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32:26-31)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주님이 골고다로 끌려가시는 고통 중에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끌려가시는데 쓰러지고 또 쓰러지셔서 로마군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에게 지고가게 했습니다. 그때 군중과 주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슬피 울면서 주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슬피 우는 여인을 향하여 “(눅23:28)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당하시는 고통보다 더 중요한 일이기에 주님은 여인들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부탁으로 마28:19-20절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의 말씀이나 행1:8의 말씀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본문의 말씀도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의미를 함께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네 사명을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은 주님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에 대해서 여인들이 울었다고 쉬워지거나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사명은 주님이 감당하십니다. 즉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주님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과 나의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울면서 자녀를 양육해야 웃으면서 주님의 품으로 갈 수 있습니다. 삼상1-3장에 보면 엘가나의 집과 엘리제사장의 집이 등장합니다. 엘가나는 도후-엘리후-여로함의 계보로 태여 납니다. 즉 레위인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엘리는 당시 실로에 있는 제사장입니다. 먼저 엘가나의 가정을 보겠습니다. 엘가나는 한나라는 본처가 있습니다. 그녀가 무자(無子)해서
둘째인 브닌나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이일로 한나는 날마다 슬피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응답하시어 사무엘을 아들로 주셨습니다. 한나는 서원한 대로 사무엘을 젖을 뗀 후 엘리 제사장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한나는 1기도로 사무엘을 얻었고,2사무엘을 제사장의 집에 보낸 후에도 계속 자녀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가 쌓인 사무엘은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열대 여섯쯤 되던 날 밤중에 사무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그에게로 갔습니다. 엘리는 사무엘 에게 다시 한번 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삼상3:9)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고 했습니다. 엘리제사장의 집에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4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 성을 듣는 자는 사무엘 한 명뿐입니다. 눈물의 기도로 양육되고, 눈물의 기도가 쌓인 사무엘은 한 시대에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사장이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자녀를 눈물의 기도로 양육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로 키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편 엘리 제사장의 가정은 겉으로는 하나님 사람의 가정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과 교제가 없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엘리의 가정교육을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삼상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2(삼상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엘리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을 뿐 아니라 자녀를 위하여 우는 모습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녀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에 나가 전사했고, 엘리는 이 소식을 듣고 뒤로 넘어져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탁은 너의 사명과 네 자녀의 사명을 의해 울면서 기도하고, 몸부림치며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창세기 12-22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기도로 기웠으며 순종의 자녀로 양육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모리아산의 제사에 순종했습니다. 이렇게 순종의 자녀는 평생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이 가는 곳마다 우물이 샘솟았습니다. 눈물로 양육하면 순종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둘째로 장차 있을 자녀의 고난을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눅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여기서 푸른 나무는 예수님 자신이요, 마른나무는 자녀들입니다. 즉 예수님도 이렇게 핍박했는데 너희와 너희 자녀를 핍박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가올 고난을 위하여 기도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데 고난받으며 믿어야 합니다. 고난이 없는 상급은 없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가 음부에간 이유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간 이유를 “(눅16: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위해 고난받는 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사명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도 축복입니다. 우리자녀가 사명 앞에서 담대히 설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자녀의 사명과 자녀의 삶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할 사명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기도의 부모가 되어 자녀를 하나님과 교제케하고, 하나님의 사명 앞에 충성된 자녀로 양육하는 사명 감당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