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생명이 무엇이뇨 (잠16:1-9약4:13-17)
본문
야고보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세상을 사랑하고 또 자기자신만을 신뢰 하는 자들의 어리석고 허무함을 어리석은 한 장사꾼의 예를 들어 경고하고 있다. 사실 이 세상의 주관자이시요, 인간의 생사화복을 친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떠나서 어떤 좋은 것을 얻어 보겠다고 하는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우리는 해가 뜨면 곧 사라져 버리는 아침안개와 같 은 존재가 아닌가 우리의 인생을 이처럼 짧고 덧없다. 그러나 영원한 기쁨 과 영원한 슬픔이 우리가 누리는 이 짧은 인생 가운데서의 결단에 따라 결 정된다는 것은 명심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이 짧은 인생 동안 부지런히 자 신의 영원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의 뜻에 의존해야 한다. 당시 유대인 행상인들은 헬라 세계를 두루 다니며 장사하여 많은 이익을 남기곤 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행상에 관한 한 자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행상으로 얻은 부를 누리면서 자신의 운명까지도 스스로 좌지우지 할 수 있 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행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 의 미래에 대해 자랑했다. 물론 행상인들의 논리로 본다면 그들의 미래는 탄탄대로요, 확실한 보장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행상인들은 하나님의 존재 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불신앙적 태 도에 있다. 행상인들은 미래를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미래는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다. 그들은 바로 이점을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불신앙자들이었다. 어리석은 인생도 자신의 내일이 보장된 듯이 오늘을 탕진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기 일쑤이다. 야고보는 이러한 자들을 향해 결코 내일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잠언 16:9에 말씀하 고 계신다. 내일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피조 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자이다. 그들은 하루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잠언 27:1) 미래를 확신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피조물 존재를 깨닫고 미래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14절에 인생은 무상(무상)한 존재를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피조 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야 고보의 지적처럼 인간은 내일일을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경험으로 내일은 어떨 것이라고 예견할 수 없다. 만일 내일 어떤 일을 하겠다고 계획 을 세웠고 그 계획대로 된다면 이 세상에는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야고보는 인생을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하였다. 새벽 하늘에 낀 안개는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가득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안개란 결국 해가 뜨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점은 조만간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아닌가 제 아무리 야단스럽게 살 아도 하나님이 한번 부르시면 아침안개가 사라지듯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대도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한다. 오히려 미래 에 대한 강한 확신과 생명이 지속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익에 불타오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믿음 으로 살아야 한다.
15-16절에 인생의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라 했다. 잠간 보이다가 없어 질 안개와 같은 인생이 장래를 자랑한다면 그것은 교만하고 공허한 것을 의 지하는 불신앙이다. 곧 허탄한 자랑은 사람이 주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의 인간적인 수완이나 재주나 명예 혹은 재물등을 믿고 자랑하는 것으로 부당 하게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높여야 할 하나님을 무시하는 공허한 자랑은 죄악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생의 주관자 앞에서 생명의 주인은 자신이요, 자신이 이루어 놓은 업적은 영원하리라고 자랑하는 일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까지도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생의 자랑을 내세우다가 끝내 허망하게 끝날것이 아 니라 오직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생명과 거룩한 삶을 보장 받아야 한다.
17절에 이를 알고도 행치 않음은 죄라고 했다. 인생은 무상하되 하나님 안에서 의미가 있고 헛된 이 생의 자랑은 공허하되 주 안에서 행함은 유익 이라는 사실, 이 사실을 알면서 행치 않은 것은 죄라는 의미이다. 야고보는 주 안에서 자행자지(자행자지)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그리스도 인의 삶을 강조한 후에 그것이 교훈으로 그치지 않고 순종으로 나타나야 한 다는 사실을 재강조하였다. 더욱 단순한 태도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 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즉 생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알면서 행치않고 알면서 범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마11:20).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불신앙은 그들이 몰라서 범한 죄악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주를 기다려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를 십자가에 매달았고 주님의 복음을 배척했다. 실로 행하지 않는 믿음 모양은 있으되 소망이 없는 믿음의 결과는 범죄로 이어졌다. 오늘 말씀의 교훈은 나의 일도 나의 행함도 나의 생명도 주님의 뜻에 달 려 있다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실로 인간은 내일일을 알 수 없다.
A. D. 60년경 폼페이를 폐허로 만든 화산이 폭발했을때 그것을 예견하고 준비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우상과 향락의 도시였던 폼페이의 주민들은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향락을 일삼았다. 오늘날 고고학의 발달로 베일에 싸인 폼베이의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그 중에는 숟가락을 입 에 물고 있는 사람의 화석도 있었다고 한다. 그 화석의 주인공은 그 밥을 먹고 어떤 일을 하려고 했을까 이처럼 사람의 미래란 불확실 그 자체이다. 구약의 시인은 우리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여호와께 의지하면 이루신다고 하였다(시37:5).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한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맡기 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바른 길이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흥망성쇠)의 주관자도 하나님이시요, 한 인간의 생사화복권 도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역사의 심판도 하나님만이 하신 일이고, 이세상 되어가고 보고있는 현상들이 여기에 기인하고 있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세계정세도 많이 변해가고 변해오고 있다. 세상사 모든 만 사가 다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 속에 되어가고 있다. 인간들은 진솔하게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내어놓고 맡기고 순종하는 믿음의 지혜를 배우며 너의 생 명이 무엇이뇨 하는 물음을 묻자.
그러나 행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 의 미래에 대해 자랑했다. 물론 행상인들의 논리로 본다면 그들의 미래는 탄탄대로요, 확실한 보장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행상인들은 하나님의 존재 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불신앙적 태 도에 있다. 행상인들은 미래를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미래는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다. 그들은 바로 이점을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불신앙자들이었다. 어리석은 인생도 자신의 내일이 보장된 듯이 오늘을 탕진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기 일쑤이다. 야고보는 이러한 자들을 향해 결코 내일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잠언 16:9에 말씀하 고 계신다. 내일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피조 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자이다. 그들은 하루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잠언 27:1) 미래를 확신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피조물 존재를 깨닫고 미래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14절에 인생은 무상(무상)한 존재를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피조 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야 고보의 지적처럼 인간은 내일일을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경험으로 내일은 어떨 것이라고 예견할 수 없다. 만일 내일 어떤 일을 하겠다고 계획 을 세웠고 그 계획대로 된다면 이 세상에는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야고보는 인생을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하였다. 새벽 하늘에 낀 안개는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가득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안개란 결국 해가 뜨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점은 조만간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아닌가 제 아무리 야단스럽게 살 아도 하나님이 한번 부르시면 아침안개가 사라지듯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대도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한다. 오히려 미래 에 대한 강한 확신과 생명이 지속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익에 불타오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믿음 으로 살아야 한다.
15-16절에 인생의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라 했다. 잠간 보이다가 없어 질 안개와 같은 인생이 장래를 자랑한다면 그것은 교만하고 공허한 것을 의 지하는 불신앙이다. 곧 허탄한 자랑은 사람이 주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의 인간적인 수완이나 재주나 명예 혹은 재물등을 믿고 자랑하는 것으로 부당 하게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높여야 할 하나님을 무시하는 공허한 자랑은 죄악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생의 주관자 앞에서 생명의 주인은 자신이요, 자신이 이루어 놓은 업적은 영원하리라고 자랑하는 일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까지도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생의 자랑을 내세우다가 끝내 허망하게 끝날것이 아 니라 오직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생명과 거룩한 삶을 보장 받아야 한다.
17절에 이를 알고도 행치 않음은 죄라고 했다. 인생은 무상하되 하나님 안에서 의미가 있고 헛된 이 생의 자랑은 공허하되 주 안에서 행함은 유익 이라는 사실, 이 사실을 알면서 행치 않은 것은 죄라는 의미이다. 야고보는 주 안에서 자행자지(자행자지)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그리스도 인의 삶을 강조한 후에 그것이 교훈으로 그치지 않고 순종으로 나타나야 한 다는 사실을 재강조하였다. 더욱 단순한 태도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 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즉 생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알면서 행치않고 알면서 범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마11:20).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불신앙은 그들이 몰라서 범한 죄악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주를 기다려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를 십자가에 매달았고 주님의 복음을 배척했다. 실로 행하지 않는 믿음 모양은 있으되 소망이 없는 믿음의 결과는 범죄로 이어졌다. 오늘 말씀의 교훈은 나의 일도 나의 행함도 나의 생명도 주님의 뜻에 달 려 있다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실로 인간은 내일일을 알 수 없다.
A. D. 60년경 폼페이를 폐허로 만든 화산이 폭발했을때 그것을 예견하고 준비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우상과 향락의 도시였던 폼페이의 주민들은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향락을 일삼았다. 오늘날 고고학의 발달로 베일에 싸인 폼베이의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그 중에는 숟가락을 입 에 물고 있는 사람의 화석도 있었다고 한다. 그 화석의 주인공은 그 밥을 먹고 어떤 일을 하려고 했을까 이처럼 사람의 미래란 불확실 그 자체이다. 구약의 시인은 우리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여호와께 의지하면 이루신다고 하였다(시37:5).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한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맡기 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바른 길이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흥망성쇠)의 주관자도 하나님이시요, 한 인간의 생사화복권 도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역사의 심판도 하나님만이 하신 일이고, 이세상 되어가고 보고있는 현상들이 여기에 기인하고 있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세계정세도 많이 변해가고 변해오고 있다. 세상사 모든 만 사가 다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 속에 되어가고 있다. 인간들은 진솔하게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내어놓고 맡기고 순종하는 믿음의 지혜를 배우며 너의 생 명이 무엇이뇨 하는 물음을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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