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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어느 때까지 머뭇 머뭇 하려느냐 (왕상18:20-24)

본문

I. 우리 나라 속담 중에 "간다 간다 하면서 아이 셋 낳고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집을 떠나 간다고 하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여 아이 셋 이나 더 낳고 떠나 갔다는 말입니다. 남편이 싫어 같이 못 살아서, 이혼을 할바에야 빨리 해야지, 자기도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뿐더러, 남편도 새로운 출받을 하지, 한다고 한다고 하루 이틀 미루다가 자식 셋을 낳고난 후에이혼을 했으니, 본인이 다시 시집 을 가기가 어렵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편도 애매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유부단이 가장 현명한 처세술 같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 은 사람들이 이 우유부단에 빠지기 싶습니다. 우리 나라는 언제나 강대국에 둘러 쌓여 있어서, 어느 한쪽에 기대어 살 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너무 성급하게 어느 한쪽에 기대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쪽 저쪽 눈치를 보면서 어 느 편에 설 것인가를 기다렸습니다. 이것의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 나라의 모습입니다.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 어느 한쪽을 선 택하지 못하고, 반은 공산주의 소련 편에 섰고, 반은 민주주의 미국 편에 섰습니다. 이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 같았지만, 결국 우리 나라를 오늘의 비극으로 몰고 오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그 때 공산주의가 되던, 민주주의가 되던 하나가 되었으면, 이 땅에도 벌써 통일된 국가가 건설 될 수 있었는데, 그 만 너무 재다가, 반은 이쪽을 택하고, 반은 저쪽을 택하여 지금 세계 역사 상에 가장 불행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유부단은 결국 큰 불행을 우리에게 가 져다 주고 맙니다.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북부 연맹군과 남부 연방군을 가르는 경계선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한편을 편들기가 싫었다. 그래서 상의는 북부 연맹군의 군복을 입었다. 바지는 남부 연방군의 군복을 입었다. 그로 인하여 그에게 행복이 찾아 온 것이 아니라, 그는 큰 불행을 당했다. 북부 연맹군은 남부 연방군의 바지를 입고 있는 그의 하체에 총을 쐈고, 남부 연방군은 북부 연맹군의 상의를 입고 있는 그의 상반신에 총을 쐈다. 그는 양쪽으로 다 총을 맞고 죽었다. 우유부단 양다리걸치기는 처음에는 가장 좋은 선택 같으나, 결국은 가장 큰 비극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우유부단의 습관을 기르느 니, 차라리 잘못된 결단을 하는 것이 더 좋다. 우리가 우유부단에 빠지 면, 우리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행동은 성공의 밑받침이다. 그러므로 결단력이 없으면 성공도 있을 수 없다. 그 사람의 삶에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도 우유부단 때문이며, 사람 이 기회를 놓쳐 버리고 후회하는 것도 우유부단 때문이며, 사람이 성공자가 되지 못하는 것도 우유부단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은 결단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 게 언제나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마6:24) 말씀을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 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두개를 섬기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어느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계3:15-16) 말씀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내 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 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 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때, 한 제자가 "주여, 제가 주님을 따르기는 따를 것인데,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하고 말씀 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하셨습니다. 분명한 결단을 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우유부단은 결국 버림을 받게 됩니다. 옛날에 하늘을 나는 조류와 땅을 기는 짐승들 간에 전쟁이 붙었습니다. 처음에는 짐승들이 유리해 보였습니다. 그러자 박쥐는 발로 걸어 다니며, 자기는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자, 이번에는 하늘을 나는 조류들이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박쥐는 날개를 펴고 나도 새다하 고 날라 다녔습니다. 결국 박쥐는 땅의 짐승들에게도 버림을 받고, 하늘 을 나는 새들로 부터도 버림을 받아, 캄캄한 굴에서 외롭게 숨어사는 신세 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양다리 걸치는 삶을 살며, 그는 결국 이쪽 저쪽에서 다 버림을 받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결단해야 할 것을 3가지로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하나님이냐 우상이냐 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집에 아들은 기독교인이고, 어머니는 불교신자인 가정이 있었읍니다. 어느날 그 어머니를 전도하기 위하여 그 아들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 이 찾아 갔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이 예수를 잘믿고 있습니다. 아들은 반드시 천국에 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니 아주머니도 예수를 믿고 천국 가시기를 바랍니다"하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천국이 있을지 극락이 있을 지 누구 압니까 그래서 죽어서 천국이 있으면 아들 덕에 천국에 가고, 극락이 있으면 내 덕에 극락에 갈려고, 아들은 예수를 믿고, 어머니는 부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날에는 종교가 많이 생기니까,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종교다원주의도 생겼습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여러가지이니,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며 살자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때에는 지혜로운 선택 같고, 바람직한 사상 같지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과 다른 우상을 같이 섬기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아합 왕이 바알 신을 섬기는 시돈 사람의 왕 옛바알의 딸 이세벧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아합 왕은 이 이세벧에게 끌려 다녔으며 결국 이세벧로 인하여 바알신을 섬 기게 되었습니다. 왕과 왕비가 바알신을 섬기자, 이스라엘에 많은 사람들이 바알신을 섬겼 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내려서 이스라엘 땅에 3년 6개월 동안 우로가 내리지 않게 하셨읍니다. 이 저주의 때가 끝이나자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서 바알신을 몰 아 내게 했습니다. 그래서 숨어지내던 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 나타났읍니다. 그리고는 아합 왕에게 이스라엘에 이런 저주가 임한 것은 "왕과 이 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읍니다. 그러니 바알이 참신인가 여호와가 참신인가 갈멜산에서 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모이게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갈멜산으로 모우라고 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렇게 갈멜산으로 몰려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가 서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소리쳤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이냐, 아니면 우상이냐를 결정하시기를 원합니다. 둘 다를 섬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을 사랑하는 자들 에게 대하여 질투를 하십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다른데 돌리는 것을 용납을 모하십니다. (신6:5)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바에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 하고,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온전히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 에는 다른 것을 사랑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신 을 섬길 것인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것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용납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선택했으면, 진실로 하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외에 다른 우상들이나, 미 신들은 다 버려야 합니다. 종교적인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종교가 순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정도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한 집에 예수를 믿는 자들 도 있고, 불교를 믿는 자들도 있고, 천주교를 믿는 자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예수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고 하셨습니다.
오직 여호만을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행4:12) 말씀을 보면 "다른 이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 에 구원을 얻을 많나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셨 습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 얻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온 식구들이 다 예수를 영접하고 믿게해야 합니다. 사회생활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사회에 나가서는 하나님 믿는 것을 숨기고, 예수 안믿는 자 들과 같이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장례식 때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다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천군천사들을 보내어 그 영혼을 천국에 데려 가시는데, 이 땅에 있는 자녀들이 그 하나님이 싫어하는 이방의 풍습 을 행해서 되겠습니까 장례식 때에도 철저하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장례 식을 치루시기 바랍니다. 친척들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가신 부모님들을 기쁘시게 하겠다는데 다른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장례식이 났을 때에도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장례식을 치루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강하고 담대하게 나 가면 마귀 사단이 틈을 못탑니다. 그러나 형제, 친척, 사람들을 두려워 하면, 마귀 사단이 틈을 탑니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의 어린 아들인 폰티우스(Pontius)가 로마 거리를 걷 고 있다가 시편 115편을 가지고 찬송가를 만들어 부르는 찬송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 가사에 크게 감동 되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 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 하며,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 리도 못하느니라"(시115:3-7) 폰티우스는 그 소리가 나는 집 문으로 올라가서 노크를 했다. 문을 지키는 자가 밖을 내다 보고는 감독에게 "어린 소년이 문을 노크하고 있읍니다"하고 보고를 했다. 감독은 "문을 열어 주어라. 천국이 그런 자의 것이니라"고 했다. 방에 들어온 폰티우스는 폰티아누스 감독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제가 밖에서 들은 그 아름다운 노래를 가르쳐 주세요. 그 가사는 모 두 진실이였습니다. 여러분은 우상은 발은 있으나 걷지 못한다고 했읍니다. 나는 우상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사람들이 바람 불면 넘어지고 날아가며, 도적을 맞고, 사고에 의하여 망가지고 마는 것들 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나는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어 그 받침대 위에다 납을 녹여서 고정시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감독은 그 소년의 지각에 놀랐다. 그리고 성령님이 그를 깨우쳐 주 시는 것을 보았다. 감독은 그 소년에게 그의 부모에 대하여 물었다. 그의 부모는 이방인들이였다. 수 많은 우상을 섬기는 로마시민이였다. 감독은 하나님이 그 소년을깨우쳐 주신 것과 같이 적당한 때에 그의 부모 도 깨우쳐 주시기를 기도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폰티우스는 새로 접한 종교로 충만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에게 그 새로운 종교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감독에게로 인도했다. 아버지와 아들 은 그자리에서 초신자가 되었다. 세례 지원자가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된 폰티우스는 그리스도를 위한 큰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A. D. 257년에 순교하였다. 폰티우스 가정이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비록 로마의 국회의원직을 잃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우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긴 것과 같이, 우리 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모든 우상들과 잡신들과 미신들을 버려야 합니다. 둘 사이에서 더이상 머뭇머뭇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시 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 세상이냐, 저세상이냐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두 종류의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한 종류의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은 완전히 부정하고, 오직 저 천국만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연히 이 세상의 삶에 대해서는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로 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또한 종류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저 천국을 인 정하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오직 이 세상 것만 중요시 여기고, 세상 것만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를 믿는 다고 하나,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이니다. 가룟 유다와 같이 예수를 믿다 가 세상 일이 잘 못되면, 예수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하는 자들 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루터가 "두 왕국설"이란 설을 내놓았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러나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란 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 나라도 중요시 여겨야 하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이 세상 일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분명한 종교입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 나라를 선택하는 분명한 종교입니다. 천국을 위해서는 이 세상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종교입니다. (마 9:43-48)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 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 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을 이 세상의 손보다도, 발보다도, 눈 보다도 더 귀중 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3:20)고 말씀하셨읍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천국 사람이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 시민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 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 3:7-9)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사랑할 것이냐 이 세상의 법에 따라 살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 살 것이냐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이냐 "를 분 명히 해야 합니다. 참다운 기독교인들은 오직 하늘 나라를 사랑하고, 하늘 나라의 법에 따 라 사는 종교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종교 입니다. 가장 모범적인 하늘 나라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은 그의 삶의 자세를 (갈1:10)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하늘나라의 법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늘 나라도 바라보고, 이 땅도 바라보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데오도르 루즈벧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아프리카로 사냥 여행 을 갔었다. 그가 사냥원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올때, 아프리카의 오지 정글 지대에서 40년간 선교 활동을 하다가 정년이 되어 은퇴하여 돌아오는 老 선교사 부부가 같이 그 배를 타고 왔다. 그 배가 항구에 정박했을때, 수 많은 사람들이 루즈벧트 대통령을 환영 하기 위하여 나왔다. 그러나 은퇴한 노 선교사 부부를 영접하기 위하여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갑자기 노 선교사는 자기연민으로 가득 찼다. 그는 "대통령이 몇일 동 안 휴가 사냥을 다녀오니까,수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그를 영접하는데, 당신의 종이 40년가 당신의 일을 위하여 수 많은 고생을 하고 돌아오는데, 단 한 사람도 당신의 종을 영접하는 자가 없습니다."하고 불평 섞인 기도를 드 렸다. 그때 갑자기 하나님이 그에게 "내 아들아, 너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다"(But My son, you are not home yet)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늘 나라를 분명히 선택하지 않고는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기 힘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를 지게될때 수 많은 유혹들이 그에게 찾아 왔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 고,하나님을 조롱할 때, 하늘의 12 군단의 천사들을 동원해서 모든 사람들 을 다 멸하고 싶었습니다. 하늘로서 불이 내려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3년동안 쌓아 놓았던 공든 탑이 나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3년 동안 정들여서 가꾸어 놓은 것을 다 빼앗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수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을 분 명하게 선택했기 때문에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이 세상과 천국을 왔다갔다 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영원한 하늘 나라를 분명하게 선택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성경이냐 과학이냐 를 분명히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과학의 발달로 많은 문명의 이익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과학을 과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학으로 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성경보다 과학을 더 신뢰합니다. 하나님 보다 과학의 능력을 더 믿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성경과 과학은 서로 대(對)가 되는 것을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중에 과학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고, 과학자들 중에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부정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과학입니다. 과학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믿게하기 위하여 인간 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알버트 아인스타인(Albert Einstein)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 발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맹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냐 성경이냐를 선택해야 할 때에는 우리는 성경을 선 택해야 합니다. 성경을 과학보다도 더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일점일획도 없어 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마24:35)고 말씀하셨습니다. 과학은 절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변할 수도 있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입니다.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의 말씀을 부인하는 과학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기적들은 비록 과학적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아도 믿어야 합니다. 과학자로 은퇴한 로디(T.C.Roddy Jr.)의 집 앞에는 100년이 넘은 6 그루 의 큰 참나무가 있었다. 과학자로 은퇴한 로디는 어느날 그 나무들에 대하여 생각을 했다. 그 나무들이 죽지않고 계속 푸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나무들의 잎 사귀들은 매일 몇 배럴씩의 신선한 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은퇴한 과 학자인 로디는 인간이 발명한 그 어떤 펌프도 나무의 물관을 통하여 매일 그렇게 많은 양의 물을 땅에서 부터 그 잎사귀까지 퍼올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뿌리들로 하여금 그 나무가 필요한 물들을 매일 끌 어 모아, 높은 잎사귀까지 퍼올리도록 하셨다. 이 일은 과학이 할 수도 없지만, 과학적으로 계산하면,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즉 땅에서 잎사귀까 지 물을 매일 공급하기 위해서는 평방 피트당
3,000 파운드가 넘는 압력을 가해야 된다. 그것도, 물관의 저항을 전혀 계산에 넣지 않은 계산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나무로 매일 자연스럽게 하게 하신다. 이것 이 기적이며, 이 기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 일어나고 있다. 어찌 과학이 이 하나님의 신비를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럼으로 우리는 과학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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