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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영원을 생각하는가? (눅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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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영원을 두고 볼 때 인간 생명이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탄식하고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여 주는 대대의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띠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 시기를 너의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 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 녁에는 벤바되어 마르나이다"(시편 90:1-6) 오늘 과연 모세처럼 인생의 허무의 심령을 들여다보고 죽음의 절망을 사색하며 그 바탕 위에 현실의 삶에 임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1. 부자와 거지 나사로 성경에는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동네에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자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관리이며 권력 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부자는 굉장한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권력이 있어 좋은 베옷을 입고 날마다 주연을 펼치고 연락했 습니다. 그는 충분히 살아갈 돈이 있었습니다. 오늘 먹고 마시 자, 그래서 풍유를 즐기며 날마다 향락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는 영생에 대한 것이라든지 죽음에 대한 것은 전혀 마음속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가 오늘날 우리가 볼 때 현 대를 사는 무신론자 인본주의자나 물질 만능주의자, 황금 만능주 의자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관 심사도 현실에 대한 것이지 하나님과 죽음과 영생에 대한 것은 없습니다. 이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모이면 경제의 동향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가 지수가 얼마가 올라 갔다가 얼마가 떨어 졌나', '영국이, 일본이'하면서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율 변동에 대한 관심 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환율 변동에 따라서 울고 웃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모이면은 이러한 세계의 경제의 동향이나 환율 동향 주식 시장의 주가 변동 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 뿐 아니라 국내외 정치 흐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년 대권주자로 여당에서 누가 나올 것인지', '누구누 구 일 것이다', '야당은 누가 누가 나올 것이다', '누가 손을 잡 을 것이다' 끝없는 추측에서 끝없는 흥미를 가지고 정치적인 이 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되었다던지 옐친 이 수술을 해서 건강을 회복했다더라' 이런 여러가지 세계 정세 에 관한 관심은 있으나 영혼에 대한 문제는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 부자가 자색옷과 좋은 베옷을 입고 날마다 풍요 속에서 연락하면서도 영혼에 대한 것은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러한 삶과 같습니다. 야고보서 5장 5절에 보면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 살의 날에 너희 마음에 살지게 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의 문제에 대해 서는 전혀 무관심함과 죽음 저 건너편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는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오직 현실에 육신의 정욕 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만 가지고서 살아 가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영원에 관심을 가진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부자의 대문가에 거지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온 몸이 헐고 전혀 스스로를 살아 갈 힘이 없었습니다. 부자의 대문가에 앉아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고 살아가고 있을 때 사람 들은 이 거지를 전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대화도 해 주 지 않고 함께 이야기도 안합니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와 함께 있고 그와 함께 자고 개들이 그 헌데를 혀로 핥고 있었습니다. 이 거지는 이 세상의 부모 형제 처자도 어떻게 되었는지 한 사람 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도 물질도 아무것도 없 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버림 받은 사람이고 그도 세상을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거지 나사로 같은 모습의 사람을 현재를 사는 사람들 속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거지 나사로가 한 때는 큰 재산가 였을지도 모릅니다. 큰 집을 짓고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이 나사로는 한때 정치적인 영향을 미친 훌륭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거지 나사로는 이제 모든 삶의 거지 노릇을 다 벗어 던진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이라는 것이 물거품 같다는 것, 물질적인 부요와 풍요도 한 순간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므로 이 사람은 이제야 말로 유물주의 적인 것, 인본 주의 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 얼마나 허무 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취해서 그 수렁에서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의 삶의 진실이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를 고민하는 그런 처지였습니다. 여기서 부자와 나사로의 다른 점은 부자는 지금도 세상 부귀 영화 공명에 취해서 이 세상의 지나 갈 것을 부여 잡고 그 거품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는데 그 거지는 이 거품이 다 사라지고, 부귀 영화 공명이 다 사라지고 인간 의 절대적 허무에 부딪혀서 이제는 인간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찾는 그런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지는 이제야 말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자기의 영원한 삶의 목표, 영원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그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2. 인생은 내일을 모르는 나그네 잠언서 27장 1절은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 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인 개인의 거짓 너울도 다 벗겨질 날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거지가 죽는 날에는 그도 세상을 버리고 세상도 그 를 버리는 것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죽던 날에 부자는 빼앗긴 영화를 무덤까지 가져가려고 화려하게 상여를 꾸미고 수 많은 조객들이 줄을 서고 휘장을 날리고 만기를 날리면서 그들은 무덤을 향해서 가서 장엄하게 의식을 집행하고 무덤을 파고 무덤 주위를 장식했지만은 그러나 허물을 덮을 수가 있었습니까 성경은 잠언서 23장 4절로 6절에서 "부자가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 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 리라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지어다"라고 우리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있을 곳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서 몸 부림 치고 있을 곳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서 몸 부림을 치다가 모든 것을 다 놓고 빈 손으로 떠나게 됩니다. 초 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기술 연수, 유학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사회적으로 있을 곳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좋은 지위를 원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있을 곳을 얻기 위함입니다. 있을 곳을 얻은 사람은 그것을 빼앗길까 싶어서 몸부림을 치고 안 빼앗길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 다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난 다음에 최후에는 마지막 있을 곳인 육신의 장막집도 빼앗기고 맙니다. 인간은 결국 있을 곳이 없는 나그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에 처합니다. 예수께서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과 자신을 믿으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으로 인도한다고 우리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가 아무리 이 세상에 있을 곳을 찾아도 결국에는 이 세상에 있을 곳은 한계가 있다. 직장도, 사 회적 지위도 너의 육신의 장막집에서도 쫓겨 나면 너는 있을 곳 을 잃어 버린 가장 처절한 고독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오직 너희가 예수님을 믿고 나면 예수님께서 네 아버지 집에 빼앗기지 않고 잃어 버리지 않을 영원한 있을 곳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이 땅에 부귀 영화 공명으로 짧은 세월 동안에 잠시 있을 곳을 얻었다고 생각해도 그 있을 곳은 영원한 것이 못 되고 그가 호화롭게 무덤을 장식하고 그곳에 있으려고 해도 그곳 은 구더기가 다 파먹고 그곳에 영원히 있을 곳은 없는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영원의 자리에서 만났을 때 그들의 운명은 어떻 게 되었습니까 성경에는 부자는 죽어서 그냥 무덤속에 들어가고 흔적이 없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음부에 내려 갔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음부라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마지막 심판 자리인 유 황으로 타는 못에 내려 가기 전에 갇혀 있는 미결수 감옥입니다. 그 미결수 감옥인 음부만 하더라도 불꽃이 타고 괴롭습니다. 나 중에 백보좌 심판을 받고 마귀와 그 사자가 함께 들어 갈곳은 영 원히 무섭고 불타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입니다. 그러나 지금 은 아직 심판 받기 전에 미결수 들이 들어가 있는 그러한 감방인 데도 음부는 고통 스러운 곳입니다. 이 부자가 간 곳은 바로 그 음부였습니다. 그는 전혀 죽음 저 건녀편에 무관심하고 죽음이 자기에게 다가오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은 죽음은 순 식간에 다가와서 잡아서 음부로 데려 갔습니다. 세상에 있던 모 든 것 다 빼앗기고 버림받고 마는 것입니다. 그는 음부에 들어가 서 불꽃 중에 괴로워하고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 건너편에 아브라함의 품에 나사로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자는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사 그 끝에 물을 찍 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중에 번뇌 하나이다"라 고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음부에 내려 가면 아무 느낌도 없고 감각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이 부자는 이 음부에 들어가서 이 불꽃 중에서 영과 마음이 번뇌 했습니다.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예리한 감각을 가지 고, 더 예민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아브라함도 알아보고 나사로도 알아 보았습니다. 죽음후에도 인간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기억력도 가지 고 있으며 모든 감각도 그대로 다 느낍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육신 가지고 있을 때 보다 더 예리한 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부는 버림 받은 처소이기 때문에 그의 탄원과 기도는 응답 받지 못했습니다. 음부에 들어 가게 한 사람들에게는 완전 히 버림 받은 곳이요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 어떠한 기도와 간구 도 거부 됩니다. 성경의 말을 받아 들이지 않은 사람은 음부에 떨어지게 됩니다. 영원을 막는 부자는 완전히 영원한 절망이요 영원히 버림 받은 사람입니다. 그 고독 속에 그는 말할수 없는 번뇌를 느낀 것입니다. 그러나 거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거지는 이 세상에 살 동안에 물질을 다 잃어 버린 거지로 살았기 때문에 이는 세상에 대한 소망을 끊었으므로 그는 거기에서 인생의 진실성을 찾았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지.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비록 그가 개와 같이 자고 헌데를 앓고 부자의 떨어진 밥상에서 부스러기를 먹었지만은 그의 영혼은 한 없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마음을 준비 했었습니다.
그 육체가 그를 내어 쫓는 날에 그는 사람들이 둘둘 헝겁데기에 말아서 공동 묘지에 내어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공동 묘지에 있다 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몸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갔고 그 육체 속에 살던 나사로는 그 육체를 떠나자 천사들이 그를 받들어서 낙원 아브라함의 품으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제는 모든 염려 근심 고통을 다 버렸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그런 염려도 없습니다. 고통과 슬픔 과 외로움도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예비한 낙원에 오직 영육간에 즐거움이 꽉 들어 찼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꽉 들어 차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꽉 들어 차 있던 곳이었습니다. 너무 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이 거지는 자기가 세상에 살 동안에 당 한 그 모든 시련을 꿈같이 잊어 버렸습니다. 나날이 그는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매일 같이 새로웠었습니다. 하루 자고 나면 또 새 롭고 자고 나면 또 새롭습니다. 자고 나도 새롭고 세월이 지나가 도 새롭고 끝없는 새 것만 있는 곳에서 끝없는 기쁨으로 충만 했 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편 16편 9절로 11절에 보면 "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 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 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저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그 속 에서 나사로는 즐거워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 그들 은 이 땅에서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지만은 저 세상의 영원을 맞이 했을때는 끝없는 차이일것입니다. 죽음의 심령을 들여다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올바 르게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바라본 사람은 이 땅에 잠시 삶을 살때라 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예수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예수 믿고 권력을 얻은 사람은 괜찮지만은 예수를 알지 못하고 권력을 얻은 사람은 예수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합니다. 그들은 부자와 같습니다. 그들을 권력과 부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연락하며 호위 호식하고 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고 구원을 받게 되니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보다 부자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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