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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유익을 구하노라 (빌4,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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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가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상황에도 맞지 않고 또 이해도 되지 않는 그런 일들을 요구하실 때가 있다. 예를 든다면 광야같은데 남자만 5,000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고 있을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 냐"(요6;5) 고 말하신 적이 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이렇게 말씀 하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제자들! 무일푼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계시는 주님이 아닌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제자들! 아무 것도 줄 수 없었던 제자들!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이런 요구를 자주 하셨다. 그렇게 훈련을 받았던 주님의 제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겠는가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훈련을 잘 견디어 낸 주님의 제자들은 멋 있는 사람들로 바뀌어 있었다. 한번은 베드로가 성전에 기도하기 위하여 올라가고 있을 때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던 한 앉은뱅이가 손을 내 밀어 동량을 요구했다. 그때 제자 베드로가 그 앉은배이를 향하여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 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주께서 승천하신 후의 제자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른 모습들이었다. 하나같이 늠늠했고, 담대했다. 그러면서도 자비함과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다.

1,선물을 구함이 아니라 너희의 유익을 구한다. " 주님과 제자들의 성숙한 관계를 우리는 지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통하여 다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15-16절 "빌립보 살함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관계는 서로서로가 주고 받는 주고 받음의 관계였다. 바울과의 관계도 역시 주고 받음의 관계였다. 이는 사보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서 목회를 하실 때에 의도적으로 이런 관계를 가지겠끔 영적인 생활을 유도 했던 것이다. 환자를 시방한다든지 어려운 형편의 형제를 찾아 본다든지 고아와 과부를 그리고 같인자를 돌보는 일에 빈 손으로 하지 않기를 가르쳐 왔던 것이다. 이런 일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도록 요구했던 것이 바울의 목회방침있었다. 물론 자기에게도 많은 것을 하겠끔 계획적으로 훈련을 했었던 바울이었다. 그럼 왜 사도 바울이 어런 일을 고의적으로 실시 했었나 그토록 물질에 궁색했는가 아니면 물질에 탐심이 많은 사람이엇는가 4;17절이 이를 잘 설멸하고 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라고 했다. 언제는 섬물을 하게 해서 많이 가져오게 하더니 이제 와서 하는 말은 "내가 선물 을 구함이 아니요" 라고 함은 무슨 말인가 이는 사도 바울이 선물을 하게 했던 이유가 달리 있었던 것을 이제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고난 다음에 비로서 가르치고 있음이다. 18절을 잠시 보고 지나가자.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 바울이 궁색해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바울이 탐심이 많아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17절을 다시 본다. "내가 너희에게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도록 구하노라" 고 함같이 지금까지 바울이 하여 온 일은 어디까지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유익하게 하게 위함임을 밝히고 있다.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주고 받는 삶을 시켰던 것이다. 서로의 열매가 풍성하게 하게 위하여 주고 받는 삶을 생활화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2,너희의 풍성한 열매를 구한다.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살기는 쉽지만 남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람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는 쉽지만 남의 유익을 위하는 일을 더 더욱 어려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전적으로 남을 위한 삶을 사시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인류를 위하여 다 주시었다. 지금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 바울도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로는 전적 으로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남을 위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게 예수를 다르는 제자의 삶이었기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또 그런 삶을 살기를 가르쳤고 지금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유익이 너희에게 돌려지기를 구함과 동시에 그 유익이 무엇인가를 설 명하고 있다. 그 유익이 무었인고하니 "과실이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럼 과실이 풍성해진다고함은 어떤 것인가 과실 ! 과실은 여기에서 여러가지면으로 설명될 수 있다.
1),토지의 소산(농사법) 씨앗을 심고 가꿈의 법칙! 힘들고 고되지만 심은 씨앗이 싻을 티우고 파릇파릇 자라는 것을 보는 그 기쁨 또 가을에 풍성한 추수의 기쁨은 농부만이 알 것이다.
2),자본금의 증식(상업법) 자본을 투자하여 재산을 늘려가는 것을 말함. 주식을 투자해서 자산을 늘가는 자산 증식을 말한다. 장사군이나 사업ㅂ가만이 아는 기쁨일 것이다.
3),행동의 영향력(행위법) 행동의 반경이랄까 영향력이랄까 노력하는만큼 얻어지는 댓가를 말한다. 노력한만큼 노력의 댓가를 얻는 기쁨을 말한다. 여기 본문의 "과실의 풍성함이란"말의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를 당장 육신의 생활이 풍부해진다는지 병든 육체가 금새 낳음을 받는다는지 어렵든 삶림이 갑자기 쭉 펴진다즌지 호박이 담 안에 굴러 떨어지는 그런 것으로 쓰여진 말이 아니다. 여기의 관실의 번성함은 농사에대한 투자를 말한다. 장사에대한 투자를 말한다. 행위에대한 투자를 말한다. 한 마디로 천국을 위한 투자를 의미함이다. 잠19;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마6;19-20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사도 바울이 그렇게 집요하게 강요하다싶이 한 것은 어디까지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삶의 향상을 위한 것이었다.
18절을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음으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하늘의 투자는 곧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했다. 성도 서로를 위한 것이 곧 하늘에 투자함이 된다. 성도 서로를 위한 것이 곧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 성도 서로를 위한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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