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젊은이들이여 환상을 보라 (행2:14-24)
본문
오늘은 우리 총회적으로 지키는 SFC 주일이다. SFC는 Student For Christ의 약자로서 쉽게 말하자면 [학원의 복음화]를 위해 조직된 “학생회”이다. 각 지교회의 SFC 신앙 운동원이 교회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는 학교를 복음화시키는 핵심 요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 활동을 제대로 하자는 운동이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성경 중심의 토대 위에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신앙생활도 구축해 가자는 학생 신앙 운동원들의 복음화 운동이다. 무진장의 보고로 가득한 학교를 복음화시킴으로 조국의 복음화의 기초를 놓자는 운동이다. 우리 교회도 남들처럼 큰 조직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곧 Koram Deo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님의 역사로 적어도 15개국 이상의 방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가 확실한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하나님이 친히 증거하셨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내용은 [말세]에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자녀들의 예언], [젊은이들의 환상], [늙은이들의 꿈]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이 중에서도 [젊은이들의 환상] 부분을 살펴 보고져 한다. “환상”이라 함은 “꿈”과는 다른 것이다. 너희 젊은이들이여 환상을 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쫓아 가보자.
1.환상(Vision)이란 무엇인가 본문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환상(Vision)과 꿈(Dream)은 다르다. 환상(Vision)은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보는 것이다. 기도 중에나, 묵상 중에나,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임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변화산 사건(마17:1-), 엘리사벳의 일(눅1:22), 다메섹 도상의 사울(행9:4), 아나니아의 일(행9:10), 고넬료의 일(행10:3), 베드로의 환상(행10), 아브라함의 경우(창15:1-), 사도 요한의 경우(계1:10) 등등이다. 꿈(Dream)은 잠든 상태 곧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꿈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야곱의 꿈(창28:12), 요셉의 꿈(창37:5), 바로의 꿈(창41:25), 다니엘의 꿈(단7:1), 느부갓네살의 꿈(단2:1), 요셉의 꿈(마1:20, 2:22), 동방박사들의 꿈(마2:12), 빌라도 총독의 아내의 꿈(마27:19) 등등이다.
2.환상(Vision)을 본 사람들 성경에는 환상을 보고 그 환상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환상은 그들에게 소망이었고, 꿈이었다. 그 꿈(Vision)을 현실로 이룩해 낸 사람들이다.
⑴.사무엘이 있다. 사무엘상 3: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했다. 사무엘의 시대적 상황이 [말세]를 연상케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도-(환상)-흔치 않았다고 한다. 아모스 8: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다. 말씀의 기갈 시대는 엘리 대제사장으로 끝을 맺고, 사무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짐이 없이 다 이루어졌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존경하고 따랐다. 이처럼 환상(Vision)을 보고, 그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환상이 하나님의 계시이기에, 진실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기에 남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존경과 신임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⑵.아브라함이 있다. 창세기 15:1절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했다. 창세기 12장의 약속의 땅과 축복을 다시금 [이상] 중에 확인시켜 주셨다. 창세기 15: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했다. 밤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며…. 그처럼 많은 자손의 환상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마다 그 환상을 되새기고, 그 환상을 생각하며 또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삶이었다. 그 환상을 잊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그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또 믿음의 조상으로 밤 하늘의 뭇별 같이 셀 수 없는 후손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날마다 환상(Vision)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꿈(Vision)을 이루게 된다.
⑶.다니엘이 있다. 다니엘 10:14절에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고 했다. 다니엘도 요셉처럼 꿈 가지고 끔을 먹고 산 사람이다. 바벨론, 메데, 파사 제국의 총리로서 그 시대의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두가 환상(Vision)을 보고,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의 성공한 모습이다.
⑷.사도 요한이 있다. 요한 계시록 1:10-11절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님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라고 했다. 사도 요한의 본 환상(Vision)은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다. 실로 우리의 관심은 “장차 될 일”에 맞추어져 있다고 하겠다. 적어도 [성도]라면 사도 요한의 “환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언이기에, 그것도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 있고, 그 갈림길을 결정지을 대환란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신앙으로 그 대환란을 통과할 수 있을까에 자신이 없기에 관심이 더하다. 우리가 싫든 좋든, 또 불신자가 믿든 말든, 과학자들이 인정하든 인정 않든, 거기에 상관없이 사도 요한의 환상(Vision)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의 환상(Vision)은 사도 요한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장차 될 일”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주신 환상(Vision)이다. 곧 [말세]를 위해 주신 말씀이요, 계시이다.
3.환상(Vision)은 말세가 가까울수록 더욱 필요하다. 본문 2: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세상 끝날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마귀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발버둥치게 된다. 어떻게 하든지 택하신 자라도 빼내어 갈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린다(마24:24). 요한 계시록 12:12절에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고 했다.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여의치 않아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땅에 사는 인간을 동원하기 위함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자기의 때에 최후의 일전을 펼치려는 마귀인데 자기의 졸개로 동원이 안되면 그 얼마나 가혹한 고통을 주겠는가. 이 대환란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Vision)이 없이는, 저 천국의 소망이 없이는 이겨낼 엄두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말세]에는 이 환상(Vision)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4.환상(Vision)은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심으로 보게 된다 본문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진정한 의미의 환상(Vision)은 환상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 속에 “성취되지” 않는 환상은 개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림의 떡과 같은 것이다. 환상(Vision)이 환상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 환상(Vision)이 누구에게서 나왔느냐 곧 [환상의 출처]가 중요하다. 그 환상의 성취 능력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Vision의 제시가 인간에게서 라면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자체의 “믿음성”도 문제이지만 인간이 가진 능력의 한계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판의 Vision 제시는 과연 성취 능력이 있는가 실현 가능성을 먼저 저울질 해 보아야 한다. 머지 않아 대선 정국이 되겠지만 우리 나라 정치판의 Vision 제시는 모두가 헛 구호에 불과하다는 인식으로 뒤덮여 있다. 국민들이 너무나 많이 속았기 때문에 거짓말에 속고, 떠벌림에 속고 사탕발림에도 속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젊은이들이여 환상(Vision)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이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시다. “믿음성”이 없는 분도 아니요, “능력”이 없으신 분도 아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이 불러 다 쓰시는 분이시다(롬4:17).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자기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히6:18).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환상(Vision)은 바로 이런 확실한 약속이 있는 환상이라야 한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하나님은 당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어 [환상(Vision)]을 가지게 하신다. 젊은이들이여 환상(Vision)을 보라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향하여,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필요하다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5.환상(Vision)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 본문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고 했다. [말세]에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어 [환상(Vision)]을 가지게 하시는 이유가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나사렛 예수를 나의 주요,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를 “주”로 부를 수 있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다 된 것은 아니다. 진정 자신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성령님을 부어 주시어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2:4) 하는 고백이 아닐 때는 “주”로 인한 환란이나 시련이 닥쳐올 때에,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마13:21-22) 결국 “주”를 버리게 된다. 저 가룟 유다처럼.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하나님이 그를 “주”와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하도록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신 환상(Vision)이 아닌, 그 환상이 이루어진 생생한 장면을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노라고 유대인을 향하여 베드로가 외치고 있다.
이 베드로의 외침이 바로 [학원의 복음화]를 위해 외쳐야 할 우리 SFC 학생 신앙 운동원들의 [외침]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가 아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에 힘입어”가 되어야 한다. 빌립보 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SFC 학생 신앙 운동원들도 젊은이들이여 환상(Vision)을 보라 하시는 말씀을 따라 그 환상(Vision)을 보고, 가지고, 그 환상을 쫓아가며 살아감으로 우리도 가능했노라! 고백하는 [주의 젊은이들]이 되자. 주 따르는 길, 주를 위해 사는 길은, 아무런 대가도 필요 없는 길이다. 이미 우리는 그 대가를 받았다. 나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산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 당신의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드린 주님이시다. 영영 죽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당신의 몸 드려 영생의 길 열어 주신 주님이시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이에서 더 무엇 바랄게 있을까 이 몸바쳐, 이 생명 다하도록 주를 위해 살리라.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1.환상(Vision)이란 무엇인가 본문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환상(Vision)과 꿈(Dream)은 다르다. 환상(Vision)은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보는 것이다. 기도 중에나, 묵상 중에나,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임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변화산 사건(마17:1-), 엘리사벳의 일(눅1:22), 다메섹 도상의 사울(행9:4), 아나니아의 일(행9:10), 고넬료의 일(행10:3), 베드로의 환상(행10), 아브라함의 경우(창15:1-), 사도 요한의 경우(계1:10) 등등이다. 꿈(Dream)은 잠든 상태 곧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꿈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야곱의 꿈(창28:12), 요셉의 꿈(창37:5), 바로의 꿈(창41:25), 다니엘의 꿈(단7:1), 느부갓네살의 꿈(단2:1), 요셉의 꿈(마1:20, 2:22), 동방박사들의 꿈(마2:12), 빌라도 총독의 아내의 꿈(마27:19) 등등이다.
2.환상(Vision)을 본 사람들 성경에는 환상을 보고 그 환상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환상은 그들에게 소망이었고, 꿈이었다. 그 꿈(Vision)을 현실로 이룩해 낸 사람들이다.
⑴.사무엘이 있다. 사무엘상 3: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했다. 사무엘의 시대적 상황이 [말세]를 연상케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도-(환상)-흔치 않았다고 한다. 아모스 8: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다. 말씀의 기갈 시대는 엘리 대제사장으로 끝을 맺고, 사무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짐이 없이 다 이루어졌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존경하고 따랐다. 이처럼 환상(Vision)을 보고, 그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환상이 하나님의 계시이기에, 진실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기에 남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존경과 신임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⑵.아브라함이 있다. 창세기 15:1절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했다. 창세기 12장의 약속의 땅과 축복을 다시금 [이상] 중에 확인시켜 주셨다. 창세기 15: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했다. 밤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며…. 그처럼 많은 자손의 환상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마다 그 환상을 되새기고, 그 환상을 생각하며 또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삶이었다. 그 환상을 잊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그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또 믿음의 조상으로 밤 하늘의 뭇별 같이 셀 수 없는 후손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날마다 환상(Vision)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꿈(Vision)을 이루게 된다.
⑶.다니엘이 있다. 다니엘 10:14절에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고 했다. 다니엘도 요셉처럼 꿈 가지고 끔을 먹고 산 사람이다. 바벨론, 메데, 파사 제국의 총리로서 그 시대의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두가 환상(Vision)을 보고,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의 성공한 모습이다.
⑷.사도 요한이 있다. 요한 계시록 1:10-11절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님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라고 했다. 사도 요한의 본 환상(Vision)은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다. 실로 우리의 관심은 “장차 될 일”에 맞추어져 있다고 하겠다. 적어도 [성도]라면 사도 요한의 “환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언이기에, 그것도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 있고, 그 갈림길을 결정지을 대환란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신앙으로 그 대환란을 통과할 수 있을까에 자신이 없기에 관심이 더하다. 우리가 싫든 좋든, 또 불신자가 믿든 말든, 과학자들이 인정하든 인정 않든, 거기에 상관없이 사도 요한의 환상(Vision)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의 환상(Vision)은 사도 요한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장차 될 일”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주신 환상(Vision)이다. 곧 [말세]를 위해 주신 말씀이요, 계시이다.
3.환상(Vision)은 말세가 가까울수록 더욱 필요하다. 본문 2: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세상 끝날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마귀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발버둥치게 된다. 어떻게 하든지 택하신 자라도 빼내어 갈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린다(마24:24). 요한 계시록 12:12절에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고 했다.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여의치 않아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땅에 사는 인간을 동원하기 위함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자기의 때에 최후의 일전을 펼치려는 마귀인데 자기의 졸개로 동원이 안되면 그 얼마나 가혹한 고통을 주겠는가. 이 대환란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Vision)이 없이는, 저 천국의 소망이 없이는 이겨낼 엄두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말세]에는 이 환상(Vision)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4.환상(Vision)은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심으로 보게 된다 본문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진정한 의미의 환상(Vision)은 환상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 속에 “성취되지” 않는 환상은 개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림의 떡과 같은 것이다. 환상(Vision)이 환상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 환상(Vision)이 누구에게서 나왔느냐 곧 [환상의 출처]가 중요하다. 그 환상의 성취 능력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Vision의 제시가 인간에게서 라면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자체의 “믿음성”도 문제이지만 인간이 가진 능력의 한계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판의 Vision 제시는 과연 성취 능력이 있는가 실현 가능성을 먼저 저울질 해 보아야 한다. 머지 않아 대선 정국이 되겠지만 우리 나라 정치판의 Vision 제시는 모두가 헛 구호에 불과하다는 인식으로 뒤덮여 있다. 국민들이 너무나 많이 속았기 때문에 거짓말에 속고, 떠벌림에 속고 사탕발림에도 속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젊은이들이여 환상(Vision)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이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시다. “믿음성”이 없는 분도 아니요, “능력”이 없으신 분도 아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이 불러 다 쓰시는 분이시다(롬4:17).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자기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히6:18).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환상(Vision)은 바로 이런 확실한 약속이 있는 환상이라야 한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하나님은 당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어 [환상(Vision)]을 가지게 하신다. 젊은이들이여 환상(Vision)을 보라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향하여,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필요하다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5.환상(Vision)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 본문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고 했다. [말세]에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어 [환상(Vision)]을 가지게 하시는 이유가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나사렛 예수를 나의 주요,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를 “주”로 부를 수 있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다 된 것은 아니다. 진정 자신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성령님을 부어 주시어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2:4) 하는 고백이 아닐 때는 “주”로 인한 환란이나 시련이 닥쳐올 때에,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마13:21-22) 결국 “주”를 버리게 된다. 저 가룟 유다처럼.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하나님이 그를 “주”와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하도록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신 환상(Vision)이 아닌, 그 환상이 이루어진 생생한 장면을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노라고 유대인을 향하여 베드로가 외치고 있다.
이 베드로의 외침이 바로 [학원의 복음화]를 위해 외쳐야 할 우리 SFC 학생 신앙 운동원들의 [외침]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가 아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에 힘입어”가 되어야 한다. 빌립보 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SFC 학생 신앙 운동원들도 젊은이들이여 환상(Vision)을 보라 하시는 말씀을 따라 그 환상(Vision)을 보고, 가지고, 그 환상을 쫓아가며 살아감으로 우리도 가능했노라! 고백하는 [주의 젊은이들]이 되자. 주 따르는 길, 주를 위해 사는 길은, 아무런 대가도 필요 없는 길이다. 이미 우리는 그 대가를 받았다. 나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산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 당신의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드린 주님이시다. 영영 죽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당신의 몸 드려 영생의 길 열어 주신 주님이시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이에서 더 무엇 바랄게 있을까 이 몸바쳐, 이 생명 다하도록 주를 위해 살리라.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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