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속에 계신 이 (빌1:1-8)
본문
오늘부터는 빌립보서를 함께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며 오늘의 만나로 삼고자 합니다.빌립보서를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로 설교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빌립보서의 주제는 ‘기뻐하자’입니다.빌립보서에는 이 단어가 16회나 나오는데 빌립보서를 공부하다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도 기뻐하던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입니다(1:1-
5).빌립보서의 수신자는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형제들입니다.본문을 보면 이들의 교제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빌립보교회는 사도행전 16장 11절에 나옵니다.마게도냐의 첫 성인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입니다.사도 바울에게 빌립보는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그곳에서 만난 루디아는 바울의 사역을 꾸준히 돕는 동역자가 됩니다.또 점을 치는 귀신들린 여자를 치료했는데 그 여자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관원들에게 끌려가 많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생각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감옥살이였는데도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미하다가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합니다(행16:11-3
4).이때부터 시작된 빌립보 성도와의 교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계속됩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에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사도 바울을 돕게 하였습니다(2:25).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로 설교하고 있습니다.이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1:4-5)
둘째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서로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빌립보교인도 그 속에 주님이 계시고(1:6),바울의 속에는 빌립보 교인이 있고(1:7) 그리고 바울 속에 주님이 계시고(1:8) 이런 생명의 깊은 교제가 이들 속에 있습니다.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요? 또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던 사회주의는 그 속에 참인간의 모습을 상실했습니다.자본주의는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물질만능사회로 가고 있습니다.‘나와 너’의 대화가 아닌 ‘나와 그것’과의 대화로 전락했습니다.꼭 부자가 돼야 성공한 것인가요? 꼭 큰 교회이어야만 능력있는 것인가요? 꼭 공부 많이 했어야 출세하는 것인가요? 외형적 성공만이 성공인가요? 내적인 인격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는 빌립보 기독공동체에서 이것을 배우게 됩니다. 감옥안과 바깥과의 깊은 교제,이익집단이 아닌 복음의 집단, 영적 가족, 새생명 공동체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그리스도의 심장이 있습니다. 이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을 성도들간의 교제라고 합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여”(1:7) 이것이 빌립보 기독공동체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창 1:26).사람은 짐승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구원과 기쁨은 그 속에 하나님께서 계실 때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의 완전한 기쁨의 교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우리 함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첫째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입니다(1:1-
5).빌립보서의 수신자는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형제들입니다.본문을 보면 이들의 교제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빌립보교회는 사도행전 16장 11절에 나옵니다.마게도냐의 첫 성인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입니다.사도 바울에게 빌립보는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그곳에서 만난 루디아는 바울의 사역을 꾸준히 돕는 동역자가 됩니다.또 점을 치는 귀신들린 여자를 치료했는데 그 여자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관원들에게 끌려가 많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생각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감옥살이였는데도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미하다가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합니다(행16:11-3
4).이때부터 시작된 빌립보 성도와의 교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계속됩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에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사도 바울을 돕게 하였습니다(2:25).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로 설교하고 있습니다.이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1:4-5)
둘째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서로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빌립보교인도 그 속에 주님이 계시고(1:6),바울의 속에는 빌립보 교인이 있고(1:7) 그리고 바울 속에 주님이 계시고(1:8) 이런 생명의 깊은 교제가 이들 속에 있습니다.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요? 또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던 사회주의는 그 속에 참인간의 모습을 상실했습니다.자본주의는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물질만능사회로 가고 있습니다.‘나와 너’의 대화가 아닌 ‘나와 그것’과의 대화로 전락했습니다.꼭 부자가 돼야 성공한 것인가요? 꼭 큰 교회이어야만 능력있는 것인가요? 꼭 공부 많이 했어야 출세하는 것인가요? 외형적 성공만이 성공인가요? 내적인 인격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는 빌립보 기독공동체에서 이것을 배우게 됩니다. 감옥안과 바깥과의 깊은 교제,이익집단이 아닌 복음의 집단, 영적 가족, 새생명 공동체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그리스도의 심장이 있습니다. 이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을 성도들간의 교제라고 합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여”(1:7) 이것이 빌립보 기독공동체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창 1:26).사람은 짐승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구원과 기쁨은 그 속에 하나님께서 계실 때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의 완전한 기쁨의 교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우리 함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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