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 (눅8:22-25)

본문

I.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가르치실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를 한척 빌려서 그 배에 타시고는 육지에서 조금 떨어져 서 바닷가에 앉은 무리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는 밤이 되자 제자들 보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시느라고 타고 계셨던 그 배를 그대로 노를 저어 건너편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하루종일 부흥회를 인도하셨기 때문에 몹씨 피곤해서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종종 돌풍이 불어오곤 합니다. 그 밤에도 갑자기 광풍이 불어 왔습니다. 파도가 배에 부딪혀 서 배에 물이 들어 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배는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무서웠습니다. 꼭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빠져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돌보아 주소서"하고 간청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깨어서는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소리를 치셨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아주 잔잔하여 졌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풍랑이 자주 일어 납니다. 그날 밤만 일어 난 현상이 아니라, 늘 일어나는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인생의 여로입니다. 배는 우리 인생을 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여로는 고요하고 잔잔할 때도 있지만, 풍랑이 일어 날 때도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인 것과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 풍랑이 일어 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났다고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 풍랑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가져다 줍니다. 요나가 배를 타고 다 시스로 갈때에 풍랑이 일어 났습니다.(욘1:4-16) 그러자 배가 거의 깨 어지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풍랑도우리의 인생을 거의 깨지게 만듭니다. 인생의 풍랑으로 삶이 깨진 자들이 얼마나 많으지 모릅니다. 경제위기의 풍랑 으로 인생이 깨진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두려움을 가 져다 줍니다. 잔잔한 바다는 고요함과 평온함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풍랑은 고요함과 평온함을 몰아 내고,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풍랑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늘 두려움속에서 고요함과 평온함을 빼앗기도 살아야 합니다. 물질적인 큰 손해를 봅니다. 사람들은 배 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배에 싣고 가던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배 에 싣고 가는 물건들은 무역하기 위하여 싣고 가던 물건들입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을 다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큰 물질적인 손해를 보았읍니다. 인생의 풍랑은 우리가 수고하고 땀흘리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모아 놓은 물질에 큰 손해를 가져옵니다. 병에 걸리면 그로 인하여 얼마나 많 은 물질적 손해를 보는지 모릅니다. 사고가 나면 얼마나 큰 물질적 손해 가 나는지 모릅니다. 생명을 잃게 됩니다. 사람들은 풍랑이 점점 더 높이 일자,하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저 버렸습니다. 인생의 풍랑은 때로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의 길에 이런 광풍이 일어 날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통하여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믿음의 대상이 중요하다. 풍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두려워 떠는 자들을 구원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너희 믿음이 어 디 있느냐 "하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이것은제자들이 두려워하는 것과 그들의 믿음의 대상과 관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널때는 믿음이 있어서 건넜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없고서야 어떻게 갈릴리 바다를 건너갔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이 가졌던 믿음은 배였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믿었습니다. 배가 그들을 무사히 갈릴리 바다를 건네 주리라고 믿었습니다. 풍랑이 일기 전에는 배가 그들을 바다를 건너게 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풍랑이 일어나자 그배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했읍니다. 그 배가 그들을 구원하지를 못했습니다. 배는 그들의 진정한 믿음의 대상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배를 믿고 있습니다. 그 배가 우리를 지켜주 고, 보호해 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 배는 돈입니다. 돈이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를 보호 해 준다고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의 약속 보다는 쌓아 놓은 돈을 더 의지합니다. 이렇게 돈을 의지하여 인 생길을 살아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풍랑이 일면 그 돈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돈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가 없습니다. 배를 의지했던 자가 풍랑이 일자 두려움에 빠졌던 것 과 같이 돈을 의지하던 자들도 인생에 풍랑이 일어나면 두려움에 빠지고, 죽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전6:17)에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는 하나님께 두라"고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전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전도지 앞면에는 20불짜리 지폐 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사지만 잠은 못 삽니다.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지만 식욕은 못 삽니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못 삽니다. 돈으로 오락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못 삽니다. 돈으로 십자가는 살 수 있지만 구세주는 못 삽니다. 돈으로 교회 의자는 살 수 있지만 천국은 못 삽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는 무상으로 주십니다. 평소에는 돈이라는 배가 우리를 안전하게 망망대해를 건너게 해 주는 것 같이 보입니다. 돈이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풍랑이 일면 돈이라는 배는 아무런 도움이 못됩니다. 그 돈이 우리를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돈을 의지하여 살아 가려는 자들 은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자기 자신들이였습니다. 배에 타고 있는 자들 중에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출신들 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바다에서 오랜 동안 생활을 했습니다. 수 없이 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 다녔습니다.
그러므로 그 바다에 대하여 잘 알 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경험자들이 그들을 바다를 건네 주리 라고 믿고 그들을 의지하고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이들은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어두운 밤에도 바다를 잘 건너 갔습니다. 그들의 경험이 충분이 그들을 건네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풍랑이 일자 그들도 참 믿음의 대상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풍 랑 앞에는 그들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도 풍랑 앞에서는 두 려워 떨기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의지하고 살아 갑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호 해주고, 우리를 인도해 준다고 믿고, 사람들을 의지하고 살아 갑니다. 학자들을 믿습니다. 매스컴 기자들을 믿습니다. 경험자들을 믿습니다. 의사들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어떤 사람도 진정한 우리의 믿음의 대 상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믿고 살아 가려는 자들은 참 으로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그들의 사 정을 다 아뢰고 도움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뛰노는 풍랑을 꾸짖어 잠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배에 타 고 있는 자들을 죽음에서 건저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제서야 진정한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배도, 그 어떤 경험자도 진정한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 고, 오직 예수님 만이 진정한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진정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의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인생 의 풍랑에서 우리를 구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읍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그들의 믿음의 대상에 따라 다릅니다. 그 믿음의 대상이 어떠하냐에 따라 삶의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제자들은 배와 자기 자신들을 믿었기 때문에 그 날 밤에 불안과 두려움 속에 바다를 건너 갔습니다.
가는 길은 캄캄하고, 언제 풍랑이 일지 몰라 서 모두들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래서 종일 일을 하느라고 피곤한데, 한 사람도 잠을 자지 못하고 다 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울 힘이 되지 못하는 배와 자기 자신들을 믿 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를 믿지 않고, 제자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캄캄한 밤에 항해를 해도 조 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실 수 있었던 것은 그 배를 믿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믿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두려움 속 에 살아 가는 자들도 있고, 평안하게 근심 걱정 없이 살아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 우리교회 중/고/청년부가 가평으로 수련회를 갔습니다. 수련회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개울을 건너야 합니다. 평소에는 물이 많지 않아서 징검다리를 놓아 쉽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철에 장 마가 지자, 물이 가슴까지 차 올랐습니다. 물살은 보통 센 것이 아니였 습니다. 그 개울을 거너기가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먼저간 선발대가 거기에다 튼튼한 동화밧줄을 묶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밧줄을 믿지 못하여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한 두번 건너 보 고는 그 줄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세고 무서운 물이 내려오는데 도 조금도 두려움 없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충분히 지탱해주는 밧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인 도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어떤 인생의 풍랑이 와도 조금도 두 려움 없이 찬송하며 살아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믿는 자들은 두려움속에 빠져 죽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무엇을 믿습니까 여러분의 믿음 은 어디에 있읍니가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께, 예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믿어라. 예수님은 전지하신 분이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 날지 먼저 아셨읍니다.
그러므로 그 날 밤에 풍랑이 일어 난 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다음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갈 것이지, 피곤한데, 그 캄캄한 밤에 무엇때문에 그 바다를 거너가려고 했을까요 가는 앞길에 배를 삼킬 큰 풍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왜 제자들 보고 바다를 건 너가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는 그 풍랑 가운데서도 능히 그들을 지킬 수 있는 능력 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마귀 사단이 큰 풍랑을 일으켜도 능히 이길 수 있으며,
그러므로 그 풍랑이 그들을 조금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캄캄한 밤에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셨습니다. 그 리고 배에서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풍랑이 일어나서 죽게 되어서, 제자들이 아우성을 치는데도 모르시고 주 무신 것을 보면 예수님이 깊은 잠에 들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한 잠도 자지 못하고 불안해 하는데도 예수님은 그렇 게 깊은 잠을 주무신 것은 예수님에게는 그 풍랑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늘 풍랑이 일어 납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풍랑이 자주 일어 납니다.
그러므로 풍랑이 일이 나는 것은 아주 자연적인 현상 입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자가 어 디에 있습니까 다들 바다에 풍랑이 일어 나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마찮가지로 우리 인생이 가는 항해의 길에도 풍랑은 계속해서 밀려 옵니다.
인생의 길에 풍랑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시절을 잘 못 만나서 경제위기의 풍랑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내 가는 길에 불행한 일, 비극적인 일, 어려운 일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런 풍랑이 일어나도 전 능하신 우리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능히 이기시며, 우리를 그 모든 풍랑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인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는 그 풍랑과 바람도 복종하게 하는 권세가 있음을 가르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예수님은 그 피곤한 밤에 제자들을 재촉하여 바다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은 풍랑 가운데서도 예수님과 같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거센 풍랑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능히 그 들을 이길 수 있으며, 그 풍랑 가운데서도 능히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편안하게 잠을 자면서 이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못 믿는 자들은 제자들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피곤한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풍랑이 불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모든 풍랑 가운데서도 능히 구원하실 수 있으며, 모든 인생의 풍랑 가운데서도 우리를 안전게 인도하실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믿음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하여 (요16:33)에서 "이 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미 이기셨으니, 환난의 풍랑이 일 어 난다고 두려워 떨지 말고,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평안한 마음을 가 지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다는 믿음이 있는 자들 만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며,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풍랑에서 우리를 능히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국에서는 큰 바람이 불어 올때, 불이 나서 큰 피해를 많이 입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우상 앞에 불로 부터 지켜 달라고 제사를 드리곤 합니다.
중국에 있는 한 기독교인에게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서 불로 부터 우리 동네를 보호해 달라고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니, 돈을 내라고 했다. 그는 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우상이 우리를 불로 부터 구원 할 수 없기 때문에 돈을 낼 수 없다고 거절을 했다. 우상에게 드리는 제사가 끝이 났을때, 그의 집이 있는 길가에서 불이났다. 그 불은 120채의 집을 태우면서 기독교인이 살고 있는 집 쪽으로 불 어 왔다. 사람들은 그 기독교인에게 빨리 가구들을 옮기고 대피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 기독교인은 거절을 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보는 앞에 서 자기를 이 엄청난 재앙에서 구원하셔서, 만약 필요하다면 12 군단도 더 되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보내셔서라도 구원 하셔서, 하나님이 모든 신들 위에 참 하나님이 되심을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불은 점점더 그 기독교인의 집으로 다가 왔다. 이제 그 불과 그 기독교인의 집 사이에는 오직 한 채의 집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래서 그의 집이 구원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풍랑 가운데서도, 불 가운데서도 지키 실 수가 있읍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사43:1-2)에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 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함 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라" 이 전능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심을 믿고 조금도 두려움 없이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 가시기 축원합니다.

3.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라. 제자들은 풍랑이 일어 죽게 되자, 다급해 지자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피곤해서 깊이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웠 습니다. 아무리 그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지만, 자기들이 죽어가는데 체면이나 격식을 차릴 여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송해도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막 4:38)하고 구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깨어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 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아주 잔잔하게 되었 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길을 살아 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예수님을 깨워야 합니다. 아무리 죄송해도 깨워야 합니다. 체면을 불구하고 깨워야 합니다.
그런데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이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십니다. 언제나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살펴 보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피곤해서 깊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울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피곤해서 깊은 잠에 들어 있는 우리의 몸을 깨워야 합니다. 깊은 잠에 들어 있는 예수님 대신 피곤해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여러분의 몸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게 간청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해 주십시요"하고 간청해야 합니다. 풍랑이 일어나 죽게 된 제자들이 모든 체면을 다 버리고 깊이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서 살려달라고 한 것과 같이, 주님께 구해 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모든 풍랑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십니다. 그 무섭던 풍랑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는 길이 고요하고 아주 잔잔하게 됩니다. 피곤해서 깊이 잠든 여러분의 몸을 깨워서 주님 께 간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의 풍랑이 잔잔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히스기야가 25 세에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히스기는 왕이 되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다윗 왕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여러 산당 을 제하였습니다.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었습니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향하여 분향함으로 부숴 버렸습니다.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히스기야 왕은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켜 행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지 14년째가 되는 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는 자기들을 배척하고 섬기지 않는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였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은 라기스에 있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사람을 보내 어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 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당하리이다"하고 항복을 했다. 그러자 산헤립은 은 300 달란트와 금 30 달란트를 내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있는 모든 은과 금을 다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도 모자라서, 여호와의 전의 문과 자기 궁궐의 기둥에 있는 금을 다 긁어서 주었습니다.(왕하 18장)
그런데도 산헤립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 스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히스기야 왕을 치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 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는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포위하고는 성중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이스라엘 말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고 조롱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보낸 이스라엘의 사신 들이 성 위에서 우리가 아람 방언으로 말을 해도 다 알아들으니, 제발 이스 라엘 백성들로 그 말을 다 알아 듣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말로 하지 말고 아 람방언으로 말하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랍사게는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 내신 줄로 아느냐 성 위에 앉은 자들로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하고,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왕하18:27)하고는 계 속해서 이스라엘 말로 소리쳤습니다. 그러면서 "히스기야 왕이 너희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고, 너희를 앗수르 왕 산헤립에 게서 건지시리라고 하는데, 그 말을 믿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앗 수르 왕 산헤립에게서 건질 수 없느니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안에 있는 백성들은 두려워 떨게 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 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입혀서 선지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 게 보내어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그러니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청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렇게 비참한 처지에 놓이고, 풍전등화와 같 은 운명이 되자 스스로 하나님전에 나아가 기도하고, 주의 종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구스왕 디르하가가 앗수르 왕 산헤립과 싸우러 나왔다는 말이 앗 수르 왕 산헤립에게 들였습니다. 그러자 산헤립은 히스기야 왕도 자기를 배반할까바 그에게 사자를 보내어 "하나님이 너희를 앗수르 왕의 손에 붙이 지 않겠다고 하신 말에 속지 말라. 너희 하나님이 너를 아수르 왕의 손에 서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을 했습니다. 산헤립이 이 편지를 보내오자 히스기야 왕은 그 편지를 가지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펴 놓고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하고 간절 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히스기야 왕에게 보내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죽 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산헤립이 그것을 보고는 겁이나서 니느웨로 돌 아 갔습니다. 이렇게 위기를 만나면 우리는 깨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피곤 해서 주무시고 계시는 나의 몸을 깨워서 예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든 풍랑에서 구원하셔 주십니다.
스코틀랜드 서쪽에 있는 뉴우 헤브러디즈 열도(New Hebrides Islands)에 서 선교사로 일한 요한 페이톤(Rev. John G. Paton) 목사님이 천사들이 그 를 보호하신 것을 체험한 체험담을 이야기 했다. 그 곳 원주민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적대적이였다. 그래서 하루는 어느날 밤에 그 원주민들이 선 교세터를 포위했다. 그리고는 페이톤 목사님의 주택에 불을 질러 그들을 다 죽이려고했다. 페이톤 목사와 그의 부인은 꼼짝 없이 죽게 되었다. 그 무서운 공포의 밤에 페이톤 목사와 그의 부인은 그들을 그 죽음에서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다. 언제 그들이 불을 지르고 그들을 죽일지 모르는 초초함속에 페이톤 목사님 부부는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도 불을 지르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나가보니 자기들을 죽이러 왔던 원주민들이 이상하게도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는 다시는 전 과 같이 박해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1년 후에 그 원주민 부족의 족장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개종을 하였다. 페이톤 선교사는 일년전 그 날의 일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 부족의 우두머리에게 그날 밤 왜 집에 불을 지르지 않고, 우리를 죽이지 않 고 그냥 돌아 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족장은 "그날 밤 선교사님과 같이 있었던 그 사람들은 다 누구냐 "고 물었다. 선교사님은 "그 날 밤 에는 나와 우리 아내 단 둘만이 있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족장은 "그 날 밤에 수백명의 키가 크고 빛나는 옷을 입은 자들이 칼을 빼어 들고 선교센터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겁이 나서 공격하지 못했다." 고 말을 했다. 그제서냐 페이톤 목사는 하나님이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지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믿고, 인생의 길에 풍랑이 일때마다하나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994년 봄에 달라스 아침 신문(The Dallas morning news)이 텍사스 북부 지방에 있는 성인
1,011명을 상대로 그들의 믿음과 신앙생활에 대하여 설문 조사를 했다.
그런데 그 중에 87 %가 기도에는 결과가 있다는 대답을 했다. 여자는 93 %가 기도에는 결과가 있다고 대답을 하고, 남자는 80 %가 대답을 했다. 기도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반드시 있습니다. 풍랑 앞에 두려워하지만 말고, 피곤한 몸을 깨우고,주님께 간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광명한 새날이, 잔잔한 앞길이 성도님들 앞에 열릴 줄 믿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