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리요 (고전2:10-11)
본문
일전에 급한 일이 있어서 시내를 가게 되었는데 택시를 타야 했었습니다. 그 택시기사 아저씨는 불교에 심취한 사람같이 온 택시안에 염주, 연꽃, 불경테잎을 틀어서 차 안이 떠들석하게 틀고 다녔습니다. 앞 자리에 앉아 나도 기회를 봐서 전도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먼저 하는 말이 ‘혹시 목사님 아니십니까’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저가 그랬죠 ‘아니 목사라고 얼굴에 써 붙여 있느냐고’ 했더니 ‘그런 기분이 들더라’나요. 어쨌던 기분이 참 좋더군요 내가 목사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것도 아닌데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같이 사는 사람과, 아니면 같이 거하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가 뭐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때로는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때에 그런 마음이 듭니까 나를 알만한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 주지 못할 때, 내 마음과 의도를 모를 때 답답해 집니다. 속도 상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해도 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교회의 한 목사님이 자기 교회 성도의 결혼을 축하하는 전보를 치게 되었답니다. 그 목사님은 어떤 내용으로 축전을 칠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성경 한 구절을 넣어 치기로 했답니다. 그 축전에는 “요한 1서4장 18절”이라고 축전을 보냈답니다. 요일 4:18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우체국에서 빠뜨렸는지 또는 목사가 잘못 보내었는지 축전에는 “요한 4장18절”이라고 적혀 배달이 되었답니다. 신랑 신부는 결혼식을 끝마치고 피로연도 모두 끝내고 축전을 뒤적이다가 목사에게서 온 축전을 보았습니다. 신부는 신랑과 함께 성경을 끄내놓고 찾아보았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축전에 나와 있는 요한4장18절은 (요 4: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신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신랑은 아내를 의심하고난리 법석을 떨었습니다. 자기를 속이고 결혼을 했다고 야단이 났습니다. 이혼을 하느니 속았느니 야단들이었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오해에서 빚어진 일들이 아닙니까 사실은 아닌데 오해를 했거나 그 사람을 알지 못해서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몰라주면 참 속상합니다.
그런데 나를 알아주고, 나의 의도를 알아 주면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신이 납니다. 문제는 대부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아 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속에 있는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알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읽었던 성경 본문 2:11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 사정을….누가 알리요”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1.모르는 인생들이라는 것입니다. 1모릅니다. 알라스카 북미대륙의 서북쪽에 붙어 있는 넓은 알라스카 주는 원래 구소련(러시아)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은 이 알라스카를 별로 가치없는 땅으로 인정하여 1867년에 미국에다가 720만 달러로 팔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720만 달러를 주고 산 알라스카에서 13년만에 무려 3억달러 상당의 금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땅에는 엄청난 양의 기름을 빼올리고 있습니다. 소련이 그 땅 밑에 이런 엄청난 보고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팔지 않았을텐데 나 중에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후회를 했겠습니까 모르니까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고 당하는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우리 사람들은 무엇을 모릅니까 사람의 속 마음을, 상태를 모릅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알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누가 압니까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태인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서운 하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데 왜 몰라 주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을, 나의 그 깊은 고민을, 아픔을 모르듯이, 나도 남의 속 사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아 그런가 보다’할 뿐입니다. 사람이 언제 무슨 일을 만날지,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나중일을, 내일 일을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잠시후의 일도, 내일일도 알지 못하고,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무실론적 실존주의자 였던 알베르 까뮤는 노벨상을 탄돈으로 교외에 고급 별장을 짓고 그리고 신나게 차를 몰고 가다가 충돌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는 내일 일에 대해서 얼마나 염려하고, 걱정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 은 그 날에 족하니라 천국의 비밀을 모른다. 이렇게 모르기는 사람의 마음뿐 아닙니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지옥, 예수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지레 화부터 내고, 거절을 합니다. 전도를 하러 갔다온 집사님이 전도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죄 값을 받으러 지옥가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을 하니까, 자기는 지옥가서 죄 값 받는 것 당연하다고, 지옥에 가도 괜찮다고 하더랍니다. 왜 지옥가도 괜찮다고 했겠습니까 지옥이 어떤 곳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옥의 그 엄청난 고통을 제대로 안다면 그런말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또 나는 천국이 필요없다고. 당신이나 가라고 하는 사람이 만약 천국의 신비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안다면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그것을 알기에 우리들은 시간을 투자해도, 물질을 드려도, 몸을 바쳐 봉사를 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믿지 않고, 어리석게 행한다. 하나님의 본심을 모릅니다. 예수믿는 우리 성도들이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잘 몰라서 나 스스로 시험에 들기도 하고,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더불이 불만이 생길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믿음으로 잘 살아 보려고 하는데도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움만 가중되고, 고난의 연속이 있을 때, 또 나름대로 기도를 한다고 했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갖게 됩니까 ‘기도 해도 소용이 없구만’,‘믿어도 소용없어’하고 포기해버리거나, 도망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단지, 내가 당한 어려움과 아픔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왜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이런 마음들이 내게 일어 나게 되는 것입니까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애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받다가, 실컫 고생만 하다가, 어려움만 당하다가 이세상을 마치게 하는 마음을 가지신 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해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어떻게 하든지 복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가 원치않는 그런 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본심을 알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형편에 처해있던 믿음으로 살아가게 될줄 믿습니다(요셉-고난이 왔지만 하나님의 본심을 알기에 잘 감당함).
2몰라줍니다. 모르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내 마음을 몰라 줍니다.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집에서 열심히 일했음에도 남편은 몰라줍니다. 남편도밖에 나가서 돈 벌어 보겠다고 당하는 수모, 수고를 아내들도 몰라줍니다. 몰라주기 때문에 몰라 주는 그 사람에 대해서 서운함을 가집니다. 그러다 보니 나스스로는 외롭습니다. 답답합니다.
그런데 알아 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힘이 납니까 자부심이 생깁니다. 김목사를 밖에 나가면 알아 주는 사람이 없다. 잘난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으니 그럴수 밖에 없다.
그런데 교회 오면 나를 목사라고 알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 괜히 힘이 난다. 여러분들도 누가 나를 알아 주면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사람이 아는 것은 한계가 있더라. 나를 알아 주면 참 좋겠습니다만은 사람들은 나를 몰라주게 되어 있습니다.
2.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알아 주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알아 주지 못하고, 모르지만, 이런 사람의 아는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이, 나를 너무나 잘 알아 주시는 이가 있습니다. 누가 여러분의 속 마음을 알겠는가 누가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알겠는가 누가 여러분의 괴로움을 알아주겠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속상함을 알겠으며, 여러분의 답답함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속 마음을, 어려움을, 괴로움을, 속상함을 아십니다. 알아 주십니다. 미국의 북쪽 지방에 살던 어느 흑인이 먼 지방으로 출장을 갔답니다. 마침 주일이라 예배시간에 맞추어 근처의 교회를 찾아 갔는데 예배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더랍니다. 이유인즉, 흑인이라는 이유로, 여기는 백인들만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하며 못들어가게 막더랍니다.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가로 막아섰으니 말입니다. 속도 상하고, 서글퍼기도 하고, 답답한 가슴을 안고 혼자서라도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공원벤취에 앉았는데 누가 등뒤에서 두드리더란다. 돌아보니 예수님께서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 어째 여기서 예배를 드리니’라고 하길래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나도 그 예배당에 못들어가 갔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진실로 주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그 흑인에게 주님은 위로하시고, 축복하시고 가시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몰라줍니다.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사람도, 친한 사람도 여러분을, 여러분이 당한 일들을 잘 몰라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을 아십니다. 여러분을 알아 주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2: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님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성령님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달한다’는 말은 나를 너무나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알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잘 아실까요 (대상 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 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 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감찰하신다는 것은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입니까 (벧전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 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주의 눈을 누구를 향하십니까 의인을 향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를 감찰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자, 여러분과 저를 누가 알아 준다구요 예, 사람은 나를 몰라 주어도 주님은 나를 알아 주십니다. 주님은 나를 아십니다. 1
그렇다면 주님은 나의 무엇을 알아 주십니까 우리의 마음이 어떠함을 아신다. (행 1:24)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 신 바 되어 어떤 마음입니까 괴로운 마음입니까 외로운 마음입니까 속상한 마음입니까 답답한 마음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아십니다. 어떤 형편에 있는지 안다. 어떻게 하는것도 안다 (계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계 2: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 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 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계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 지 하기를 원하노라 환난, 궁핍,훼방,어려운 환경(사단의 위가 있는곳)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압니다. (시 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시 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우리의 생각이 어떠함을 안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 (눅 12: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의 간구하는 기도를 보시고 아신다.-우리가 흘리는 눈물도 보신다. (왕하 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 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나의 가는 길도 아신다. (욥 23:10)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2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갚으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왕하 20:5에 있는 것처럼 보시고 치료하신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가 속 상할 때 그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속상함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가처해 환난, 궁핍, 훼방, 어려운 환경, 이런 환경과 형편과 사정을 아십니다. 아시기에 그분은 우리가 그런 형편 가운데서도 능히 이겨 나갈수 있도록, 더 좋은 환경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가 행하는 수고-사업,사랑,믿음,섬김,인내,행위-를 아시고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다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앉고 일섬을 아시기에 출입을 지키시고,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 아시 기에 우리의 필요를 때를 따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가 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을 아시고, 눈물의 기도를 들어 응 답해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가는 길을 어떠함을 아시기에 함께 하시면서 능히 갈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3.아시는 하나님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과연
그렇다면 이렇게 나를 알아 주시고, 나를 아시는 하나님앞에 우리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1용기를 갖고 힘을 냅시다. 사람들은 날 몰라 주도 하나님은 나를 아시며, 알아 주신다는 믿음위에 서야 합니다. 창세기 28장에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하여 가다가 벧엘서 돌배개하고 잠을 잘때에, 그 지치고 상한 야곱에게 나타나시어서 복을 주심을 볼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야곱이 지치고 상한 마음으로 도망중에 있는 그 괴로움을 알지 못했지만, 어느 누구하나 그를 알아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알아 주시고, 그리고 약속을 하십니다. 이때 야곱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창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그리고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배개했던 돌로 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의 가던 길을 계속 감을 볼 수 있습니다. 지칠대로 지친 야곱이 어디에서 이런 힘과 용기가 났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의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그를 주시하고, 그를 붙들고, 그를 알아 주고 있다는 이 사실에 힘을 내어 일어 났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다보니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외롭기도하고,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속상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그런 마음을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들어도 못들은척, 알아도 모르는척, 아닌데도 아니라고, 맞는데도 틀린다고 할수 없이 속앓이를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맞아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내 중심과 내 의도를 아시지’라는 생각을 갖고 일섭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가질 때 힘이 솟아나고, 용기가 납니다. 왜요 사람들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알아 주시니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힘드십니까 얼마나 어려우십니까 얼마나 외로우십니까 얼마나 답답하십니까 그러나 나를 알아 주시고,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우리들도 힘을 내어 일어 납시다. 그리하여 멈추었던 것을 다시 합시다. 포기했던 것을 다시 붙잡읍시다. 분명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힘으로 인하여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일어 날 줄 믿습니다.
2두려움으로 지냅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알아 주심으로 인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있는 반면 또한편으로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요즘 몰래 카메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한다고 합니다. 백화점이나 여자들의 출입이 많은 곳에 은밀하게 숨겨놓고 촬영을 해서 복사해가지고 팔아 먹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러분! 화장실 갈 때 한번 둘러 보십시오.
그런데 몰래 카메라보다 고성능의 카메라가 당신이 가는 곳, 당신이 있는 곳 그 어디에나 설치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눈입니다. 신명기 11:12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 알아 주신다는 것에는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 우리의 모든 일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이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24시간 우리의 속 마음과 우리의 겉 행위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저가 이제부터 요셉처럼 삽시다. 창39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습니다. 사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별 것 아닌 것 같이 지나 갈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그는 굳이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전보다는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가감하게 거절을 합니다. 그것은 그가 그 유혹의 달콤함을 몰라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무엇인가 좀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아니면 사람을 의식해서도 아니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절하고, 뿌리칩니다. 성경은 요셉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창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렇습니다. “어찌 득죄하리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신전의식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는 그 어디나 주님이 계시고 나를 보시고, 아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잠시는 환난이 있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케 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 의식하며 삽시다. 마치는 말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 하신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가 구할 때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를 아시기 때문이다. 나의 사정을 알고, 형편을 알고, 나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시는 하나님께 구하자.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나를 알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아실뿐 아니라 알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아시고, 알아 주시는 하나님앞에서 믿음으로 삽시다. 주님의 갚으심이 우리에게 분명 크게 있을 것입니다. 아시지요 나의 사정(405장)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우체국에서 빠뜨렸는지 또는 목사가 잘못 보내었는지 축전에는 “요한 4장18절”이라고 적혀 배달이 되었답니다. 신랑 신부는 결혼식을 끝마치고 피로연도 모두 끝내고 축전을 뒤적이다가 목사에게서 온 축전을 보았습니다. 신부는 신랑과 함께 성경을 끄내놓고 찾아보았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축전에 나와 있는 요한4장18절은 (요 4: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신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신랑은 아내를 의심하고난리 법석을 떨었습니다. 자기를 속이고 결혼을 했다고 야단이 났습니다. 이혼을 하느니 속았느니 야단들이었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오해에서 빚어진 일들이 아닙니까 사실은 아닌데 오해를 했거나 그 사람을 알지 못해서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몰라주면 참 속상합니다.
그런데 나를 알아주고, 나의 의도를 알아 주면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신이 납니다. 문제는 대부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아 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속에 있는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알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읽었던 성경 본문 2:11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 사정을….누가 알리요”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1.모르는 인생들이라는 것입니다. 1모릅니다. 알라스카 북미대륙의 서북쪽에 붙어 있는 넓은 알라스카 주는 원래 구소련(러시아)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은 이 알라스카를 별로 가치없는 땅으로 인정하여 1867년에 미국에다가 720만 달러로 팔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720만 달러를 주고 산 알라스카에서 13년만에 무려 3억달러 상당의 금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땅에는 엄청난 양의 기름을 빼올리고 있습니다. 소련이 그 땅 밑에 이런 엄청난 보고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팔지 않았을텐데 나 중에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후회를 했겠습니까 모르니까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고 당하는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우리 사람들은 무엇을 모릅니까 사람의 속 마음을, 상태를 모릅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알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누가 압니까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태인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서운 하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데 왜 몰라 주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을, 나의 그 깊은 고민을, 아픔을 모르듯이, 나도 남의 속 사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아 그런가 보다’할 뿐입니다. 사람이 언제 무슨 일을 만날지,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나중일을, 내일 일을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잠시후의 일도, 내일일도 알지 못하고,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무실론적 실존주의자 였던 알베르 까뮤는 노벨상을 탄돈으로 교외에 고급 별장을 짓고 그리고 신나게 차를 몰고 가다가 충돌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는 내일 일에 대해서 얼마나 염려하고, 걱정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 은 그 날에 족하니라 천국의 비밀을 모른다. 이렇게 모르기는 사람의 마음뿐 아닙니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지옥, 예수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지레 화부터 내고, 거절을 합니다. 전도를 하러 갔다온 집사님이 전도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죄 값을 받으러 지옥가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을 하니까, 자기는 지옥가서 죄 값 받는 것 당연하다고, 지옥에 가도 괜찮다고 하더랍니다. 왜 지옥가도 괜찮다고 했겠습니까 지옥이 어떤 곳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옥의 그 엄청난 고통을 제대로 안다면 그런말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또 나는 천국이 필요없다고. 당신이나 가라고 하는 사람이 만약 천국의 신비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안다면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그것을 알기에 우리들은 시간을 투자해도, 물질을 드려도, 몸을 바쳐 봉사를 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믿지 않고, 어리석게 행한다. 하나님의 본심을 모릅니다. 예수믿는 우리 성도들이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잘 몰라서 나 스스로 시험에 들기도 하고,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더불이 불만이 생길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믿음으로 잘 살아 보려고 하는데도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움만 가중되고, 고난의 연속이 있을 때, 또 나름대로 기도를 한다고 했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갖게 됩니까 ‘기도 해도 소용이 없구만’,‘믿어도 소용없어’하고 포기해버리거나, 도망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단지, 내가 당한 어려움과 아픔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왜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이런 마음들이 내게 일어 나게 되는 것입니까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애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받다가, 실컫 고생만 하다가, 어려움만 당하다가 이세상을 마치게 하는 마음을 가지신 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해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어떻게 하든지 복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가 원치않는 그런 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본심을 알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형편에 처해있던 믿음으로 살아가게 될줄 믿습니다(요셉-고난이 왔지만 하나님의 본심을 알기에 잘 감당함).
2몰라줍니다. 모르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내 마음을 몰라 줍니다.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집에서 열심히 일했음에도 남편은 몰라줍니다. 남편도밖에 나가서 돈 벌어 보겠다고 당하는 수모, 수고를 아내들도 몰라줍니다. 몰라주기 때문에 몰라 주는 그 사람에 대해서 서운함을 가집니다. 그러다 보니 나스스로는 외롭습니다. 답답합니다.
그런데 알아 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힘이 납니까 자부심이 생깁니다. 김목사를 밖에 나가면 알아 주는 사람이 없다. 잘난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으니 그럴수 밖에 없다.
그런데 교회 오면 나를 목사라고 알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 괜히 힘이 난다. 여러분들도 누가 나를 알아 주면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사람이 아는 것은 한계가 있더라. 나를 알아 주면 참 좋겠습니다만은 사람들은 나를 몰라주게 되어 있습니다.
2.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알아 주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알아 주지 못하고, 모르지만, 이런 사람의 아는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이, 나를 너무나 잘 알아 주시는 이가 있습니다. 누가 여러분의 속 마음을 알겠는가 누가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알겠는가 누가 여러분의 괴로움을 알아주겠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속상함을 알겠으며, 여러분의 답답함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속 마음을, 어려움을, 괴로움을, 속상함을 아십니다. 알아 주십니다. 미국의 북쪽 지방에 살던 어느 흑인이 먼 지방으로 출장을 갔답니다. 마침 주일이라 예배시간에 맞추어 근처의 교회를 찾아 갔는데 예배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더랍니다. 이유인즉, 흑인이라는 이유로, 여기는 백인들만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하며 못들어가게 막더랍니다.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가로 막아섰으니 말입니다. 속도 상하고, 서글퍼기도 하고, 답답한 가슴을 안고 혼자서라도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공원벤취에 앉았는데 누가 등뒤에서 두드리더란다. 돌아보니 예수님께서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 어째 여기서 예배를 드리니’라고 하길래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나도 그 예배당에 못들어가 갔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진실로 주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그 흑인에게 주님은 위로하시고, 축복하시고 가시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몰라줍니다.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사람도, 친한 사람도 여러분을, 여러분이 당한 일들을 잘 몰라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을 아십니다. 여러분을 알아 주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2: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님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성령님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달한다’는 말은 나를 너무나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알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잘 아실까요 (대상 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 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 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감찰하신다는 것은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입니까 (벧전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 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주의 눈을 누구를 향하십니까 의인을 향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를 감찰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자, 여러분과 저를 누가 알아 준다구요 예, 사람은 나를 몰라 주어도 주님은 나를 알아 주십니다. 주님은 나를 아십니다. 1
그렇다면 주님은 나의 무엇을 알아 주십니까 우리의 마음이 어떠함을 아신다. (행 1:24)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 신 바 되어 어떤 마음입니까 괴로운 마음입니까 외로운 마음입니까 속상한 마음입니까 답답한 마음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아십니다. 어떤 형편에 있는지 안다. 어떻게 하는것도 안다 (계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계 2: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 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 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계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 지 하기를 원하노라 환난, 궁핍,훼방,어려운 환경(사단의 위가 있는곳)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압니다. (시 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시 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우리의 생각이 어떠함을 안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 (눅 12: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의 간구하는 기도를 보시고 아신다.-우리가 흘리는 눈물도 보신다. (왕하 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 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나의 가는 길도 아신다. (욥 23:10)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2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갚으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왕하 20:5에 있는 것처럼 보시고 치료하신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가 속 상할 때 그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속상함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가처해 환난, 궁핍, 훼방, 어려운 환경, 이런 환경과 형편과 사정을 아십니다. 아시기에 그분은 우리가 그런 형편 가운데서도 능히 이겨 나갈수 있도록, 더 좋은 환경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가 행하는 수고-사업,사랑,믿음,섬김,인내,행위-를 아시고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다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앉고 일섬을 아시기에 출입을 지키시고,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 아시 기에 우리의 필요를 때를 따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가 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을 아시고, 눈물의 기도를 들어 응 답해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가는 길을 어떠함을 아시기에 함께 하시면서 능히 갈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3.아시는 하나님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과연
그렇다면 이렇게 나를 알아 주시고, 나를 아시는 하나님앞에 우리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1용기를 갖고 힘을 냅시다. 사람들은 날 몰라 주도 하나님은 나를 아시며, 알아 주신다는 믿음위에 서야 합니다. 창세기 28장에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하여 가다가 벧엘서 돌배개하고 잠을 잘때에, 그 지치고 상한 야곱에게 나타나시어서 복을 주심을 볼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야곱이 지치고 상한 마음으로 도망중에 있는 그 괴로움을 알지 못했지만, 어느 누구하나 그를 알아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알아 주시고, 그리고 약속을 하십니다. 이때 야곱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창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그리고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배개했던 돌로 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의 가던 길을 계속 감을 볼 수 있습니다. 지칠대로 지친 야곱이 어디에서 이런 힘과 용기가 났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의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그를 주시하고, 그를 붙들고, 그를 알아 주고 있다는 이 사실에 힘을 내어 일어 났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다보니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외롭기도하고,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속상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그런 마음을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들어도 못들은척, 알아도 모르는척, 아닌데도 아니라고, 맞는데도 틀린다고 할수 없이 속앓이를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맞아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내 중심과 내 의도를 아시지’라는 생각을 갖고 일섭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가질 때 힘이 솟아나고, 용기가 납니다. 왜요 사람들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알아 주시니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힘드십니까 얼마나 어려우십니까 얼마나 외로우십니까 얼마나 답답하십니까 그러나 나를 알아 주시고,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우리들도 힘을 내어 일어 납시다. 그리하여 멈추었던 것을 다시 합시다. 포기했던 것을 다시 붙잡읍시다. 분명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힘으로 인하여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일어 날 줄 믿습니다.
2두려움으로 지냅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알아 주심으로 인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있는 반면 또한편으로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요즘 몰래 카메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한다고 합니다. 백화점이나 여자들의 출입이 많은 곳에 은밀하게 숨겨놓고 촬영을 해서 복사해가지고 팔아 먹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러분! 화장실 갈 때 한번 둘러 보십시오.
그런데 몰래 카메라보다 고성능의 카메라가 당신이 가는 곳, 당신이 있는 곳 그 어디에나 설치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눈입니다. 신명기 11:12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 알아 주신다는 것에는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 우리의 모든 일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이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24시간 우리의 속 마음과 우리의 겉 행위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저가 이제부터 요셉처럼 삽시다. 창39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습니다. 사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별 것 아닌 것 같이 지나 갈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그는 굳이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전보다는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가감하게 거절을 합니다. 그것은 그가 그 유혹의 달콤함을 몰라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무엇인가 좀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아니면 사람을 의식해서도 아니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절하고, 뿌리칩니다. 성경은 요셉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창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렇습니다. “어찌 득죄하리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신전의식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는 그 어디나 주님이 계시고 나를 보시고, 아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잠시는 환난이 있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케 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 의식하며 삽시다. 마치는 말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 하신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가 구할 때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를 아시기 때문이다. 나의 사정을 알고, 형편을 알고, 나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시는 하나님께 구하자.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나를 알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아실뿐 아니라 알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아시고, 알아 주시는 하나님앞에서 믿음으로 삽시다. 주님의 갚으심이 우리에게 분명 크게 있을 것입니다. 아시지요 나의 사정(4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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