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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사65: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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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이것은 이번 '독일교회의 날'이 택 한 주제였습니다. 독일 교회는 매 2년마다 6월에 '독일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를 갖는데, 금년에는 독일 남부 지역인 Stutt-gart에서 열렸습니다. 우리 교단 총회에서 내년 2천년 대회를 앞두 고 11개 지역 준비위원장들로 하여금 이 독일교회의 날을 참관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4박 5일간 열리는 이 행사에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등록하여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를 참관하였는데, 너무나 많은 프 로그램과 언어적인 장벽으로 우리 참관단이 제대로 그 내용을 알기 에는 처음부터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회예배와 폐회예배의 분위기, 여러 곳에서 동시에 열린 성서연구에 몰려든 사람들, 그리고 길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연주회, 그리고 음악홀이나 교회에서 열리는 음악회 등을 보면서 독일교회의 날 행사의 규모와 그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둘러보면서 우리가 그간 겉으로만 보았던 독일 교회 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 움직이는 교회이며, 실천하는 교회, 연합하는 교회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독일교회도 여러 가지 문제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들은 건강한 교회요, 세 계 교회에 기여도가 높은 교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이 말씀은 산상보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소금과 빛으로 비유된 교회는 세상을 향해 나가 그 세상을 변화시키며, 그 세상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이어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 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 에게 밟힐 뿐"이라는 비판과 경고의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율법종교의 실패를 비판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율법을 받았고, 세계 선교의 사명을 받 았음에도 그 사명을 포기한 채 율법주의에 빠져버린 현상을 비판하 신 것입니다. 그것은 소금이 그 맛을 잃은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소금은 맛을 돋구기 위한 것인데,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무 쓸모 가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교가 이미 맛을 잃어버려 그들을 통하여서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없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소금으로 선택된 제자들 즉 교회에 제대로 소금의 역할을 하여 맛없는 세상에 맛을 내도록 당부하 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이 말씀을 독일 교회의 날 주제로 선 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 나름대로 독일교회 의 날 행사를 보면서 우리말로 번역된 자료 일부를 참고하여 그 뜻 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에서 "너희"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너희"는 바로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바로 교회를 뜻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믿는 사람 모두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교회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 아가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교회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바로 여기 에 포함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너희는"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어느 누구를 제외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특별하게 선택된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 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본 것입니다. 독일교회의 이런 해석에서 우리는 독일교회의 의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을 선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만이 선택되었고, 우리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녀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졌던 선민의식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선민의 식의 문제점은 바로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가짐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제외되었다는 엘리트 의식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자기들만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제외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 회가 교회에 대하여 냉소적인 까닭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무 엇보다도 바로 교회의 이런 선민의식 내지는 엘리트 의식을 못마땅 히 여기는 것입니다.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만큼 모범적인 그리스도 인으로 산다면 사회도 그 자부심을 인정해 주겠지만, 이름만 요란하 고 실제 삶은 형편없는 크리스찬들에 대하여 사회는 곱지 않은 시선 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교회는 이번 주제를 통하여 이런 선민의식을 버리고 자기들 만이 이 사회에 맛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이 세상 을 변화시켜가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단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사람, 모든 단체와 더불어 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독일교회는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음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작년 4월에 독일교회의 지도자인 보닌 박사(Dr. Konrad von Bonin)가 내한하여 우리 총회 임원들과 목사들 앞에서 독일교회의 날을 소개하였는데, 그 글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 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독일교회의 날의 중요한 의 미로 첫 번째는 평신도 운동이라는 점과
둘째로는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을 꼽고 있습니다. 교회의 행사의 대부분은 목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국 교회와는 달리 독일교회의 날이라는 큰 행사를 평 신도들이 주관한다는 것은 이미 교회 안에서도 목회자 중심이 아닌 평신도 중심으로 교회가 움직이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할 때 잘못하면 "너희"를 목회자에 국한시키기 쉬운데, 독일교회는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평신도들이 훈련이 되어 그들 중심으로 교회 가 그 역할을 감당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이 사회 속에 제대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를 떠나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참가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 놓았다는 것 을 뜻합니다. 독일교회의 날 행사에 믿는 사람만이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교회의 날은 개신교 가 중심이 된 행사지만 카톨릭 신자도 상당수 참가하고 카톨릭 성당 을 사용도 하며, 중요 행사에 순서도 맡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교회들이 참가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타종교인들도 참가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독일교회의 날 행사가 열린 Stuttgart는 60만 명이 사는 도 시인데 이 행사 기간 중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외부에서 몰려와 4박 5일 동안 먹고 자며 북적대었던 것입니다. 그 도시에 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불편하고 소란하며 시끄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시가 전적으로 지원하고 교 통 편의를 최대한도로 보아주어 아무 불편 없이 큰 행사가 치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 동안 독일교회가 열린 자세를 가지고 겸손하게 일하여 왔기 때문에, 독일 사회가 긍정적으로 교회의 존재 와 역할을 보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위상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알게 합니다. 한국교회는 그간 너무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과시하고 잘난 체 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비해 이 사회를 위하여 해놓은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대로 소금 역할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제 한국교회는 선민의식,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낮아져서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우리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 의식을 버리고 모든 의로운 세력과 연대하여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겠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주제 아래서 독일교회는 다 양성을 통한 통일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소금은 여러 가지 음식 속에 들어가 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들어내지 않고 그 음식 속에 배어들어 맛을 돋구는 것입니다. 교회의 선교는 대체 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정복하여 그를 믿게 만드는 방식으 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소금으로 비유되는 교회의 사명은 사람 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모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들어 가 거기에 맛을 내는 역할을 뜻하는 것입니다. 독일교회는 이 세상 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받아드림으로 맛을 내고자 한다는 뜻을 가지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주제를 택한 것 같습니다. 주어진 자료에 보면 "교회의 날은 상당히 다른 영역의 사람들에 게 좋은 경험이 되며 서로 다른 경험의 영역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들을 감동시켰거나 또는 그들에게 매일의 삶에서 힘과 용기를 주 었던 다양한 것들을 서로 나누는 장"이라고 하였습니다. 독일교회의 날 4박 5일 동안 벌어지는 행사들은 너무 다양하였고 어떤 경우 이것이 과연 교회의 행사인가라는 의문을 갖게도 합니다. 젊은이들로부터 시작하여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 였고, 고전부터 시작하여 길거리 곳곳에서 연주되는 록음악까지 다 양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자기 취향을 따라 참석할 수 있는 다양 한 주제의 성서연구와 세미나 등이 있는가 하면, 가능성의 시장에는 800여 부스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다양한 기독교 기관들이 참석하여 자기들이 하는 일을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개회예배도 여러 곳에서 드려졌는데, 주 개회예배는 시청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넓은 잔디 밭에서 드려졌는데, 그곳에만 20만 명 가까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예배 순서도 다양하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게 진행되었는데, 그곳 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은 아주 진지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 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계 신학을 주도하는 신학자들의 뒷받침입니다. 세계 신학의 석학인 폰 라드, 몰트만, 융겔, 브룸할트, 그리고 칼 발트, 브룬너 같은 사람들이 독일 사람이거나 독일 계통의 신학자들 입니다. 이들의 신학이 그 교회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어서 아무리 다양한 요소들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녹아지고 함께 목표를 지향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따르지 못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급속하게 성장하면 할수록 이 교회들의 방향 과 목표를 제시할 뚜렷한 신학이 없기 때문에 이 교회들이 수없이 분열하고 제 각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양한 것이 아니라 내용은 비슷하면서도 일치하지 못하는 교권욕에 비롯한 것이 기에 부끄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수많은 교회들은 다양하지는 못하면서 나뉘어져 있기에 맛잃은 소금과 같아서 이 사회에 전혀 맛을 더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독일교회의 다양성은 그 자체가 정말 갖가지 반찬이 차려진 밥상과 같아서 많은 사람들에 게 입맛을 돋구어 주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다양한 반찬들이 한 밥상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날 행사의 세 번째 중요한 의미로 참여를 중시합니다.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의견 수렴을 할 수 있는 장을 폭넓게 제 공하는 장으로 교회의 날 행사를 갖는 것입니다. 다양한 교회의 모 습들이 이 행사를 통해 나타나면서 서로 새로운 경험들을 갖게 하 며, 동시에 의미 없는 것들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사라져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단 신앙을 가진 집단들까지 현수막을 들고 와서 시위를 하여도 심하게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두지만, 대부 분의 사람들이 그 이단 사상에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 저들은 제 풀 에 수그러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회가 자신이 있기도 한 것 입니다. 특별히 놀라운 것은 의외로 젊은이들이 이 행사에 많이 참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이 학교에 가는 대신에 이곳에 참여하여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누 구도 그들을 감독하거나 감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자유롭 게 그 기간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잔디밭에 뒹굴며 서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놀기도 하지만, 이를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오 히려 독일교회는 이 젊은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그들에게 미래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독일교회 주일예배는 노인네들 몇 명만이 모여 예배한다고 보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 교회의 전부 가 아니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서 자연스럽게 신앙에 접하고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한 그 사회의 질서와 규율을 몸에 익히고 있는 것입니다. 스위스 농촌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소를 방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소들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지만 그 주변에 자세히 보면 전기가 통하는 전선이 둘러져 있어서 그 밖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이나 구라파 사회가 대체로 큰 사회적 규 범 안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하지만, 그 규범은 반드시 지키게 하는 엄격함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는 바로 이런 큰 사회 규범이 제대로 확립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청소년들을 자유롭게 놓아 둘 수 없 고, 일일이 감시 감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다양함을 받아드릴 수 있는 바탕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 게 됩니다.
셋째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독일교회는 회개와 더불어 미래를 지향하는 새로운 교회의 사명을 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그들이 택한 색깔은 보라색이었습니다. 보라색 십자가 기가 시내 곳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보라색 목걸이를 기념품 으로 팔기도 하였습니다. 이 보라색은 참회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교회는 지난 날 나치 정권 하에서 올바로 소금의 역할을 하 지 못한 참회의 마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획일화시키 며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던 나치 정권의 그 무모함과 그 죄악을 자신 들 속에서 발견하면서 그들은 계속하여 깊은 참회의 마음을 간직하 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독일 안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램과 더불어 미래는 보다 긍정적인 자세 로 소금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 가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큰 주제 아래 세 가지 작은 주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믿음의 미래, 인류의 미래, 사회의 미래가 그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미 래의 인류와 사회를 내다보면서 그 속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서 소금의 역할을 하여 그 미래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참회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큰 뜻이 바 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주제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도 다시 한 번 깊이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너무 오만하였고, 너무 자기 과신에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보다 큰 뜻과 세계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세계 교회를 둘러보면서 이 세상을 변화시켜 맛을 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의 거룩한 뜻을 제대로 받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다양성이 아닌 분 열을 극복하는 일, 우리만이 선민이라는 특권의식을 벗어나서 겸손 하여 지는 것,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그의 능력 과 은총을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미래를 준비하며 동참하는 일을 위 하여 기도하고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우리 일행을 위해 독일남부 한인교회 여집사 네 사람이 4일간 봉사하였습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꼬박 따라다니 며 우리를 안내하여 주었고,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인도 독일의 기독교 문화 속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그들을 닮아 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봉사의 삶은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소금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새 기면서 우리가 있음으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 전체에 맛을 내며 그 사회를 보다 바람직한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켜 갈 수 있어야 하겠 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 속에 능력과 지혜를 주시므로 세상의 소금 으로 그 직분과 역할을 온전하게 감당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 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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