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염려를 주께 맡겨라 (벧전5:7)
본문
지금의 학생들은 책 가방을 손으로 들고 다니는 학생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어려운 모습을 하고 다녔습니다. 까만 고무신에다 책은 보자기에다 싸가지고 다녔습니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에는 책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보자기에 싸가지고 등 뒤에 x자로나 아니면 허리에 메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 책과 도시락이 있기 때문에 한쪽을 끈과 같이 길게 해서 어께에 메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부터는 책보를 가지고 다닐수 없고 고무신도 신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방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런데 책이 너무 많기 때문에 통학 거리가 먼 사람들은 책가방이 큰 짐이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책가방 때문에 학생들의 신체가 바르지 못하고 변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너무 무거운 짐은 신체에 큰 지장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대적으로 오늘날은 자동차가 많아져서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지거나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년 전에는 모든 짐은 사람의 힘으로 지거나 머리에 이거나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대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교육열이 이렇게 높아진 것도 이 힘든 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힘든일에 지친 부모는 자식은 공부를 많이 시켜서 힘든 일을 시키지 않게 하려고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 힘든 일 안하려면 공부 잘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일하는 노동을 구분해서 white collar-즉 사무계통에서 일하는 정신노동자(샐러리맨)를 말하고, blue collar-즉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New coolar 가 생겼습니다.-이것은 서비스 업이 발달하면서 맞벌이 부부가 맣이 생겼습니다.이들을 뉴 칼라 라고 합니다. gray collar(그레이 칼라) 기술이 발달하니까 모든 것이 기계화 되니까 육체노동도 기계가 다 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 사이의 구별이 점차 없어지니까 생기게 된 말입니다. 여기에 신화이트 칼라가 생겨 났습니다. 관리직과 고급 기술직의 두뇌 노동자가 전문화 되어서 생겨난 용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의 모든 사람이 육체적으로도 무거운 짐을 지는 일을 힘들어 합니다. 계속해서 그 짐을 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화와 기술이 발달되어 이러한 힘든 일은 기계가 할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에게는 이러한 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산 같은 납덩이가 나를 짓눌러 괴로와 견딜 수 없는, 참으로 무거운 짐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문명이 발달한 시대에는 무거운 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하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에는 기쁨이 없고 죽고 십은 마음 뿐입니다.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본문에 말한 “염려”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무거운 짐들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감히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염려”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도 청년들에게도 노인들에게도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짐을 감당치 못하여 자신의 생명을 끝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본문은 시편 55:22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짐”과 “염려”는 악한 자들로 부터 받는 핍박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여러가지 걱정이나 고민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그러한 문제로 고민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맡기라”는 말씀은 “던지라”는 뜻입니다. 던진다는 것은 쓸데 없고 해로운 것을 내버리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권고”하시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권고하심이니라”는 뜻은 “돌보아 준다” “관심을 갖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시편37:5“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고 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산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짐꾼입니다. 저 높은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 많은 장비가 필요하는데 산 중턱까지 짐을 옴겨주는 사람을 핼파(helper)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핼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에서도 절대적인 능력과 힘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핼파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핼파가 되십니다. “네 짐을 내게 다 맡겨라” “염려도 맡겨라” “네 길도 맡겨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한 여인이 스위스 중부에 있는 5천 피트의 리치산 정상에 오르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짐은 적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안내자는 그녀에게 짐을 운반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짐 일부만 맡기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오르겠다고 했습니다. 산에 오를수록 그 여인은 자신의 짐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안내자는 등산용 지팡이만 빼고 그 외의 짐은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집스럽게 짐을 가지고 오르며 힘들어 했습니다. 보다 못한 안내자는 다시한번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기라고 요청했습니다.그 녀는 한참 후에 모든 짐을 안내자의 튼튼한 어깨에 짐을 맡곁습니다.모든 짐을 맡기고서야 나머지 길을 쉽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짐을 맡긴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짐을 맡기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짐을 맡기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짐을 우리 스스로 지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은 우리 인생의 동반자이며 아내자이신 주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어린 솔로몬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셨고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님의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할 때에 그의 모든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떠났으며, 그 아들 이삭의 아내 즉 아브라함의 며느리를 구할 때에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예비하시리라는 믿음으로 그 종 엘리에셀을 화란으로 보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아브라함과 이삭을 위해 기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결과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찬송가에도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마태복음6:25-34 절에서 주님은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나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나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으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을 향하여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염려가 있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야 가능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태산과 같은 문제도 주님께 맡기면 우리의 짐은 가볍고 쉬워 집니다.
그런데 책이 너무 많기 때문에 통학 거리가 먼 사람들은 책가방이 큰 짐이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책가방 때문에 학생들의 신체가 바르지 못하고 변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너무 무거운 짐은 신체에 큰 지장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대적으로 오늘날은 자동차가 많아져서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지거나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년 전에는 모든 짐은 사람의 힘으로 지거나 머리에 이거나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대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교육열이 이렇게 높아진 것도 이 힘든 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힘든일에 지친 부모는 자식은 공부를 많이 시켜서 힘든 일을 시키지 않게 하려고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 힘든 일 안하려면 공부 잘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일하는 노동을 구분해서 white collar-즉 사무계통에서 일하는 정신노동자(샐러리맨)를 말하고, blue collar-즉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New coolar 가 생겼습니다.-이것은 서비스 업이 발달하면서 맞벌이 부부가 맣이 생겼습니다.이들을 뉴 칼라 라고 합니다. gray collar(그레이 칼라) 기술이 발달하니까 모든 것이 기계화 되니까 육체노동도 기계가 다 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 사이의 구별이 점차 없어지니까 생기게 된 말입니다. 여기에 신화이트 칼라가 생겨 났습니다. 관리직과 고급 기술직의 두뇌 노동자가 전문화 되어서 생겨난 용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의 모든 사람이 육체적으로도 무거운 짐을 지는 일을 힘들어 합니다. 계속해서 그 짐을 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화와 기술이 발달되어 이러한 힘든 일은 기계가 할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에게는 이러한 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산 같은 납덩이가 나를 짓눌러 괴로와 견딜 수 없는, 참으로 무거운 짐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문명이 발달한 시대에는 무거운 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하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에는 기쁨이 없고 죽고 십은 마음 뿐입니다.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본문에 말한 “염려”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무거운 짐들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감히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염려”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도 청년들에게도 노인들에게도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짐을 감당치 못하여 자신의 생명을 끝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본문은 시편 55:22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짐”과 “염려”는 악한 자들로 부터 받는 핍박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여러가지 걱정이나 고민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그러한 문제로 고민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맡기라”는 말씀은 “던지라”는 뜻입니다. 던진다는 것은 쓸데 없고 해로운 것을 내버리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권고”하시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권고하심이니라”는 뜻은 “돌보아 준다” “관심을 갖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시편37:5“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고 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산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짐꾼입니다. 저 높은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 많은 장비가 필요하는데 산 중턱까지 짐을 옴겨주는 사람을 핼파(helper)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핼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에서도 절대적인 능력과 힘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핼파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핼파가 되십니다. “네 짐을 내게 다 맡겨라” “염려도 맡겨라” “네 길도 맡겨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한 여인이 스위스 중부에 있는 5천 피트의 리치산 정상에 오르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짐은 적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안내자는 그녀에게 짐을 운반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짐 일부만 맡기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오르겠다고 했습니다. 산에 오를수록 그 여인은 자신의 짐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안내자는 등산용 지팡이만 빼고 그 외의 짐은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집스럽게 짐을 가지고 오르며 힘들어 했습니다. 보다 못한 안내자는 다시한번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기라고 요청했습니다.그 녀는 한참 후에 모든 짐을 안내자의 튼튼한 어깨에 짐을 맡곁습니다.모든 짐을 맡기고서야 나머지 길을 쉽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짐을 맡긴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짐을 맡기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짐을 맡기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짐을 우리 스스로 지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은 우리 인생의 동반자이며 아내자이신 주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어린 솔로몬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셨고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님의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할 때에 그의 모든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떠났으며, 그 아들 이삭의 아내 즉 아브라함의 며느리를 구할 때에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예비하시리라는 믿음으로 그 종 엘리에셀을 화란으로 보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아브라함과 이삭을 위해 기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결과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찬송가에도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마태복음6:25-34 절에서 주님은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나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나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으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을 향하여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염려가 있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야 가능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태산과 같은 문제도 주님께 맡기면 우리의 짐은 가볍고 쉬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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