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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을 맛나게 하는 소금이어야 한다 (사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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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저녁 기도회 시간에 읽어드린 오혜령 여사 인터뷰 기사는, 그 내용이 정말 놀라운 이야기뿐이었습니다. 한 가지 암(癌)에만 걸려도, 우리는 절망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그는 임파암과 위암, 십이지장암 등 세 가지나 걸렸었다고 하니, 우리네 같으면 기절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뿐입니까 열 아홉 가지나 되는 질병에 시달렸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도 하루에 한 번씩, 그는 한 시간 반 이상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곤 하는 ‘관상대동맥경련증’이라는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한 번 혼수상태에 빠지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기 때문에, 다시 깨어날 때에는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혜령 여사는 이런 고통을 매일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암과 질병들을 다 이겨내고,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 하나도 추스르기가 힘들텐데, 무의탁 노인들과 결손 가정의 아이들을 계속 돌봐왔던 것입니다. 그가 직접 치른 장례식만 해도 아흔 건이나 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비는 위암 말기였다고 합니다. 그때, 그녀는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도 원망했습니다. “나보다 고약하게 사는 사람들도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데, 왜 하필이면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하고 말이지요. 그때, 그의 좌절과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극복하게 해 준 것은, 그가 길러낸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입원하고 있는 병실에서, 밤새도록 병실을 지키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정성스러운 보살핌과 애타게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그런 아이들을 두고서 쉽게 죽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글을 대하게 될 때, 다음의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믿음만 있다면 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그 무서운 암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산다고 할지라도, 고난이나 질병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의 뜻대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고난과 질병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좀더 나은 환경이나 여건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지 잘 깨닫고, 믿음대로 살고자 하는 투철한 사명의식을 갖는 것이, 그 무엇보다 먼저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 2:2에서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밖에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 예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를 맞거나 감옥에 들어가는 고통도 즐거이 감수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훌륭한 목회자로 인정하는, ‘다일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님이나 ‘두레 마을’의 김진홍 목사님 같은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소개해드린 오혜령 여사 같은 분들이, 오늘 우리 시대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하는 소금이어야 한다(마5:13)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세상의 빛(14)이라고 하시면서,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야 한다(16)고 이르셨던 것입니다.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빛이 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1.오늘 우리는, 성도의 본분과 그 지혜를 잃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하는 소금이라고 하시면서,만일 너희가 그 맛을 잃으면 쓸모 없어서 밖에 버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그 맛을 잃어버려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 탓을 하거나 하나님만을 원망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살던 종교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금식기도도 많이 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그런 금식이나 예배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그들은 형식에 치우친 예배를 드렸으며, 금식을 하면서도 여전히 불법과 부정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로운 삶’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가 금식을 해도, 주님은 왜 우리를 내려다보시지 않습니까 주님 때문에, 우리가 굶주리면서 고생을 해도, 주님은 왜 우리를 알아주시지 않습니까”하고 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이 의 등불이 꺼진 줄은 모르고, 세상이 어둡다고만 말합니다. 자신이 교회에서 감당해야 할 몫은 등한히 하면서, 자신의 교회를 헐뜯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탓할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쳐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혜령 여사처럼, 그런 극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부여해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2우리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짓밟힘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너희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보다 더 의롭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마5:20)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갖고 있는 ‘거짓된 신앙’을 벗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성숙한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교회 안에는 언제나 미성숙한 신앙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들을 탓하거나 나무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믿음이 잘 자라도록 지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덜 된 믿음을 가지고, 성숙한 신앙인이 된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항상 말썽입니다. 아직 자신의 믿음이 형편없는 줄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어떤 권리를 주장하거나, 다른 성도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세상의 빛이 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진실하고 겸손해야만 그 믿음이 자라는 것이지, 거짓된 신앙인은 아무리 신앙 생활을 계속해도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변화되기를 계속 거부할 경우에는, 하나님의 영광만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숙한 신앙이 되어서, 세상을 맛나게 하는 소금이 되고, 어둔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기를, 저는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부족합니다. 잘하는 것보다는 못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합니다. 선행보다는 죄를 더 많이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런 것들을 크게 탓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할 줄 모르면서 할 수 있는 척, 부족한 줄 모르고 완전한 척,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행세하는, 위장된 신앙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혹독하게 야단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위장된 모습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빛을 발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맛나게 하는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너희를 인도하거니와, 너희 뒤에서는 항상 내가 너를 보호해 주겠다(사58:8) 올바른 삶을 살면, 그 올바른 삶 자체가 복이 되는 것이며, 그와 같이 쓸모 있는 인생을 살 경우, 주께서 그를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아름답다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본받을 만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기도하면서 노력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예수의 십자가만을 전하고, 또한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오혜령 여사가, 그에게 닥친 갖가지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방법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그녀는 불치병인 암도 이기고, 열 아홉 가지나 되는 갖가지 질병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지혜란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십자가의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원인과 책임을, 하나님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돌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남은 생애를 희생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서, 봉사를 통한 삶의 진정한 가치를 가져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오늘 우리에게 인생의 귀중한 교훈을, 실제 몸으로, 그리고 글과 생활로써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1그렇습니다. 우리도 성령님을 통하여 하늘의 지혜를 터득해야 합니다. 주께서 원하는 정의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올바른 삶을 방해하는 것은, 돈이 아니고 건강하지 못한 몸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일러주신 삶의 지혜인 십자가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만을 전하기로 했다는 것은, 십자가가 인생 문제의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금과 양초처럼 자신이 녹아지고 타서 없어지는 희생을 치르게 될 때, 자신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거니와, 나아가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만을 말하고 가르치면서 정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정의로운 삶이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고서, 기독교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불쌍한 이웃을 못 본 척하는 교회는, 그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늙은 부모의 고독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거나 늙은 부모를 잘 공경하려면, 자신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때문에, 정의로운 삶을 살고자 할 때에는, 십자가의 고통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롭게 사는 자의 등뒤에서 그를 보호해 주신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려면, 그리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먼저 십자가를 지는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3여러분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면서 은혜스럽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죄에서 구원함을 받은 대속(代贖)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잊지 말고 늘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감사의 생활은 말로써 그쳐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작은 예수가 되어,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일껏 십자가의 희생을 치르고서, 그 영광을 자신이 차지하려 할 경우, 그 빛은 바래지고, 그 모습이 추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맛나게 하는 소금입니다. 자신을 불태워서 어둔 세상을 밝혀야 하는 빛입니다. 아무쪼록, 하늘의 지혜인 십자가의 이치를 바로 깨달아서, 자신의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짊어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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