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고전6:9-20)

본문

송사의 문제를 지난 주에 언급하면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할 자요, 천사들도 판단할 자라는 놀라운 성도의 자격과 지금 넘어지고 쓰러져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으로 인해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진다는 분명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성도의 마땅한 바는 차라리 불의를 당할 지언정 불의를 행하지 말고 차라리 속을 지언정 속이는 자가 되서는 않된다는 사실도 분명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세상과 천사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심판할 성도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의를 행하는 것이요,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있을 때에 참 믿음인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는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구체적인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본론
1. 불의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지 못합니다.(9-10 ) / 이는 단순한 허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불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불의한 자가 어떤 자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음과 같은 일에 미혹을 받아선 않된다고 하십니다.
1) 먼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는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입니다.(9 ) / 이것들은 모두 음란에 관한 것으로서 한덩어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우상숭배는 항상 사람들의 음란한 정욕을 노골적이고 합법적으로 만족시켜주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예) 바알과 아세라(풍요의 신) / 바알은 남성신이고 아세라는 여성 신이다. 그래서 이 둘이 교합을 할 때 모든 만물이 결실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 앞에 제사하는 사람들이 함께 음행을 하므로서 이 두 암수컷 신을 교미하도록 감동하려 했다. 몰록(강성을 위한 자녀 다산), / 자녀를 제물로 불속에 던지며 역시 광란의 제의를 가졌고 그 가운데 가장 절정은 남녀가 여기 저기 뒤엉켜 음행을 하는 것이다. 아데미 여신(수많은 유방으로 둘러쌓여 있는 가슴을 지닌 다산 신) / 이 덕분에 아데미 여신의 전각에는 항상 수천명의 여사제가 접대부로서 대기하고 있었고 많은 여행자들에게 이 아데미 여신전 탐방은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었던 것이다. 이상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무엇하나 할것없이 우상숭배는 다 제례의식에 음란한 광기를 발동하여 난장판을 이룸으로 끝을 맺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신 고귀한 성을 더럽힙니다. 예를 들어 무당의 삶은 거의 예외가 없이 항상 불륜의 관계를 갖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보다도 그를 사로잡고 있는 더러운 귀신의 장난이요,계획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 나라의 모델인 가정이 파괴되고 하나님을 알만한 선한 양심이 더러워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입니다.(롬 1:23 ) 그리고 그같이 더러워진 영혼은 이제자기의 충실한 노예로 남게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에 언급한 것들은 우상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빛어지는 것이요, 결국에는 모든 삶으로 연결된 음란한 저들의 삶의 모습을 성경은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고(롬14:17 ) 무릇 더러운 것이나 악한 것은 그리로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슥13:2, 계21:8)
2) 또한 부류의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들은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입니다.(10 ) / 이는 비인격적인 우상숭배와 이에 기인한 음란한 삶으로 말미암아 빛어지는 자연스런 부도덕이요, 악입니다. 여기서 탐람은 탐도로서 재물이나 음식을 너무 탐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식도락가나 욕심으로 무조건 자기것으로 삼으려하는 탐욕을 말한다. 이같은 결론으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이유는 우상숭배 자체가 사람의 욕심을 만족시켜주는 풍요라든지 다산을 목적으로 하며, 더구나 음란까지 가세하여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을 더럽힌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 안에서 맺어 주신 고귀한 성의 연합인 가정은 파괴되고 자손 대대로 이러한 부도덕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이제 고린도 교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전에 이와같은 삶을 살았으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님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11 )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이와같이 모든 죄를 불의를 정결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믿을 때에 주시는 성령님은 언제나 성도와 함께하셔서 우리의 불의한 모든 육성이 재발하지 않도록 돌봐주시고 경건의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씻음과 거룩함이 되었으니 더 이상 그 가운데 거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의 승리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귀와 내속의 옛사람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죄를 짖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셨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거하셔서 늘 심장을 권고하시고, 성령님께서도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심으로 죄의 정욕을 능히 이기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죄의 정욕이 나를 엄습할 때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넘어졌다면 이는 기도하지 아니한 연고이다. 찬송)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 시시때때로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제 제시되는 바울의 고백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결정원리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2-20 )
1) 먼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12 ) /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해도 자신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진정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세상에서 누구에게 있겠는가 그것은 크리스챤입니다. 그리스도인 만큼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락을 해도 사행에 치우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규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도 사실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것이 죄가 아닐진대 모든 것이 자유입니다. 바울은 이 자유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사람을 자유롭게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완전한 자유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도 우리를 종으로 삼기 위해서 그리한 것이 아니요, 완전히 자유로운 인격으로서 스스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8:32 ) 그러나 이 자유를 방종의 기회를 삼지말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종노릇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에는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절제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모든 것을 다 해버린다면 그 사람은 필시 얼마 못되어서 망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믿음의 분수를 알아 지혜롭게 처신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마지막 온전케하시는 열매가 바로 절제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일에 절제하는 것은 이기기를 다투는 운동 선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는 것이 죄냐 아니냐를 따지는 성도는 이미 실패의 문을 넘어선 것입니다. 승리하는 성도는 오직 그 일이 내게 영적으로 유익한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하며 주님께서 이 일을 기 뻐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상을 위해서 경주하는 성도는 반드시 절제해야 합니다. 이제 바울은 우리가 절제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2) 몸은 주를 위한 것이요, 주님은 몸을 위하신 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13 ) / 즉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그 피로 사신바 된 그리스도의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싸우는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몸은 내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것으로 그 지체가 되었으니 당연히 내 몸을 내가 주장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찾아서 행하는 것이 바로 모든 것이 가한 우리의 절제의 첫번째 원리입니다.
3) 더구나 바울은 이제 성도의 부활을 들어서 몸으로 그 밖에 죄는 물론이요, 음란을 행치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4 ) / 그 이유는 음행은 그리스도의 지체를 창기의 지체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5-16 ) /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한몸으로 만드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요, 완전한 인격적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기와 합하는 자는 창기와 한 인격,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고 한영이 되어 완전한 그리스도와의 연합니 이루어져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성만찬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같이 그 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 성도에게 간음이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몸을 창기의 몸이 되게하는 엄청난 죄악인 것입니다.
4) 특별히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은 자기의 몸에 죄를 쌓는 것이라고 하여 이는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자해행위와도 같은 것임을 경고합니다.(18 ) / 자기의 몸에 죄를 쌓고 더럽혔을 때 과연 부활 때에 그에게 허락될 부활의 몸은 어떤 영광이 있겠는가 상상해 보십시요. 벌거벗은 자신의 영혼과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5) 그리고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음행을 피하라고 하셨습니다.(18上) /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음행을 피하라고 하십니다. 한번 이에 넘어지면 가산을 탕진하고 매를 맞고도 부끄러움을 영영히 씻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잠6:33 ) 다윗은 이를 피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고 밤마다 죄책으로 인한 눈물로 침상을 띄우는 참으로 괴로운 뼈를 깍는 회개를 해야했습니다. 피흘린 죄에서 나를 구원해 달라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간구했으며, 내 속에 영을 새롭게 해달라고 정한 마음을 달라고 참회하는 그의 모습을 보십시요. 제발 내게서 주의 성령님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이전에 누렸던 주님과의 영적 교통을 다시 회복해 달라고 간구하는 다윗의 그 영적인 고통을 상상해 보십시요. 지옥과 같이 짓눌러 대는 사탄의 참소 소리, 그 농도 높은 비웃음 소리를 상상해 보십시요.(시51편) 단 한번의 실수가 이토록 큰 고통을 수반합니다. 나실인 삼손도 음란을 피하지 못해서 결국은 두 눈을 뽑히고 비참하게 짐승처럼 그 최후를 마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그것이 다가올 때 지혜롭게 피했습니다.
그러므로해서 요셉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았고 영광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행은 피해야 합니다. 음란을 대적해서 이길 장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음란을 피하시길 축원합니다.

4. 이제 바울은 마지막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립니다.(19-20 ) / 다시 한번 우리의 주의를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진리로 환기 시킵니다. 우리의 승리는 사실 우리의 노력이 아니요, 내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승리로 이끌어 주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당할 때에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를 가장 현실적으로 느끼며 주님을 기억하여 그 상황를 주님께 부탁드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헤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의 영광스러움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자 이제 바울은 음행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주지시킴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1) 너희 몸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9 ) /
그러므로 자기 몸을 음란으로 더럽히는 것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음란으로 더럽히는 엄청난 죄악일 뿐아니라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는 두려운 일인 것입니다. 성령님을 근심케하는 것이요, 성령님의 모든 은혜를 소멸케 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계속해서 더럽히면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그 속에 거하시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성경에 보면 우리의 구원은 성령님안에서 인침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엡4:30 ) /
그러므로 성령님을 근심케 하면 성령님은 떠나가시고 그의 구원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오늘 서두에 말씀처럼 음란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함으로 범죄한 후에 내게서 성령님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 몸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전이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선 않됩니다.
2) 그리고 또한가지는 너희 몸은 더 이상 너희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너희몸을 너희가 주장할 권리가 없음을 선포합니다. (20 ) / 성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 순간부터 내 몸은 주님의 것이요,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사신바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제 그 몸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을 위해서,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결언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요 성령님의 거하시는 전입니다. /
그러므로 성도에게 음행이란 가당치도 않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 음행은 맞서서 싸울 것이 아니요, 반드시 피해야 할 것입니다. /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구속받은 성도의 몸을 음란으로 더럽히려고 교 활한 방법과 미끄러운 환상으로 우리를 미혹할 것입니다. 혹은 낭만이 라는 명목으로 혹은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이 때 뱀같은 피하는 지 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한 중심이 필요합니다. /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 이제 나를 구속하신 주님을 위해서 우리 몸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할 수 있을까를 늘 기억하며 그러한 중심으로 살아 야 합니다. / 그러면 주님께서 최후 부활 때 그같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몸으로 영광을 돌린 성도에게 참으로 놀랍도록 영광스러운 몸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 그날의 영광에 동참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