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고전1:26-31)
본문
야고보서 1장에서는 (약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약1: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교회 안에 세상적으로 지식이 구비하고, 돈 많은 사람들, 가문이 좋은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들이 교회에 오면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다 착취하는 자들이라 악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착취당하는 불쌍한 사람이니 그들은 선하다는 등식으로 모든 것을 보는 운동권 학생들의 주장과 같은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 안에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무식한 사람도, 유식한 사람도, 가문이 좋은 사람도, 가문이 별 볼일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있습니다. 실은 세상적으로 부요하고, 세상적으로 똑똑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부요와 하나님의 지혜 지식을 어떻게 따라가겠습니까 정말 똑똑한 사람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바로된 사람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닌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똑똑한 사람, 바로 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낮은 형제는 교회 안에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믿음의 부요와 그 가치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또 세상에 부한 형제는 자기가 가진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 가지고 이전에 떠들고, 자랑하고, 교만했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손을 나타내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를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지나치게 자기를 포장해서 자랑하고 교만했습니다. 이들은 인간중심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가 어지럽고, 분열과 분리의 위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은혜의 복음에는 인간의 자랑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외모, 사회적인 지위, 어떤 일에 드러난 공로, 업적, 재산이 많은 부요, 이런 것을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에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이 세상적으로 낮은 신분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세가지를 상기시킵니다.
첫째로, 그들을 부르시기 전의 과거의 상태를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대부분 지혜도 없었고, 능하지도 못했습니다. 가문이 좋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헬라인들이 초대교회를 볼 때에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만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됨됨이 때문에 그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27절에는 그들은 ‘미련한 자’였다고 합니다. 이 미련하다는 말은 직역하면 ‘세상의 흉악한 죄인들을 택하사’라는 말입니다. 또 그들은 세상에 ‘약한 자’들입니다. 아무 힘이 없는 자들입니다. 병들어 몸이 약한 자들도 있고, 마음이 약한 자들도 있습니다. 또 세상에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이는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는 도무지 맞지 않는 하나님의 선택의 방법입니다. 하기는 요즘 대기업에서는 일류대학졸업한 사람 보단 지방의 이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뽐는다고 합니다. 왜 잘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애사심이 없고, 여기 아니면 안되다는 마음이 없이 자신이 있으니, 제 마음대로 회사를 들락거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그 나름대로의 실력은 보고서 사원으로 채용하는 것이 세상의 인재등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심을 보십시오. 세상에 잘난 자 보다 못난 자가 많고, 세상에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많습니다. 세상에 건강한 자 보다 비리비리한 사람들이 교회에 많습니다. 못나도 지지리도 못난 것을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택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많은 민족 가운데 택하심도, 야곱을 택하심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부르심도 그러합니다. 세상에 광문다학하고, 세상에 소망들만한 것이 있다고 하는 자들을 부르시는 일 보다 세상 소망 다 끊어지고, 이제 하나님 밖에 소망이 없다고하는 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이유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세상에 당신의 은혜를 나타내시고,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며 별 것 아닌지를 보이시기 위해서 세상의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세상이 자랑하는 부귀와 학문, 가문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하지만, 이것 있는 자들이 그것 의지하고 하나님께 안 돌아올 때에 이런 것이 없으니, 여기에 소망 둘것도 없는 거지 나사로 같은 자들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므로 어떤 것이 참 인생에게 필요한 것인 것을 알게합니다. 또 세상 것들을 가지고 교만히 행하고 하나님의 귀한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겼던 그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다 폐하려 하십니다. 이 모든 것 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이것들을 다 하나님께서 폐하실 때에 이것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한 자들이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여기에 구원을 받은 자들의 할 일이 있습니다. 구원을 얻은 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합니까 진정 자신은 약하고, 못나고, 미련한 자였다는 인식부터 가져야합니다.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 같이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 인식을 강하게 가진 것 만큼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제자신에게 와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어집니까
그렇다면-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부르심에 합당한 것입니까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값없이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보이십니다. 지혜 없는 자를 구원하셔서 지혜로운 자 만드시고, 세상에 가진 것이 없는 자를 택하셔서 영원한 것을 주실 뿐 아니라, 세상의 물질도 주십니다. 또 건강하지 못한 자를 건강하게도 합니다. 이러면 우리들은 곧 교만해집니다. 제가 무엇이 있어서 이렇게 된 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안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제게 무엇이 있어서 저를 구원하신 것으로 압니다. 우리는 못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없는 자입니다. 우리는 죄인중에서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병든자였습니다. 이를 잊으면 안됩니다. 고린도교회가 이를 잊었습니다. 은사를 주시니 제게 무엇인가 원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교만합니다. 또 없는 형제를 비판합니다. 교회 안에 일하면서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지리도 못난 자들을 끌어 모아서 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뭐 온전한 것이 있습니까 교회에서 일하는 지들을 보고 집사가 뭐 제래, 목사가, 전도사가 뭐 저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계집사가 돈도 제대로 못맞추나 그런 우리입니다. 성가대에 앉았다고 하면서 악보도 못보느냐 욕하지 맙시다. 우리 다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도 잘난 사람이면-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못났기 때문에 우리의 지혜로, 힘으로, 선행으로 이룰 수 없는 귀한 구원을 값없이 은혜로 단지 믿음이란 그릇으로 받은 것입니다. 제게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다 하나님께 받았으면서 뭘 자랑하고 그 것이 제것인줄 알고 교만하고, 남 비판합니까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미련한자를 택하여서 세상에 이롭다하고 지혜있다하는 자들을 부끄럽게합니다. 이 복음의 능력은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만듭니다. 변화를 시키는 능이 있습니다. 의인이 되는 길이 여기 있습니다.
셋째로, 고린도 교회에게 그리스도안에서 소유하게 된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구비시켜 주셨습니다. 시기하고, 싸울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큰 것을 받았음을 알지 못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혜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지혜가 되십니다. 그리스도를 얻은 자는 어떤 세상적으로 미련한 자라도 가장 큰 지혜를 얻은 자입니다. 너무나 큰 비밀을 안 자입니다. 모든 학문위에 신학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의 어떤 학문 보다도 더 크고 초월한 것입니다. 이 지혜를 구하라고 잠언에서는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로움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이루신 의를 믿는 자들에게 입혀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감은 그리스도의 입히신 의를 힘입음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신자의 의가 됩니다. 우리의 의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믿은 우리는 오늘 성화의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누구를 닮아갑니까 우리의 거룩함의 푯대는 그리스도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기며, 성화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구속함이 되었습니다. 이 구속함은 믿는 자들의 자유함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에 우리의 구원은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모든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받은 것이나,베드로가 받은 은혜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이 보다 더 귀하고 더 큰 은혜가 어디있습니까 받았으면 왜 받지 않은 자 같이 살려합니까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할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주를 자랑해야합니다. 우리 자신이나 어떤 사람들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오직 주만 자랑합시다. 자랑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자랑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자기의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똥 묻은 것을 가지고 내 보이며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 팔불출입니다. 자랑은 주안에서, 주님 안에서 얻은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주님을 자랑해야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고마우신 하나님이심을.
그러므로 세상에 낮은 형제는 교회 안에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믿음의 부요와 그 가치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또 세상에 부한 형제는 자기가 가진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 가지고 이전에 떠들고, 자랑하고, 교만했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손을 나타내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를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지나치게 자기를 포장해서 자랑하고 교만했습니다. 이들은 인간중심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가 어지럽고, 분열과 분리의 위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은혜의 복음에는 인간의 자랑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외모, 사회적인 지위, 어떤 일에 드러난 공로, 업적, 재산이 많은 부요, 이런 것을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에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이 세상적으로 낮은 신분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세가지를 상기시킵니다.
첫째로, 그들을 부르시기 전의 과거의 상태를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대부분 지혜도 없었고, 능하지도 못했습니다. 가문이 좋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헬라인들이 초대교회를 볼 때에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만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됨됨이 때문에 그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27절에는 그들은 ‘미련한 자’였다고 합니다. 이 미련하다는 말은 직역하면 ‘세상의 흉악한 죄인들을 택하사’라는 말입니다. 또 그들은 세상에 ‘약한 자’들입니다. 아무 힘이 없는 자들입니다. 병들어 몸이 약한 자들도 있고, 마음이 약한 자들도 있습니다. 또 세상에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이는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는 도무지 맞지 않는 하나님의 선택의 방법입니다. 하기는 요즘 대기업에서는 일류대학졸업한 사람 보단 지방의 이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뽐는다고 합니다. 왜 잘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애사심이 없고, 여기 아니면 안되다는 마음이 없이 자신이 있으니, 제 마음대로 회사를 들락거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그 나름대로의 실력은 보고서 사원으로 채용하는 것이 세상의 인재등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심을 보십시오. 세상에 잘난 자 보다 못난 자가 많고, 세상에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많습니다. 세상에 건강한 자 보다 비리비리한 사람들이 교회에 많습니다. 못나도 지지리도 못난 것을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택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많은 민족 가운데 택하심도, 야곱을 택하심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부르심도 그러합니다. 세상에 광문다학하고, 세상에 소망들만한 것이 있다고 하는 자들을 부르시는 일 보다 세상 소망 다 끊어지고, 이제 하나님 밖에 소망이 없다고하는 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이유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세상에 당신의 은혜를 나타내시고,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며 별 것 아닌지를 보이시기 위해서 세상의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세상이 자랑하는 부귀와 학문, 가문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하지만, 이것 있는 자들이 그것 의지하고 하나님께 안 돌아올 때에 이런 것이 없으니, 여기에 소망 둘것도 없는 거지 나사로 같은 자들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므로 어떤 것이 참 인생에게 필요한 것인 것을 알게합니다. 또 세상 것들을 가지고 교만히 행하고 하나님의 귀한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겼던 그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다 폐하려 하십니다. 이 모든 것 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이것들을 다 하나님께서 폐하실 때에 이것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한 자들이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여기에 구원을 받은 자들의 할 일이 있습니다. 구원을 얻은 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합니까 진정 자신은 약하고, 못나고, 미련한 자였다는 인식부터 가져야합니다.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 같이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 인식을 강하게 가진 것 만큼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제자신에게 와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어집니까
그렇다면-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부르심에 합당한 것입니까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값없이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보이십니다. 지혜 없는 자를 구원하셔서 지혜로운 자 만드시고, 세상에 가진 것이 없는 자를 택하셔서 영원한 것을 주실 뿐 아니라, 세상의 물질도 주십니다. 또 건강하지 못한 자를 건강하게도 합니다. 이러면 우리들은 곧 교만해집니다. 제가 무엇이 있어서 이렇게 된 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안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제게 무엇이 있어서 저를 구원하신 것으로 압니다. 우리는 못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없는 자입니다. 우리는 죄인중에서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병든자였습니다. 이를 잊으면 안됩니다. 고린도교회가 이를 잊었습니다. 은사를 주시니 제게 무엇인가 원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교만합니다. 또 없는 형제를 비판합니다. 교회 안에 일하면서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지리도 못난 자들을 끌어 모아서 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뭐 온전한 것이 있습니까 교회에서 일하는 지들을 보고 집사가 뭐 제래, 목사가, 전도사가 뭐 저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계집사가 돈도 제대로 못맞추나 그런 우리입니다. 성가대에 앉았다고 하면서 악보도 못보느냐 욕하지 맙시다. 우리 다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도 잘난 사람이면-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못났기 때문에 우리의 지혜로, 힘으로, 선행으로 이룰 수 없는 귀한 구원을 값없이 은혜로 단지 믿음이란 그릇으로 받은 것입니다. 제게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다 하나님께 받았으면서 뭘 자랑하고 그 것이 제것인줄 알고 교만하고, 남 비판합니까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미련한자를 택하여서 세상에 이롭다하고 지혜있다하는 자들을 부끄럽게합니다. 이 복음의 능력은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만듭니다. 변화를 시키는 능이 있습니다. 의인이 되는 길이 여기 있습니다.
셋째로, 고린도 교회에게 그리스도안에서 소유하게 된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구비시켜 주셨습니다. 시기하고, 싸울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큰 것을 받았음을 알지 못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혜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지혜가 되십니다. 그리스도를 얻은 자는 어떤 세상적으로 미련한 자라도 가장 큰 지혜를 얻은 자입니다. 너무나 큰 비밀을 안 자입니다. 모든 학문위에 신학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의 어떤 학문 보다도 더 크고 초월한 것입니다. 이 지혜를 구하라고 잠언에서는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로움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이루신 의를 믿는 자들에게 입혀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감은 그리스도의 입히신 의를 힘입음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신자의 의가 됩니다. 우리의 의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믿은 우리는 오늘 성화의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누구를 닮아갑니까 우리의 거룩함의 푯대는 그리스도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기며, 성화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구속함이 되었습니다. 이 구속함은 믿는 자들의 자유함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에 우리의 구원은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모든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받은 것이나,베드로가 받은 은혜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이 보다 더 귀하고 더 큰 은혜가 어디있습니까 받았으면 왜 받지 않은 자 같이 살려합니까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할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주를 자랑해야합니다. 우리 자신이나 어떤 사람들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오직 주만 자랑합시다. 자랑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자랑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자기의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똥 묻은 것을 가지고 내 보이며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 팔불출입니다. 자랑은 주안에서, 주님 안에서 얻은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주님을 자랑해야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고마우신 하나님이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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