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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들을 수 있는가 ? (요6:5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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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타락되게 선포되기도 하지만 곳곳에서 하나님의 귀한 종들을 통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선포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귀한 말씀은 아무나 듣는게 아니다. 아니 들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고 관심이 없는 것이다. 계시록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예수님은 편지를 보내면서 일곱 교회마다 맨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있었는데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이 교회 성도들에게 말씀을 주시는데 성령님의 소리를 누가 들을 수 있겠는가 ! 세상 속에 빠져 사는 육적인 자가 성령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육적인 자는 절대로 성령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서 놀라운 영적 비밀을 알려 주었지만 무지몽매한 무리들은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예수님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왜 저들이 예수님 말씀을 깨닫지 못햇습니까 끝까지 육적인 모습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 비밀을 그렇게 자세히 가르쳐주었지만 깨닫지 못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영적 사건이다 여기에 육적인 것들이 개입된다면 우리의 신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동이 온다. 그런 혼동 때문에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왜 예수 믿는데 이런 어려운 일이 오는가 왜 복은 안주고 어려운 일만 주는가 그러다가 유대인들처럼 결국은 예수를 떠나 버리고 만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예수께 오병이어 떡을 달라고 소리치며 뒤따르는 무리들 같지 않습니까 저들은 말합니다. " 예수님 말씀이 너무 어렵다" 고 육의 세계만 보고 예수를 따르는 자는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듣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습니까 첫 번째:영적인 자만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 59-63절 =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
오병이어의 사건으로 시작된 떡에 대한 말씀을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쳤다. 성경은 그들을 제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 할려고 애쓰지도 아니했다. 육적인 자가 영적 세계를 알기란 그렇게 쉽지 않는 것이다. 영적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육적인 자들은 모여서 수근 거릴 수밖에 없다.
회당 =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성경 연구하고 기도하던 공공 장소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이다. 제자 중 = 여기에 제자들은 12제자들이 아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이 직접 택한 제자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자청해서 제자가 되겠다던 자들이다. 이런 제자는 수근 거릴 수 밖에 없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인자의 있던 곳으로=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의미하신 말씀이다 이러한 사건은 본다면 너희가 믿겠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그러한 사건을 보아도 너희는 믿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답이 63절이다 육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알 수없고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병이어 사건으로 시작된 떡에 대한 비밀의 말씀은 끝이 났다. 그러나 무리들은 "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이냐 " 수근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리들 모습에 우리 주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주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61절-65절 까지 잘 나타나고 있다. 한 마디로 너희가 그런 자 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놀라운 오병이어 기적으로 시작해서 심오한 영적 말씀을 하시고 가르친 결과는 너무나 어이없게 끝이 났다. 설교자가 목이 터지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가장 기쁠때가 언제 인지 아십니까 목사님 은혜 받았습니다. 소리인지 아십니까 그보다는 설교를 듣고 성도의 삶이 눈에 보이게 변화 될 때 목사는 가장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아무리 설교해도 변화되지 아니한 여러분들을 보면서 저 유대인들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 설교를 듣고도 변화되지 아니했는데 제 설교 듣고 변화 되겠습니까 왜 이렇게 우리가 변화가 안되는 것입니까 육에 세계에 미련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재미와 맛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61절에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다시 말해서 "내 살이 참된 양식이고 내 피가 참된 음료라는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 하는 것이다. 영어 성경에는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는냐" 이 말씀이 "이것이 너희에게 화나게 하느냐 " 로 번역되고 있다. 성도 여러분 ! 예수만을 위해 산다는 손해 보는 것 같습니까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하는게 내 생활에 손해가 올 것 같습니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떡을 얻지 못하고 알아듣기도 어려운 말만 하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저들은 화가 난 것이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우리들의 뜻대로 무슨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화가 난적 없으십니까 왜 꼭 이렇게 예수를 믿어냐 하느냐 한 적은 없으십니까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했는데 왜 부자는 안되는가 생각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을 왕 삼으려고 했다. 우리가 예수를 그렇게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은 우리가 왕을 삼으려 할 때 도망을 가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왕 삼기 이전부터 왕이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 자리에 앉히기 원할 때 예수님은 거부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 삼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응큼한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예수님은 그런 왕 자리에 앉지 아니하신다. 세상 것에 우리 생각의 줄을 매여 놓은 상태에서는 우리는 변화되지도 않고 변화 될 수도 없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도 변화되지 못한다 62절 예수님이"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본다면 너희가 믿을수 있느냐 " 이 말씀은 하늘로 예수가 올라 간 것을 보아도 믿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 듣는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받는 것 아니다. 교회 나와서 말씀을 들었으면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 하루 아침에 변화되기는 어렵겠지만 변화되는 것이 보여야 한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다. 예수를 믿으면 3가지가 변해야 한다 말과 행동과 모습이 변한다. 어떻게 처음부터 변화되고 처음부터 영적인 자가 되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부지런히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믿음이 성장되어 가야 한다. (롬10:17)"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는 살리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다. 그 영이 바로 말씀이고 말씀이 우리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변화되어야만 한다. 깨닫지 못하고 변화되지 못하면 우리들 또한 저 유대인들처럼 예수를 떠날 수밖에 없다. 두 번째:아버지께 부름을 받은 자만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 64-66절 =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
예수님은 처음부터 무리들이 말씀을 믿지 아니할 것과 누구가 자신을 팔 자인지 모두 다 알고 계셨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내가 믿는 게 아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서는 말씀도 믿을 수 없고 예수를 끝까지 따를 수 도 없다 .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우리는 움직이고 있고 하나님의 택함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한 자들 = 육적인 떡이나 얻어먹어 보려고 따라다닌 자들이다. 자기를 팔 자 = 가룟 유다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인데 그 구원은 반드시 예수를 통해서 이루신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교회 속에는 예수를 전혀 믿지 아니한 자들도 끼여있다. 또 예수를 팔았던 가롯 유다 같은 자들도 끼여 있다. (마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추수 때는 세상 끝을 말한다. 세상 끝에까지 가라지를 그대로 놓아두라고 하셨다. 지금은 우리가 교회 안에 믿음 있는 자 가짜 믿음 가진 자 함께 있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상 끝에는 확실하게 드러난다.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 날 때는 누구가 진실로 예수를 따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오병이어 기적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어려운 말만 하자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예수를 떠나 가버렸다. 마지막 때도 복만 받으라는 말씀만 전하는 목사와 복만 추구하는 기복적인 성도는 계시록 같은 어려운 말씀에 너무 어렵고 말씀이 그들의 걸림돌이 되어서 예수를 떠나버리게 될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편해지니까 .예수도 이제 편하게 믿자는 것이다. 그러나 편안하다 편안하다 할 때에 주님은 오신다고 했다. (살전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 육적으로 예수를 믿는 자의 특징은 예수를 편하게 믿자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고난은 싫어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따랐던 무리들의 목적은 편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택함을 진실로 받은 자라면 예수를 위해 살아가게 되어있다. 예수를 위해 살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고난이 동반되어 있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다는 말은 없다. 오히려 예수를 믿는다면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예수를 믿는 것 내 마음대로 믿는 것이 아니듯이 예수를 위해 당하는 고난 또한 우리 마음대로 받기 싫다고 안 받고 받고 싶다고 받는 게 아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우리가 예수 믿고 가는 길 이미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 길이고 우리가 당한 고난 이미 작정된 고난이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영광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고난도 각오하고 나아가야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영적 세계를 모르는 자는 고난 뒤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지 못한다 육적인 자는 세상 속에서 영광을 누리기를 원한다. 영적 세계를 모르는 자는 고난이 올 때 예수를 버리고 세상 속으로 떠나 버린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왜 성도들이 깨닫지 못하고 고난을 싫어하고 거부하고 교회를 떠나고 예수를 떠나 버리는가 엄격히 말해서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오병이어 무리처럼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는 자들이다. 아버지께 부름을 받은 자들은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해서 변화시키시고 예수를 위해 살아가도록 만드신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변화 시켜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어 가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있다. 하나님의 택함 속에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은 세상 소리보다 하나님 말씀의 소리가 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부름을 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 말씀이 자꾸만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말씀을 듣기가 괴로운 것이다. 육적인 소리만 듣기 좋아한다.복 받으라는 소리만 나오면 아멘! 소리친다. 아버지께 부름을 받으신 여러분 ! 하늘의 소리에 듣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제자의 삶을 사는 자만이 들을 수 있다. 67-71절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
예수를 따르던 그 많은 무리들은 다 떠나고 예수님 12제자만이 예수님 앞에 있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 너희도 가겠느냐 " 물었다. 베드로의 고백도 휼륭한 고백이었지만 더욱 중요한 말씀은 70절 말씀이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 " 제자들이 똑똑해서 예수님 하신 말씀을 다 이해해서 안 떠난게 아니다. 한 마디로 못 떠난 것이다. 왜 예수님의 택함의 끈이 그들을 못 떠나게 한 것이다. 가룟 유다 까지도 .
너희도 가려느냐 = 제자들 마음을 떠보고 있다. 시몬 베드로의 놀라운 고백 3가지
1.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 이제껏 하신 예수님 말씀이 영생의 말씀이다는 것이다.
2.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 = 절대로 예수를 떠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3.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베드로가 똑똑해서가 아니다.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제자였기 때문에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요6:5절에 보면 큰 무리가 예수께 모여들었다. 왜 모여들었습니까 기적을 보려고 .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하늘의 비밀을 선포하셨다 자신이 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었고 이 땅에 왔는지 말씀하셨다. 하늘의 어려운 말을 듣기가 거북해도 무리는 떠나지 아니했다. 왜 떠나지 아니했습니까 또 다른 기적이나 떡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다 떠나 버렸다. 왜 떠났습니까 더 이상 예수께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떠났다. 육적인 자는 육적으로 무엇을 얻지 못할 때 떠나게 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이 떠난 것이 마치 그들 스스로 예수를 떠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떠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부름심을 받지 않는 자는 언제인가는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있다. "주신 자도 여호와이지만 보내신 분도 여호와이시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면 절대로 인간 스스로 그 손길을 뿌리칠 수 없다.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한 영혼도 사단의 손에 빼앗기지 아니한다. 그러면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를 멀리하고 떠나버린 자들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않는 자들이다. 그러한 사실을 오늘 분문에서 예수님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우리는 보통 가룟 유다를 예수를 믿다가 나중에 잘못 된 자로 본다 그러나 성경은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를 믿지 않는 자였다. 64절에 예수께서는 믿지 아니한 자들 중에서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고 하셨다. 제자들을 향해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까지 말씀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갈릴리 출신이었지만 가룟 유다는 아니었다. 가룟 유다에 대한 정보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어쩌면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직접 택함을 받았지만 가룟 유다는 스스로 예수를 찾아 왔는지 모른다 70절에 12제자를 택하셨다고 했는데 가룟 유다 만큼은 구원시키기 위한 택하심이 아니라 마귀의 도구로 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두 가지가 있다. 자기 백성을 구원시키기 위한 택하심과 마귀의 백성으로 택한 두 부류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즉 택정자와 불택정자이다.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택하고 우리 마음대로 교회에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하는 것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에 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6:65)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이제 말씀으로 신앙이 자라가야 한다. 어디까지 자라가야 합니까 제자의 삶을 살수 있는 자리까지 성장되어 갈 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의 말씀을 영생의 말씀으로 믿고 제자의 길을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면서 제자들에게 지상 명령을 주었는데 모든 족속을 제사 삼으라는 것이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교인과 성도의 신앙이 차이가 있듯이 성도와 제자의 신앙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제자의 신앙이 되지 못하면 어린 아이 신앙이다. (히5:12-14)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히6:1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성도의 자리에서 제자의 자리로 들어 오라는 것이다. 제자의 삶은 장성한 자의 모습이다. 우리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 모두가 제자가 되는 길이다. 제자가 되어야만 어떤 고난이 와도 예수를 떠나지 아니한다 가룟 유다처럼 마귀의 도구로 택함 받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11 제자처럼 끝까지 예수를 위해 살다 죽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제자는 주님의 말씀이 영생의 말씀인지 믿기 때문에 죽더라도 말씀을 믿고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목사 후안 카롤로스 오르티즈 분의 책 "제자 입니까 "를 보면 이런 글이 있다. 하루는 성령님께서 목사님에게 "후안 너는 지금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하는 일은 사업이야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잡지 회사가 책 파는 식으로 너는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너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술수를 쓰고 있다. 도대체 네가 하는 일들 가운데 어디에서 나의 손길을 찾아보겠느냐 너는 자라나고 있지 않다. 네 생각에 네가 교인 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가는 것이다 너는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교인들을 400명 더 확보했을 뿐이지 누구도 자라나고 있지 않고 그대로이다. 전에는 네가 200명의 영적 갓난 아이를 거느렸다면 지금은 600명을 거느리고 있는 것뿐이다 결국 너는 지금 교회가 아니라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말해서 그 누구도 아버지가 없다. 너는 교인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분주한 고아원의 원장이다 네가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고 운영비를 지급하고 우유병을 챙긴다 하지만 너와 그 어느 누구도 실제로 그 갓난 아기들을 양육하고 있지 않다." 이 말씀을 후안 목사에게만 하신 성령님의 소리가 아니다 우리 주님의 교회는 어떠합니까 성도 여러분 ! 구원의 기쁨을 우리가 진실로 안다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진실로 기뻐한다면 우리는 어린아이 신앙의 자리에 있으면 안된다. 어린아이는 깊은 진리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어린아이 일수록 신기한 구경을 좋아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좋아합니까 어린아이는 우선 입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아이 앞에 1000원 짜리 지폐와 알사탕을 앞에 놓아둔다면 백번 알사탕을 가질 것이다. 성도여러분 ! 교회에 일꾼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곧 어린아이이고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땅에 교회에 명맥은 바로 제자의 삶을 사는 자들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예수님이 11명의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땅을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에게 디모데, 빌레몬, 에바브라, 같은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 땅을 떠날 수 있었다. 사도 요한에게 폴리갑 같은 제자가 있었기에 계시록을 끝까지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 예수만 평범하게 믿고 있는 어린아이 성도들로는 하나님 일을 할 수 없다. 예수를 위해 한 생명 바쳐 죽을 수 있는 제자들의 신앙이 있을 때 교회는 제 역할을 할 것이고 하나님 나라는 확장 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제자의 삶을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말씀을 철저히 배우고 철저히 듣고 철저히 마음에 새기고 철저히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을 믿지 못하고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는 .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가 어린아이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살리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 영은 곧 말씀이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말자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 제자들에 귀에는 주님의 말씀이 영생의 말씀으로 들리는 것이다. < 결론 > 우리의 귀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들린다. 우리의 귀는 참으로 신기한 지체 중에 하나이다. 우리의 귀는 아주 큰 소리하고 아주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귀는 나를 칭찬하고 나를 헐뜯는 소리는 또 귀가 막히게 잘 듣는다. 이러한 우리의 귀인데도 영적 소리만큼은 너무나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게 마음을 찔리는 말씀을 전해도 들을 때 뿐이다. 효자는 부모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라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신30: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님을 사랑한다면 그 말씀을 지키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데 어려운 것 아니다. 세상이 더 좋고 세상의 소리가 더 좋은 자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들은다 할지라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를 따를 수 없다. (요10:3-5)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만이 우리는 영적인 자이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살아가는 자만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이다. 이런 자만이 예수의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고 어떻게 제자로 택함을 받은 자이고 제자의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 이 밤에도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주시고 깨닫게 하고 계신다. 제자의 입에서 만이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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