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자녀를위하여울라 (눅23:26-38)
본문
갈보리로 가시는 예수님을 뒤따르며 우는 여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한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이 말씀은 유대여자들이 듣기에는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수태 못한 여자는 그들에게 있어서 항상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없는 이들이 복이 있게 되리라는 말씀은 그들에게 아주 기이한 말씀입니다. 어떤 예수를 조롱하는 여인들은 아마도 죽을 때가 되니까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50년도 못되어 성취 되었습니다. 디도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기근 과 전염병으로 참혹한 고난을 당하였는데, 포위 기간동안 식량이 떨어지자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실제로 자기 아이들을 잡아 먹었다 고 합니다. 유대민족에게 대한 마지막 심판이 어린아이와 어머니에게 혹독하게 임한 것입니다. 주님은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시며, 용서 베푸시기를 기뻐 하시지만 그러나 공의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믿지않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위하여 심판을 준비 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안내하여 주던 그 구름은 애굽인에게는 어둠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에게는 복음이지만,믿지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주님의 자비로운 중보의 기도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신 첫마디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였습니다. 견딜수 없는 육체의 고통 가운데서도,주님은 사람들을 기억 하셨 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영혼들에 대한 중보의 기도가 십자가 상 에서의 일곱 말씀 중 첫번째 말씀입니다. 커다란 희생의 피가 흐르자 마자 이 위대한 제사장이신 주님의 중보기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 당하시는 동안 병정들이 주님의 옷을 나눠 제비 뽑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림이나 성상에 있는 것처럼 하의를 가린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부끄럽고, 보기 민망하게 죽어가는 모습은 십자가 형벌의 비참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사람들이 비난합니다. <저가 남을 구원 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비난입니다. 또 군인들이 조롱합니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너를 구원하라> 그런 와중에 주님은 중보의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여섯달 동안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이 회개 하였는데 그것은 주님의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을 것입니다. 이 기도는 아마도 강도의 회개를 위한 첫단계였을 지 모릅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보고 백부장은 그가 <의인>이었다고 말하며 자기의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 갔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죄인들을 향하여 하신 주님의 중보기도는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대한 완벽한 증거입니다. 주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동정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할 만큼 악한 죄인은 없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포기할 만큼 흉악한 죄에 빠진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은 무한 하신 사랑으로 용서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자라도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셨고, 함게 못박힌 강도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핍박자 사울을 변화 시키시기 위하여 친히 그에게 강림하셨 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 상에서 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그 앞에 나가기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용서 받지 못하는 악한 죄인이 있다면 이러한 주님의 자비와 용서를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의 모범입니다. 주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저주를 복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악하게 대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향하여 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주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범을 따르기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편협한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자기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주님의 이 용서를 본받아 우리의 교회생활과 일상생활을 뒤돌아 보아 서로 용서하기를 힘쓰고, 마음을 넓혀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에 힘씀으로 그리스도의 모범을 실천할 때 천국시민의 합당한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우리 삶과 행함의 표준으로 삼아 주께 영광돌리는 한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자녀가 없는 이들이 복이 있게 되리라는 말씀은 그들에게 아주 기이한 말씀입니다. 어떤 예수를 조롱하는 여인들은 아마도 죽을 때가 되니까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50년도 못되어 성취 되었습니다. 디도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기근 과 전염병으로 참혹한 고난을 당하였는데, 포위 기간동안 식량이 떨어지자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실제로 자기 아이들을 잡아 먹었다 고 합니다. 유대민족에게 대한 마지막 심판이 어린아이와 어머니에게 혹독하게 임한 것입니다. 주님은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시며, 용서 베푸시기를 기뻐 하시지만 그러나 공의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믿지않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위하여 심판을 준비 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안내하여 주던 그 구름은 애굽인에게는 어둠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에게는 복음이지만,믿지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주님의 자비로운 중보의 기도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신 첫마디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였습니다. 견딜수 없는 육체의 고통 가운데서도,주님은 사람들을 기억 하셨 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영혼들에 대한 중보의 기도가 십자가 상 에서의 일곱 말씀 중 첫번째 말씀입니다. 커다란 희생의 피가 흐르자 마자 이 위대한 제사장이신 주님의 중보기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 당하시는 동안 병정들이 주님의 옷을 나눠 제비 뽑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림이나 성상에 있는 것처럼 하의를 가린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부끄럽고, 보기 민망하게 죽어가는 모습은 십자가 형벌의 비참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사람들이 비난합니다. <저가 남을 구원 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비난입니다. 또 군인들이 조롱합니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너를 구원하라> 그런 와중에 주님은 중보의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여섯달 동안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이 회개 하였는데 그것은 주님의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을 것입니다. 이 기도는 아마도 강도의 회개를 위한 첫단계였을 지 모릅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보고 백부장은 그가 <의인>이었다고 말하며 자기의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 갔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죄인들을 향하여 하신 주님의 중보기도는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대한 완벽한 증거입니다. 주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동정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할 만큼 악한 죄인은 없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포기할 만큼 흉악한 죄에 빠진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은 무한 하신 사랑으로 용서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자라도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셨고, 함게 못박힌 강도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핍박자 사울을 변화 시키시기 위하여 친히 그에게 강림하셨 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 상에서 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그 앞에 나가기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용서 받지 못하는 악한 죄인이 있다면 이러한 주님의 자비와 용서를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의 모범입니다. 주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저주를 복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악하게 대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향하여 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주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범을 따르기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편협한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자기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주님의 이 용서를 본받아 우리의 교회생활과 일상생활을 뒤돌아 보아 서로 용서하기를 힘쓰고, 마음을 넓혀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에 힘씀으로 그리스도의 모범을 실천할 때 천국시민의 합당한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우리 삶과 행함의 표준으로 삼아 주께 영광돌리는 한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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