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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진정 내 사람 될 자격이 있는가? (창21:8-21,롬6:1-11,마10: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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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애'를 쓴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었는데, 어른이 되 고 보니, 일본 사람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산다는 것이, 마치 게다를 신고 양복을 입는 것처럼, 어색하다는 느낌을 갖 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일본의 옷을 입 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옷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본과 동양 종교 중에서, 자신이 선택해서 믿을만한 종교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기독교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좀더 바로 알고 믿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했고, '예수의 생애'라는 책까지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진정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있는가'하고 묻습니다. 예수를 인생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스승으로 알 고, 그 제자가 되어 살만한 자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이전까지의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이제는 주께서 가르쳐주시는 '진리와 사랑'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요구하는 '예수의 사람'이 될 자격이 보통 어려운 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주가 말씀하시는 제자 될 조건은 두 가집니다. 하나는예수보다 부모와 자녀를 더 사랑하면, 예수의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37)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회피하고 주를 따르려 한다면, 예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38)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벗어 던져야 할 옛날 옷이고, 다른 하나는 입어야 할 새 옷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자기를 위해서 입었던 옷을 벗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새 옷을 입고사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새 옷'이란, '기독교 진리'를 말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만을 최고로 알고 섬기라'고 합니다. 혹,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곧 우상 숭배가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기 전에 입었던 옷을 완전히 다 벗어 던졌습니까 그리고, '예수' 라는 새 옷을 입고 있습니까 겉옷은 갈아입었지만, 속옷은 옛날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겉 모습은 기독교인이지만, 속모양은 아직도 옛날 그 모습 그대 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사람으로서 살 아가는 것이 아니라,
1.죄의 지배를 받아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예수의 새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 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거나 노예가 될 필요가 없 어졌다(5-6)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제자라는 귀중한 신분을 망각하고, 아직도 죄가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소라게'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소라게 중에서, 어떤 놈은 날 때부터 자기가 살 수 있는 껍데기를 가졌는가 하면, 어떤 놈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지만, 집이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집을 못 가진 놈은 아무 데나 들어가서 제 집처 럼 삽니다. 빈 소라껍질 하나를 고른 다음, 집게발을 벌려 그 입구를 재어 봅니다. 그래서, 자기 몸에 맞으면, 그 안에서 삽니다. 그렇게 살다가, 불편하거나 싫증나면, 그 껍데기를 버리고 다른 소라 껍데기를 찾아 나섭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것 을 골라서 들어가 살다가, 또 싫증나면 버리고 다른 집을 찾 아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라게의 생활 습성이라고 합니다. 기독인 중에는, 그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아서, 소라 게처럼 자주 자기 집을 바꾸는 버릇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주일이 되면 주일에 뒤집어쓸 수 있는 껍데기, 다시 말해서 예수 믿는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껍데기'가 있습니다. 주 일 지나 월요일이 되면, 다시 세상에서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껍데기를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의 옷은 하나뿐이어야 합니다. 예수의 옷입니다. 그 옷을 입고 어디든지 다녀야 합니다. 1그러나, 아직도 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무서워합니다. 예수 믿는 티를 내면 왕따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10:26 에서 너희를 위협하는 자를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 몸은 죽 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다 지옥에 던져 파멸시킬 수 있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신 있게 '하나님을 알고 있노라' 하지 못하 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 10:32에서 누구든지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그를 안다 하겠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그를 모른다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무서워서 주님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면, 크게 후회하며 애통할 날이 올 것입니다. 죄를 사랑하면서 그 지시를 받아 살 경우, 무서운 지옥 형벌이 주어진다고 하는 것은, 결코 협박이나 공갈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만을 최고로 사랑하고, 그 진리를 최 고의 가치로 여기며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2우리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거나 아낄 때가 많 습니다. 주의 제자라면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아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로, 영생을 추구하는 자라면, 자신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보다 자 신의 육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영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죄의 유혹을 굳이 물리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생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 처럼 어리석게 죄의 뒤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3그래서, 우리는 갈등을 겪습니다. 주의 뒤를 열심히 따르자니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 고, 죄가 시키는 대로 살자니 신앙 양심이 허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바울이나는 정말 비참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이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실 제로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롬7:24)라고 고백했겠습니까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살면, 당장은 별 피해가 없지만 언젠 가는 엄청난 손해와 파멸이 온다는 것을, 어느 정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잘 압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하나님 의 뜻을 거역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럽겠 습니까 그런 고민을 가진 성도가 있다면,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물론, 저 자신도 그런 갈등과 번민에 빠질 때가 많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저는 여러분을 나 무랄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보다는 좀더 나은 신앙생활 을 하도록 노력하자는 호소를 하고 싶습니다.
2.하나님은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를 믿어 새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를 사랑하던 우리 육신은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롬6:6)고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처럼 큰 은혜를 베풀 어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겸손히 순종하며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욕정에 따라 낳은 아들인 이스마 엘을 내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약속에 따라 낳은 아들인 이삭 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육신의 욕심을 극복하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두 아들을 다 품고 있는 한, 가정의 평화는 이 룰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세상 욕심과 영생을 둘 다 한꺼번에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 다 함께 섬긴다면, 우리 마음의 기쁨과 평화는 영원히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진정 하나님만을 섬겨 삶으로써 영생을 얻고자원한다면,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쫓아냈듯이, 우리도 예수 믿기 이전의 옷을 과감히 벗어버려야 합니다.
3.이제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주실 유일한 분 이시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옷을 벗고 동양적인 옷을 입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입을만한 옷 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도대체 기독교 의 진리 말고는, 우리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이 땅에는 달리 없습니다. 물론,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닙니다. 불교나 유교도 아닙니다. 영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는 오직 기독교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기독교를 믿게 된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 게 여겨야 합니다. 하지만, 자랑스럽게 여기고만 있어서는 아 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자랑스런 진리를 귀중하게 여기면서, 또한 그 진리 안에서 살 때에, 우리가 기독교 신자라는 것이 진정 자랑스럽고 또한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기독교 신앙인다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1세상과 육신에 속한 것은 아예 멀리하거나 과감하게 버 려야 합니다. 영원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생을 모르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어야,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있 다(마10:37)고 하셨습니다. 아무튼, 육에 속한 것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잔꾀를 부려 서 예수 믿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헤아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참으로 진솔해야 합니다.
2나와 가족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교훈은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때에,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10:39에서 자기 목숨을 소중 하게 여기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그 목숨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은, 보통 세상 사람들이 다 취하고 있는 삶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버 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부활의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신다는 것과, 그분이 예수를 다시 살리 셨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3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면 부활하여 영생하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으면 예수 믿을 가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믿는 예수는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을 수 있어야, 진리를 위해 목숨까 지도 바쳐 충성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부활하신 예수를 따르기에, 조금치도 결격 사항 이 없는 충실한 주의 제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도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섬기는, 저 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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