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요2:17-22)
본문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장사꾼들을 다 내어쫓고 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무슨 자격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 따지고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짓을 할만한 표적을 요구했다. 표적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다시 세우겠다 "고 답변 하셨다. 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이해를 못했다. 이미 영적으로 육적으로 타락한 저 무리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없어지는 것에 분개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권위와 체면이 손상된 것에 분개하고 있었다. 후에 예수님의 이 말이 예수님을 고소하는데 치명적인 구실이 되었다. (마26:61) 저 타락한 무리들은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이 말하는 성전의 의미를 저들은 보이는 성전에만 만족하고 있었고 또 보이는 성전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열심은 결국 하나님을 성전에서 내어쫓는 짓이었고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그런 타락된 성전을 성전의 주인 되신 예수가 그냥 보고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타락된 성전은 정리되어야만 하고 새로운 성전이 나타나야만 했다. 영원히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할 성전이 필요함을 예수님은 아시게 된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예수는 오셨다.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사망권세 이기시고 새로운 성전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부활 하셨다. 이제껏 모든 제사와 성전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였다. 이제 예루살렘 성전 시대는 끝난 것이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17절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예수님이 성전에서 격분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은 구약의 말씀을 기억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도 구약의 말씀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타락한 그들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기억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시69:9절 말씀을 제자들은 기억했다. 시69편은 메시야의 수난을 예고하는 말씀이다. 다윗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에 몰두함으로 불의한 자들로부터 당한 불이익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것은 예수께서 물욕에 사로잡힌 자들에의해서 더럽혀진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이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게 될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그 일을 담대히 수행하신 것과 동일하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성전이 너무 더러운 것에 화를 내셨다. 그러나 그 열심 때문에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성전을 온전케 하러 이 땅에 오셨다. 더러워진 성전을 보고 예수님은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행동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정면도전이었고 그들은 예수를 이단자로 단정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케 한 모습을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정죄했지만 제자들은 다른 모습으로 보았다. 1장에서도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보았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어떤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타락한 무리들은 무엇을 보았고. 제자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탁한 무리들은 자신들의 권세와 이익만을 보았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오늘날도 믿는 자들이 무엇을 보고 신앙생활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를 보고 신앙생활 할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세상과 타협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만을 바라보고 신앙생활 한다면 제자들처럼 말씀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 말씀을 제자들보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에 인용된 말씀을 기억치 못했다. 말씀을 제자들보다 더 잘 알면서도 그들은왜 기억치 못했을까 그것은 예수를 중심으로 바라보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종교 지도자들보다도 배우지도 못했고 사는 것도 넉넉지 못했지만 그들은 예수를 만나고 예수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말씀을 아무리 잘 알고 있는 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예수 중심적인 삶이 아니 된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전하지도 못할 것이다.
요 1:38 안드레와 사도요한이 뒤 따라 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돌아서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을 구하느냐" 그러나 나중에 안드레와 사도요한은 무엇을 구했다고 하지 않고 누구를 만났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무엇을 구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먼저 누구를 만나는 삶이 되어야만 한다. 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무엇을 구하는 삶이었다.
명예를 구하고, 권세를 구하고, 이익을 구하고, . 말씀은 잘 알었지만 구하는 데에 사용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관심을 두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예수님의 중심으로 삶을 살았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이 성경 한 구절이 기억 나면서 이해가 된 것이었다. 성도 여러분 ! 예수 중심적인 삶을 살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만이 우리가 말씀대로 살수가 있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깊이 이해 할 수 있다. 말씀을 잘 안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예수 중심의 삶이 되지 못하면 우리는 말씀을 우리의 육적인 면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고 주님의 뜻을 이해 못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말씀을 잘 안다는 목사들이 하는 설교를 들으면 성경말씀 전해놓고 너무나 엉뚱한 소리만 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좋은 설교도 많다. 그러나 많은 설교가 예수가 없는 설교, 육적인 설교, 교훈적 설교. 기복적인 설교만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저들이 말씀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성경이 과연 우리에게 그런 것만 말하고 있는가 물론 구약에는 물질적인 복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만 얘기하지 아니했다. 시 1장에서는 복의 참 뜻을 잘 전하고 있다. 이러한 복의 개념이 신약에 와서는 물질의 복을 얘기 한 곳이 없다. 모두 다 영적인 복을 얘기 하고있다. 예수님도 첫 번째 설교였던 산상설교에서 복의 개념은 바꾸는 설교를 하셨다.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다.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예수만을 뜨겁게 전할 때 영적인 자녀들은 깨어 날것이고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를 온전히 전하지 않고 수박 겉 핥기로 예수를 전한다면 우리 또한 성경이 말하고 뜻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고후3:14-16)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제자들처럼 예수만을 바라보고 살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하신 일을 온전히 알게 될 것이고 예수를 위해서 살게 될 것이다.
18-22절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어떤 권한으로 이러는지 표적을 요구했다. 성전을 향해서 내 아버지 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곧 자신을 메시야로 나타내는 말임을 그들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메시야라면 표적을 보여 보라는 것이었다. 표적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확실한 표적을 그들에게 말해주었지만 그들은 믿지 아니했다. 아니 예수님의 말뜻을 몰랐다. 성전이 무너지고 사흘만에 다시 세워질 것을 말해 주었지만 저들은 보이는 성전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알고 허무 맹랑하게 들었다.
표적 구약시대 때부터 내려온 거짓 선지자를 식별하는 방법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의 기대 속에는 메시야가 나타날 때 하나님의 큰 이적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헬라인은 지혜를 추구하나 유대인들은 이적을 추구했다. 이 성전을 헐라 여기에서 성전은 (나오스)다. 건물을 말하는 (히에론) 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라는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의 부활을 뜻한다. 사흘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기간이다. 일으키리라 "다시 살리라" 뜻을 가지고 있다.
성도 여러분 ! 타락한 무리들은 예수님 하신 일도 몰랐지만 예수님 말씀도 이해를 못했다. 성전을 3일만에 다시 일으킨 것만큼 더 큰 표적이 있겠는가 저 타락한 무리들은 이 후에도 예수님에게 표적을 많이 요구했다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얼마나 많은 표적을 보여 주었는가 그러나 타락한 무리들이 요구하는 표적은 메시야의 표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바라고 있는 표적이었다. 타락한 무리들이 바라고 있는 표적은 육적으로 로마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이 다시 강한 나라가 되는 표적을 원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셨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리라 ! 다시 말해서 너희가 나를 죽이리라 그러나 난 사흘만에 부활하리라는 예수님 말씀도 저들은 보이는 성전을 두고 하는 말씀인줄 알고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다" 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타락한 자들의 눈에는 모든게 육적으로만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행동도, 말씀도 모두 자신들의 육적인 것으로 평가했고 해석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날도 우리가 육적인 자가 되어 버리면 모든 말씀을 육적인 면으로 해석해 버리고 예수님의 하실 일도 육적인 면으로 평가해 버린다. 이것은 분명히 타락한 자들의 모습이다. 오늘날도 많은 자들이 표적을 요구한다. 내 병을 고쳐주라고, 내 가정을 사업장을 축복 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나님께는 표적이 아니다. 진정한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예수가 내 안에서 성전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큰 표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침 받고 예수를 떠난 삶을 살고 있다. 육적인 축복을 받고 예수를 떠난 삶을 살고 있다. 표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사랑을 보여준 것뿐이다 이 시대 눈에 보이는 것에 매달려서 많은 신앙인 들이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분명히 주의 종들에게 책임이 있다. 왜 이렇게 가르치는가 주의 종들 역시 육적인 표적만을 요구하고 있고 그렇게 성경을 보고있기 때문이다. 병을 않고 있는 자들에게는 당장 병이 낫는 게 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병을 치료하는 게 급한 게 아니다. 그들의 예수를 바라보는 눈이 먼저 열려야 할 것이다. 병이 치료가 안될지라도 나는 예수를 찬양하리라는 마음이 먼저 되어야 할 것이다. 신약에 나오는 많은 병자를 예수님이 고쳐주셨다. 그 말씀을 주의 종들은 육적인 면으로만 성경을 보고 설교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름다운 성전이었다. 그러나 그 성전은 타락한 곳이었고 예수님은 그 타락한 성전에 오셔서 새로운 성전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타락한 무리들은 보지 못했다. 21절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우리가 육적인 세계에만 눈을 돌리고,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우리들 역시 보이는 성전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진실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우리들 각자 각자 심령 속에 주님의 성전이 자리하는 것이다. 육적인 표적만을 간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안에 주님의 성전이 자리하는 것 말고 더 큰 표적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육적인 자에서 영적인 자로 변하는 표적만큼 더 큰 표적이 어디 있는가 이 시대 성령님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성령님은 표적만을 나타내기 위해서 너무 은사적으로만 알고 그렇게 전파해서는 안된다. 성령님은 무엇보다 우리를 거룩케 하러 이 땅에 오셨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깨닫게 해주시고 회개케 하여 주시고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거룩한 무리가 되기 위함이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다.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심각한 일이다.
고전 6:19 너희의 몸이 성령님의 전이라고 했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거룩케 하러 오셨듯이 주의 성령님도 예루살렘 성전처럼 더러운 우리의 심령을 청결케 하러 오셨다. 주님의 성령님의 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전히 이루어 졌다. 성도 여러분 ! 그 예수님의 성전을 여러분은 마음속에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의 신앙은 이 거룩한 성전을 잘 보존하고 날마다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보이는 성전에 우리가 모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성전을 잘 보존하기 위함이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통해서 내가 육적으로 빠지며 살지는 않고 있는지 살펴보고 살고 있다면 기도로 회개하고 다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성도들은 말할 수 없이 타락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집사들이 다 집사가 아니다. 정말 부끄러워서 말을 못할 정도의 모습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장로들의 교회에서의 행패 이미 한국교회의 큰 병패로 등장한지 오래다. 이것은 모두 주의 종들의 책임이다. 하나님의 양들의 마음을 성전화 시키지 못한 책임이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내 심령이 거룩한 성령님의 전이 되지 못하면 더러운 악령의 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다른 중간의 것은 없다. 둘 중의 하나다. 지금도 우리의 심령이 거룩하지 못하면 더러운 악령의 처소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못을 박으신 것이다. 거룩한 모습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예수 믿는 것은 미지근하게 믿어서는 안된다. 뜨겁게 믿어야만 한다. 적당히 종교 생활이나 하려고 믿는다면 차라리 믿지 않은 것이 좋을 것이다. 예수를 어떤 자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가 하나님 믿는 것을 종교생활로 알고 있는 자들이 죽였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였다. 종교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아성을 쌓은 자들이 그 아성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를 죽여야만 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자들이 예수를 죽였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요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 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들이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우리에게도 다를 바 없다. 사실 예수를 모르는 불신자들은 별 문제가 안된다. 종교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의 심령이 성령님이 전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도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다. 보이는 성전에만 만족하고 급급한다면 우리 또한 종교인들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성전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 또한 종교인이 되어서 예수를 핍박 할 것이다. 우리의 심령들이 거룩한 성전이 되지 아니하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심령이 성령님의 전이 되어야만 한다. 그 어떤 아픔과 희생이 뒤따를지라도 우리는 내 마음에 성령님의 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하고 영적 싸움을 게으르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 결론 > 22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여러분은 깨닫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몸이 성전인 것을 믿으십니까 요 3장에 보면 한 종교 지도자가 예수님 하신 행동과 말씀을 듣고 무엇인가 깨달음이 있어서 밤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낮에 주님이 하신 그 표적을 말하면서 알기를 원했다. 예수님은 그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 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지금도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 우리의 심령이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성령님의 전이 될 수 없다. 종교적인 누더기 옷 이제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주님 앞에서 보자.
종교적인 행위 이제 벗어버리고 진정한 모습으로 성전이 이루어진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자. 눈에 보이는 것들에 현혹 되지 말고 보이지 않은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중요시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타락이 난무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종교적인 타락도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이러한 때 우리의 각자 심령이 성령님의 전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모습으로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면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에게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성령님충만으로 내 마음에 성전을 가꾸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깨달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격분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은 구약의 말씀을 기억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도 구약의 말씀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타락한 그들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기억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시69:9절 말씀을 제자들은 기억했다. 시69편은 메시야의 수난을 예고하는 말씀이다. 다윗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에 몰두함으로 불의한 자들로부터 당한 불이익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것은 예수께서 물욕에 사로잡힌 자들에의해서 더럽혀진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이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게 될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그 일을 담대히 수행하신 것과 동일하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성전이 너무 더러운 것에 화를 내셨다. 그러나 그 열심 때문에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성전을 온전케 하러 이 땅에 오셨다. 더러워진 성전을 보고 예수님은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행동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정면도전이었고 그들은 예수를 이단자로 단정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케 한 모습을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정죄했지만 제자들은 다른 모습으로 보았다. 1장에서도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보았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어떤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타락한 무리들은 무엇을 보았고. 제자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탁한 무리들은 자신들의 권세와 이익만을 보았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오늘날도 믿는 자들이 무엇을 보고 신앙생활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를 보고 신앙생활 할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세상과 타협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만을 바라보고 신앙생활 한다면 제자들처럼 말씀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 말씀을 제자들보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에 인용된 말씀을 기억치 못했다. 말씀을 제자들보다 더 잘 알면서도 그들은왜 기억치 못했을까 그것은 예수를 중심으로 바라보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종교 지도자들보다도 배우지도 못했고 사는 것도 넉넉지 못했지만 그들은 예수를 만나고 예수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말씀을 아무리 잘 알고 있는 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예수 중심적인 삶이 아니 된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전하지도 못할 것이다.
요 1:38 안드레와 사도요한이 뒤 따라 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돌아서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을 구하느냐" 그러나 나중에 안드레와 사도요한은 무엇을 구했다고 하지 않고 누구를 만났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무엇을 구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먼저 누구를 만나는 삶이 되어야만 한다. 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무엇을 구하는 삶이었다.
명예를 구하고, 권세를 구하고, 이익을 구하고, . 말씀은 잘 알었지만 구하는 데에 사용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관심을 두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예수님의 중심으로 삶을 살았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이 성경 한 구절이 기억 나면서 이해가 된 것이었다. 성도 여러분 ! 예수 중심적인 삶을 살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만이 우리가 말씀대로 살수가 있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깊이 이해 할 수 있다. 말씀을 잘 안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예수 중심의 삶이 되지 못하면 우리는 말씀을 우리의 육적인 면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고 주님의 뜻을 이해 못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말씀을 잘 안다는 목사들이 하는 설교를 들으면 성경말씀 전해놓고 너무나 엉뚱한 소리만 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좋은 설교도 많다. 그러나 많은 설교가 예수가 없는 설교, 육적인 설교, 교훈적 설교. 기복적인 설교만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저들이 말씀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성경이 과연 우리에게 그런 것만 말하고 있는가 물론 구약에는 물질적인 복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만 얘기하지 아니했다. 시 1장에서는 복의 참 뜻을 잘 전하고 있다. 이러한 복의 개념이 신약에 와서는 물질의 복을 얘기 한 곳이 없다. 모두 다 영적인 복을 얘기 하고있다. 예수님도 첫 번째 설교였던 산상설교에서 복의 개념은 바꾸는 설교를 하셨다.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다.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예수만을 뜨겁게 전할 때 영적인 자녀들은 깨어 날것이고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를 온전히 전하지 않고 수박 겉 핥기로 예수를 전한다면 우리 또한 성경이 말하고 뜻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고후3:14-16)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제자들처럼 예수만을 바라보고 살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하신 일을 온전히 알게 될 것이고 예수를 위해서 살게 될 것이다.
18-22절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어떤 권한으로 이러는지 표적을 요구했다. 성전을 향해서 내 아버지 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곧 자신을 메시야로 나타내는 말임을 그들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메시야라면 표적을 보여 보라는 것이었다. 표적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확실한 표적을 그들에게 말해주었지만 그들은 믿지 아니했다. 아니 예수님의 말뜻을 몰랐다. 성전이 무너지고 사흘만에 다시 세워질 것을 말해 주었지만 저들은 보이는 성전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알고 허무 맹랑하게 들었다.
표적 구약시대 때부터 내려온 거짓 선지자를 식별하는 방법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의 기대 속에는 메시야가 나타날 때 하나님의 큰 이적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헬라인은 지혜를 추구하나 유대인들은 이적을 추구했다. 이 성전을 헐라 여기에서 성전은 (나오스)다. 건물을 말하는 (히에론) 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라는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의 부활을 뜻한다. 사흘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기간이다. 일으키리라 "다시 살리라" 뜻을 가지고 있다.
성도 여러분 ! 타락한 무리들은 예수님 하신 일도 몰랐지만 예수님 말씀도 이해를 못했다. 성전을 3일만에 다시 일으킨 것만큼 더 큰 표적이 있겠는가 저 타락한 무리들은 이 후에도 예수님에게 표적을 많이 요구했다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얼마나 많은 표적을 보여 주었는가 그러나 타락한 무리들이 요구하는 표적은 메시야의 표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바라고 있는 표적이었다. 타락한 무리들이 바라고 있는 표적은 육적으로 로마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이 다시 강한 나라가 되는 표적을 원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셨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리라 ! 다시 말해서 너희가 나를 죽이리라 그러나 난 사흘만에 부활하리라는 예수님 말씀도 저들은 보이는 성전을 두고 하는 말씀인줄 알고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다" 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타락한 자들의 눈에는 모든게 육적으로만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행동도, 말씀도 모두 자신들의 육적인 것으로 평가했고 해석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날도 우리가 육적인 자가 되어 버리면 모든 말씀을 육적인 면으로 해석해 버리고 예수님의 하실 일도 육적인 면으로 평가해 버린다. 이것은 분명히 타락한 자들의 모습이다. 오늘날도 많은 자들이 표적을 요구한다. 내 병을 고쳐주라고, 내 가정을 사업장을 축복 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나님께는 표적이 아니다. 진정한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예수가 내 안에서 성전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큰 표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침 받고 예수를 떠난 삶을 살고 있다. 육적인 축복을 받고 예수를 떠난 삶을 살고 있다. 표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사랑을 보여준 것뿐이다 이 시대 눈에 보이는 것에 매달려서 많은 신앙인 들이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분명히 주의 종들에게 책임이 있다. 왜 이렇게 가르치는가 주의 종들 역시 육적인 표적만을 요구하고 있고 그렇게 성경을 보고있기 때문이다. 병을 않고 있는 자들에게는 당장 병이 낫는 게 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병을 치료하는 게 급한 게 아니다. 그들의 예수를 바라보는 눈이 먼저 열려야 할 것이다. 병이 치료가 안될지라도 나는 예수를 찬양하리라는 마음이 먼저 되어야 할 것이다. 신약에 나오는 많은 병자를 예수님이 고쳐주셨다. 그 말씀을 주의 종들은 육적인 면으로만 성경을 보고 설교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름다운 성전이었다. 그러나 그 성전은 타락한 곳이었고 예수님은 그 타락한 성전에 오셔서 새로운 성전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타락한 무리들은 보지 못했다. 21절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우리가 육적인 세계에만 눈을 돌리고,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우리들 역시 보이는 성전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진실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우리들 각자 각자 심령 속에 주님의 성전이 자리하는 것이다. 육적인 표적만을 간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안에 주님의 성전이 자리하는 것 말고 더 큰 표적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육적인 자에서 영적인 자로 변하는 표적만큼 더 큰 표적이 어디 있는가 이 시대 성령님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성령님은 표적만을 나타내기 위해서 너무 은사적으로만 알고 그렇게 전파해서는 안된다. 성령님은 무엇보다 우리를 거룩케 하러 이 땅에 오셨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깨닫게 해주시고 회개케 하여 주시고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거룩한 무리가 되기 위함이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다.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심각한 일이다.
고전 6:19 너희의 몸이 성령님의 전이라고 했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거룩케 하러 오셨듯이 주의 성령님도 예루살렘 성전처럼 더러운 우리의 심령을 청결케 하러 오셨다. 주님의 성령님의 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전히 이루어 졌다. 성도 여러분 ! 그 예수님의 성전을 여러분은 마음속에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의 신앙은 이 거룩한 성전을 잘 보존하고 날마다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보이는 성전에 우리가 모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성전을 잘 보존하기 위함이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통해서 내가 육적으로 빠지며 살지는 않고 있는지 살펴보고 살고 있다면 기도로 회개하고 다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성도들은 말할 수 없이 타락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집사들이 다 집사가 아니다. 정말 부끄러워서 말을 못할 정도의 모습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장로들의 교회에서의 행패 이미 한국교회의 큰 병패로 등장한지 오래다. 이것은 모두 주의 종들의 책임이다. 하나님의 양들의 마음을 성전화 시키지 못한 책임이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내 심령이 거룩한 성령님의 전이 되지 못하면 더러운 악령의 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다른 중간의 것은 없다. 둘 중의 하나다. 지금도 우리의 심령이 거룩하지 못하면 더러운 악령의 처소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못을 박으신 것이다. 거룩한 모습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예수 믿는 것은 미지근하게 믿어서는 안된다. 뜨겁게 믿어야만 한다. 적당히 종교 생활이나 하려고 믿는다면 차라리 믿지 않은 것이 좋을 것이다. 예수를 어떤 자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가 하나님 믿는 것을 종교생활로 알고 있는 자들이 죽였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였다. 종교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아성을 쌓은 자들이 그 아성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를 죽여야만 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자들이 예수를 죽였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요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 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들이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우리에게도 다를 바 없다. 사실 예수를 모르는 불신자들은 별 문제가 안된다. 종교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의 심령이 성령님이 전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도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다. 보이는 성전에만 만족하고 급급한다면 우리 또한 종교인들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성전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 또한 종교인이 되어서 예수를 핍박 할 것이다. 우리의 심령들이 거룩한 성전이 되지 아니하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심령이 성령님의 전이 되어야만 한다. 그 어떤 아픔과 희생이 뒤따를지라도 우리는 내 마음에 성령님의 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하고 영적 싸움을 게으르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 결론 > 22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여러분은 깨닫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몸이 성전인 것을 믿으십니까 요 3장에 보면 한 종교 지도자가 예수님 하신 행동과 말씀을 듣고 무엇인가 깨달음이 있어서 밤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낮에 주님이 하신 그 표적을 말하면서 알기를 원했다. 예수님은 그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 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지금도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 우리의 심령이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성령님의 전이 될 수 없다. 종교적인 누더기 옷 이제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주님 앞에서 보자.
종교적인 행위 이제 벗어버리고 진정한 모습으로 성전이 이루어진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자. 눈에 보이는 것들에 현혹 되지 말고 보이지 않은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중요시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타락이 난무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종교적인 타락도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이러한 때 우리의 각자 심령이 성령님의 전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모습으로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면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에게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성령님충만으로 내 마음에 성전을 가꾸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깨달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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