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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원수를사랑하라 (마5:43-48)

본문

벌써 옛날 얘기가 됩니다마는 세계 제 2차 대전이라고 하는 큰 사건이 지나간 후, 우리 마음속에 가장 강하게 크게 남는 기억 하나가 바로 나치 수용소입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해서 나치 수용소에서 죄 없는 유대인을 끌어다가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서로 마주서서 총을 쏘고, 싸우고 한 그게 아니고 아무 저항도 못하는 600만 명을 무참하게 죽인 이 사건은 인류 역사의 가장 처참한 사건으로 그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숫자를 의심할 만큼 엄청난 사람, 그렇게 희생시켰습니다. 이 나치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에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저들은 다시 만나서 옛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생각만 해도 오열이 끓고 도저히 분노를 잠재울 수 없는 그런 격한 감정이 있어서 "당신은 그 때, 그 놈들을 용서할 수 있소" 나는 생각만 해도 잠시도 그 때 사건을 잊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이 말을 듣는 친구는, "글쎄 이제는 오랜 이야기인데, 다 지나간 이야기를 이제 꺼내서 뭘 하겠노" 이렇게 대답을 했더니, 그 친구는 여전히 말하면서 그걸 어떻게 잊고,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느냐고 또한번 치를 떨었습니다. 그때에 다른 친구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네는 아직도 감옥에 있는 것일세."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물리적으로는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정치적으로도 해방 됐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감옥에 있는 겁니다. 감옥에 있던 그 때 그 마음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는 사는 것이 그대로가 감옥입니다. 이걸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자유인인 줄로 알지만은 아니오. 경제적, 정치적, 물리적으로는 자유인인 줄 몰라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는 동안은 당신은 자유인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미워하고 있는 동안은 당신은 영영 자유인이 아닙니다. 여전히 증오라고 하는 무서운 감옥에 그대로 살고 있다 그 말입니다.
미국에 C.I.T 대학이라고 있습니다. 카네기 공과대학입니다. 여기에서 인생살이에 실패한 사람들, 직장생활에, 가정생활에, 그리고 사회생활에 실패한 사람들만 만 명을 표본 조사해서 철저하게 연구해 보았습니다.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연구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는 지식이 없어서, 기술이 부족해서, 혹은 무능해서, 능력이 없어서 실패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조사했는데 아니오. 전혀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결여되어서 실패한 사람은 15%밖에 없고, 85%가 인간관계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이런 통계를 얻고 연구한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 지식이 부족해서, 자본이 부족해서, 뭐 그래 그래 잘못되는 줄 알지만 아니오. 85%가 인간관계에 잘못이 있었어요. 이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관계란 또 무엇이냐 그 무슨 관계에서 실패했다는 거냐, 하고 추적해서 심층 연구해 보니까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Negative Mental Attitude, 부정적 의식, 부정적 생활자세를 가지고 있어요.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가지는 것이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을 알고, 실패한 사람들은 항상 부정적이요. 인간관계가 그렇고, 사물에 대한 생각이 그렇고, 사건에 대한 이해가 그렇고, 언제나, 역사에 대한 이해도 항상 부정적이요. 그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결론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엄청난 말씀을 듣습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바로 이 말씀은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너무 높은 윤리 기준이다. 너무 높은 윤리 규범이라서 뭐 쳐다볼 수도 없고 우리가 감히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은 우리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거 생각할 수도 없는 거다, 아예 일축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이것이 바로 긍정적 자세입니다. 적극적 자세요,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는 창의적인 자세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 승리라는 게 뭐겠습니까 백전백승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손자는 생각합니다. 평화로운 가운데서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으면 그것이 최상책이요, 싸움을 통해서 상대방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차선책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전쟁을 통해 이긴다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아쓰의 인간 경영이라고 하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매우 통쾌한 일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겼으니 한 사람은 졌는데 그 진 사람의 고통만큼의 그림자가 남는 것이다. 그런고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싸워서 내가 이기고, 진 사람이 있고 그리고 저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면, 원수대립관계에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승리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공했습니까 성공했는데 왜 문제가 많으냐 하고 물으면 나 성공하면서 많은 사람 실패하게 만들었거든요. 나 출세하면서 많은 사람 눈물 흘리게 만들었거든요. 나 돈 벌면서 다른 사람 전부 못살게 만들었다 이 말이야. 피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 나라 재벌이 온전히 서지를 못하는 거예요. 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하는데 그 짧은 생애 하나도 제대로 살지를 못하고, 내가 세운 사업이 곤두박질하고 무너지는 것을 보는 비극을 겪어야 해요. 왜 이게 싸움이었기 때문이요. 내가 얻고 남은 잃고, 내가 성공하고 남은 실패하게 하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이런 대립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미워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시기하고, 이런 관계에 있는 이상 성공도 아니고 그리고 소득도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원수를 사랑한다' 이것은 바로 기본적인 것이올시다. 이 북한 사람들하고 같이 얘기를 하던가, 가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입맛이 어떻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아 그저 좋았다고 그저 "참 맛이 있습니다. 아 냉면이 참 맛이 있습니다"하고 칭찬하면 보통 우리 같으면 "예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북한 사람들 안 그렇습니다. 참 맛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거는 기본입니다" 그래요. 기본입니다, 그래요. 참 재미있는 표현이에요. 저도 배워 가지고 여러번 써 봤는데, 기본입니다. 이제 말씀드립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게 높은 얘기가 아니요. 아주 기초적인 얘기예요. 원초적인 얘기입니다. 원수사랑 없이는 절대로 성공도 아니고 승리도 아닙니다. 물론 행복도 없습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상호성 사랑을 생각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나도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나를 미워하면 나도 너를 미워한다. 이것을 공이라고도 하고, 정당하다고도 하고, 합리적이라고도 합니다. 이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자 네가 사랑하는 만큼만 내가 너를 사랑하겠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습디까 여기에 사랑이 있드냐고요. 이건 말뿐이지 실제로 불가능할 것이고, 또 하나는 대가성 사랑을 말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겠는데 결국은 네가 나를 사랑할 만큼 사랑하겠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보장을 받고 내가 너를 사랑할 것이다. 조건적입니다. 이것 또한 생각뿐이지 실제로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다 소극적이요 부정적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건 심리학적으로 철저하게 종속적인 겁니다. 남에게 끌려가고 있는 겁니다. 저가 사랑하면 내가 사랑하고, 저가 미워하면 나도 미워하고, 내가 사랑한 다음에 또 대가를 기다리고, 이건 완전히 다른 사람의 하는 행동에 그 자세에 내가 종속되어 계속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묻습니다. 나는 누굽니까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주체 의식이 없어요. 나라고 하는 정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내 인격은 어디에 간 거예요! 항상 다른 사람의 생활태도에 줄줄 끌려가는 이런 모습은 결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고로 원수사랑, 이것이 기본이에요. 또 보세요. 공산주의가 생각하는 철학은 언제나 변증법적입니다. 그런고로 싸워서 이기고, 혁명을 통해서 이기고, 투쟁해서 이기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거기에 평화가 있다고. 그러나 기독교의 윤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희생해서 그래서 평화를 이루고 의를 이룬다 이거예요. 공산주의적 승리에는 항상 눌린 자가 있고, 억울한 자가 있고, 고통 당하는 자가 있습니다. 기독교적 윤리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다른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이것은 네 원수, 이 주관적인 원수 개념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내게 원수요, 내 문제의 원수요, 나를 중심해서 원수요, 내 사업에 대해서 원수요. 내가 기준이 되고 있어요. 나의 원수, 이건 주관적 해석입니다. 그리고 내 판단에 따라서 원수요, 내 권익을 중심해서 내 판정대로 저건 원수라 이거죠. 그렇습니까 생각을 한번 바꿔보세요. 객관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내게는 원수지만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내게는 나쁜 사람이에요. 이 사건을 놓고는 나쁜 사람이에요. 그러나 다른 일을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에요.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흑백논리라는 말이 있죠. 까만색하고 흰색만 있는 게 아니에요. 붉은색도 있고 파란색도 있는 게 아닙니까 내가 보는 대로 원수라고 해서 그대로 그가 원수가 되는 게 아니에요. 내게 원수니까 악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내게는 나쁜 사람이지만은 여호와 하나님께는 소중한 사람일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 그 형님이 아주 못마땅합니다. 재산을 다 없이하고 들어왔죠. 들어왔으니 이제 또 남은 재산을 또 나누어 가져야 되거든요. 여러 가지로 나에게 손해를 입히는 거예요. 아주 보기 싫은 동생이에요. 이 동생은 아주 못마땅해요. 저 창기와 함께 재산을 다 먹어버린 저 동생을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왜 사랑합니까"라고 말합니다 만은 아버지는 그게 아니에요. "내 아들이 죽었다가 살았고 잃었다 얻었노라" 그럽니다요. 자 형님의 입장에서 보면은 내게 아주 나쁜 동생이지만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몽매 잊지 못하고 기다리고 기다린 그 아들이에요. 이걸 잊지 말아야 되요. 나와의 관계에서는 원수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착한 분이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라 이 말이요. 이 점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테레비 프로에 말이죠 노인들 나와서 뭐 이렇게 하는 재미있는 대담 프로가 있었어요. 70, 80 된 노인들 내외간이 나왔는데, 그 아나운서가 안내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한 평생을 50평생을, 50년 동안 60년 동안 같이 살았으니까 이런 관계를 뭐하고 하십니까"하고 물었어요. 그 사회자가 기대한 것은 뭐냐면 "천생연분" 그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할머니가 뭐하고 하는고 하니 "원수!" 그러더라구요. 이 사회자가 너무 답답해서 이걸 또 말을 고쳐서 "넉자로 말하세요, 넉자로" 했더니 하는 말이, "평생원수!" 그래요. 그리고 말을 잘못했는지 마음이 고약한지 그렇게 하고 원수와 더불어 한 평생 산 거예요. 이걸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내게 원수, 거기서부터 벗어나야 되요. 그 내게는 잘못 됐지만은 하나님 앞에는 착한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일 수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되요. 또 오늘 여기에 주신 말씀대로 깊이 신학적으로 이해해 보십시다. 내가 하나님께 원수 되었던 자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가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원수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러나 그는 나를 사랑하셨어요. 예 원수 같은 나를 사랑 하셨어요. 그런고로 원수 사랑이 기본이에요. 원수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이에요. 지금도 내가 받고있는 사랑이 바로 원수 사랑인 거예요. 그러한 속성의 사랑이란 말이에요. 왜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할 때가 너무나 많으니까. 곁길로 갈 때도 많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도 많고 그 많은 은혜 가운데 살면서 계속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니까 이게 원수죠. 하나님 앞에 원수 된 나를 하나님이 원수 사랑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가 입고 있는 사랑, 내가 받고 있는 사랑이 바로 원수 사랑이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이 뿌리요, 이것이 원초적인 사랑이요. 그런가 하면 또 하나 있습니다. 주변에 내 이웃을 놓고 생각할 때에도 역시 주변에 있는 모든 분들이 나를 원수 사랑, 그 높은 사랑으로 나를 수용해서 내가 오늘 있는 것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가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 입은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남에게 손해 끼친 것을 생각 안 하죠. 나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합니다. 내가 가해자 됐다는 걸 잊어버렸어요.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손해보고 마음 아픈 생을 보낸다고 하지만 자, 나 때문에 다른 사람 괴롭고 어쩌면 한 평생을 망쳐버렸어요. 이래도 되는 겁니까 가끔 보니까 아 이 시어머니들이 못 되가지고 며느리를 죽여요. 며느리를 못살게 만들어. 자 그거 보세요. 한 여자를 죽이고 내 아들 잘 되길 바래요 이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요. 내가 남에게 손해본다는 생각은 하지만 내가 남을 얼마나 마음 아프게 하고 있다는 걸 모르거든요. 내가 남을 죽이고 있어요. 남의 일평생을 망쳐버렸어. 이러고도 하나님 앞에 복 달라고 빌어요 천만의 말씀. 이걸 알아야죠. 얼마나 내가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내가 원수 맺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생각하며 울고 있는가 이 생각을 왜 못합니까. 그런 가운데 내가 있는 것이요. 그런고로 원수 사랑의 그 너그러운 마음속에 오늘 내가 있고 그 속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됩니다. 또한 오늘 성경 말씀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랬어요. 기도하라,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너와 적대관계에 있는 저 원수가 평안하게 잘 살게 되야 너도 평안한 것이요, 저가 어렵게 되고 어렵게 되면 점점 더 이를 갈고 증오하게 되고 마지막에 원수갚게 되면 그것은 내게 돌아오는 게야. 그런고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적대관계가 아닌 화해의 관계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이거예요.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아우성을 치며 창으로 찌르고 비난을 하고 조소하는 그 분들을 향해서 일곱 마디 말씀 중에 첫마디 말씀이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이렇게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놓고 가끔 짓궂은 생각을 합니다. 이거 좋은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농담도 하고 진담도 합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그 순간에 그 극악한 발악하는 그 무리들을 내려다보시면서 "이놈들 두고보자. 내가 천벌을 내리리라" 그랬다면 어떻게 되겠냐 이거예요. 죄송하지만 저는 예수 안 믿겠습니다. 이 말 한마디가 이렇게 중요한 거에요. 그 한 마디의 기도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나의 구주가 되신 거예요. 이걸 잊지 마세요.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예수님 기도하셨어요. 언젠가 한번 이북 5도에 있는 지도자들이 모여서 조찬모임을 갖는다고 해서 "좀 말씀해 주세요", 가서 말씀을 드렸어요. 북한은 지금 어려우니까 우리 정성을 다해서 도와줍시다 하는 얘기를 했더니, 마치고 나오는데 나이 많으신 장로님 한 분이 저를 딱 손을 잡더니 "목사님, 아무리 그래도요 빨갱이 놈들은 안돼요" 그러더라구요. 주면 안 된다고요. 그거 망해야지 안 된다고. 그래서 내가 "아니 왜 그러십니까 그래도 우리가 북한을 잊어버리고 도와야되지 않겠습니까" 했더니 거기다 한 마디 더하더라구요. "곽목사는 젊어서 모르지 우리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는가" 그래서 제가 손을 잡고 "저 그렇게 어리지 않습니다. 제 아버지가 제 목전에서 총살당하는 걸 제가 본 사람입니다." 눈을 크게 뜨더니 "아 그래도 도와야 하나그럼은요. 장로님의 마음속에 있는 그 미운 마음이 다 없어져야 통일이 되는 겁니다." 내 손을 잡고 놓지를 못하고 한참 우는 걸 봤어요.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배고프거든 먹이라.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원수가 잘못되는 걸보고 기뻐하지 마라. 이것이 성경이 주는 교훈이에요. 망하라고 하면 안됩니다. 위하여 기도하라.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그리하므로 자유인이 되고 오늘 본문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악한 자에 밭에도 비를 내리고, 선한 자에 밭에도 비를 내리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네가 좋아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네가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라.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래야 온전한 자유인이 될 것이다. 온전한 행복을 찾게 될 것이라고요. 내 원수를 사랑하라. 그리고 내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리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가운데서 우리가 살면서도 은혜를 모르고 엄청난 사랑을 받고 살면서도 그 사랑의 참 뜻을 몰라서 우리는 아직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며 그렇게 스스로 증오의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참 자유를 허락하셔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원수도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을 주셔서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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