몬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일에 대해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 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그래서 이런 역사를 지켜보았던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할 정도 였습니다. [시 137:9]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차 라리 이런 일을 당하느니 아이 를 반석에 메어쳐 죽이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말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말씀을 이렇 게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 이렇 게 오늘 말씀이 끝나 버린다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우리들의 죄로 인해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돌아 오라 1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자 다시 오늘 본문의 구조를 잘 보십시오. 먼저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그 렇습니다.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죠.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까 그렇 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동 풍으로 저들을 다스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난 후에 오늘 말씀은 어떻게 말씀하죠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즉, 돌아오지 않으 면 이런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 드려 졌느니라고요. 이 말씀은 너희는 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넘어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넘어졌던 사람들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일으키심을 받습니다. 삼손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가 왜 힘 을 잃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가 다시금 돌아와서 하나님께 간구 했 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모른 다 하지 않으시고 저를 다시 쓰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아 영원히 멸망을 받은 경우 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가롯유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주 님은 이런 그를 아시고 그에게 돌아올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네가 바로 그로라 말씀하시면서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지적하시지만 그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돌아오지 않아 망한 대표적인 사람이 되고 말 았습니다. 결국 그는 넘어진 체 일어서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 여러분들은 넘어져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영혼이 하나님으 로부터 넘어진 영혼은 아닙니 까 사실은 넘어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넘어져 있 을 때 가롯유다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이 일어 서기를 기대하시면서 수많은 말씀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 오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의 음성에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말씀을 가지고 그러면 하나님께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2,3절은 바로 이 방법에 대해서 이 렇게 설명합니다. 여러분 2절을 보십시오. 무엇을 가지고 돌아 오라 말씀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가지고 돌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요 자 이것을 알기 위해서 이 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무엇을 가지고 나아갔는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나아갔죠 그렇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흠없고 점없는 그런 재물들을 정성을 다해 준비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2절을 가만히 보십시오. 이런 것들을 드리지 않고 무엇을 드린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 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수송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입술은 무엇이겠습니까 3절을 말합니다. 자 3절을 읽 도록 하죠. 자 이들이 입술로 무엇을 하죠 그렇습니다. 회개 를 하죠.
그렇다면 2절에서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 회개의 입술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것 입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서 회개의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수송아지를 잡고 어린 양을 잡기도 하였지만 사실은 형식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런 형식으로 나오지 말고 진실된 마음으로 나오 라는 것입니다. 의례적이고 의 식적으로 나오지 말고 참회의 눈물을 가지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 뻐 받으시는 예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왔는가를 살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어떤 헌신을 하 십니까 혹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음 없이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으로 나오시 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목회를 하면서 두려운 것 중에 하나는 우리들이 자주 모여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기 때문에 이 것이 형식이 되지 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예배가 형식이 되지 않고 마음이 되게 해 달라고요. 우리의 헌신이 형식 이 되지 않고 마음이 되게 해 달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기왕 하나님께 나오는 것 억 지로 끌려 나오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나오십시오. 기왕 헌신하는 것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좀 신명나게 신앙생활을 해 보십시다. 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 보십시다. 회개의 입술을 가지고 자 그러면 이들에게 어떤 회개를 요구하시는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자! 여기서 아니한다는 말이 몇 번 나오죠 그렇습니다. 3번 나옵니다. 이것들이 다 무 엇과 관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하던 것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 의지 하던 것들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회개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의지하던 대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을 의지하고 살았다면, 하나님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자신을 의지하고 살았다면 그 것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닌 모든 것들은 사실 우리들이 의지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 [렘 17:5-7]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 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 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 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회개는 이처럼 눈물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회개하면 눈물과 연결지어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는 돌이킴이 있어 야 합니다. 의지하는 대상이 바 뀌어야 합니다. 종종 그런 사람을 봅니다. 눈물은 잘 흘리는데 의지하는 대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늘 세상을 의지합니다. 그래 놓고 교회 와서는 닭똥 같은 회개의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울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처럼 눈물이 메말라 있는 이 시대에 우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 까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회개는 돌이켜져야 합니다. 돌아서야 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돌이켜 지고 있습니까 의지의 대상으로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으로 바꾸시고 계십니까 그리고 이것이 생활 속에 나타나고 있 습니까 바로 이런 돌이킴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말씀은 권면 하고 있습니다. 돌이키는 자에게 자 그러면 이렇게 돌이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까요 4절은 이렇게 시 작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5절도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을 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내가는 누구를 말합니까 그렇 습니다.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 오실까요
4절 말씀을 함께 읽 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들 을 고쳐 주시겠노라 말씀하십니다. 치료하시겠다는 것이죠. 아마 여러분들은 말라기서가 어떻게 끝맺고 있는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말라기 4:2절 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 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여러분 여기서 치료하는 광선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였죠 그 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상처난 영혼을 싸매 주시겠다는 것이 였죠. 바로 오늘 본문도 이것 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이처럼 치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시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 말씀을 지금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배은망덕한 자들이었습니다. 끊임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손을 내밀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런 자들 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시고 저들을 치 료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하겠다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의 사랑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죄를 지었던지 하나님께 두손들고 돌아오면 그 모든 죄악을 불문에 부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 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 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무슨 말씀입 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죄라 도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용서하십니까 찜찜하게요. 아닙니다. 깨끗이 용 서하신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 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 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용서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기억지도 않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방 법입니다. 이런 사랑으로 사랑하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단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있습니다.어떤 말이죠 그렇습니다. 즐거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반역하고 뻔뻔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즐거이 사랑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어떤 분은 여기서 말하는 즐거이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들의 어쩔 수 없는 모습에도 개의치 않으시 고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즐거이 사랑하고 계신다. 이는 그 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를 즐거이 사랑 하 사 즐거이 사람이 되셨고 그후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당신 자신의 피를 즐거이 흘리셨으며 즐거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즐 거이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바로 이 사랑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넘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들까지 즐거이 내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 앞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삶을 사시렵니 까 이슬과 같이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다. 자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슬에 비유해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 기서 말하는 이슬의 이미는 무엇일까요 5-7절 말씀에서 이 이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 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자 여기서 이슬들이 어떤 역할을 합니까 그렇습니다. 백합화가 피게 합니다. 뿌리가 박히게 합니다. 아름다운 감람나무가 되게 하고 향기로운 꽃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이 런 것들이 무성해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늘을 만들기도 하고 열매맺게 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역할입니다. 자 여러분 보십시오. 회개치 않는 자는 어떠하다고 말씀을 하셨었죠 13:15절에 그렇습니다. 마르겠다 말씀하 셨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회개 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슬이 되셔서 소리 없이 저들을 촉촉이 적 시면서 저들을 소성케 하시겠 다 말씀하시는 것이죠. 꽃도 피고 향기도 나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들의 삶에 매 력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이 그 그늘로 몰려 들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보십시오. 이것이 누구의 삶입니 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돌 아온 자들의 삶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의 삶이 이렇게 멋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입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멋진 삶을 사시나요. 백합화와 같이 순결하게 빛나십니까 백향목과 같이 깊이 뿌리를 내리십니까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십 니까 잎들이 푸르고 푸르러 많은 사람들이 쉼을 얻습니까 열매맺고 있습니까 소성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여기 예언 된 이 말씀은 사실 우리 속에 당연히 나타나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들의 삶의 모습이라고요.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향기도 꽃도 없는 그리스도 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요. 잎사귀도 다 말라비틀어진 체 볼품없이 시들어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 요.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슬을 맞고 사는 사람은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용히 우리들을 향해 쏟아지는 하나님의 이슬 아래로 나아 오십시오. 바로 여러분들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이런 일을 이렇게 한없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이슬을 바라보면서 오늘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을 끝맺고 있습니다.
함께 9절을 읽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세아 전체를 머리 속에 떠올리셔야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호세아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어떠했다고요 그렇습니다. 배은망덕했다 말씀을 드렸 습니다. 고멜과 같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없이 한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자들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께 다시 나오면 한없는 은혜를 부어 주시며 저들을 이 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끄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들의 머리로 우리 인간의 이 작은 머리로 이런 멋 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누가 . 알겠느냐 하는 이 말은 이런 멋지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감탄하는 호세아의 탄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 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누 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난 후 호세아는 이렇게 말씀을 맺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번 역해 놓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길은 바르므로 의로운 사람은 그 길로 걸어갈 것이지만 죄인은 걸려 넘어질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의로운 사람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만 그렇 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이 사랑에 걸려 넘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 심 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자가 되시겠습니까 걸려 넘어지는 자가 되시겠습니 까 아니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가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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