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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목사가 될 것인가? (딤전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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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목사들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를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반대로 교회 안에서조차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분들 역시 적은 수가 아니더군요. 그러다 보니까 목사 자체를 우습게 생각하고 일단 의혹과 경계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냉소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들어 담임목사 세습문제라든가, 교회의 헌금 유용 의혹, 불륜에 관계된 경우, 거기다가 비이성적이고 반사회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사이비 종파의 활동 등, 비난받아 마땅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면서 목사들에 대한 비난의 강도 역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예 목사들의 비리사건들만 모아 놓은 곳도 있는데, 그 내용들을 보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그런 단면만 보면 마치 목사 세계 전체가 부패하고 위선의 탈을 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심한 부끄러움과 모멸감을 느낍니다. 저 역시 그러한 비리나 부끄러운 일에 대해서 분노하고 그들을 비난하게 되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들과 같은 목사이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과 죄악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요.

최근에 한국의 한 큰 교회가 현재 담임목사의 아들이 다음 담임목사를 맡기로 했다고 결정하는 바람에 큰 파장이 일었고, 인터넷에서는 반대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 서명운동하는 싸이트에 들어가 보았더니 목회자, 평신도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했는데, 한 마디씩 남긴 글들이 너무나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이었어요. 마치 60년대 공산당 때려잡자는 식의 분위기 같았어요. 뉴질랜드에 사는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쓰셨더군요. '우리가 악한 저들을 막지 못하면 우리 모두가 망합니다.' 우연히 그 목사님 밑에 제가 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썼어요.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아들에게 물려줄 큰 교회가 없거나 혹은 큰 교회를 물려줄 아들이 없을 뿐입니다.' 비리를 저지르고 큰 실수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분리시킴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죄악을 함께 슬퍼하고 함께 회개할 마음이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을 읽으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굳이 그런 비리사건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저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아도 이 말씀 앞에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더군다나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동시에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고 소명을 확인하게 하는 도전의 말씀이기도 하지요.

사도는 여기서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말로 목사에 관한 교훈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미쁘다는 말은 믿을 만하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너무나 확실하고 신뢰할 만하기 때문에 다른 증거가 필요없다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pistov'라는 단어인데 NIV 성경은 trustworthy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럼 뭐가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말이라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선한 일을 사모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독이라는 말은 목회자 세계의 상위 계급으로서의 감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말하고 있는 당시 상황에서의 일반적인 교회의 지도자, 즉 우리 현실 속의 보통 목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천주교나 감리교의 주교나 감독이 되려고 하거나 총회장에 출마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목사들에 해당되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목사가 되려는 꿈을 가진 사람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다들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목사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지 그 동기입니다. 동기와 상관없이 누구나 목사가 되려고 한다는 것 때문에 칭찬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목사가 되려는 동기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목사가 되면 교인들이 잘 받들어줍니다. 큰 교회의 목사가 되면 권력과 명예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남부럽지 않게 풍족한 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렇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한다 할지라도, 목사가 되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 좀 쉽다고 생각되는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요. 하는 일마다 안되고 실패만 거듭하다가 그것을 목사가 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신학교에 들어가는 분들도 종종 있지 않던가요? 이처럼 목사가 되고자 하는 동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과연 바울 사도는 그러한 사람들을 보고도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바울 사도가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던 1세기 당시에는 교회의 목사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인기있거나 편하게 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권력이나 부유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핍박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박해의 첫 번째 목표가 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주를 위해서 목숨 바칠 각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모든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디모데후서에 보면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 바울이 신신당부했던 것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과 함께 영광을 받거나 권력을 누리거나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 때문에 멸시를 당하고, 이 복음 때문에 옥에 갇히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고 말하는 것이지, 높은 모자를 쓰고 화려한 가운을 입은 감독이 되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사람, 수십억 돈을 뿌리고 투표용지를 바꿔치기까지 하면서 총회장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보고 선한 일을 사모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주님을 위해서, 이 복음이 증거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까지 바쳐 헌신하려는 사람에게 선한 일을 사모한다고 하는 것이지, 사업이 안되니까 그럼 목사나 되어볼까 하는 사람, 아버지의 큰 교회 물려받아서 앞길이 보장되어 있는 목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을 보고 선한 일을 사모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그렇게 목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세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책망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범죄행위나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지요. 교통위반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 목사가 포함된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이것은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 우리가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사항입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것은 꼭 아내가 있어야만 목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 자신도 아내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결혼과 가정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요. 여기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의 원문상의 의미(mia`' gunaiko;' a[ndra)는 한 여자의 남자라는 뜻입니다. 자기 아내에게 충실한 사람, 즉 성적 도덕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지요.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이런 도덕적인 성품과 자질들은 꼭 목사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특히 이런 성품과 자질을 갖추지 못했으면 목사가 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은 하도 장로들이 괴롭게 하니까 한 장로를 두들겨 패고 교회를 그만두어버렸습니다. 어떤 다른 목사님은 장로와 다투었는데, 장로가 그 목사의 얼굴에 침을 뱉었대요. 그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목사님이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대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일처럼 그 장로님을 대했대요.
그런데 그 장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목사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그 장로가 교회를 떠났답니다. 절제의 훈련이 되어 있어야 근신도 가능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근신이란 잘못해서 반성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주의깊고 사리판단이 정확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담해야 한다는 것은 규모가 있고 질서있는 삶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목사는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즉 외부인이나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성품도 무난하고 인간관계를 잘 맺을 수 있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가르치기를 잘하며. 이것은 목사의 중요한 임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서 잘 깨닫고 성숙한 신앙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지요. 또 술꾼이 목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지요. 이것은 우리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재론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술 자체를 죄악시하는 경향까지도 있으니까요. 사실 술에 대해서 그 정도로까지 엄격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술을 경계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은 매우 귀한 것이지요.

그 밖에도 구타하지 아니하며,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지요. 세상에 이렇게 까다로운 입학시험이 어디 있을까요?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모든 성품과 자질을 갖춘 사람이 전 세계에 몇 명이나 될까요?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 입학시험에서 이런 기준으로 신입생을 뽑으면 몇 명이나 합격할까요? 우리가 모두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늘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고 교회가 제 구실을 하기는커녕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은 이러한 자격기준에 형편없이 미달된 사람들이 목사가 되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그렇지 못한데도 이미 목사가 되어버린 사람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사실 목사님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성품과 자질이 목사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목회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목사가 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그 부르심을 거부하거나 반항해서는 안된다는 믿음이 너무나 강력하게 우리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중이 계율을 어기거나 속세로 돌아오면 파계했다고 하지요. 마치 그것처럼 일단 목사가 된 사람이 적성에 맞지 않거나 자질이 부족해서 목사 안하겠다고 하면 모두가 그 사람을 파계승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빨리 목회일을 그만 두고 자신에게 맞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 유익할 것입니다. 또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도피처도 아니요,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길도 아니요, 그렇다고 억지로 붙잡혀서 해야 될 일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분의 교회를 섬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로 하는 성품과 자질들이 매우 강력하게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을 돌이켜보면 지금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그런 목사의 자질에 해당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내 한 평생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겠다는 선한 소원을 가졌고 그래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소원을 가상히 여기셔서 목사로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도록 허락하시면 감사하게 충성을 다해 하나님과 교회를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 가지 면에서 목사로서의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고 또 교회의 유익을 위해 제대로 쓰임받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저는 아무런 주저없이 목사를 그만두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으로 확실한 다른 방면의 일에 종사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저의 목회관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목사가 한번 부르심을 받았으면 생명을 걸고 희생하면서 충성해야지' 하면서 질책하실지 모르지만, 그런 고정관념 때문에 목사를 그만두고 싶은 사람들, 또는 그만두어야 할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멍들게 하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하고 부적절한 일입니까? 물론 저는 부르심을 받은 대로 목숨이라도 바쳐서 충성할 각오가 있습니다. 그러한 자세와 실제로 그 일에 필요한 성품과 자질을 가졌느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겠지요. 어쨌든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구원의 방주인 교회가 제 역할을 잘 감당하며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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