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누가 자비량하고 (고전9:1-15)

본문

현대 교회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목회자와 관련된 것이며, 이에 대한 오해 그리고 바르지 못한 인식으로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하게되고, 또한 필요 없는 시험에 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오늘 본문은 목회자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 아 주 좋은 자세들을 제시하고 있다. 본 론
1. 원칙론 (1-6 )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 죄가 아닐진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목회자의 생활을 가두어 둔 울타리를 풀어준다. 물론 이는 성도의 한계 안에서 이다. 바울은 바로 전장에서 우상의 제물 문제를 언급하면서 만일 형제가 오해하 여 실족할 것 같으면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 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건덕상의 이유로 해서 생활을 절제하는 것이지 결코 원래 목회자기 때문에 당연히 자유를 제한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도 건강에 필요하면 수영을 해도 되고, 볼링이나 테니스를 해도 된다. 바로 이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 테니스를 하다가 목사가 교회에서 쫓겨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사는 해도 되고 목사는 해선 안되는 것은 없다. 오직 그리스도 의 복음의 법 안에서 합당한 삶을 살 뿐이다. (빌 1:27 ) 내가 사도가 아니냐! /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접을 받을 권(특별히 사례 문제 )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별히 자신이 사도임을 변 증하기 위한 바울의 시도가 둘 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내가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는냐 / 이는 사도를 가름하는 중요한 조 건이다. 육신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 자라야 사도의 자격이 있다. 오늘날의 목회자는 다만 사도적 직분을 맡았을 뿐이다. 그리고 정경을 가늠하는데 있어서도 사도가 쓴 글인가 하는 것은 최우선적인 조건이 된다. 주 안에서 나의 행한 일이 너희가 아니냐 / 너희가 누구로 부터 복음을 전해 받고 믿었으며, 성령님의 은사를 받은 것이 다 누구로 인해서냐 바로 내가 아 니냐
그러므로 적어도 너희에게는 내가 사도이다.
그런데 나를 사도가 아니라고 하느냐 너희가 나를 무시하느냐 하는 의미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죄인의 본성 가운데는 " 권위 " 를 무시하려고 하는 못된 습관이 여전했던 것으로 보인다.(3 ) 이는 사단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서 파멸에 이르는 길이다.
예) 에덴 항상 반역의 무리들은 권위를 업신 여겼고, 이에 동조하는 무리 역시 권위를 업 신 여겼다. 그리고 그 결국은 멸망과 심판이다.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권위를 업신 여기는 것이다. (유다서 8절 ) 그래서 로마서 13:1 에는 모 든 선한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를 거스리는 자는 심판을 자초한 다고 했다. 이는 당연한 결론이다.
예) 가정, 국가, 교회… 신앙에 있어서 권위가 무시된다면 그 결국은 파멸 이다.
2. 그러므로 나는 권이 있다. / 바울의 말한 권은 다음 3가지로 요약된다. 먹고 마시는 권이 있다. (4 ) / 모든 것(우상의 제물을 포함한 )을 머 고 마실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허락된 모든 것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이다. 고기도 먹을 수 있고, 건강을 위해서는 포도주도 마실 수 있다. 결혼할 권이 있다.(5 ) / 베드로만 아내를 데리고 일할 권이 있는 줄 아 느냐 나는 뭐 사람이 못나서 결혼도 제대로 못하고 노총각으로 다니는 줄 아느냐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능력과 권이 있다. 업신여기지 마라! 사례를 받을 권이 있다.(6 ) / 바울 일행은 장막 짓는 일을 하며 필요한 물질을 충당하면서 복음사역을 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어디서든지 일해 서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을 한가지씩 가르쳤다. 이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것이다. 어찌 됐든지 비방자들은 이것을 가지고도 바울을 비방했다. 우리 일행만 사례를 안받고 손수 일해서 먹고 쓰니 마치 자격이 없어서 그런 줄 아느냐 천만에 말씀이다. 우리도 사례를 받으며 일할 권이 있다. 더구나 너희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이것들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포기한 권들이다(12). 그러나 비방자들은 하나님의 복음의 장애가 없이 하려고 바울이 포기한 것들을 오히려 바울 을 반대하는 비방거리로 삼았다. 이는 선한 의도를 무시하고 악한 것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사단의 술책이다.
예)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악한 것으로 매도하며 애굽에서 매장지가 없어서 이 광야에서 죽게하려고 우리를 인도하여 내었다. 고 불평을 늘어 놓았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손길을 오히려 원망했던 것이다. 이는 사악한 것이다. 결국 이들은 광야에서 다 멸망했고 한사람도 약속의 유업 을 얻지 못했다. 요즘도 왜 내가 미리 예수를 믿어서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고 하는 이들이 있다. 만일 이러한 말을 입에 담아 본 사람은 입에 칼 을 두고 삼가서 헛되고 망령된 말을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단은 그러한 자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가 그 말을 내는 동시에 그를 움켜 잡으려고 한다. 그 옛날 시 내 광야에서 처럼
예) 어느 시골 목사님이 예배당 건축할 때 교회 형편이 어려워서 1년 사례를 거 절하고 손수 일을 하며, 목회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제 좀 괜찮아 사례를 받 자 우리 목사님 변질됴다고 하더란다.
3. 목회자의 사례 문제(7-11 ) / 이제 바울은 사례를 받는 권에 대해서 여 러가지 예를 들어서 그것이 지당하고, 합당함을 설명한다. 사람의 예 (7 )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목숨을 대신 볼모 잡히고 삯을 받는다고 해서 저 도둑놈 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이는 지당한 것이다. 누가 포도를 심고 실과를 먹는다고 해서 그를 흠잡을 사람이 있겠는가 오히려 그것을 안 먹는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 것이다. 누가 양떼를 치고 그 젖을 먹지 않겠느냐 그것을 먹었다고 해서 저 삯꾼 이라고 할 자가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이는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양떼는 젖을 짜 주어야 건강하게 큰다.
예) 여호와 증인들은 정통 기독교회 목회자를 가리켜 삯을 받으니 삯꾼이 요, 거짓 목자요,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비방한다. 그러나 이것은 천부당한 것이다. 오히려 그들 자신은 자신들은 공산당원처럼 탈취를 일삼고 그 회원 중에서 바 른 진리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완전히 저주거리를 삼아서 다시는 말도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저들은 삯꾼이라는 말은 과분한 말이요, 양을 삼키는 이리떼요 사단의 괴 수들인 것이다. 율법의 예 (8-12 ) /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신 25:4) 이말은 소도 먹을 수 있도록 해서 일을 시키라는 말이다. 이는 소를 위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들이 넉 넉히 먹고 살수 있도록 생활비를 보장해 주라는 말씀이다.
예) 담임목사의 사례가 120만원인 교회에서 아이가 둘이나 딸린 교육전도 사님의 사례를 15만원 책정해 인상도 없이 2년간 지급한 교회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전도사님은 퇴직금 한푼 없이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 교회 재정도 아쉽지 않 은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포함해서 이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절도며 강도요, 상식 이하의 무지한들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불법자들이다. 하나님이 사역자를 소보 다도 못하게 대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예) 또 어떤 도시의 장로 모임에서는 해년 마다 모여서 목회자의 사례를 깍자는 회의를 한다고 한다. 이것도 미친 짖이요, 장로를 왜 세웠는가를 알지 못 하는 무식의 소치이다. 자신들은 호의 호식 하면서 좋은 자가용에 하루에도 회식을 하면 몇십만원 몇 백만원씩 쓰는 장로들이 큰 교회라고 해야 100만원-200만원수 준인 목회자의 사례를 깍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사건인 것이다. 결론 이제 바울은 12절-15절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는다. 제단에서 일하는 자는 제단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 십일조와 헌물은 제사장에게 주신 응식이었다. 성전에서 일하는 자는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 / 남자 성인이 반세겔 씩 내는 성전세는 바로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종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14 ) / 우리가 신령한 것을 너희에게 뿌렸는데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할 것이 무엇이냐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복음을 뿌린 하나님이 사역자들을 육신의 것으로 섬기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육신의 것으로 섬 겼다고 해서 +-제로다 하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이는 가치상 전혀 비교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6에서 말씀을 배우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고 하신 것이다. 이는 마땅한 성도의 본분이다. 결 언
그러므로 자신은 부요한데 목회자는 가난하고, 교회는 허덕이는데 자신은 편 안하다면 이는 무엇인가 잘못되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오직 우리는 교회의 지체 로 한 몸으로 불러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신령한 생명을 주는 교회와 사역자를 육신의 것으로 섬김은 마땅한 것이다. 단지 바울 일행은 복음의 순수한 전파를 위해서 교회 앞에서 그같은 권을 쓰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초남교회는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어려움을 나몰라라 하지 말것이며 목회자의 어려움을 나몰라라 하지 말것이며/ 이는 배은망덕한 것이다. 그리고 더이상 그는 영적인 성장이 없다. 그리고 결코 비판의 말이나 권위를 업신여기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이같이 바른 진리 가운데 행하여서 하나님의 초남교회와 모든 성도들의 신상과 가정위에 놀라우신 하나님의 손길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날마다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