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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3-28)

본문

연세대를 그만 두고 연동교회로 왔을 때에 어느 청년이 예배를 마친 후에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설교는 참 훌륭합니다. 한마디 빼놓을 수 없는 좋은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설교도 참고의 말씀으로 들어야겠습니다. 내 생활은 요령 껏 살아야겠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는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고 하는 말을 듣고 저는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책으로 공부하고, 책으로만 가르치고, 책으로만 설교했던 사람으로서, 교인들에게 주체 사상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느낄 때에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요일 예배당의 예배 때의 교인의 삶과,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의 분주한 직장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라면 이율배반적인 혹은, 자기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도 좋고, 사회도 좋고, 목사님의 말씀도 좋고, 이 세상 정치인의 말도 좋고, 장사해서 돈 버는 말도 다 좋은데, 어느 쪽의 내가 서는가 내가 어느 편의 사람인가 라고 하는, 주체 사상이 정확하게 확립이 안된 이 청년의 고민은, 이십여년 전의 그 사람만의 고민이 아니고 계속해서 오늘 이 땅에 있는 크리스찬의 Identity Crisis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편해야 모든 일생이 만족스럽게 또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을 느끼고 있는지 계속해서 학생들과 접하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옳으냐, 정치인의 가르침이 옳으냐, 혹은 부모님의 가르침이 옳으냐 여러 계층의 사람들, 여러 종류의 사람들, 그들이 하는 말들은 모두 옳은데 그것들이 일치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상충될 때도 있습니다. 일치될 때는 별 문제 없지만 상충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참 전통적인 면에서 스승의 말씀, 부모의 말씀, 기성 세대 어른들의 지도의 말씀, 목사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으면 좋겠는데,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으니 기독인의 주체 사상에 고민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과연 무엇인가, 내가 예수를 왜 믿는가, 내가 왜 현존하는가 하는 고민, 이것이 오늘 지성인들이 자문자답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바로 이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이 주체 사상에 대한 말씀을 질문으로 던졌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기도할 제목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대전 시민들이 이 한남대학교를 어떻게 보느냐 이 충남에 있는 사람들이 한남인을 어떻게 보느냐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느냐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나는 그리스도인이냐 나는 과연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르는 사람인가 라고 하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Identity 문제가 바로 우리가 생각할 문제인 것입니다.
세 가지를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하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세상의 구세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을 하셨을 때, 제자 중에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이 "당신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분명한 정답입니다. 인간의 구세주가 아니고 하나님의 구세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크리스찬은 민족의 지도자, 종교의 지도자 이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 다시 말하면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고 예수의 종교는 민족도,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그리고 철학도, 인종도, 모든 것을 초월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에게 속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만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리고 크리스찬은 민족이나 종교를 넘어서 우주적이고 신적인 차원의 신앙 그리고 이론적이 아니고 자기 마음의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가지는 고백적인 신앙이라고 하는 사실을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불과 보름 전에 체코스로바키아에 갔다 왔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 갔었는데, 프라하의 중심 되는 큰 거리 옆에 (구라파는 대개 수 백년 된 큰 건물이 있고, 건물의 아래 큰 기둥이 있고, 복도가 있는 곳이 많습니다.) 있는 한 건물 복도에 `1989년 11월 17일'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잇는 동판이 거기 벽에 부착되어 있고, 그 밑에 촛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촛불은 24시간 꺼지지 아니하는데, 그것은 계속해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촛불을 켜 놓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유명한 민주화의 동기가 되었던 1989년 11월 17일 학생 데모대 중에서 학생들이 경찰에 붙잡혀 가서 피흘린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날 11월 17일은 구라파에서 기념하는 학생의 날이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학생들이 학생의 날 기념으로 거리 시위를 하기로 하고, 공산당 정부로부터 공식으로 인정을 받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먼저 학생 묘지에 가서 참배를 하고 수천 명이 대열을 가다듬어 행진하여 유명한 자유의 광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자유의 광장은 소련이 탱크로 진주했을 당시 시민들이 반소운동을 하고 자주 혁명을 이루려 했다가 비참하게 죽은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의 광장입니다. 그곳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비밀경찰들이 가장을 하고 그 행렬 속에 끼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동구권의 급변하는 상황이 자기들로서는 위험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 하여 과잉 진압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부체크가 선두에서 이 대열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비밀경찰들은 더욱이나 두려워 했던 모양입니다. 중간 중간에 학생들을 잡아다가 몰래 구타하고, 피흘리게 하고 쓰러지게 하고. 이 소식이 죽었다하는 소식으로 와전됐습니다. 사람이 피를 보고, 죽는 것을 보면 흥분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이 학생의 날을 기념했던 프라하 시내의 수천명의 학생 시위대가 사시간에 반정부 데모로 돌변하고, 공산당 정권 물러가라고 하는 구호와 함께 시위가 과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 프라하 전체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고, 끝내는 이것이 전국에 파급되어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게 된 결과를 가져 오게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11월 17일 그날 있었던 일입니다. 체코는 천주교 국가입니다. 천주교인이 아직도 80% 정도이고 불과 22만 명이 개신교 교인입니다. 개신교 교단 중에는 특별히 우리 교단과 자매 결연을 맺기로 했던 교단이 잇는데 (에반젤리컬 처치 오브체코부라드랜이라고 하는 장로교 계통의 교회입니다.) 그일을 위해서 제가 방문했던 것이지요. 아주 작은 소수의 교파인데 그날 11월 17일 총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총회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피흘리는 학생들이 예배당 총회 장소로 몰려 왔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우리를 도와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학생들이 다치고, 학생들이 죽었습니다. 이래도 목사님들은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하고 울음으로 호소했습니다. 이 교단은 대단히 약한 교단이고 무서운 독재정권 공산치하에서 힘없는 교단이지마는 이 교단이 그 비참한 광경을 보고 그날 매우 강하게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목사, 장로들이 잡혀 가고 죽을지도 모르는 무서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력한 성명서를 발표하니 공산당 총리가 총회장을 불렀습니다. "지금 사태가 대단히 위험하니 재야 세력과 정부 세력과의 사이에 당신이 중재 역할을 좀 해 주시오"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조셉 호로마티카라고 하는 이 총회장이 선뜻 나서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해 중재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재야 세력과 학생들에게 신임을 받는 목사였습니다. 정부에서는 온건한 교단으로 신임하고 있는 교단의 총회장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용공적인 공산당의 교회는 물론 아닙니다. 이 사람이 중재하면서 민주화를 해야겠다고 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며칠 후에 공산당이 타협을 하고 다섯 사람의 비공산당원을 내각으로 입각시켰습니다.
얼마 후에 다시 혁명이 과격해 지면서 그 내각이 사퇴를 하게 됐고 새로운 내각이 조직됐습니다만 이 사람은 계속해서 부총리이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교단 총회장은 6년 임기이고 그것은 하나의 직장입니다. 부총리는 불과 몇달밖에 할 수 없는 까닭에 이 총회장은 부총리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총리가 국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들어 와서 중재를 하고 민주화 과정을 당신이 추진해야 한다는 강력한 권고를 받자, 교단 총회에서는 6개월 휴직을 허락해 주고 부회장이 총회장을 대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호로마티가 총회장, 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부총리는 저와 가까운 친구입니다. 그 분의 초청으로 제가 거기에 갔었는데, 그 분이 소개해 주신 분이 있었는데 부총리실에서 전에 자기와 함께 있었던 장로인데 변호사였습니다. 그는 70이 넘는 노인인데 보좌관으로 임명을 해서 종교, 교육, 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부총리로서 종교법을 전면 개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6월 8, 9일 총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국회법이 형성되면은 이제 체코는 새로운 헌법을 수립하고 민주화로 달음박질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단히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는 4.19때에 기독학생회 총무로서 일하고 있었는데 영어로 KSCM라고 합니다. 그때 종로 거리에서 경찰에 얻어 맞고, 숨고, 쫓겨다니는 학생들을 내 뒤에 숨기면서 4.19를 지켜 봤던 증인입니다만 우리 나라와 흡사했던 그 모습을 보고 교회가 이 작은 교회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환경에서 용감하게 민주화를 향해서 나아간 것을 볼 때에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한국의 교회는 과연 이런 용기가 있는가, 예수에 속한 예수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인가, 스스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고, 그리스도는 민족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모든 것을 초월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Identity 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있어서도 먼저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데올로기, 그리스도 안에서의 민족,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든 것을 해석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Identity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자로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 속한 사람으로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모든 종교를 비판하고, 모든 민족과 인종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리스도인은 노사 문제에 있어서나, 남북 통일에 있어서나, 이념 문제에 있어서나, 어느 한편에서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바르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크리스찬들에게 묻고 있는 크리스찬 Identity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의 삶을 따르는 예수의 삶을 따르는 예수의 제자인 것입니다. 믿음과 삶이 분리되면 그 사람의 주체성에 위기를 초래하게 됩니다.
여기 24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 속한다는 것은 진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예수에게 속한다는 것은 정의에 속하는 것입니다. 예수에게 속한다는 것은 평화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면 거기에 반대되는 이 세상 모든 죄악과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불의에 굽힐 수가 없습니다. 예수의 제자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를 따르기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을 참고 견뎌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싫고 힘들다 해서 불의와 타협을 한다면 예수의 제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와 함께 산다는 것은 말만이 아닙니다. 예배당에 가서 즐겁게 노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세상을 피하고 어려운 사람, 죽어가는 사람, 다친 사람이 있는 데도 자기 혼자 천당을 바로 보고 희희낙낙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의와 진리와 예수의 길을 따르게 위해, 거기에 어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자기도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고난 당하고 죽음까지 당한다해도 예수의 말씀을 순종하고 예수의 뒤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확신과 죽어도 부활한다는 소망 속에서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승리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귀한 기독교 대학에 오신 여러분들을 참으로 귀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이 땅에서 부름을 받았는데, 두 가지 큰 과제를 이루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민주화와 민족통일입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헌신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귀중한 과업에 우리도 하나님께로 부름받은 시대적인 사명을 예수의 제자로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는 데는 말이 아닙니다. 글도 필요하고 말도 필요하지마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불의와 대결하고 도전해서 그에 굴하지 않고, 책임 회피하지 말고 정정당당해야 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진리 편에 서야 되고, 하나님 편에 서야 됩니다. 예수 따라서 십자가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의 제자의 길을 걸어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은 악마적인 세력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23절과 27절을 읽어 보면 하나님의 왕권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언제 어디서나 악마적인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현실적 불의한 삶과, 이를 당연시하는 편견이 되겠습니다. 어느 회사의 사장되는 장로님이 내게 이야기를 해요. 아주 돈많은 사장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장로님입니다. 헌금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는 장로님입니다. 나를 보고 하는 말씀이 "목사님, NCC가 왜 그리 시끄럽고, 왜 밤낮 반정부 데모만 합니까 왜 NCC는 통일한다고 그러고 그리고 용공적인 일 합니까" 그래서 내가 "장로님, 장로님이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집에 돌아 오실 때까지 누구와 같이 지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대답을 안 해요. "다른 장로님들하고 같이 지내시지요 사장님들하고 골프도 치시고 외국에서 온 바이어들하고 상담도 하시고, 장사하시느라고 대개 그런 분들하고 사는 것 아닙니까그렇습니다.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노동자들 죽일 놈들, 밤낮 데모나 하고, 임금만 올려 달라고 하고, 파업하는 이놈들! 공산당놈들! 못 쓰겠다 밤낮 그러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얘기만 듣고 있으니 장로님 귀에 다른 것이 들려집니까 나는 목사입니다. 나는 부자들과 사귀고, 지식인과 사귀고, 장관과도 사귀지만 어려운 노동자들과도 사귀고, 가난한 직공과도 만나서 이야기합니다. 노동자들은 하루종일 노동자들끼리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이사들, 재벌들 사장들 때려 죽일 놈들! 착취하는 놈들! 항상 그런 이야기만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계급투쟁밖에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장로님이 대답하지 못하더라구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한편에 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악마적인 유혹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평안을 원치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즘 젊은 목사들 가운데 찍힌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찍힌다는 것은 뭐좀 바른 말을 했다가 찍히면 좋은 교회 가지도 못하고 장로들한테 쫓겨 난다는 말입니다. 어느 노회에서는 이야기 들으니까 신학교때 데모했던 학생이라고 하는 기록이 있어서 노회서 그 기록을 가지고 목사될 때 목사 허락을 안해 주기로 결의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기가 죽어 가지고 먹고 살 길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됩니다. "에라! 죽지 뭐!" 하고 그냥 나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찍혀 가지고 뭘해. 보신을 해야지. 조용히 살아야지." 나약한 인생 수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리 따라, 예수 따라 살 때 악마의 유혹과 무서운 세력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신앙의 용기와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오늘 우리 나라가 이 정도 민주화가 된 것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총칼로 정권을 빼앗은 악한 무리들이 오늘 이렇게 만들어 준 것 아닙니다. 진리를 향한 피흘린 젊은이들의 확신이 그래도 요 정도라도 만들어 준 것 아닙니까 각자가 자기 보신만 하고, 각자가 자기 자신과 자기 자녀들 외국 유학만 시키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돈벌기 위해서만 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됩니까 자기 자신도 그 속에서 고생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 기독교가 이 땅 위에 있습니까 왜 진리가 이땅 위에 있습니까 왜 정의를 부르짖고 있습니까 누구나 다 나약한 인생들이며 누구나 자기 원하는 것 많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고 정의를 따른다면, 이것이 예수의 진리라고 확신한다면 이 세상의 유혹과 세상이 시련을 이길 수 있어야지요. 그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왕권을 가지고 이땅 위에 오신다는 승리입니다. 그 희망이 우리에게 없다면 언젠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 위에 임해서 불의와 못된 것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진리와 평화가 이땅 위에 이루어지고, 한반도내 통일이 이루어지고, 모든 이념과 모든 종교가 모든 사회의 계급이 타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소망을 가진다면 그 영광의 승리를 믿는다면, 잠시의 고난도 피하지 아니하고 용기있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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