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눅9:18-20)
본문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에 대한 생각은 영원을 좌우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었던 침례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갈릴리 분봉왕 헤롯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야는 구약 시대에 큰 권능을 행했던 선지자였는데 말라기서 4장 5절에 그가 다시 오게 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대하면서 동족을 위하여 많은 눈물을 흘렸던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를 연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시대를 위해 나타난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일반 대중은 거의 한결같이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 주위로 모여들었고 그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들은 그 당시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몇 안되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 중 한 사람입니다. 사랑을 실천한 박애주의자입니다. 그의 도덕적인 교훈을 생각하며 그의 삶의 방식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을 때 중요시하신 것은 첫번째 질문이 아니라 두번째 질문입니다. 첫번째 질문은 단지 두번째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한 발판에 불과한 것입니다. “너희들 각 사람은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베드로는 이 질문을 받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마16:16). 예수님은 그의 신앙 고백을 만족하게 여기시며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마16:17).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그분에 대해서 아무리 좋게 평가한다 할지라도 그분을 특별한 사람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의 고백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1)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을 세우실 때 먼저 기름을 그의 머리 위에 붓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께서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되고 택하심 바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 뱀으로 표현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3:15).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릴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 마음에 두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후손이 그리스도라고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9-20을 보십시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창세 전부터 세상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고 죽게 될 어린 양으로 정해진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베드로가 고백한 것입니다.
2)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을 차례로 읽어보면 이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5:18).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똑같은 신적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을 아무리 치켜 세운다 할지라도 사람의 수준에서 국한시킨다면 그분께 모욕이 되는 것입니다.
3)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 바로 그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며 부정했던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요20:28). 예수님도 친히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9). 빌립보서 2장 6절은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라고 밝혀줍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그분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가 어렵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면 아들이고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나님이 되실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문제입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할 죄가 전혀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1921년 2월 15일, 뉴욕의 케인 서미트 병원의 수술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의사가 맹장 수술을 하고 있었다. 그 의사에게 그 수술은 여러 가지 면에서 평범한 것이었다. 환자는 배가 아파 참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고, 맹장염이라는 진단은 정확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이반 오닐 케인 박사였다. 37년 동안의 탁월한 의학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거의 4천 번에 가까운 맹장 수술을 집도해 왔기에 두 가지 색다른 점 외에는 이 수술도 평범한 것이었다. 첫번째 색다른 점은 국소 마취를 실시했다는 것이었다. 케인 박사는 전신 마취에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국소 마취가 훨씬 안전하다고 믿었다. 많은 동료들도 이론적으로는 그에게 동의했지만, 그 이론의 적합성 여부를 실제로 보기를 원했다. 케인 박사는 국소 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으려는 지원자을 찾았으나 아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정신이 말짱한 채로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담력이 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취 기운이 너무 일찍 끝나 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케인 박사는 지원자를 찾았고 드디어 2월 15일 화요일 아침, 이 역사적인 수술이 시술되게 된 것이다 환자는 준비를 마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국소 마취가 행해졌다. 수천 번이나 해 왔던 것처럼 케인 박사는 피부 조직을 절개하고 맹자을 찾아내서 능숙하게 그것을 잘라내고는 수술을 끝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는 약간 불편하다는 불평 한 마디만을 했을 뿐이었다. 그 지원자는 병실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았는데 회복 속도가 아주 빨라 이틀 후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케인 박사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한 것이다. 용기 있는 지원자 덕분에 케인 박사는 국소 마취가 실행 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 환자였다. 케인 박사가 집도하는 그 수술을 받겠다고 나선 용감한 지원자는 바로 케인 박사 자신이었던 것이다. 케인 박사는 자기 자신에게 수술을 행했던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실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스스로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 부족하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대답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당신의 영원을 좌우할 것입니다. 간혹 사람들은 “나를 우습게 본다”는 말을 합니다. “나를 뭘로 아는거야”하고 격분하기도 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격분의 정도가 강해집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며 자신의 영광이 손상되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토기를 깨뜨려버리듯이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7-18) 당신은 그분이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가르쳤던 스승들이 과거 예수님에 대해서 무어라고 했는지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친구들이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부모가 그분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그분을 누구라고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믿고 있는 바는 우리의 행동에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당신은 과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아버지를 모시는 자녀처럼 하나님을 받들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6:46).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1:6).
첫째로, 예수님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었던 침례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갈릴리 분봉왕 헤롯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야는 구약 시대에 큰 권능을 행했던 선지자였는데 말라기서 4장 5절에 그가 다시 오게 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대하면서 동족을 위하여 많은 눈물을 흘렸던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를 연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시대를 위해 나타난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일반 대중은 거의 한결같이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 주위로 모여들었고 그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들은 그 당시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몇 안되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 중 한 사람입니다. 사랑을 실천한 박애주의자입니다. 그의 도덕적인 교훈을 생각하며 그의 삶의 방식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을 때 중요시하신 것은 첫번째 질문이 아니라 두번째 질문입니다. 첫번째 질문은 단지 두번째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한 발판에 불과한 것입니다. “너희들 각 사람은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베드로는 이 질문을 받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마16:16). 예수님은 그의 신앙 고백을 만족하게 여기시며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마16:17).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그분에 대해서 아무리 좋게 평가한다 할지라도 그분을 특별한 사람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의 고백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1)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을 세우실 때 먼저 기름을 그의 머리 위에 붓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께서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되고 택하심 바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 뱀으로 표현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3:15).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릴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 마음에 두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후손이 그리스도라고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9-20을 보십시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창세 전부터 세상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고 죽게 될 어린 양으로 정해진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베드로가 고백한 것입니다.
2)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을 차례로 읽어보면 이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5:18).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똑같은 신적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을 아무리 치켜 세운다 할지라도 사람의 수준에서 국한시킨다면 그분께 모욕이 되는 것입니다.
3)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 바로 그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며 부정했던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요20:28). 예수님도 친히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9). 빌립보서 2장 6절은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라고 밝혀줍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그분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가 어렵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면 아들이고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나님이 되실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문제입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할 죄가 전혀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1921년 2월 15일, 뉴욕의 케인 서미트 병원의 수술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의사가 맹장 수술을 하고 있었다. 그 의사에게 그 수술은 여러 가지 면에서 평범한 것이었다. 환자는 배가 아파 참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고, 맹장염이라는 진단은 정확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이반 오닐 케인 박사였다. 37년 동안의 탁월한 의학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거의 4천 번에 가까운 맹장 수술을 집도해 왔기에 두 가지 색다른 점 외에는 이 수술도 평범한 것이었다. 첫번째 색다른 점은 국소 마취를 실시했다는 것이었다. 케인 박사는 전신 마취에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국소 마취가 훨씬 안전하다고 믿었다. 많은 동료들도 이론적으로는 그에게 동의했지만, 그 이론의 적합성 여부를 실제로 보기를 원했다. 케인 박사는 국소 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으려는 지원자을 찾았으나 아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정신이 말짱한 채로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담력이 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취 기운이 너무 일찍 끝나 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케인 박사는 지원자를 찾았고 드디어 2월 15일 화요일 아침, 이 역사적인 수술이 시술되게 된 것이다 환자는 준비를 마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국소 마취가 행해졌다. 수천 번이나 해 왔던 것처럼 케인 박사는 피부 조직을 절개하고 맹자을 찾아내서 능숙하게 그것을 잘라내고는 수술을 끝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는 약간 불편하다는 불평 한 마디만을 했을 뿐이었다. 그 지원자는 병실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았는데 회복 속도가 아주 빨라 이틀 후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케인 박사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한 것이다. 용기 있는 지원자 덕분에 케인 박사는 국소 마취가 실행 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 환자였다. 케인 박사가 집도하는 그 수술을 받겠다고 나선 용감한 지원자는 바로 케인 박사 자신이었던 것이다. 케인 박사는 자기 자신에게 수술을 행했던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실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스스로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 부족하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대답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당신의 영원을 좌우할 것입니다. 간혹 사람들은 “나를 우습게 본다”는 말을 합니다. “나를 뭘로 아는거야”하고 격분하기도 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격분의 정도가 강해집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며 자신의 영광이 손상되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토기를 깨뜨려버리듯이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7-18) 당신은 그분이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가르쳤던 스승들이 과거 예수님에 대해서 무어라고 했는지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친구들이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부모가 그분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그분을 누구라고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믿고 있는 바는 우리의 행동에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당신은 과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아버지를 모시는 자녀처럼 하나님을 받들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6:46).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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