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관대 (야고보서 강해 7) (약4:11-17)
본문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너는 누구관대'하며 두 가지 경우를 들어 우리에 게 질문을 던집니다.
1. 그 첫번째 경우가, 너는 누구관대 교우를 비방하고 판단하느냐 입니다. (11-12)
1) 교회, 신앙 공동체를 이룸에 있어서 교우간에 있어서 엄격히 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ㄱ.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헐뜯다
ㄴ. 피차에 판단하지 말라.-심판하다-> 이왕이면 좋게 이야기 해 줄 것도, 꼭 깎아 내려서 이야기하는 이가 있습니다. 좀처럼 남을 인정해주지 않는 이가 있습니다. 언제나 남이 뭐를 하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이가 있습니다. 안됩니다, 여러분. 서로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이 유가 있습니다.
2) 왜 이것을 행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11)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우리가 서로 판단한다는 것은 우리가 재판장이 된다는 뜻입니다. 무 엇으로 재판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판하는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겁니다. 똑똑 해 보이지만, 경건해 보이지만, 성경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쑤군거리고, 판단 비방하는 권세가 주어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것은 월권(越權)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만일 율법을 갖고 판단하면 우리는 율법의 준 행자, 즉 준수자가 아니요, 재판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도전이지요. 게다가 마7: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이 말씀은 비판을 받으려 거든 서로 비판해도 좋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도무지 형제간에 비판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을 삼가십시오.
3) 판단에 대한 교훈들 도리어 성경이 말하는 판단, 비판에 대한 말씀들을 찾아봅시다.
ㄱ. 롬2: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 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 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결국 네 자신이 그렇게 되어 갈 것이다 라고 합니다. 나는 간혹 두 려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혈기 왕성하여, 정의감 에 충만하여 큰 소리 치고 살 때, 기성 목사님들을 보고, '목사님이 왜 저래 목사님은 이래야지'하며 비판하던 그 내용들이 바로 내가 점점 그렇게 되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언제나 내가 남을 향하여 비판하던 것들이 어느새 내 안에 깃드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섬뜩해집니다. 어쩌면 남을 향해 침을 뱉는 것은 결국 공중에 뱉는 것으로, 자기 얼굴로 그대로 떨어진다는 사 실을 느끼곤 합니다. 자기는 괜찮다고, 자기는 안 그런다고, 자기는 깨끗하다고, 남을 무자비하게 비판하지 마십시오. 언제자기가 그렇 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도리어 성경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남을 판 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ㄴ. 롬14: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 셨음이니라"-> 신앙 생활하며 뭘 먹고 안 먹는 것으로 신앙의 정도를 판단하지 마 십시오. 뭘 마시고 안 마시고로 비판하지 마십시오.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목사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목사님께서 스튜어디스가 와서 뭘 권하니까 고개를 끄덕입니다. 조금 있으려니, 뭘 들고 마시는데, 보니까, 멋지게 생긴 유리 글라스에 빨갛게 생긴 액체가 담겨 있습니다. 뭡니까 포도주! 아니, 목사님이 포도주를 놀래기는 했지만, 그게 내가 상관할 것인가 저 분은 저걸 마셔도 끄덕 없는 신앙인가 보다 하면 됐지, 그것 갖고 이러쿵저러쿵 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술!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그거야 개인의 신앙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것까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몸에 나쁜 술을 어떻게 개인에게 맡길 수 있느냐고 항의 하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몸에 나쁜 음식들까 지 일일이 챙겨서 먹어라 말아라 해야할 것 아닙니까! 순 쌀밥, 이 게 몸에 얼마나 나쁜 지 아십니까 현미, 잡곡을 섞어 먹어야지. 고 기! 다이옥신이 두렵지 않습니까 바퀴벌레, 모기를 잡는다고 스프 레이를 뿌릴 때마다 다이옥신이 얼마나 나오는 지 아십니까 그렇다 면 교인들에게 고기 먹지 마라, 바퀴벌레, 모기는 손수 잡으라,… 이런 것까지 설교해야 합니까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야말로 신앙의 분량에 따라, 끄덕 없는 이, 연약한 이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받으셨다는 것, 당신의 자녀로 삼 으셨다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셨으면 됐지, 뭘 그런 것으로 서로 실족케하고 상처 줄게 뭡니까
ㄷ. 롬14:4-"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 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사람의 얼굴이 천차만별이듯이, 사는 모습도 천차만별입니다. 은혜 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은혜의 내용, 그것을 받는 그릇들은 모두 다 릅니다. 은혜를 받으면 어떤 이는 웁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웃습니다. 또 어떤 이는 뒹굽니다. 펄쩍 펄쩍 뛰는 이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다 다릅니다. 새벽에 하는 이, 낮에 하는 이, 밤에 나와 하는 이, 기도의 때가 다르고, 기도하는 스타일, 어떤 이는 무 릎 꿇고, 어떤 이는 손을 들고, 중얼거리며, 소리를 내어,.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스타일만 고집부리 며 남을 판단하는 것, 그것은 옳은 일이 못됩니다. "남의 하인을 판 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 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 니라" 주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회복되는 것은 모두 그 주인의 판단에 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 맡기십시오. 판 단의 권능은 주인에게 있습니다.
ㄹ. 롬14: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 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 라"-> 두렵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데 남을 자주 판단하고, 비판하던 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토록 완 벽할까요 두려운 일입니다.
ㅁ. 고전4:3-"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 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너무 민감해 하지 않는다는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거기에 귀 기울였다가는 주님 의 일을 전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교회에만 해도 얼마 나 다양한 사람들, 많은 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모두 충족시켜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뒤에서 궁시렁 궁시렁하는 이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바른 생각만 있다면 그런 비판, 소문에 귀 기울이 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스스 로를 바라보면 "잘났어 정말!" 하지 않는답니다. 여러분, '잘 났어 정말!'은 무슨 뜻입니까 정말 잘 났다는 것인가, 아니면 못났다는 것입니까 두 의미가 다 있습니다. 말하는 억양에 따라 다릅니다. 자기를 판단하되 정말 잘 났다고 교만해 하지도 않고, 정말 못났다 고 자기를 비하하지도 않는다는 뜻!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 실한다는 것입니다.
ㅂ. 고전4:4-"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 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나 자신이 나를 보 고 판단하는 것에도 마음 주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님이시란 사실, 거기에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산다는 뜻!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시고, 정확하신 재판관 주님이 나를 판단하 실 것이니, 내 진실과 진심이 인정받지 않겠는가 하는 든든함을 표 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옛날 어린 시절에 교회 어 른들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이겨내셨다. "주님이 아시지, 주님이 아 시지." 이것이 건강한 믿음 아닐까요
ㅅ. 고전6: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 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 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는 장차 주와 함께 세상을 판단, 심판할 것입니다. 그 뿐이 아 닙니다.
ㅇ. 고전6: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 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무엇까지 우리가 심판한다 천사! 성도가 세상도 심판하고, 천사도 심판한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권세입니까 누가 성도가! 그러니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지금, 별 볼일 없어도 장차 우리는 세상을, 천사를 심판할 심판주입니다. 엄청난 영광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ㅈ. 고전11:13-"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초대 교회 시절에 여자들이 교회당에서 예 배 드릴 때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 정숙한 여자들은 모두 머리에 너울을 쓰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교회 에 와서는 이 너울을 훌훌 벗어제치는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그것이 여자 해방 운동의 일환인 것처럼 그랬나 봅니다. 이에 교회 내에서 문제가 되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감동 속에 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즉 이 말은, 교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너희 상식으로 스 스로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정숙치 못한 여자가 너울 을 안 썼는데, 너희가 예배 때에 너울을 안 쓴다면 뭘 뜻하는 것이 냐 너희 스스로 정숙치 않음을 보여주는 행위 아니냐 하는, 스스로 상식적으로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때로는 복잡한 문제들, 교묘한 교리적 문제들, 알 수 없는 일들,. 이런 일들을 당할 때 나는 이렇게 해결책을 갖습니다. 상식! 스스로 물어봄! 그래서 스스로 상식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하면 됩니다. 상식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반 양심 아닙니까 누구에게 나 다 통하는 법도 아닙니까 그러니 늘 스스로 물어보되, 상식적으 로 물어보십시오. 가만 보면 이단 사이비로 현혹되어 가는 이들을 보면, 상식을 도외시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마치 신앙이 좋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웃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상식의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역설적인 진리, 말씀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상식적입니다. 이 상식에 충실해서 살기만 한다면, 적어도 그는 하나님의 법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습니다.
4) 자, 이상과 같이 판단에 대한 교훈들을 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누구입니까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 느냐"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판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고, 비방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께서 나에게 교우들을 주신 것은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라고 주신 것 입니다. 우리를 이 왕십리 중앙 교회로 모이게 한 것은 서로 이 교회 에서 격려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거친 세상에서 살다가 이 전에 나아 와 서로 붙들어 주고, 사랑하고, 그래서 힘을 얻어 다시금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피를 나눈 형제입니까, 아니면 같이 일하고 월급 받는 직장인입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한 교회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서로 격려하고 힘을 나누라고, 그래서 우리를 이곳에 묶여 주시고, 반가운 형제자매들을 주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 오.
2. 두 번째 경우, 너는 누구관대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자신만 만하게 시작하느냐(13-17)
1) 장사하려는 이, 개업하는 이들은 무엇을 자랑합니까-> 길목, 장소, 시기, 자본, 경험, 인간 관계, 백 그라운드, .
2)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것을 허탄한 자랑이라 합니다.(16) 왜 그것이 허탄한가요(14)->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내일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 실입니다. 다만 시작할 때 잘 될 거야 라는 기대감으로 합니다. 사업 하는 이, 개업하는 이가 '나는 한 석달만 하다가 망할거야'해서 시작 하는 이가 있습니까 경제위기가 터질 줄 우리가 알았습니까 물론 전문가 들은 우려해 왔지만, 그렇게 쉽게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내 일 일은 난 몰라요'하는 찬송이 있지만, 정말이지 우린 내일 일을 모 릅니다. 다만 여태까지 온 것으로 보아 이럴 것이다 하고 추측만 할뿐 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추측에 불과할 뿐입니다. 엉뚱한 일들, 예상 치 못한 사고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어버립니다.
둘째로, 우리의 생명이란 것이 잠깐입니다. 아침에 잠깐 보이다가 없 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버티다 보면 잘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한 번은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한 몫 잡을 때가 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한정 기다리고 버티기에는 우리 인생이 허무합니다. 너무 짧습니다. 대머리 치료약이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언젠가는 나오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갈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장사하려는 이가, 사업을 시작하는 이가 정작 자랑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내일 일도 모르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살 지 도 모르는데, 무엇을 기댈 수 있단 말입니까 도리어 그런 이들이 정 작 구해야 할, 의지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뭔가요
3) 15절,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주의 뜻!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할 수 있다는 주님의 뜻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는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지만, 주님께서 그 짧은 인생 동안 나에게 허락하신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4) 그러니 무엇이 죄인가요(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선이란 착한 일 뿐만 아니라, 옳은 일을 뜻합니다. 옳은 일, 옳은 것, 즉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주님의 뜻을 구해야 그게 옳은 자 세인데, 그것을 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세상적인 것들만 자랑하며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행 해야 할 도리를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마땅히 기도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고 사업을 벌 리는 것, 죄입니다. 마땅히 예배 드리고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구실로, '에이 뭘 잘 되 겠지'하고 하는 것, 죄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해야 함에도 은행만 믿고 하는 것, 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 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을 구하고, 의지해야 알면서도 하지 않으니 죄입니다. 이런 죄를 범함이 없기 바랍니다.
=> 우리는 오늘 두 가지 경우를 들어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너는 누구관 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안다면 그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배짱 좋게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사는 이가 있습니다. 늘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너는 누구관대.'
1. 그 첫번째 경우가, 너는 누구관대 교우를 비방하고 판단하느냐 입니다. (11-12)
1) 교회, 신앙 공동체를 이룸에 있어서 교우간에 있어서 엄격히 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ㄱ.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헐뜯다
ㄴ. 피차에 판단하지 말라.-심판하다-> 이왕이면 좋게 이야기 해 줄 것도, 꼭 깎아 내려서 이야기하는 이가 있습니다. 좀처럼 남을 인정해주지 않는 이가 있습니다. 언제나 남이 뭐를 하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이가 있습니다. 안됩니다, 여러분. 서로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이 유가 있습니다.
2) 왜 이것을 행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11)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우리가 서로 판단한다는 것은 우리가 재판장이 된다는 뜻입니다. 무 엇으로 재판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판하는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겁니다. 똑똑 해 보이지만, 경건해 보이지만, 성경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쑤군거리고, 판단 비방하는 권세가 주어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것은 월권(越權)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만일 율법을 갖고 판단하면 우리는 율법의 준 행자, 즉 준수자가 아니요, 재판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도전이지요. 게다가 마7: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이 말씀은 비판을 받으려 거든 서로 비판해도 좋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도무지 형제간에 비판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을 삼가십시오.
3) 판단에 대한 교훈들 도리어 성경이 말하는 판단, 비판에 대한 말씀들을 찾아봅시다.
ㄱ. 롬2: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 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 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결국 네 자신이 그렇게 되어 갈 것이다 라고 합니다. 나는 간혹 두 려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혈기 왕성하여, 정의감 에 충만하여 큰 소리 치고 살 때, 기성 목사님들을 보고, '목사님이 왜 저래 목사님은 이래야지'하며 비판하던 그 내용들이 바로 내가 점점 그렇게 되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언제나 내가 남을 향하여 비판하던 것들이 어느새 내 안에 깃드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섬뜩해집니다. 어쩌면 남을 향해 침을 뱉는 것은 결국 공중에 뱉는 것으로, 자기 얼굴로 그대로 떨어진다는 사 실을 느끼곤 합니다. 자기는 괜찮다고, 자기는 안 그런다고, 자기는 깨끗하다고, 남을 무자비하게 비판하지 마십시오. 언제자기가 그렇 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도리어 성경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남을 판 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ㄴ. 롬14: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 셨음이니라"-> 신앙 생활하며 뭘 먹고 안 먹는 것으로 신앙의 정도를 판단하지 마 십시오. 뭘 마시고 안 마시고로 비판하지 마십시오.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목사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목사님께서 스튜어디스가 와서 뭘 권하니까 고개를 끄덕입니다. 조금 있으려니, 뭘 들고 마시는데, 보니까, 멋지게 생긴 유리 글라스에 빨갛게 생긴 액체가 담겨 있습니다. 뭡니까 포도주! 아니, 목사님이 포도주를 놀래기는 했지만, 그게 내가 상관할 것인가 저 분은 저걸 마셔도 끄덕 없는 신앙인가 보다 하면 됐지, 그것 갖고 이러쿵저러쿵 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술!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그거야 개인의 신앙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것까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몸에 나쁜 술을 어떻게 개인에게 맡길 수 있느냐고 항의 하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몸에 나쁜 음식들까 지 일일이 챙겨서 먹어라 말아라 해야할 것 아닙니까! 순 쌀밥, 이 게 몸에 얼마나 나쁜 지 아십니까 현미, 잡곡을 섞어 먹어야지. 고 기! 다이옥신이 두렵지 않습니까 바퀴벌레, 모기를 잡는다고 스프 레이를 뿌릴 때마다 다이옥신이 얼마나 나오는 지 아십니까 그렇다 면 교인들에게 고기 먹지 마라, 바퀴벌레, 모기는 손수 잡으라,… 이런 것까지 설교해야 합니까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야말로 신앙의 분량에 따라, 끄덕 없는 이, 연약한 이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받으셨다는 것, 당신의 자녀로 삼 으셨다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셨으면 됐지, 뭘 그런 것으로 서로 실족케하고 상처 줄게 뭡니까
ㄷ. 롬14:4-"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 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사람의 얼굴이 천차만별이듯이, 사는 모습도 천차만별입니다. 은혜 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은혜의 내용, 그것을 받는 그릇들은 모두 다 릅니다. 은혜를 받으면 어떤 이는 웁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웃습니다. 또 어떤 이는 뒹굽니다. 펄쩍 펄쩍 뛰는 이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다 다릅니다. 새벽에 하는 이, 낮에 하는 이, 밤에 나와 하는 이, 기도의 때가 다르고, 기도하는 스타일, 어떤 이는 무 릎 꿇고, 어떤 이는 손을 들고, 중얼거리며, 소리를 내어,.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스타일만 고집부리 며 남을 판단하는 것, 그것은 옳은 일이 못됩니다. "남의 하인을 판 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 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 니라" 주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회복되는 것은 모두 그 주인의 판단에 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 맡기십시오. 판 단의 권능은 주인에게 있습니다.
ㄹ. 롬14: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 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 라"-> 두렵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데 남을 자주 판단하고, 비판하던 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토록 완 벽할까요 두려운 일입니다.
ㅁ. 고전4:3-"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 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너무 민감해 하지 않는다는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거기에 귀 기울였다가는 주님 의 일을 전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교회에만 해도 얼마 나 다양한 사람들, 많은 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모두 충족시켜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뒤에서 궁시렁 궁시렁하는 이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바른 생각만 있다면 그런 비판, 소문에 귀 기울이 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스스 로를 바라보면 "잘났어 정말!" 하지 않는답니다. 여러분, '잘 났어 정말!'은 무슨 뜻입니까 정말 잘 났다는 것인가, 아니면 못났다는 것입니까 두 의미가 다 있습니다. 말하는 억양에 따라 다릅니다. 자기를 판단하되 정말 잘 났다고 교만해 하지도 않고, 정말 못났다 고 자기를 비하하지도 않는다는 뜻!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 실한다는 것입니다.
ㅂ. 고전4:4-"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 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나 자신이 나를 보 고 판단하는 것에도 마음 주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님이시란 사실, 거기에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산다는 뜻!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시고, 정확하신 재판관 주님이 나를 판단하 실 것이니, 내 진실과 진심이 인정받지 않겠는가 하는 든든함을 표 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옛날 어린 시절에 교회 어 른들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이겨내셨다. "주님이 아시지, 주님이 아 시지." 이것이 건강한 믿음 아닐까요
ㅅ. 고전6: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 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 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는 장차 주와 함께 세상을 판단, 심판할 것입니다. 그 뿐이 아 닙니다.
ㅇ. 고전6: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 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무엇까지 우리가 심판한다 천사! 성도가 세상도 심판하고, 천사도 심판한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권세입니까 누가 성도가! 그러니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지금, 별 볼일 없어도 장차 우리는 세상을, 천사를 심판할 심판주입니다. 엄청난 영광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ㅈ. 고전11:13-"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초대 교회 시절에 여자들이 교회당에서 예 배 드릴 때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 정숙한 여자들은 모두 머리에 너울을 쓰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교회 에 와서는 이 너울을 훌훌 벗어제치는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그것이 여자 해방 운동의 일환인 것처럼 그랬나 봅니다. 이에 교회 내에서 문제가 되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감동 속에 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즉 이 말은, 교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너희 상식으로 스 스로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정숙치 못한 여자가 너울 을 안 썼는데, 너희가 예배 때에 너울을 안 쓴다면 뭘 뜻하는 것이 냐 너희 스스로 정숙치 않음을 보여주는 행위 아니냐 하는, 스스로 상식적으로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때로는 복잡한 문제들, 교묘한 교리적 문제들, 알 수 없는 일들,. 이런 일들을 당할 때 나는 이렇게 해결책을 갖습니다. 상식! 스스로 물어봄! 그래서 스스로 상식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하면 됩니다. 상식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반 양심 아닙니까 누구에게 나 다 통하는 법도 아닙니까 그러니 늘 스스로 물어보되, 상식적으 로 물어보십시오. 가만 보면 이단 사이비로 현혹되어 가는 이들을 보면, 상식을 도외시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마치 신앙이 좋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웃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상식의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역설적인 진리, 말씀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상식적입니다. 이 상식에 충실해서 살기만 한다면, 적어도 그는 하나님의 법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습니다.
4) 자, 이상과 같이 판단에 대한 교훈들을 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누구입니까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 느냐"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판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고, 비방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께서 나에게 교우들을 주신 것은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라고 주신 것 입니다. 우리를 이 왕십리 중앙 교회로 모이게 한 것은 서로 이 교회 에서 격려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거친 세상에서 살다가 이 전에 나아 와 서로 붙들어 주고, 사랑하고, 그래서 힘을 얻어 다시금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피를 나눈 형제입니까, 아니면 같이 일하고 월급 받는 직장인입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한 교회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서로 격려하고 힘을 나누라고, 그래서 우리를 이곳에 묶여 주시고, 반가운 형제자매들을 주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 오.
2. 두 번째 경우, 너는 누구관대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자신만 만하게 시작하느냐(13-17)
1) 장사하려는 이, 개업하는 이들은 무엇을 자랑합니까-> 길목, 장소, 시기, 자본, 경험, 인간 관계, 백 그라운드, .
2)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것을 허탄한 자랑이라 합니다.(16) 왜 그것이 허탄한가요(14)->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내일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 실입니다. 다만 시작할 때 잘 될 거야 라는 기대감으로 합니다. 사업 하는 이, 개업하는 이가 '나는 한 석달만 하다가 망할거야'해서 시작 하는 이가 있습니까 경제위기가 터질 줄 우리가 알았습니까 물론 전문가 들은 우려해 왔지만, 그렇게 쉽게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내 일 일은 난 몰라요'하는 찬송이 있지만, 정말이지 우린 내일 일을 모 릅니다. 다만 여태까지 온 것으로 보아 이럴 것이다 하고 추측만 할뿐 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추측에 불과할 뿐입니다. 엉뚱한 일들, 예상 치 못한 사고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어버립니다.
둘째로, 우리의 생명이란 것이 잠깐입니다. 아침에 잠깐 보이다가 없 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버티다 보면 잘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한 번은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한 몫 잡을 때가 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한정 기다리고 버티기에는 우리 인생이 허무합니다. 너무 짧습니다. 대머리 치료약이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언젠가는 나오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갈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장사하려는 이가, 사업을 시작하는 이가 정작 자랑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내일 일도 모르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살 지 도 모르는데, 무엇을 기댈 수 있단 말입니까 도리어 그런 이들이 정 작 구해야 할, 의지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뭔가요
3) 15절,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주의 뜻!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할 수 있다는 주님의 뜻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는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지만, 주님께서 그 짧은 인생 동안 나에게 허락하신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4) 그러니 무엇이 죄인가요(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선이란 착한 일 뿐만 아니라, 옳은 일을 뜻합니다. 옳은 일, 옳은 것, 즉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주님의 뜻을 구해야 그게 옳은 자 세인데, 그것을 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세상적인 것들만 자랑하며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행 해야 할 도리를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마땅히 기도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고 사업을 벌 리는 것, 죄입니다. 마땅히 예배 드리고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구실로, '에이 뭘 잘 되 겠지'하고 하는 것, 죄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해야 함에도 은행만 믿고 하는 것, 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 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을 구하고, 의지해야 알면서도 하지 않으니 죄입니다. 이런 죄를 범함이 없기 바랍니다.
=> 우리는 오늘 두 가지 경우를 들어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너는 누구관 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안다면 그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배짱 좋게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사는 이가 있습니다. 늘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너는 누구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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