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너 평화의 사도여! (눅19:41-48)

본문

교회는 평화의 대행진입니다. 평화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상징입니다. 평화가 수립된다는 것은 자유와 진리와 정의와 일치가 실현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는 것이며, 세계인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이므로 군사적 평저으로 이룩되는 폭 력적, 위장된 평화가 아닙니다.
첫째로, 평화는 세계 인류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며 말씀하신 것은, 저들이 "평화에 이 르는 길"을 알지 못해 멸망에 이르게 될 운명을 슬퍼하신 것입니다. 평화는 생명의 길이며, 이것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 물질적, 그리고 육체적인 사회 안정과 다릅니다. 정의와 평등과 자유와 진리와 일치가 있는 조화된 삶입니다. 개인의 마음의 평안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항구적 화평과 안정입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예수의 행렬을 평화시위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평화 를 말하면서도 "평화의 관한 일"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애호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고통없이는 세계 인 류를 멸망에서 건져낼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평화의 대행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의 여리고 성을 향한 평화행진을 비교할 수 있으 며, 그리고 우리 나라3.1독립운동을 위한 평화시위 행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원수의 군사력 앞에 평화적인 행진이었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대 행진은 평화운동입니다. 다른 이의 희생을 통해 얻은 평화 속에 안주하는 평화애호가 아니라, 책임사회인으로서 계몽과 교육과 갱신의 사회운동입니다. 이것은 비폭력적 운동입니다. 인간을 미워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 히려 사랑해서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불의를 증오해서 싸울 뿐입니다. 이것은 정의와 진리의 운동입니다. 불의와 거짓을 제거하는 자유의 함 성이며 대행진입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라"(눅 19:40)는 예수의 말씀과 같이 평화의 대행진은 자유의 시위입니다.
셋째로, 평화의 사도직은 인간 사랑과 하나님 신앙에서 결실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인간 사랑에서 시작되며 동기가 됩니다. 물질이나 권력을 사랑하면 평화운동이 아닙니다. 민족주의나 국가안보나 또는 애국이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는 권력행사는 결코 평화운동이 아닙니다. 독일 나치 정권이나 일본 의 제국주의가 모두 평화의 이름으로 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인권을 사랑 할 때 평화가 가능합니다. 한편 신학적 보수는 교회분열을 낳고, 교회성장 은 교권쟁탈의 분쟁을 발생시켜 세속 권력에 스스로를 저당잡힙니다. 거기 에는 불의의 안전과 성장이 있을 뿐입니다. 평화의 사도직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고, 하나님의 평화의 나라가 이 땅 위에 만들어질 것을 소망하며, 그것을 사랑하는 헌신적 참여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예수의 제자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조성하는 평화의 사도이며,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마 5:9).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92 페이지