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6:11-21)
본문
디모데전후서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목회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한 내용입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교회의 지도자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디모데전서 마지막 부분에는 교회의 행정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는 일 자체도 중요하시만 그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절에 보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17절에 보면 ‘온전’이란 말이 두 번씩 반복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선 순위에 있어서 일보다는 사람됨이 먼저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 중심의 사람 성경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최고의 기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 11절은 “(딤전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유혹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고 있는가를 말하면서 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 여기서 ‘떨어진다’, ‘빠진다’는 말은 어떤 잘못된 대상에게 완전히 포로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경고하면서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욕과 돈에 포로가 되기 쉬운 이 유혹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만 포로가 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과 정욕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까 이와 같은 세상에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삶의 주인이 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포로가 되어 산다면 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영광입니까! “너 하나니의 사람아”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소망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살았던 선지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너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영광스런 명칭을 수여하셨습니다.
가령 신명기 33:1절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전의 형편을 말하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 앞에 순종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살았던 그에게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라고 했습니다. 우리 생애 마지막 순간에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이 영광스런 칭호를 내리실 수 있을까요 사무엘상 9:6절에는 이스라엘 나라가 탄생되는 무렵 하나님이 택하신 이 나라의 첫 번째 왕을 찾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삼상9:6)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이제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과정을 밟아 나가게 됩니다. 정말 그 길을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올바른 해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모든 상황이 달라집니다. 오늘과 같이 우리의 주변이 어두워질 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정치가입니까 경제 전략가입니까 훌륭한 정치를 해서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는 정치가 한 사람이 정말 아쉽습니다. 이 나라가 이처럼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당리당략을 위해서 싸움만 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나라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능한 경제 전략가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등불이 어두워질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흠모했던 인생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는 엘리야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머물고난 후에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루는데 그 중에 하나가 혼자된 여인의 아들이 죽은 사건입니다. 아들이 죽게 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인은 자기의 문제를 엘리아에게 호소했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이 사실을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죽었던 아들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능력과 그의 경건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 여인이 엘리야 앞에 엎드려 고백한 말이 24절입니다. “(왕상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줄 아노라 하니라 ” 이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우리가 우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약점과 허물을 다 아는 가까운 이웃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내 약점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내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을 바라보면서 나를 향하여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이 이상의 영광과 성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느12:24) 레위 사람의 어른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저희가 그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한대로 반차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윗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입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역사의 장이 바뀌었지만 다윗의 영향력은 아직도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먼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귀감이었던 다윗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있다고 말했습니다. 먼 훗날 내가 가고 없는 땅에서 내 후손들이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고민하며 결단을 내려야 하는 때 아버지가 남겼던 말씀이나 삶의 모범을 생각하면서 “우리 아버지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셨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목회 생활을 끝내고 제가 떠난 후 제가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이 “과연 정 목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 교회에서 “정말 정 목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 얼마나 우리 삶에 도전을 주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돈과 권력과 정욕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향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
1) 피하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생을 살기 원하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돈에 대한 유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부에 대한 탐닉을 시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한 가지 더 경고하는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필요 없는 변론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단에 관한 경고를 많이 했습니다. 이단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변론을 위한 변론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변론을 위한 변론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단으로 보는 여호와의 증인이 하는 일을 아시지요 둘씩 짝을 지어 가지고 다니면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 교회 문패가 붙어 있는 집만 찾아다니면서 “우리,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실까요” 하면서 접근합니다. 그리고 변론을 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성경 구절만 골라서 따로 외우고 다니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그들의 이론에 질 수밖에 없습니다. 토론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토론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주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도 그렇습니다. 한국교회가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만 성경 공부를 한다면 이것은 우리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지식에 대한 강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한 시직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 변론합니까 아니면 단순히 내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토론합니까 말씀 앞에 내 자신의 삶을 비춰보고 고민하는 그런 성경 공부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 사람됨이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 가슴이 깨어지는 고백과 눈물의 통회가 있는 그런 성경 공부가 바른 말씀 공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돌려 다른데로 향하게 하는 성경 공부,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삶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변론을 우리는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유혹의 장소를 피해야 합니다. 마귀가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할 때 우리는 그 덫을 피해야 합니다. 청년 요셉이 주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 피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윗은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여 도망 다니다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이 자기에게 죄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어떤 상황이 나를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피해야 합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물러서지 말고 싸워야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내 삶을 그르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후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고 했습니다. 바로 그전에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여러 가지 그릇이 있습니다. 이런 그릇, 저런 그릇이 다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쓰임 받을 수 없는 그릇이 하나 있습니다. 더럽혀진 그릇입니다. 큰 그릇이 되지 못했다고 한탄할 것 없습니다. 크든 작든 우리는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고 요긴한 그릇입니다. 문제는 쓰임 받는 것입니다. 쓰임 받기 원하면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하기 위해서는 더럽혀질 가능성이 있는데서 피해야 합니다. 시편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했습니다.
2) 좇으라 본문 “(딤전6:11)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여기에는 여섯 가지 덕목이 강조되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여섯 가지 인격의 덕목을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로 짝을 지어 생각했습니다. 의는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를 이루는 데 필요한 덕목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받는 가장 놀라운 축복 가운데 하나가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강조된 덕목이 경건입니다. 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한 인격적인 덕목이라면, 경건은 그 하나님을 향해 가는 삶의 자세,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격적인 특성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믿음과 사랑입니다. 의가 없는 경건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이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과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관계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있어야 할 덕성으로 강조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갖추고 있는 덕목인 믿음과, 희생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갖추고 있는 덕목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짝이 인내와 온유입니다. 이 두 덕목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인답게 인내하고 있습니까 인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이 온유함을 나타낸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온유라는 말은 얌전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칠고 힘이 센 야생마가 잘 길들여졌을 때 ‘온유하다’ 라는 말을 씁니다. 즉 이것은 굉장한 힘을 자제하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내와 온유는 환경에 대하여 요구되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입니다.(왼 빰, 일흔번씩 일곱 번, 겉옷을 달라하면,오리를 가자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하여 의와 경건을, 자신과 이웃에게는 믿음과 사랑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는 인내와 온유를 좇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내 인격이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이웃을 용납하고 용서함으로 주님을 닮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손해본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싸우라 무슨 싸웁입니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에게 쓴 바울의 마지막 편지는 디모데후서 4장입니다. 거기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기 인생의 종착역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싸운다’는 말은 사단, 또는 죄와 싸운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할 때, 그것이 바로 적극적인 의미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 “(딤전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부요함을 추구하는 것은 승리의 길이 아니라 오히려 패배의 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에는 세상에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는 것이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을 어떻게 사용했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싸우다’는 말은 우리의 인격이 주님 앞에서 어떻게 다듬어져 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선하다’는 말은 단순히 ‘착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선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바꿔도 됩니다. 로마서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의 ‘선’도 모든 것이 그저 잘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4) 취하라 또한 “영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취하라’는 단어는 아주 강한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고하게 붙잡고 누리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누가 영생을 즐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야말로 영생을 값없이 받습니다.
그런데 영생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업을 위해 사용하면서 “내 소망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 나라에 있습니다” 라고 증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사람이고 그것을 감격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생을 누리며 즐기고 있습니까 본문 “(딤전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말로는 “내 소망은 저 나라에 있습니다”라고 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영생을 누리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내 놓을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일을 할 때 주님이 주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영생을 즐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영생을 즐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지키라 주님은 ‘이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까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언제까지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까 주님 나타나실 때까지입니다. ‘나타난다’는 말은 새벽에 동녘이 밝아오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새벽에 여명이 밝아올 때, 하나님 나라의 동이 터올 때, 주님의 영광스러운 그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까지 이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오늘 내가 가장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돈의 노예입니까 정욕의 노예입니까 자존심의 노예입니까 권력의 노예입니까 어차피 이 세상에서 포로로 살게 된다면 저는 하나님의 포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포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 하나님,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 주세요.” 이것이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 중심의 사람 성경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최고의 기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 11절은 “(딤전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유혹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고 있는가를 말하면서 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 여기서 ‘떨어진다’, ‘빠진다’는 말은 어떤 잘못된 대상에게 완전히 포로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경고하면서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욕과 돈에 포로가 되기 쉬운 이 유혹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만 포로가 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과 정욕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까 이와 같은 세상에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삶의 주인이 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포로가 되어 산다면 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영광입니까! “너 하나니의 사람아”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소망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살았던 선지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너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영광스런 명칭을 수여하셨습니다.
가령 신명기 33:1절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전의 형편을 말하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 앞에 순종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살았던 그에게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라고 했습니다. 우리 생애 마지막 순간에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이 영광스런 칭호를 내리실 수 있을까요 사무엘상 9:6절에는 이스라엘 나라가 탄생되는 무렵 하나님이 택하신 이 나라의 첫 번째 왕을 찾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삼상9:6)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이제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과정을 밟아 나가게 됩니다. 정말 그 길을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올바른 해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모든 상황이 달라집니다. 오늘과 같이 우리의 주변이 어두워질 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정치가입니까 경제 전략가입니까 훌륭한 정치를 해서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는 정치가 한 사람이 정말 아쉽습니다. 이 나라가 이처럼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당리당략을 위해서 싸움만 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나라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능한 경제 전략가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등불이 어두워질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흠모했던 인생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는 엘리야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머물고난 후에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루는데 그 중에 하나가 혼자된 여인의 아들이 죽은 사건입니다. 아들이 죽게 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인은 자기의 문제를 엘리아에게 호소했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이 사실을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죽었던 아들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능력과 그의 경건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 여인이 엘리야 앞에 엎드려 고백한 말이 24절입니다. “(왕상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줄 아노라 하니라 ” 이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우리가 우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약점과 허물을 다 아는 가까운 이웃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내 약점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내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을 바라보면서 나를 향하여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이 이상의 영광과 성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느12:24) 레위 사람의 어른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저희가 그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한대로 반차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윗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입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역사의 장이 바뀌었지만 다윗의 영향력은 아직도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먼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귀감이었던 다윗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있다고 말했습니다. 먼 훗날 내가 가고 없는 땅에서 내 후손들이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고민하며 결단을 내려야 하는 때 아버지가 남겼던 말씀이나 삶의 모범을 생각하면서 “우리 아버지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셨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목회 생활을 끝내고 제가 떠난 후 제가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이 “과연 정 목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 교회에서 “정말 정 목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 얼마나 우리 삶에 도전을 주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돈과 권력과 정욕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향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
1) 피하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생을 살기 원하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돈에 대한 유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부에 대한 탐닉을 시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한 가지 더 경고하는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필요 없는 변론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단에 관한 경고를 많이 했습니다. 이단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변론을 위한 변론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변론을 위한 변론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단으로 보는 여호와의 증인이 하는 일을 아시지요 둘씩 짝을 지어 가지고 다니면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 교회 문패가 붙어 있는 집만 찾아다니면서 “우리,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실까요” 하면서 접근합니다. 그리고 변론을 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성경 구절만 골라서 따로 외우고 다니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그들의 이론에 질 수밖에 없습니다. 토론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토론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주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도 그렇습니다. 한국교회가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만 성경 공부를 한다면 이것은 우리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지식에 대한 강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한 시직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 변론합니까 아니면 단순히 내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토론합니까 말씀 앞에 내 자신의 삶을 비춰보고 고민하는 그런 성경 공부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 사람됨이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 가슴이 깨어지는 고백과 눈물의 통회가 있는 그런 성경 공부가 바른 말씀 공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돌려 다른데로 향하게 하는 성경 공부,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삶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변론을 우리는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유혹의 장소를 피해야 합니다. 마귀가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할 때 우리는 그 덫을 피해야 합니다. 청년 요셉이 주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 피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윗은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여 도망 다니다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이 자기에게 죄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어떤 상황이 나를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피해야 합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물러서지 말고 싸워야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내 삶을 그르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후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고 했습니다. 바로 그전에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여러 가지 그릇이 있습니다. 이런 그릇, 저런 그릇이 다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쓰임 받을 수 없는 그릇이 하나 있습니다. 더럽혀진 그릇입니다. 큰 그릇이 되지 못했다고 한탄할 것 없습니다. 크든 작든 우리는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고 요긴한 그릇입니다. 문제는 쓰임 받는 것입니다. 쓰임 받기 원하면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하기 위해서는 더럽혀질 가능성이 있는데서 피해야 합니다. 시편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했습니다.
2) 좇으라 본문 “(딤전6:11)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여기에는 여섯 가지 덕목이 강조되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여섯 가지 인격의 덕목을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로 짝을 지어 생각했습니다. 의는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를 이루는 데 필요한 덕목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받는 가장 놀라운 축복 가운데 하나가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강조된 덕목이 경건입니다. 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한 인격적인 덕목이라면, 경건은 그 하나님을 향해 가는 삶의 자세,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격적인 특성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믿음과 사랑입니다. 의가 없는 경건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이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과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관계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있어야 할 덕성으로 강조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갖추고 있는 덕목인 믿음과, 희생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갖추고 있는 덕목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짝이 인내와 온유입니다. 이 두 덕목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인답게 인내하고 있습니까 인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이 온유함을 나타낸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온유라는 말은 얌전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칠고 힘이 센 야생마가 잘 길들여졌을 때 ‘온유하다’ 라는 말을 씁니다. 즉 이것은 굉장한 힘을 자제하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내와 온유는 환경에 대하여 요구되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입니다.(왼 빰, 일흔번씩 일곱 번, 겉옷을 달라하면,오리를 가자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하여 의와 경건을, 자신과 이웃에게는 믿음과 사랑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는 인내와 온유를 좇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내 인격이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이웃을 용납하고 용서함으로 주님을 닮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손해본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싸우라 무슨 싸웁입니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에게 쓴 바울의 마지막 편지는 디모데후서 4장입니다. 거기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기 인생의 종착역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싸운다’는 말은 사단, 또는 죄와 싸운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할 때, 그것이 바로 적극적인 의미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 “(딤전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부요함을 추구하는 것은 승리의 길이 아니라 오히려 패배의 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에는 세상에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는 것이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을 어떻게 사용했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싸우다’는 말은 우리의 인격이 주님 앞에서 어떻게 다듬어져 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선하다’는 말은 단순히 ‘착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선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바꿔도 됩니다. 로마서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의 ‘선’도 모든 것이 그저 잘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4) 취하라 또한 “영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취하라’는 단어는 아주 강한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고하게 붙잡고 누리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누가 영생을 즐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야말로 영생을 값없이 받습니다.
그런데 영생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업을 위해 사용하면서 “내 소망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 나라에 있습니다” 라고 증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사람이고 그것을 감격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생을 누리며 즐기고 있습니까 본문 “(딤전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말로는 “내 소망은 저 나라에 있습니다”라고 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영생을 누리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내 놓을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일을 할 때 주님이 주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영생을 즐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영생을 즐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지키라 주님은 ‘이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까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언제까지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까 주님 나타나실 때까지입니다. ‘나타난다’는 말은 새벽에 동녘이 밝아오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새벽에 여명이 밝아올 때, 하나님 나라의 동이 터올 때, 주님의 영광스러운 그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까지 이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오늘 내가 가장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돈의 노예입니까 정욕의 노예입니까 자존심의 노예입니까 권력의 노예입니까 어차피 이 세상에서 포로로 살게 된다면 저는 하나님의 포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포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 하나님,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 주세요.” 이것이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