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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눅9:10-17)

본문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상징으로 가장 많이 연상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마이카 붐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한 또 다른 상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리에 나가보면 차 뒷면에 물고기 상징을 붙인 차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집집마다 붙어 있는 교패에도 십자가 대신에 물고기 상징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상징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원래 이 상징은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사용된 아주 오래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헬라어로 써서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합성하면 물고기를 뜻하는 “익두스”가 되기 때문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했습니다.또한 이 상징은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도 관련이 있고 오늘 본문에서 다루게 될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 기적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될 정도로 중요한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진 것으로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13절). 예수님은 제자들이 얼마 동안 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데리시고 빈 들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무리가 예수님 일행이 있는 곳을 용케 알고 그 곳까지 찾아왔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측은하게 여기셔서 그들을 맞아 주시고 복음을 전하시며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육신적인 필요까지도 채워 주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벌써 저녁 시간이 된 것을 걱정하며 빨리 사람들을 보내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절).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남자가 5천 명 가량 되었으니까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만 명이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음식이라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설령 음식을 사온다고 할지라도 최소한도 200데나리온이 필요한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어림도 없는 액수였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실상을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시몬이 밤새 수고하며 그물을 내렸지만 허탕치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아시고 그 곳으로 가서 다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5:4-6). 예수님은 회당에서 자신을 고소할 기회를 엿보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생각까지도 아셨습니다(눅6:7-8). 또 무리에 에워싸인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옷자락을 몰래 만졌던 사람이 누구인지 아셨습니다(눅8:44-48).
사마리아의 수가라 하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이 과거에 다섯 남자와 생활했고 현재 또한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사실도 아셨습니다(요4:16-19). 자신을 배반할 제자가 누구인지도 아셨습니다. 자신이 붙잡히게 될 날이 언제인지도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제자들이 얼마나 믿음이 있는지를 알고자 하셨습니다(요6:5). 그리고 그들이 믿음으로 사는 삶을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평가절하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인데 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환경을 평가절하 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아무 것도 없는 빈 들인데 이 많은 사람들이 먹으려면 마을로 가야 합니다.” 사실 그들이 가진 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고 그들의 환경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의 제자일진데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겨야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주님께서 사용하신다면 더 이상 작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나쁜 환경이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주님께서 도우신다면 더 이상 나쁜 환경이 아닙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분의 뜻에 따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그분께 드린 것을 사용하여 복을 주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작은 것을 놓고 축복하셨습니다(16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고 해 보았자 한 사람이 한 끼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주위에는 음식을 먹기 위하여 기다리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가 고파 울며 보채는 자식들이 있지만 빵 하나밖에 갖지 못한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축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신 것입니다. 그 음식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 음식에 하나님의 복을 구하신 것입니다. 성화 중에 한 사람이 빵 한 개만을 놓고 기도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경건함을 풍기는 그림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식탁에는 빵과 함께 놓여져야 할 우유와 치즈와 쨈과 고깃덩어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놓고 기도합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 없이 매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더 많은 것을 식탁에 올려 놓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문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 대한 감사는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풍성한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신은 작은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까 적은 소득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까 셋방살이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어떤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간증했습니다(빌4:11).
셋째로, 예수님은 남은 것을 버리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6:12). 요즘 우리 사회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생활이 좀 넉넉해지다 보니까 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서 기존 쓰레기 매립지가 포화 상태가 되고 환경오염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오죽 했으면 국가적으로 재활용품을 분리 수거하고 유료 쓰레기 봉투를 사용하도록 했겠습니까 풍족하게 지내는 것은 좋지만 아직도 먹지 못해 굶주리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많이 있는데 먹는 음식을 버리는 것은 먹고 남은 것을 버리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절약하는 생활을 해야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주님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의 처지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방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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