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49:1-7)
본문
“내가 헛수고만 했습니다!” “내가 있는 힘을 다 쏟았으나, 얻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4)”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털어놓은 불만입니다. 주께서 맡겨주신 일을 열심히 잘 감당했지만, 그 결과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곧바로 이런 불만이 잘못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셨고, 그 수고한 대가를 전부 갚아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을 합니다. 이와 비슷한 말이 명심보감 천명편(天命篇)에 있습니다.〈종과득과(種瓜得瓜)요 종두득두(種豆得豆)니, 천망(天網)이 회회(恢恢)하야 소이불루(疎而不漏)니라.〉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이 넓어서 보이지 않지만, 그 그물이 새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행한 대로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도 갈 6:7에서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으니, 우리는 ‘열심히 일했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했노라’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일의 결과를 얻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각 방송국은 연말에 우수 연기자를 선발해서 시상식을 갖습니다. 지난 해 KBS 연기 대상은 최수종씨가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 그 어느 누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는 훌륭한 연기자인 것입니다. 시상식이 끝났을 때, 방송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거저 되는 것은 없다”고 하면서, 그가 연기 대상을 수상(受賞)하게 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고, 1월 21일자 ‘일요신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온몸으로 연기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는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는, 촬영이 있을 때에는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촬영장에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험한 장면을 찍을 때에는 스턴트맨을 쓰게 마련이나, 그는 시청자들을 속일 수 없다면서, 자신이 직접 위험한 장면을 연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방송 스텝들이 뽑은 ‘가장 성실한 연예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소문 난 애처가이기도 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화목한 가정’이다. 아무리 함께 사는 아내라 하지만, 그녀를 위해서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내가설거지 좀 해주셔요’하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행한다.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내가 먼저 도움을 주면, 나 자신도 기분 좋고 아내도 무척 좋아한다.” 결국, 최수종씨가 누구에게나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스스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그가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자의 최종 목표는,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주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성실한 내 백성이다’라고 인정을 받는 것이 크리스천의 최고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태중에 있을 때, 이미 우리를 선택하고 주의 일을 맡기신,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우리가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고전1:18)이라고, 바울이 밝혔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도 빛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거니와, 천국 들어가기에도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마음에 드는 ‘성실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겠습니까 최수종씨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정말 모범적인 크리스천이요, 성실한 사회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를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삶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수고하고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전 1:5절에서예수님은 우리의 생활 전체를 풍부하게 해 주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예수님을 가까이하면서,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쓸 경우, 우리는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최수종씨가 누리는 복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높은 인기도 아니고 많은 출연료도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성실성과 노력하는 자세, 그리고, 그의 몸에 배어있는 ‘예절바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 성실성과 노력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그는 어디를 가든지 ‘성실한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께 구할 것은, 주께서 보여주신 ‘십자가 정신’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십자가 정신을 부지런히 심게 되면, 밝고 명랑한 사회와 건전한 가정을 열매로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최수종씨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 정신을 배워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주께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구하고 있는 그런 복입니까 아니면, 주께서 보여주신 십자가 정신입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땅에 무엇을 열심히 심고 있습니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심은 그대로 거두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1.잘못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 전, 어느 집회에서 강사는 이런 예화를 들어 설교했습니다. 그 교회 집사가 돈을 빌려서 담임자에게 승용차 구입비로 천만 원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집사의 남편이 3억 원 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집사가 목사를 잘 섬긴 까닭에, 하나님께서 복권에 당첨되도록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한심스럽고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그런 복을 바란다면, 예수를 믿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적인 복과는 담을 쌓고 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정말 불행하게 사시다가 비참하게 죽으셨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기독교의 복은 세상 것과는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가난하든지 넉넉하게 살든지, 건강하거나 병이 들었거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복이 바로, 예수를 믿어 누리는 복입니다. 즉, 어떤 형편에 있든지, 주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꾸만 세상적인 복에 집착하는 것은, 1예수와 깊은 사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그리고 어떻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는지, 그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사건들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 기본적인 상식조차 잘 몰라서, 하나님께 엉뚱한 것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뵙게 되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외쳤습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복을 누리고 있는 예수를 보라’ 하지 않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 했습니다. ‘죄를 지고 가는 자’가 어찌 행복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보여주신 복은,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때 누리는 ‘부활의 영광’입니다. 십자가 희생을 치를 때에 ‘부활’의 기쁨과 영광이라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잘 알지 못하는 까닭에,
2세상의 빛이 되어 살지 못합니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증거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사49:6에내가 너를 세상의 빛으로 세워서, 온 세상의 어둠과 혼란을 없애고, 구원과 해방이 무엇인지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의 참된 복을 구하지 못하고, 헛된 것을 잘못 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믿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고전1:9에서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려고 애쓰면, 주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를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2.우리가 구할 것을 바로 구하고, 또한 바로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저께 ‘화제집중’이라는 프로를 보니, 어떤 할머니께서 개가 불쌍하다면서, 주인 잃은 개들을 끌어다가 보살피는 내용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마당이 부족해서, 자기 사는 방에까지 개들을 모셔놓은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인즉, 개도 생명이 있는 존재니,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개까지 불쌍히 여길 필요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개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실례가 될지 모르나, 개에게까지 긍휼을 베풀 이유는 없습니다. 그보다 먼저, 자신의 생명을 귀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잘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행하신 대로, 이웃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과 영혼은 주께 달려 있습니다. 진리 되시는 예수를 잘 붙잡고 살아야, 그 영혼이 빈들에서 방황하지 않고 굶주리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만이라도 예수를 바로 알고 잘 믿으면, 오늘의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 확신합니다. 1우리는 먼저 주님을 가까이하고, 또한 예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다른 일보다, 예수를 가까이하는 일에 더 힘써야 합니다. 예수를 모르고 백 번 애쓰는 것보다, 예수를 바로 알고 한 번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안드레 일행에게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찾는 목적을 바로 가지면, 예수가 누군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이 누군지 알게 되는 날, 그 눈에서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감격과 은혜의 눈물이 주의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를 갖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다시 한 번 이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그래서, 예수를 바로 증거하면서, 세상의 빛이 되어 살도록 합시다. 세상 복을 구하면, 결코 빛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진리를 구하고, 그 진리 따라 살아야 빛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진리 따라 사는 길에는 십자가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이 싫다고 십자가를 피하면, 결코 하늘의 신령의 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천국 가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선 입으로 증거하고, 또한 몸으로도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줘야 합니다. 3주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삽시다. 세상의 빛이 되는 생활이란, 건강하게 오래도록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생애를 살지라도,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 때,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33년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는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볼 때,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셨지만, 예수는 인류의 스승이 되셨습니다. 짧은 인생을 값있게 살기를 원한다면, 편하고 자유로운 것이나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을 택할 것이 아닙니다. 좀 힘들고 어렵지만, 주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면, 온 세상의 주인 되시는 주께서 그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아무쪼록, 예수를 바로 알고, 또한 바로 구하셔서, 주님 은혜 안에서 풍성한 인생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가 대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 그 어느 누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는 훌륭한 연기자인 것입니다. 시상식이 끝났을 때, 방송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거저 되는 것은 없다”고 하면서, 그가 연기 대상을 수상(受賞)하게 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고, 1월 21일자 ‘일요신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온몸으로 연기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는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는, 촬영이 있을 때에는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촬영장에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험한 장면을 찍을 때에는 스턴트맨을 쓰게 마련이나, 그는 시청자들을 속일 수 없다면서, 자신이 직접 위험한 장면을 연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방송 스텝들이 뽑은 ‘가장 성실한 연예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소문 난 애처가이기도 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화목한 가정’이다. 아무리 함께 사는 아내라 하지만, 그녀를 위해서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내가설거지 좀 해주셔요’하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행한다.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내가 먼저 도움을 주면, 나 자신도 기분 좋고 아내도 무척 좋아한다.” 결국, 최수종씨가 누구에게나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스스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그가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자의 최종 목표는,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주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성실한 내 백성이다’라고 인정을 받는 것이 크리스천의 최고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태중에 있을 때, 이미 우리를 선택하고 주의 일을 맡기신,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우리가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고전1:18)이라고, 바울이 밝혔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도 빛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거니와, 천국 들어가기에도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마음에 드는 ‘성실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겠습니까 최수종씨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정말 모범적인 크리스천이요, 성실한 사회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를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삶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수고하고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전 1:5절에서예수님은 우리의 생활 전체를 풍부하게 해 주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예수님을 가까이하면서,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쓸 경우, 우리는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최수종씨가 누리는 복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높은 인기도 아니고 많은 출연료도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성실성과 노력하는 자세, 그리고, 그의 몸에 배어있는 ‘예절바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 성실성과 노력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그는 어디를 가든지 ‘성실한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께 구할 것은, 주께서 보여주신 ‘십자가 정신’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십자가 정신을 부지런히 심게 되면, 밝고 명랑한 사회와 건전한 가정을 열매로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최수종씨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 정신을 배워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주께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구하고 있는 그런 복입니까 아니면, 주께서 보여주신 십자가 정신입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땅에 무엇을 열심히 심고 있습니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심은 그대로 거두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1.잘못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 전, 어느 집회에서 강사는 이런 예화를 들어 설교했습니다. 그 교회 집사가 돈을 빌려서 담임자에게 승용차 구입비로 천만 원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집사의 남편이 3억 원 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집사가 목사를 잘 섬긴 까닭에, 하나님께서 복권에 당첨되도록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한심스럽고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그런 복을 바란다면, 예수를 믿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적인 복과는 담을 쌓고 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정말 불행하게 사시다가 비참하게 죽으셨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기독교의 복은 세상 것과는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가난하든지 넉넉하게 살든지, 건강하거나 병이 들었거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복이 바로, 예수를 믿어 누리는 복입니다. 즉, 어떤 형편에 있든지, 주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꾸만 세상적인 복에 집착하는 것은, 1예수와 깊은 사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그리고 어떻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는지, 그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사건들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 기본적인 상식조차 잘 몰라서, 하나님께 엉뚱한 것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뵙게 되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외쳤습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복을 누리고 있는 예수를 보라’ 하지 않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 했습니다. ‘죄를 지고 가는 자’가 어찌 행복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보여주신 복은,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때 누리는 ‘부활의 영광’입니다. 십자가 희생을 치를 때에 ‘부활’의 기쁨과 영광이라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잘 알지 못하는 까닭에,
2세상의 빛이 되어 살지 못합니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증거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사49:6에내가 너를 세상의 빛으로 세워서, 온 세상의 어둠과 혼란을 없애고, 구원과 해방이 무엇인지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의 참된 복을 구하지 못하고, 헛된 것을 잘못 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믿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고전1:9에서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려고 애쓰면, 주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를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2.우리가 구할 것을 바로 구하고, 또한 바로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저께 ‘화제집중’이라는 프로를 보니, 어떤 할머니께서 개가 불쌍하다면서, 주인 잃은 개들을 끌어다가 보살피는 내용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마당이 부족해서, 자기 사는 방에까지 개들을 모셔놓은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인즉, 개도 생명이 있는 존재니,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개까지 불쌍히 여길 필요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개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실례가 될지 모르나, 개에게까지 긍휼을 베풀 이유는 없습니다. 그보다 먼저, 자신의 생명을 귀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잘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행하신 대로, 이웃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과 영혼은 주께 달려 있습니다. 진리 되시는 예수를 잘 붙잡고 살아야, 그 영혼이 빈들에서 방황하지 않고 굶주리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만이라도 예수를 바로 알고 잘 믿으면, 오늘의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 확신합니다. 1우리는 먼저 주님을 가까이하고, 또한 예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다른 일보다, 예수를 가까이하는 일에 더 힘써야 합니다. 예수를 모르고 백 번 애쓰는 것보다, 예수를 바로 알고 한 번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안드레 일행에게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찾는 목적을 바로 가지면, 예수가 누군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이 누군지 알게 되는 날, 그 눈에서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감격과 은혜의 눈물이 주의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를 갖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다시 한 번 이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그래서, 예수를 바로 증거하면서, 세상의 빛이 되어 살도록 합시다. 세상 복을 구하면, 결코 빛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진리를 구하고, 그 진리 따라 살아야 빛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진리 따라 사는 길에는 십자가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이 싫다고 십자가를 피하면, 결코 하늘의 신령의 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천국 가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선 입으로 증거하고, 또한 몸으로도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줘야 합니다. 3주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삽시다. 세상의 빛이 되는 생활이란, 건강하게 오래도록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생애를 살지라도,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 때,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33년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는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볼 때,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셨지만, 예수는 인류의 스승이 되셨습니다. 짧은 인생을 값있게 살기를 원한다면, 편하고 자유로운 것이나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을 택할 것이 아닙니다. 좀 힘들고 어렵지만, 주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면, 온 세상의 주인 되시는 주께서 그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아무쪼록, 예수를 바로 알고, 또한 바로 구하셔서, 주님 은혜 안에서 풍성한 인생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